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붉은 참혹상
written by: 규피덴셜
state: 공유, 배포 xX
nick: 테라규, 감성, 씨규빠, 타라, 베긔, 체리펀치, 소라빵, 코알라, 모닝콜, 찹쌀떡, 뇨뇽
붉은 참혹상 -07-
집으로 가는 길은 길게만 느껴졌다. 항상 성규형과 학교 끝나면 같이 걷던 이 거리를 그와 이제 앞으로 같이 걷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이렇게까지 안 하면 성규가 내 마음을 알아줄 날은 절대 오지 않을거라고, 그래서 바로 입술을 맞부딪히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려고 우현은 생각했다. 그리고 느꼈다. 생각이 짧았던 것이었다는 것을.
날이 밝자 우현은 곧바로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쫓겨나서 언제쯤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하고 고민하던 찰나 성규 집에 가 있었는데 이제 성규의 집도 못 가니 우현은 오늘 하루종일 또 어디에 있어야 하나 머릿속이 막막했다. 미쳤다고들 생각하겠지만 학교 가서 성규 형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와야지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더 빨라지고 빨라져 우현은 뛰기 시작했다. 땀이 차가웠다.
학교에 제일 먼저 도착한 줄로만 알았던 우현은 몇몇의 사람들이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기에 놀랐다. 그렇게 바로 성규의 반으로 올라갔는데 성규 책상 안도, 성규의 사물함도 다 비어있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봐도 책들이 삐죽 튀어나올 정도로 많았었는데 뭐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슬렁거리면서 성규의 자취를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던 도중 펼쳐져 있던 출석부, 그리고 '김성규' 이름 위에 그어진 빨간 줄. 우현은 자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것일거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 아냐, 몇 일동안 자고 가. 좀 좁겠지만.」
흔들렸던 동공이 이제서야 생각났다. 그저 성규 형과 함께 하루 밤을 같은 이불 위에서 보낼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있었던 우현이었다. 그럴 때가 아니었지. 왜, 무슨 일이냐고. 왜 나는 묻지 못했을까. 우현은 절망감에 빠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학교에는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자퇴인걸까? 그럼 나는? 나는 성규 형을 학교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어디에서도 성규 형을 볼 수 없는걸까? 나 운명적인 만남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오늘 하루종일 수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도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던 우현이기에 하루정도 수업을 듣지 않아도 이미 선행학습이 되어 있었기에 상관은 없었지만 머릿 속이 복잡해져 오기 시작했다. 성규 형은 도대체 왜 학교를 자퇴한 것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그만큼 파장이 큰 일인건가?
*
“야, 김성규 사관학교 입학했다며?”
“헐, 그러면 본래 입학 가능한 것보다 1년 반? 일찍 입학한거야? 대박.”
“하긴 걔 공부도 엄청 잘하잖아….”
“근데 왜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거지. 머리도 좋은데, 굳이.”
반 아이들이 수근거림에 명수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 때 성규와 싸움이 붙고 진호에게 상담을 받은 후로 성규가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고 길에서 한 번 슥 지나가다가 봤을 때에도 걸음걸이에 힘도 없고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예상은 했었지만 이런 식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자신의 뒷통수를 칠 줄은 전혀 몰랐었다. 사관학교는 중등 교육이 의무로 끝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고 어차피 훈련병이 되기 위해서는 그 곳에서 시험을 봐야지만 들어갈 수가 있었다.
명수는 감히 예상했다. 자신과 성규의 관계가 마치 자신의 삼촌과 이상민 대령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라고.
「명수야, 삼촌 왔다.」
어릴 적부터 명수는 삼촌을 존경해왔다. 명수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어른들 말로는 벨름팍스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한 군인이 명수의 조상이라고 했다. 인피니투스라는 지금 현재의 수도만큼 작았던 벨름 제국에서 전쟁을 벌이기엔 너무나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많았기에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셔서 팍스 제국 내로 침입. 그리고 백성들을 대학살하는 경우로 팍스 제국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고 전쟁을 멈추었다. 이미 백성들의 60%를 육박하는 수가 죽어 있었고 팍스 제국은 그대로 무너지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휴가 때만 되면 자신의 집에 들락날락 거리듯 삼촌은 항상 명수의 집에 방문하곤 했다. 항상 명수를 안아주고 목마를 태워주던 삼촌을 명수는 좋아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서서히 커가면서 존경으로 바뀌었고, 삼촌을 따라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삼촌은 어느새 스쿠툼의 대령이 되었지만 글라디우스의 이상민 중령이 대령이 되었다는 소식에 삼촌의 승진 소식은 묻히고 말았다. 어느 누구라도 김명근이 누군 줄 아냐 물으면 글라디우스의 중령 아니냐 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김명근이라는 사람은 2인자에 그칠 뿐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젯 밤이었다. 승진하고 거의 4년만에 휴가를 겨우 내셔서 집으로 들어오신 삼촌은 술을 한 봉지 가득 담아 안아 들고 오셨다. 아버지는 다른 도시로 잠시 파견을 나가계셨고 어머니는 할머니댁에 가 있던 찰나, 결국 명수는 혼자 삼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명수는 삼촌이 승진하기 전보다 많이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점 생기는 주름이라던가 행동은 예전처럼 빠르지 않았다.
「삼촌, 승진 축하드립니다.」
「허허, 명수가 많이 컸네. 이제 삼촌한테 술도 따라주고.」
삼촌은 그 날 술을 많이 드셨다. 적당히도 아니고 많이 마시셨다. 마침 그 날 뉴스에서는 홍단의 왕관을 훔친 범인이 다시 군복무를 할 수 있게끔 재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상민 대통령이 나오면서 인터뷰를 하려는 순간 삼촌은 티비를 끄셨다.
「어떻게 되어먹으련지 삼촌은 잘 모르겠다, 명수야.」
「…….」
「너가 군인이 되는 건 막지는 않게다마는 만약 저 정도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꼭 세상을 바꿔야된다. 저런 인물이 되어서는 역사에 점도 못 찍는다.」
명수는 수업에 더 이상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삼촌이 했던 말이 무엇인 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을까. 그 때 제대로 물어볼걸. 명수는 텅 빈 성규의 자리가 자꾸 신경 쓰이고 눈에 거슬렸다.
*
「현재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인피니투스의 사관학교에 열 다섯 살 소년이 입학을 하게 되어 요즘 핫 이슈입니다. 이 소년은 성적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이유에서부터 사관학교에 빨리 입학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성규의 사진이 티비에 실리기 시작했다. 성규는 무심코 티비를 보다가 너무 행복해 기분이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성규는 만족했다. 무엇이든 걸리기만 하면 족족히 다 까버리고 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느낌이라 무엇보다도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당당한 손자가 된 것 같아서였을까.
사건은 이러하였다. 아침에 학교갈 준비를 하려고 눈을 딱 뜨자마자 여러 사람들이 이미 집 안에 들어와 있었고 이런 것이 모두 남우현이 부순 손잡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내 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서 짐에 싸기 시작했는데 성규는 그 때까지도 사실은 꿈인 줄로만 알았다. 군모를 쓴 사람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 집에 와 있는 것조차 신기해서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그 사람들을 넋 놓고 쳐다보았다.
“저기요.”
“…….”
“누구세요.”
“496군번 훈련병 서인국입니다.”
“아저씨 훈련병이에요?”
“예.”
“아저씨 어디서 나 봤죠?”
익숙한 목소리에 익숙한 체격을 가진 이 사람. 서인군 훈련병을 어디에서 봤더라 성규는 골똘히 생각해 낸 끝에 대령관 앞에서 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는 어두운 것도 있었고 훈련병들보다는 대령님을 만나는 게 우선이어서 그랬을까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꽤 잘 생겼네. 성규는 생각했다.
짐을 거의 다 쌌는지 집 안은 텅 비어졌다. 성규는 그저 멍 했다. 이거 정말 꿈인걸까? 아니 이게 진짜라면 난 지금 왜 가만히 있는걸까.
“이 집에 혼자 살아요?”
“예? 아, 예.”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면서 이곳 저곳 둘러보며 짐들의 수를 세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성규는 멍해질 뿐이었다. 지금 훈련병들이 왜 우리 집에 와 있는거지. 가만히 다시 누워서 잠을 청했다. 꿈이니까, 뭐.
「사관학교에서 곧 뵈겠죠. 걱정마세요.」
눈을 감고 칠흙같던 어둠이 다시 시작될 때쯔음에 상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싶었다. 나 얼마나 피곤하면 이상한 꿈과 걸맞는 환청까지 들리는거야? 성규는 계속 꿈일거라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이제 눈을 떴으니 훈련병들이 없는 텅 빈 우리 집이 보이겠지? 싶었지만 아니었다. 훈련병들은 아예 저를 피해 옆으로 걸음을 옮겨다니면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이거 진짜에요? 왜요?”
“사관학교에 입학하셔야죠.”
성규는 멍해졌다. 그러면 그 때 이상민 대령님이 나에게 직접 해주신 말이 진짜가 된 건가? 하지만 난 아직 부족한 열 다섯살에 불과한데 이렇게 입학해도 되는건가? 아니,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꿈이 이렇게 쉽게 이뤄진건가? 종혁이 형은 어떻게 되는거지? 성규는 혼란스러웠다. 가만히 챙겨진 짐들을 보면서 성규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짐이 저렇게 없었나 싶기도 하고.
사관학교에는 기숙사가 있다. 기숙사라고 칭하기에는 정말 큰 아파트 단지처럼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머물면서 사과학교에서 생활을 하는 것인데 나름대로 편리한 구석이 많은 학교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꿈꿔왔지만 정말이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것만큼 성규에게 도움이 되는 꿈이라던가 바라는 진로가 없었다.
꿈만 같은 상황이라고 믿어도 나쁘지 않을 만한 상황이었다. 여느 3류 소설처럼 기막히고 우연스럽게도 아는 형의 가방에서 국보 1호급의 보물을 발견해서 대령도 직접 만나고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유유한 성격의 대령님에게 인정을 받아 거의 1년 반정도를 일찍 사관학교에 들어간다라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었다. 성규는 무엇보다도 어서 일어나 챙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옷장을 열었건만 입을 옷조차 짐에 싸버려서 입을 것이 없었다. 결국엔 잠옷 비스무리한 츄리닝을 입고 사관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차 안의 에어컨 바람이 솔솔 들어오기 시작했다. 훈련병들 사이에서 츄리닝 하나 입고 꼭 껴있는 모습이란 사고 치고 경찰서에 끌려가는 어린 아이처럼 보였다. 성규는 약간의 불편한 분위기를 없애고자 훈련병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씩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각각 얼굴을 쳐다볼 때 유일하게 답을 해준 사람이 서인국 훈련병이었기에 성규는 인국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형은 몇 살이에요?”
“몰라도 돼.”
“형 시험 잘 보고 훈련병 된 거에요?”
“몰라도 돼.”
못 봤구만, 성규가 궁시렁거리면서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로 있자 인국은 성규의 뒷통수에 대고 인상을 찡그린 채로 노려보았다. 저번에 메롱하면서 대령님한테 철썩 붙을 때부터 알아봤어. 이런 골치 아픈 놈을 어떻게 사관학교에 들일 생각을 한 거야, 도대체. 대령님은 언제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국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기 전에 성규의 뒷통수를 치는 척 주먹을 허공에 내둘렀다.
차에서 내리자 더운 바람이 훅 하고 성규의 얼굴을 쳤다. 사관학교의 입구를 보자 약간 학교라기 보다는 새로운 마을이나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사관학교 내에 있다는 아파트 단지는 저기일 것이고 훈련장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훈련병들이 훈련만 하는 곳이 아니고 운동도 하고 여가활동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여러모로 즐거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