동상이몽
w. 옥수수소세지
"어쭈, 좀 긴장한 것 같다?"
"아니? 전혀? 누가?! 내가?"
"아, 아니야? 내가 잘못 봤나 보다 ㅎㅎ"
Q.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여보 먼저?"
"아니, 남편 먼저."
(주접)"오케이, 남편 먼저.
안녕하세요, 세계적인 사진작가 ㅇㅇㅇ 씨의 남편 주지훈입니다."
(부끄)"안녕하세요, 톱스타 주지훈 씨의 아내 ㅇㅇㅇ입니다.
잘 부탁 드려요."
"아- 귀여워.. 미치겠다 ㅎㅎ"
EP. 00: 이런 부부 또 없습니다
오늘은 첫 촬영 날이에요.
거실이 조용한 걸 보니 아직 이 집은 한밤중인가 봐요. 아기자기하고 세심한 인테리어에 맞게 포근한 시트러스향이 가득해요. 대충 앞구르기하며 보아도 부부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귀여운 소년과 소녀가 그려진 두 개의 컵, 보라색과 초록색 칫솔, 늘 발이 찬 아내를 위해 맞춘 털 슬리퍼 두 켤레, 그리고 검은색과 남색 우산. 모든 게 두 개씩인 이곳에 살짝 벌어진 암막커튼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방 안으로 스며드네요. 중천에서 내리쬐는 볕은 물론이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까지 무시한 채 단잠에 빠져있는 부부가 보여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니- 침대가 저리 넓은데 저 둘은 왜 저렇게 구석탱이에 나란히 누워있는 거죠? 그냥 눈대중으로도 킹 사이즈 침대 같은데요.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잠결에 아내 쪽으로 굴러간 남편이 제 팔과 다리로 그녀를 포박시킨 채 누워있는 거 같아요. 이런게 바로 신혼인가 봐요 ㅎㅎ
짜증나네요.
잠시만 다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미동도 없이 기절한 듯 잠을 자던 아내는 시간을 확인한 뒤 드디어 일어나려는지 남편의 품속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아직 잠에 취한 채 상황 파악을 하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해요. 고개만 빼꼼 들어 남편의 얼굴을 한 번, 제 잠을 깨운 답답함의 원인인 남편의 무거운 다리를 한 번.
저 많은 자리를 두고도 이렇게 잘 거였다면 돈 낭비라도 하지않게 싱글 침대를 살 걸 그랬다며 혼잣말을 하네요.
허리에 끈질기게도 올려진 팔까지 떼어낸 후에야 침대에서 살포시 내려 올 수 있던 ㅇㅇㅇ 씨의 험난한 아침 여정이었습니다.
"...어디 가?"
"나 일 가야 돼. 씻고 준비해야지."
갑자기 허전해진 옆자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눈을 뜬 남편은 제 아내의 허리를 낚아채 다시금 제 옆에 눕히네요. 낮게 잠긴 목소리로 제 아내의 목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저기 두 분..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요.
잊지 말아주세요, 솔로는 서러워서 사나요?
아무리 지금은 유부남이라지만 그래도 한때는 명색이 톱배우였는데 인간미 넘치게 퉁퉁 부은 저 눈과 볼 좀 보세요. 제 품에 안긴 채 밤새 머리 위로 지은 까치집을 정리해주는 아내의 간지러운 손길에 베시시 웃는 남편이에요. 어머나 주지훈 씨.. 애교쟁이였네요..? 소름.
아직도 이불에 돌돌 말린 채 느리게 두 눈을 꿈뻑이며 침대에 앉아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혹여나 지각이라도 할까 서둘러 화장실로 향하던 아내의 발걸음을 멈춘 건 바로,
"여보. 나 뽀뽀."
"안 돼. 냄새 나. "
"괜찮아."
"뭐래. 나 말이야. 내가 안 괜찮아. 나 비위 약해."
"아휴.. 짜증난다."
"그래 괜히 잠투정 부리지 말고, 더 자라."
아무래도 저보다 12살씩이나 많은 남편을 놀리는 재미로 사는게 분명합니다. 맥이 다 빠진 채 다시 또 침대에 스르르 누운 뽀뽀 귀신 주지훈 씨를 보며 만족한 웃음을 터트린 ㅇㅇㅇ 씨의 신혼 2년 차 아침입니다.
"때 밀어? 빨리 나와서 아침 먹어, 여보!"
다시 잠에 든 줄 알았더니 기특하게도 아내를 위해 아침을 했나 봐요. 그러고 보니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네요. 오늘의 아침 메뉴는 계란후라이에 예쁘게 칼집을 낸 소시지네요. 어제 먹었던 된장국까지 데우고 그릇에 담으면 끝이에요. 꽤나 단촐하지만 또 이런 게 신혼의 묘미 아니겠어요?
"...소개팅 나가?"
"뭐야, 그냥 예쁘다고 해."
"뽀뽀도 안 해줬는데 뭐가 예뻐."
여러분 놀라지 말아요. 삐치신 거 맞으니까.
댓 발로 나온 입은 둘째치고 말투까지 토라졌을 때는 그냥 해 줘야 한다고 해요 시간이 많을 때나 튕기는 거지 뽀뽀 한 번 안 해주면 하루종일 옆에서 괴롭히고 칭얼거린다네요. 이렇게 나잇값도 못 할 줄은 몰랐다며 사기 결혼 당한 게 분명하다고 저희에게 호소하시며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 삐돌이 고마워엉- 아침을 차리느라 고생한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이다 이따금 아내는 터프하게 남편의 두 볼을 잡고서 입술에 도장을 콩. 옆에서 둘의 수저를 챙기는 아내의 볼에 무심한 얼굴로 또 한 번 더 뽀뽀. 괜한 자존심에 꾸욱 참으려다 저도 몰래 슬금슬금 호선을 그리던 남편의 입가는 마지막 식기를 식탁 위로 옮기려 뒤를 돌 때즈음에 이미 무장 해제되어 빙구같은 미소를 짓습니다. 이 맛에 아침을 차리신다고 뿌듯하게 말씀하시네요.
"왜?"
"오늘 좀 귀엽다?"
"허.. 다시 방에 들어가?"
오오- 역시 이런 게 신혼인가요?
투닥투닥거리다가도 슬쩍 눈만 마주치면 뜨거워진다더니...
근데 어디가 귀엽다는 거죠? 전 잘 모르겠어요.
이 넓디넓은 식탁을 두고 또 굳이굳이 서로의 옆자리에 찰싹쿵 붙어 앉아 알콩달콩 발장난을 칩니다. 아침 식사 내내, 저는 먹는 둥 마는 둥 물부터 반찬까지 아내만 챙기는 사랑꾼 남편이네요. 김에 밥을 싸 한 입 물려준 아내가 아니었더라면 남편은 아직까지 한 숟갈도 못 먹었을 거예요.
솔직히 그냥 각자 알아서 밥 먹으면 편할 텐데, 아 이런.
죄송. 또 속 마음이 튀어나왔네요.
외로워서 그래요. 외로워서.
"자기, 나 간다요."
"어어! 여보- 데려다 줄까?"
"아냐, 내 차 타고 가면 돼."
소문에 의하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ㅇㅇ 씨가 카레를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 자그마한 고사리 같은 손이 크면 얼마나 크겠어 간과한 채 그녀를 아주 흐뭇하게 지켜보며 자유로이 뒀을까요. 아파트 이웃 주민분들께 실컷 나누어 주고서도 둘은 일주일 내내 카레를 먹어야 했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부엌은 근처에도 못 가게 막는 남편 덕에 자연스레 아침 식사 뒷정리까지 남편이 하는 중이었어요.
그래도 그 덕분에 아내는 한껏 더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답니다. 현관 문을 나서기 전 남편에게 이제 간다라는 말을 하자마자 부엌에서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낀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옵니다.
"데려다 주고 싶어."
"안 돼. 그럼 또 데리러 와야 되고, 자기 귀찮아."
"안 귀찮은데? 내가 촬영장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올까?"
"오빠 심심해. 바짝 집중해서 후딱 끝내고 올게."
주딱지. 아내 분이 알려주신 별명인데요, '주지훈 + 껌딱지' 라고 하네요. 멀대같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나른한 애교가 참 많으신 것 같아요. 데뷔 이래 처음 맞이하게 된 신선한 충격이랄까요. 팬이었거든요.
남편에게 서둘러 퇴근해 보겠다며 다독이는 아내의 모습을 아마 자주 보게 되실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이 얼토당토아니한 꽁냥질에 얼른 익숙해 지셔야 할 걸요? 제가 조금 일찍 이들을 관찰해 봤는데 출근하는 날 하루도 빠짐 없이 나누는 이 닭털 날리는 대화는 이들의 일상이니까요.
"데리러는?"
"내 차는 어쩌고."
"다음 날 내가 또 바래다 주면 되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나 진짜 간다.
우리 지훈이 누나 너무 보고 싶어 하지 말고오, 집 잘 지키고 있어야 돼에?
알았지?"
"네 누님. 운전 조심하시구요,
항상 남자는 더 조심하시구요."
오냐- 어울리지 않게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 아내가 귀엽기만 한지 앞머리를 다정히 정리해주다 끝내 환한 미소를 짓네요. 이 신혼부부의 아침을 마무리하는 이번 뽀뽀는 꽤 길었던 거 같은데 모르는 척 해주죠 우리.
총총-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기 전 사랑스레 손을 흔들고 사라진 휑한 복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도,
"아 벌써 보고싶네.. 오늘은 뭐 하지?"
전업주부 주지훈 씨의 하루의 시작은 여전히 분홍빛이네요.
EPILOGUE.
Q. 서로의 첫인상은?
"음... 백곰?"
"인성 뭐야. 와이프한테 백곰이 말이냐?"
"왜 귀엽잖아."
Q. ㅇㅇ 씨는요?
"음.. 재수없다?"
"와하- 지는."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셨나요?!
그 전처럼 자주는 못 올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르고 볼게여!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세여!
읽어주셔서 감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