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로망, 클리셰W. 백빠김종인; 영웅을 위하여. 터벅. 터벅. 터벅. 반가운 발자국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저 철문 밖으로 너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마치 집을 지키던 애완견이 현관문 밖에서 주인의 발소리를 들은 것처럼 한껏 들뜨기 시작했다. 저 철문 앞으로 달려가 있는대로 꼬리를 흔들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네가 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쳐 감고 있던 두 눈커풀을 조금씩 들어올렸다. 속눈썹에 엉겨있던 피가 굳어버려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아까 터진 입 속에 고여있는 핏물들을 바닥에 뱉어내는데 갈비뼈에 금이 간건지 그 근처 어딘가가 고통스럽게 아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나는 눈을 제대로 떠보려 노력했다. 너를 볼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기에. 그러나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는 것 조차 힘겨웠다. 두터운 철문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열렸다.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 애써 최대한 있는 힘껏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내 시야엔 겨우 너의 큰 두 발만이 담겼다. 너의 두 발을 볼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 두 발은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와 멈춰섰다. " ……. " 너는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고민을 하는 듯 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또 다시 어떻게 설득을 해야할지… 아마 지금쯤 입술을 깨물고, 왼쪽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너. 그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지자, 어렸을 때의 네 모습이 생각나 작게 미소짓고 말았다. 그때 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의 내 몰골만큼이나 축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 생각해봤어? " 네 목소리는 차가웠다. 딱딱했고, 시려왔다. 너는 내게 그러려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있다. 결코 너는 나를 잊지 못했음을. 이렇게 하루에 한번씩 아무도 모르게 나를 확인하러, 설득하러 오는 너는 아직 나를 아껴주고 있음을. 내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내 고개를 제 손으로 들어올린다. 성한 곳 하나 없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플까 조심조심 다루는 그 손길을, 또한 나는 알고 있다. 너는 내게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의 손에 의지해 들린 고개, 어렵게 눈을 떠 찌그러진 시야 안으로 너의 얼굴을 담았다. 굳어져있는 네 얼굴. " 이정도 버텼으면 됐어. "" ……. "" 말해. 그리고 나가. " 위로 쳐들어져 묶여진 팔, 이제는 피도 잘 통하지 않는 손목, 발끝으로 겨우 지탱해 서있는 나. 성한 곳을 찾는게 더 빠를 것 같은 내 얼굴과 온 몸, 날 뒤덮은 멍자국, 피딱지, 생채기.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도저히 길들여지지않는 고통과 아픔. 나는 너가, 아니 너가 속해있는 이곳이 원하는 대답을 해준다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풀려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네 말에 그저 희미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없는 이유는, 이 지옥에 네가 있기 때문이야. 종인아. " 다른 건 다 필요없으니까 니가 속한 곳 이름만 말해. "" ……. "" 조직 이름 그거 하나만 말, "" 종인…아. "" ……. " 김종인은 내 입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제 이름에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럴때면 이따금씩 마음이 약해져버리는 니가, 난 참 고맙다. 아직도 넌 내가 알고있는 김종인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김종인은 한쪽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 스르륵 폈다. 숨을 참는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이름 부르지마. " 나는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이름은 김종인이었고 나는 너를 불러야했고 너는 내가 부르는 네 이름이 가장 좋다고 했었으니까.넌 네가 더 이상 옛날의 김종인이 아니라는 걸,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많이 변했다는 걸 보여주려했지만 너는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거기엔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오류가 있다. " …종인아. "" 부르지 말랬다. "" 우리…, 고아원에 있을 때 생각나? " 내가 널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는 것. 서로에게 너무나도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는 것. 내 말에 김종인은 눈을 감고야 말았다. 너는, 이젠 내가 아무 존재도 아니라고 마음 속에 새겨넣겠지만 너는 날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결코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가 될 수 없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하기에. 우리가 그때 나눴던 사랑을 너는 잊을 수 없다. " 우리 처음 만났던 날……, "" ……. "" 난 아직도……생생한데…. " 니가 기억의 상자에 모두 우겨넣고 다시는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그 속으로 오늘에서야 나는 손을 집어넣고야 말았다. 나는 살인자의 딸이었다. 사람을 토막내 죽이고,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다니고, 야산 곳곳에 시체를 묻은 살인범의 딸. 엄마는 나를 재수없어했고, 증오했다. 엄마는 점점 미쳐가다 결국 나를 고아원에 맡기곤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살인범의 딸이라는 소문은 순식간에 고아원에 돌았고, 아이들은 날 싫어했다. 말이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적인 성격은 음산함이 되어버렸고 어른들 또한 아비의 싹수가 보인다며 날 징그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디든 내 꼬리엔 살인범이라는 딸의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항상 이유없이 아이들에게 맞았고 조롱을 받았고 증오를 받았다.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삶. 행복, 희망, 꿈과는 거리가 먼 삶. 그날 하루 덜 맞으면 그게 행복인 줄 알았던, 나. 그런 날 불행이라는 쳇바퀴에서 구해준건 바로 너였다. 김종인. 김종인은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무렵 고아원으로 들어온, 동갑내기 아이였다.그 날도 나는 혼자 급식판을 가지고 저 멀리 구석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또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 젓가락으로 밥알을 깨작대며 멍하니 밥그릇을 내려다보는데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남자아이 하나가 내 앞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앉고있었다. 내가 꿈뻑꿈뻑 눈을 뜨며 바라보니, 너는 웃으며 내게 물었다. " 나 여기 앉아도 되지? "" …어? "" 아, 다행이다. 혼자 먹어야 될 줄 알았는데. "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한 채 남자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나랑 밥을 먹겠다고? 그때 나는 겨우 열살이었지만, 누군가와 내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지 오래였기에 그 말이 너무나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종인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내게 다시한번 웃으며 물었다. " 너도 온지 얼마 안됐어? 너는 왜 밥 혼자 먹어? " 그 질문에 또한 뭐라 답을 하지 못하자 너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 또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젠 나랑 같이 먹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머리 끝에 전율이 일었다. 이상한 세포가 내 혈액 안에서 마구 샘솟았으며 저 아랫배 안에서 이질적이지만 느낌이 나쁘지않은 소용돌이가 회오리쳤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느껴본 '애정' 이었다. 결국 나는 식판 위로 눈물을 뚝뚝 흘려내고 말았다. 김종인은 밥을 먹다말고 벌떡 일어나 나를 걱정했다. 왜 울어, 내가 뭐 잘못했어? 미안해, 하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안겨 서럽게 울어보았다. 그렇게 김종인이라는 나의 영웅이 나타났다.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단 하나뿐인 나만의 영웅이. 나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된 종인은 그 날 이후 내 옆에만 붙어있었다. 종인은 고아원 아이들 중에서도 키가 큰 편에 속했고, 몸집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싸움을 잘했기 때문에 누구도 나를 더이상 괴롭히려들지 않았다. 김종인은 나를 보듬어주려 애썼으며 나는 나의 모든 걸 김종인에게 기댔다. 그게 동정심에서부터의 시작이든, 아니면 애절결핍에서부터의 시작이든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깊숙히 파고들었고 그건 사랑이라는 모양새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서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고, 자지도 않았으며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 눈빛만 봐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았다. 그 감정은 우리가 고아원에서 나가야 할 날과 가까워질 수록 명백해졌다. " 종인아, 우리 고아원 나가기 전까지 검정고시 패스하기 어때? "" 됐어, 너나 해. 나는 고아원 나가면 돈 벌어서 너 뒷바라지 할거야. "" 돈은 같이 벌어야지! 나도 그정도 앞가림은 할 줄 알거든? "" 어떻게 돈 벌면서 공부를 해. 넌 똑똑하니까 공부하면 나중에 돈 많이 벌 수 있어. 그걸로 갚으면 되잖아. " 우리 둘은 항상 투닥거리곤 했다. 나는 김종인과 같이 검정고시를 봐서, 같이 대학교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어찌보면 평범한 여자와 남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면 김종인은 아빠처럼 나를 책임지고 싶어했다. 어떻게 일을 하며 공부를 하냐고 자신이 어떻게든 돈은 마련해줄테니 그 돈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 싸움은 결말이 나지 않은채 이어지다, 열여덟이 되는 해, 나 혼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김종인은 아예 보지도 않았고. 김종인은 합격했다는 말에 나를 와락 껴안고는 몇분을, 아니 몇십분을 잘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대학생이라는 꿈을 꿨다. 과분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행복한 꿈을 꿨다. 그런데 부쩍 김종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검정고시를 보기 전부터 많이 찾아왔었다. 항상 검은색의 정장들을 입고 왔는데 원장이 굉장히 많이 반겼었다. 나는 공부하느라 바빠 눈여겨 보지 못했지만, 원장이 종인이의 이름을 불러 나가면 몇 초 지나지않아 김종인은 기분이 잔뜩 나쁜 표정을 하고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김종인은 그냥 깡패새끼들이 뭐 같이 하쟤, 라며 길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내가 아는 너는 정의로웠고, 바른 아이였기 때문에 누군가를 이유없이 때리거나, 약자를 괴롭힌다거나, 정당하게 돈을 벌지 않는 그런 일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혐오할 정도로.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김종인을 찾아왔지만 종인은 여전히 싫은 표정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 어느 날은 내가 조금 자세하게 물어봤었다. " 왜, 또 찾아왔어? 조폭아저씨들? "" 매번 하기 싫다는데도 저래. "" 저거 하면 많이 나쁜 일 해야 돼? "" …저거하면 너 못봐, 자주. "" 왜? 왜 못봐? "" 있어. 그냥 자주 못 봐, 나쁜 일도 많이 해야되고. "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인이 그렇다면 그런거니까,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어서였다. 고아원에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열아홉이 되고, 김종인은 우리가 고아원에서 나가게 되면 있을 집도 구하고, 내가 풀 문제집도 사야한다며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내게 뭘 했는지 하나하나 얘기해주진 않았지만 건설현장 같은 힘든 일을 주로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돈을 많이 주니까. 항상 피곤에 지친 얼굴로 내 옆에 들어와 눕는 너는 얼마 자지도 못한 채 다시 나가야만 했다. 나 또한 수능날까지 밤을 새며 공부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고 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합격장이 날라왔다. 하지만 등록금을 지원해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날라왔다.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등록금을 지원해줄수가 없단다. 난 엄마가 어딘가에 살아있었고, 그 엄마가 기초수급생활자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에서였다.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변수가 날 궁지로 몰아세웠다. 당장 다음주까지 팔백만원이 넘는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종인이 모았던 천만원이 넘는 돈은, 이미 임대주택을 분양받느라 사용했고. 결국 나는 학교를 포기해야만 했다. 일년만 기다리면 다시 수능을 볼 수있어- 내 자신을 위로하며 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다.너는 그날 나를 안고 미안하다며 울었다. 뭐가, 왜 미안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는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고아원을 나왔다. 종인과 함께 하는 생활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미안했다. 나를 위해 너는 돈을 벌러 뛰어다녔다. 돈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밥도 먹어야했고, 공부도 해야했고, 휴대폰 요금도 내야했고, 관리비도 내야했고, 그러기엔 버는 돈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우린 행복했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웃었다. 수도 없이 사랑을 나눴던 것 같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미치도록 행복했다. 이대로 수능을 보고, 내가 좋은 대학을 가면, 그럼 고액 아르바이트도 많이 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어떤 문제도 없이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작년보다 더 수능을 잘쳤고, 더 좋은 대학교에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어이없게 뛰쳐나왔다. 종인이 들어오면 같이 먹을 저녁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들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러더니 내게 윤미경씨의 딸이냐고 물었다. 13년만에 듣는 엄마의 이름에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들은 윤미경씨가 자살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삼천만원의 빚을 남겼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그 소식을 전해주러 나를 찾아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걸 나더러 갚아야한다고 했다. 나는 상속권을 받지 않을거라고 했더니 제4금융권에선 그런게 안통한다고 했다. 나는 다시한번 그런걸 모른다고 하니 남자들은 내 뺨을 때리고 머릿채를 잡고 질질 끌고다니며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부쉈다. 남자들은, 이번 달 말까지 갚지 않으면 니년이 삼천만원어치 돌림빵을 당할줄 알아, 라고 말하고 떠났다. 뺨맞고 머릿채를 잡힌 것은 숨길 수 있었지만 집안이 박살난 것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종인에게 할 말이 없었다. 미치도록 미안해서였다. 왜 언제나 문제는 나로인해 벌어지는가. 종인이는 고민해보자고 했다. 하루벌어 하루쓰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미리 모아놓은 등록금비 뿐이었다. 이번에 대학에 붙으면 바로 낼 수 있게 아끼고 아껴 팔백만원 남짓 모아놓은 돈. 그 외에는 수중에 백원조차도 없는 우리가 삼천만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너는 그 와중에도 나를 달래주었다. " 너무 걱정하지마, 방법이 있을거야. 응? "" 미안…. 미안해, 종인아. 항상 힘들게 만들어서. "" 그냥 사랑한다고만 해주라. 그게 더 힘이 된다, 나는. "" ……진짜 사랑해, 종인아. 정말, 정말 너무 사랑해…. "" 응, 나도. 나도 진짜 사랑해. " 너는 날 껴안고 등을 다독였다. 하지만, 우리는 밤낮으로 고민했음에도 뚜렷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 사이 대학 합격 발표가 났고, 나는 이번에도 합격이라는 글자를 받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기뻤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말한 이번달 말은 금세 코앞으로 다가왔고 종인은 아주 깊은 새벽, 날 뒤에서 껴안고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 ……. ""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너를 내가 잡아두는 게 아닌가 싶은. "" …종인아. "" 난 너가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 했으면 좋겠어. " 어딘가 마지막같은, 기분이 이상한 말에 뒤를 돌으려하자 김종인은 돌지 못하게 나를 더욱 더 꽈악 껴안았다. " 기억나, 우리 고아원에 있을 때 맨날 나 찾아왔던 사람들? "" ……응. "" 그 사람들이 자기랑 같이 가면 돈 많이 준댔어. "" 야, 김종, "" 딱 세달만. 세달만 우리 떨어져있으면 돼. "" ……. "" 빚도 갚고, 너 대학도 가고, 다 할 수 있어. " 바보같이 난 그 말에 흔들렸다. 난 네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김종인은 내게 사랑한다고, 잘자라고 속삭였다. 다음 날 김종인은 없었다. 내 머리맡엔 사천만원 남짓한 돈이 들어있는 통장이 있었다. 그 옆엔 세달 후에 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그때까지 보고싶어도 조금만 참으라고, 사랑한다고 적힌 쪽지가 놓여있었다. 그렇게 떠난 너를 4년이 지나도록 볼 수 없었다. 스무살의 우린 너무 어렸었다. 나는 대학도 1년정도 다니다 결국 휴학하고 말았고 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너를 수소문 했는지 모른다. 2년이 걸려 네가 무슨 조직단체에 들어가있는지 알아냈지만 그 조직에 나같은 일반인은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겨우 관련자를 만나 이 곳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지만 여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4년 전 엄마 빚을 갚으라고 독촉전화가 왔던 번호로까지 전화를 해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방법을 알아냈다. 내가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하면, 나는 김종인이 일하고 있다는 그곳에 붙잡혀 고문을 받다 죽을거란다. 죽는건 확실하다고 했고, 김종인의 얼굴조차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좋다고 했다. 아무렴 상관이 없다고 했다.그거라도 해야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라도 그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그들이 말한대로 됐고 정말 운이 좋게도, 지금 김종인을 보고있다. " …분명 너는…세달이랬는데,"" ……. "" 벌써 사년이, 흘, …으……. " 갈비뼈가 심하게 아파왔다. 숨을 참으며 나는 말했다. 종인이가 내 앞에 이렇게 오래 있어준 적은 처음이었다. 너는 나를 모르는척하고 무시해야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알게 됐고, 그래서 너는 나를 이 곳에서 마주친 후로부턴 조직의 이름 외에 어떤 말이라도 꺼내려하면 금방 뒤돌아 나갔었기에 오늘이 아니면 말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김종인은 나를 보는게 괴로운 듯 싶었다. 양 미간을 찌푸리더니 두 손으로 꽈악 주먹을 쥐었다. 뭔가를 참고있는 것 같기도 했다. " 고마웠…어, 종인…아, 정말 많, 이…. "" ……. "" 내가 해준, 게, 아으…, 없어서… 미안해…. "" ……. "" 얼굴…좋아보여서, 다행, 다행……. " 결국 말을 잇지못하고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말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안되는데, 아직 할말이 더 남았는데. 4년동안을, 오늘 이 날만을 생각하며 연습했는데. 기침이 쉬이 멈추지 않는다. 입가에 고였던건지, 아님 몸 안쪽에 고였던건지 기침에 작은 핏방울들이 고여 나온다. 기침을 할때마다 묶인 팔이 삐그덕거리며 손목이 쓸리고 갈비뼈가 어긋나는 것 같은 고통이 날 들쑤셨지만 나는 말을 이어야했다. " 종…인아, 후으, 내가 많이, 많이…미안해… 미안, "" ……. "" 많이 보고…싶…었,… 보고 싶었어, "" ……. "" 너무 보고싶…,었…어… " 눈물이 났다. 흐으, 거리는 울음소리가 내 입을 비집고 나왔다. 날 보고 있는 너가 괴로워한다. 내 앞을 떠나지 못한채, 그렇다고 나를 똑바로 마주하지도 못한 채로,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니가 듣고있기만 한다면. 하고 싶은 말을 빨리, 모두 말하고 싶은데 그게 되지가 않았다. 김종인, 너가 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고 너는 나 안보고 싶었냐고, 나한테 그렇게 해준게 많은데 아무것도 되받은게 없으니 억울하지도 않냐고 너를 껴안고 얼굴을 매만지고도 싶은데 그럴수가 없어 답답해 눈물이 났다. 오늘이 널 다섯번째로 보는 날이었지만, 처음으로 너에게 말을 해보는 날이기에 더 간절했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너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 밥… 밥 잘 챙겨먹, …먹지? "" ……. "" 나쁜 일……많이, 하… 윽, 하지말고…, "" ……. "" 내가 많이, …많…이, "" ……. "" …사랑해, " 김종인은 마지막 내 말을 듣자마자 결국 뒤로 돌아섰다. 그래도 오늘은 내 앞에 길게 있어줘서 고마웠어. 하고 싶은 말이 아직 정말 많이, 한참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속은 조금이나마 후련했다. 그렇게 뒤돌아선 너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래, 잘가 종인아. 내일도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도 내가 죽었나, 안죽었나 확인하러 와주라. 그 뒷모습마저도 나는 행복했다. 나는 지친 고개를 힘없이 떨구는데, 들려야할 문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너가 가만히 문 앞에 서있었다. " ……. " 그런 네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는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시 걸어왔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어 내 팔에 묶여진 수갑을 풀기 시작했다. 내 두 손목을 옥죄던 철쇄가 갑자기 풀리며 팔이 아래로 떨어졌고, 내가 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는데 종인이 나를 안아왔다. 김종인은 내 팔을 쓰다듬으며 날 제 품 속에 넣었다. 4년의 기다림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 아팠지, 많이 아팠지, 미안해…. "" ……아윽……, "" 내가 더, 내가 더 보고 싶었어, 내가 훨씬 많이. " 내 손등 위로 그의 뜨거운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나를 만신창이로 만든 것이 자신인것 같은지 날 품에 껴안곤 연거푸 미안해, 라며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너를 본 것만으로도, 지금 이렇게 품에 안겨있는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그동안 나를 바라보며 네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그득 들어차있다. 김종인이 우는거 진짜 보기 어려운데. 울지마, 종인아. 응? " 내가 그동안 너 보면서, 씨발, …진짜…내가…."" ……. "" 내가 더 사랑해, 내가 더…. " 김종인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를 제 품에 다시한번 꽉 껴안았다. 나 또한 힘겹게 손을 올려 너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다 불현듯 불안을 느꼈는지, 뒤를 한번 돌아보다 너는 내 손을 잡고 말한다. " 일단 여기서 나가자. "" ……. ""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자, 응? " 우리는 이곳에 오래 없을 수 없었다. 너가 맥이 풀려버린 내 팔을 제 목에 감았다. 움직이는 갈비뼈가 너무 아파, 이빨을 악물어야만 했다. 나를 업은 종인의 등에 고개를 아득히 기대었다. 이 등을 느껴보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몇 걸음 안가 붙잡힐게 뻔했지만 나는 김종인을 믿었다. 설사 들키지 않고 나간다하더라도 평생을 숨어살아야할텐데,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저 행복했다. 여기서 얼른 나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뜨거운 차를 앞에 놓고는 종인이와 단 둘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을 해야지. 얼만큼 힘들었는지, 어떻게 이겨냈는지, 내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길었던 서로의 부재를 채우려 더 짙은 사랑을 속삭이고, 깊은 마음을 나눠야지. 입꼬리에 엉겨붙은 피딱지들이 갈라져 떨어질 정도로 나는 웃으며 그의 목에 손을 둘렀다. " 그래…, 도망가자. " 그날따라 어두웠던 철창에 비춘 달이 유난히도 밝았다. ▼넬 - Slip Away오랜만에 와서 미안합니다. 심각하게 보고싶었어요...ㅠㅠㅠㅠㅠ + 암호닉 신청은 없지만 닉넴처럼 사용은 가능하답니당++ 댓글은 작가의 힘! 댓 쓰고 포인트 돌려받아가세요♡
환상, 로망, 클리셰
W. 백빠
김종인; 영웅을 위하여.
터벅. 터벅. 터벅. 반가운 발자국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저 철문 밖으로 너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마치 집을 지키던 애완견이 현관문 밖에서 주인의 발소리를 들은 것처럼 한껏 들뜨기 시작했다. 저 철문 앞으로 달려가 있는대로 꼬리를 흔들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네가 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쳐 감고 있던 두 눈커풀을 조금씩 들어올렸다. 속눈썹에 엉겨있던 피가 굳어버려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아까 터진 입 속에 고여있는 핏물들을 바닥에 뱉어내는데 갈비뼈에 금이 간건지 그 근처 어딘가가 고통스럽게 아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나는 눈을 제대로 떠보려 노력했다. 너를 볼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기에. 그러나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는 것 조차 힘겨웠다.
두터운 철문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열렸다.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 애써 최대한 있는 힘껏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내 시야엔 겨우 너의 큰 두 발만이 담겼다. 너의 두 발을 볼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 두 발은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와 멈춰섰다.
" ……. "
너는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고민을 하는 듯 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또 다시 어떻게 설득을 해야할지… 아마 지금쯤 입술을 깨물고, 왼쪽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너. 그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지자, 어렸을 때의 네 모습이 생각나 작게 미소짓고 말았다.
그때 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의 내 몰골만큼이나 축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 생각해봤어? "
네 목소리는 차가웠다. 딱딱했고, 시려왔다. 너는 내게 그러려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있다. 결코 너는 나를 잊지 못했음을. 이렇게 하루에 한번씩 아무도 모르게 나를 확인하러, 설득하러 오는 너는 아직 나를 아껴주고 있음을. 내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내 고개를 제 손으로 들어올린다. 성한 곳 하나 없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플까 조심조심 다루는 그 손길을, 또한 나는 알고 있다. 너는 내게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의 손에 의지해 들린 고개, 어렵게 눈을 떠 찌그러진 시야 안으로 너의 얼굴을 담았다. 굳어져있는 네 얼굴.
" 이정도 버텼으면 됐어. "
" 말해. 그리고 나가. "
위로 쳐들어져 묶여진 팔, 이제는 피도 잘 통하지 않는 손목, 발끝으로 겨우 지탱해 서있는 나. 성한 곳을 찾는게 더 빠를 것 같은 내 얼굴과 온 몸, 날 뒤덮은 멍자국, 피딱지, 생채기.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도저히 길들여지지않는 고통과 아픔. 나는 너가, 아니 너가 속해있는 이곳이 원하는 대답을 해준다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풀려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네 말에 그저 희미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없는 이유는, 이 지옥에 네가 있기 때문이야. 종인아.
" 다른 건 다 필요없으니까 니가 속한 곳 이름만 말해. "
" 조직 이름 그거 하나만 말, "
" 종인…아. "
김종인은 내 입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제 이름에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럴때면 이따금씩 마음이 약해져버리는 니가, 난 참 고맙다. 아직도 넌 내가 알고있는 김종인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김종인은 한쪽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 스르륵 폈다. 숨을 참는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이름 부르지마. "
나는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이름은 김종인이었고 나는 너를 불러야했고 너는 내가 부르는 네 이름이 가장 좋다고 했었으니까.
넌 네가 더 이상 옛날의 김종인이 아니라는 걸,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많이 변했다는 걸 보여주려했지만 너는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거기엔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오류가 있다.
" …종인아. "
" 부르지 말랬다. "
" 우리…, 고아원에 있을 때 생각나? "
내가 널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는 것. 서로에게 너무나도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는 것. 내 말에 김종인은 눈을 감고야 말았다. 너는, 이젠 내가 아무 존재도 아니라고 마음 속에 새겨넣겠지만 너는 날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결코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가 될 수 없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하기에. 우리가 그때 나눴던 사랑을 너는 잊을 수 없다.
" 우리 처음 만났던 날……, "
" 난 아직도……생생한데…. "
니가 기억의 상자에 모두 우겨넣고 다시는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그 속으로 오늘에서야 나는 손을 집어넣고야 말았다.
나는 살인자의 딸이었다. 사람을 토막내 죽이고,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다니고, 야산 곳곳에 시체를 묻은 살인범의 딸. 엄마는 나를 재수없어했고, 증오했다. 엄마는 점점 미쳐가다 결국 나를 고아원에 맡기곤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살인범의 딸이라는 소문은 순식간에 고아원에 돌았고, 아이들은 날 싫어했다. 말이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적인 성격은 음산함이 되어버렸고 어른들 또한 아비의 싹수가 보인다며 날 징그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디든 내 꼬리엔 살인범이라는 딸의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항상 이유없이 아이들에게 맞았고 조롱을 받았고 증오를 받았다.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삶. 행복, 희망, 꿈과는 거리가 먼 삶. 그날 하루 덜 맞으면 그게 행복인 줄 알았던, 나. 그런 날 불행이라는 쳇바퀴에서 구해준건 바로 너였다. 김종인.
김종인은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무렵 고아원으로 들어온, 동갑내기 아이였다.
그 날도 나는 혼자 급식판을 가지고 저 멀리 구석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또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 젓가락으로 밥알을 깨작대며 멍하니 밥그릇을 내려다보는데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남자아이 하나가 내 앞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앉고있었다. 내가 꿈뻑꿈뻑 눈을 뜨며 바라보니, 너는 웃으며 내게 물었다.
" 나 여기 앉아도 되지? "
" …어? "
" 아, 다행이다. 혼자 먹어야 될 줄 알았는데. "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한 채 남자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나랑 밥을 먹겠다고? 그때 나는 겨우 열살이었지만, 누군가와 내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지 오래였기에 그 말이 너무나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종인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내게 다시한번 웃으며 물었다.
" 너도 온지 얼마 안됐어? 너는 왜 밥 혼자 먹어? "
그 질문에 또한 뭐라 답을 하지 못하자 너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 또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젠 나랑 같이 먹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머리 끝에 전율이 일었다. 이상한 세포가 내 혈액 안에서 마구 샘솟았으며 저 아랫배 안에서 이질적이지만 느낌이 나쁘지않은 소용돌이가 회오리쳤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느껴본 '애정' 이었다. 결국 나는 식판 위로 눈물을 뚝뚝 흘려내고 말았다. 김종인은 밥을 먹다말고 벌떡 일어나 나를 걱정했다. 왜 울어, 내가 뭐 잘못했어? 미안해, 하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안겨 서럽게 울어보았다. 그렇게 김종인이라는 나의 영웅이 나타났다.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단 하나뿐인 나만의 영웅이.
나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된 종인은 그 날 이후 내 옆에만 붙어있었다. 종인은 고아원 아이들 중에서도 키가 큰 편에 속했고, 몸집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싸움을 잘했기 때문에 누구도 나를 더이상 괴롭히려들지 않았다. 김종인은 나를 보듬어주려 애썼으며 나는 나의 모든 걸 김종인에게 기댔다. 그게 동정심에서부터의 시작이든, 아니면 애절결핍에서부터의 시작이든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깊숙히 파고들었고 그건 사랑이라는 모양새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서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고, 자지도 않았으며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 눈빛만 봐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았다. 그 감정은 우리가 고아원에서 나가야 할 날과 가까워질 수록 명백해졌다.
" 종인아, 우리 고아원 나가기 전까지 검정고시 패스하기 어때? "
" 됐어, 너나 해. 나는 고아원 나가면 돈 벌어서 너 뒷바라지 할거야. "
" 돈은 같이 벌어야지! 나도 그정도 앞가림은 할 줄 알거든? "
" 어떻게 돈 벌면서 공부를 해. 넌 똑똑하니까 공부하면 나중에 돈 많이 벌 수 있어. 그걸로 갚으면 되잖아. "
우리 둘은 항상 투닥거리곤 했다. 나는 김종인과 같이 검정고시를 봐서, 같이 대학교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어찌보면 평범한 여자와 남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면 김종인은 아빠처럼 나를 책임지고 싶어했다. 어떻게 일을 하며 공부를 하냐고 자신이 어떻게든 돈은 마련해줄테니 그 돈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 싸움은 결말이 나지 않은채 이어지다, 열여덟이 되는 해, 나 혼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김종인은 아예 보지도 않았고. 김종인은 합격했다는 말에 나를 와락 껴안고는 몇분을, 아니 몇십분을 잘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대학생이라는 꿈을 꿨다. 과분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행복한 꿈을 꿨다.
그런데 부쩍 김종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검정고시를 보기 전부터 많이 찾아왔었다. 항상 검은색의 정장들을 입고 왔는데 원장이 굉장히 많이 반겼었다. 나는 공부하느라 바빠 눈여겨 보지 못했지만, 원장이 종인이의 이름을 불러 나가면 몇 초 지나지않아 김종인은 기분이 잔뜩 나쁜 표정을 하고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김종인은 그냥 깡패새끼들이 뭐 같이 하쟤, 라며 길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내가 아는 너는 정의로웠고, 바른 아이였기 때문에 누군가를 이유없이 때리거나, 약자를 괴롭힌다거나, 정당하게 돈을 벌지 않는 그런 일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혐오할 정도로.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김종인을 찾아왔지만 종인은 여전히 싫은 표정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 어느 날은 내가 조금 자세하게 물어봤었다.
" 왜, 또 찾아왔어? 조폭아저씨들? "
" 매번 하기 싫다는데도 저래. "
" 저거 하면 많이 나쁜 일 해야 돼? "
" …저거하면 너 못봐, 자주. "
" 왜? 왜 못봐? "
" 있어. 그냥 자주 못 봐, 나쁜 일도 많이 해야되고. "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인이 그렇다면 그런거니까,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어서였다. 고아원에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열아홉이 되고, 김종인은 우리가 고아원에서 나가게 되면 있을 집도 구하고, 내가 풀 문제집도 사야한다며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내게 뭘 했는지 하나하나 얘기해주진 않았지만 건설현장 같은 힘든 일을 주로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돈을 많이 주니까. 항상 피곤에 지친 얼굴로 내 옆에 들어와 눕는 너는 얼마 자지도 못한 채 다시 나가야만 했다. 나 또한 수능날까지 밤을 새며 공부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고 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합격장이 날라왔다. 하지만 등록금을 지원해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날라왔다.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등록금을 지원해줄수가 없단다. 난 엄마가 어딘가에 살아있었고, 그 엄마가 기초수급생활자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에서였다.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변수가 날 궁지로 몰아세웠다. 당장 다음주까지 팔백만원이 넘는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종인이 모았던 천만원이 넘는 돈은, 이미 임대주택을 분양받느라 사용했고. 결국 나는 학교를 포기해야만 했다. 일년만 기다리면 다시 수능을 볼 수있어- 내 자신을 위로하며 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너는 그날 나를 안고 미안하다며 울었다. 뭐가, 왜 미안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는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고아원을 나왔다.
종인과 함께 하는 생활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미안했다. 나를 위해 너는 돈을 벌러 뛰어다녔다. 돈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밥도 먹어야했고, 공부도 해야했고, 휴대폰 요금도 내야했고, 관리비도 내야했고, 그러기엔 버는 돈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우린 행복했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웃었다. 수도 없이 사랑을 나눴던 것 같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미치도록 행복했다. 이대로 수능을 보고, 내가 좋은 대학을 가면, 그럼 고액 아르바이트도 많이 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어떤 문제도 없이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작년보다 더 수능을 잘쳤고, 더 좋은 대학교에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어이없게 뛰쳐나왔다. 종인이 들어오면 같이 먹을 저녁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들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러더니 내게 윤미경씨의 딸이냐고 물었다. 13년만에 듣는 엄마의 이름에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들은 윤미경씨가 자살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삼천만원의 빚을 남겼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그 소식을 전해주러 나를 찾아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걸 나더러 갚아야한다고 했다. 나는 상속권을 받지 않을거라고 했더니 제4금융권에선 그런게 안통한다고 했다. 나는 다시한번 그런걸 모른다고 하니 남자들은 내 뺨을 때리고 머릿채를 잡고 질질 끌고다니며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부쉈다. 남자들은, 이번 달 말까지 갚지 않으면 니년이 삼천만원어치 돌림빵을 당할줄 알아, 라고 말하고 떠났다.
뺨맞고 머릿채를 잡힌 것은 숨길 수 있었지만 집안이 박살난 것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종인에게 할 말이 없었다. 미치도록 미안해서였다. 왜 언제나 문제는 나로인해 벌어지는가. 종인이는 고민해보자고 했다. 하루벌어 하루쓰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미리 모아놓은 등록금비 뿐이었다. 이번에 대학에 붙으면 바로 낼 수 있게 아끼고 아껴 팔백만원 남짓 모아놓은 돈. 그 외에는 수중에 백원조차도 없는 우리가 삼천만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너는 그 와중에도 나를 달래주었다.
" 너무 걱정하지마, 방법이 있을거야. 응? "
" 미안…. 미안해, 종인아. 항상 힘들게 만들어서. "
" 그냥 사랑한다고만 해주라. 그게 더 힘이 된다, 나는. "
" ……진짜 사랑해, 종인아. 정말, 정말 너무 사랑해…. "
" 응, 나도. 나도 진짜 사랑해. "
너는 날 껴안고 등을 다독였다. 하지만, 우리는 밤낮으로 고민했음에도 뚜렷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 사이 대학 합격 발표가 났고, 나는 이번에도 합격이라는 글자를 받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기뻤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말한 이번달 말은 금세 코앞으로 다가왔고 종인은 아주 깊은 새벽, 날 뒤에서 껴안고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
"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너를 내가 잡아두는 게 아닌가 싶은. "
" 난 너가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 했으면 좋겠어. "
어딘가 마지막같은, 기분이 이상한 말에 뒤를 돌으려하자 김종인은 돌지 못하게 나를 더욱 더 꽈악 껴안았다.
" 기억나, 우리 고아원에 있을 때 맨날 나 찾아왔던 사람들? "
" ……응. "
" 그 사람들이 자기랑 같이 가면 돈 많이 준댔어. "
" 야, 김종, "
" 딱 세달만. 세달만 우리 떨어져있으면 돼. "
" 빚도 갚고, 너 대학도 가고, 다 할 수 있어. "
바보같이 난 그 말에 흔들렸다. 난 네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김종인은 내게 사랑한다고, 잘자라고 속삭였다. 다음 날 김종인은 없었다. 내 머리맡엔 사천만원 남짓한 돈이 들어있는 통장이 있었다. 그 옆엔 세달 후에 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그때까지 보고싶어도 조금만 참으라고, 사랑한다고 적힌 쪽지가 놓여있었다.
그렇게 떠난 너를 4년이 지나도록 볼 수 없었다. 스무살의 우린 너무 어렸었다.
나는 대학도 1년정도 다니다 결국 휴학하고 말았고 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너를 수소문 했는지 모른다. 2년이 걸려 네가 무슨 조직단체에 들어가있는지 알아냈지만 그 조직에 나같은 일반인은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겨우 관련자를 만나 이 곳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지만 여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4년 전 엄마 빚을 갚으라고 독촉전화가 왔던 번호로까지 전화를 해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방법을 알아냈다. 내가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하면, 나는 김종인이 일하고 있다는 그곳에 붙잡혀 고문을 받다 죽을거란다. 죽는건 확실하다고 했고, 김종인의 얼굴조차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좋다고 했다. 아무렴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거라도 해야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라도 그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그들이 말한대로 됐고 정말 운이 좋게도,
지금 김종인을 보고있다.
" …분명 너는…세달이랬는데,"
" 벌써 사년이, 흘, …으……. "
갈비뼈가 심하게 아파왔다. 숨을 참으며 나는 말했다. 종인이가 내 앞에 이렇게 오래 있어준 적은 처음이었다. 너는 나를 모르는척하고 무시해야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알게 됐고, 그래서 너는 나를 이 곳에서 마주친 후로부턴 조직의 이름 외에 어떤 말이라도 꺼내려하면 금방 뒤돌아 나갔었기에 오늘이 아니면 말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김종인은 나를 보는게 괴로운 듯 싶었다. 양 미간을 찌푸리더니 두 손으로 꽈악 주먹을 쥐었다. 뭔가를 참고있는 것 같기도 했다.
" 고마웠…어, 종인…아, 정말 많, 이…. "
" 내가 해준, 게, 아으…, 없어서… 미안해…. "
" 얼굴…좋아보여서, 다행, 다행……. "
결국 말을 잇지못하고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말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안되는데, 아직 할말이 더 남았는데. 4년동안을, 오늘 이 날만을 생각하며 연습했는데. 기침이 쉬이 멈추지 않는다. 입가에 고였던건지, 아님 몸 안쪽에 고였던건지 기침에 작은 핏방울들이 고여 나온다. 기침을 할때마다 묶인 팔이 삐그덕거리며 손목이 쓸리고 갈비뼈가 어긋나는 것 같은 고통이 날 들쑤셨지만 나는 말을 이어야했다.
" 종…인아, 후으, 내가 많이, 많이…미안해… 미안, "
" 많이 보고…싶…었,… 보고 싶었어, "
" 너무 보고싶…,었…어… "
눈물이 났다. 흐으, 거리는 울음소리가 내 입을 비집고 나왔다. 날 보고 있는 너가 괴로워한다. 내 앞을 떠나지 못한채, 그렇다고 나를 똑바로 마주하지도 못한 채로,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니가 듣고있기만 한다면. 하고 싶은 말을 빨리, 모두 말하고 싶은데 그게 되지가 않았다. 김종인, 너가 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고 너는 나 안보고 싶었냐고, 나한테 그렇게 해준게 많은데 아무것도 되받은게 없으니 억울하지도 않냐고 너를 껴안고 얼굴을 매만지고도 싶은데 그럴수가 없어 답답해 눈물이 났다. 오늘이 널 다섯번째로 보는 날이었지만, 처음으로 너에게 말을 해보는 날이기에 더 간절했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너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 밥… 밥 잘 챙겨먹, …먹지? "
" 나쁜 일……많이, 하… 윽, 하지말고…, "
" 내가 많이, …많…이, "
" …사랑해, "
김종인은 마지막 내 말을 듣자마자 결국 뒤로 돌아섰다. 그래도 오늘은 내 앞에 길게 있어줘서 고마웠어. 하고 싶은 말이 아직 정말 많이, 한참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속은 조금이나마 후련했다. 그렇게 뒤돌아선 너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래, 잘가 종인아. 내일도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도 내가 죽었나, 안죽었나 확인하러 와주라. 그 뒷모습마저도 나는 행복했다. 나는 지친 고개를 힘없이 떨구는데, 들려야할 문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너가 가만히 문 앞에 서있었다.
그런 네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는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시 걸어왔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어 내 팔에 묶여진 수갑을 풀기 시작했다. 내 두 손목을 옥죄던 철쇄가 갑자기 풀리며 팔이 아래로 떨어졌고, 내가 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는데 종인이 나를 안아왔다. 김종인은 내 팔을 쓰다듬으며 날 제 품 속에 넣었다. 4년의 기다림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 아팠지, 많이 아팠지, 미안해…. "
" ……아윽……, "
" 내가 더, 내가 더 보고 싶었어, 내가 훨씬 많이. "
내 손등 위로 그의 뜨거운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나를 만신창이로 만든 것이 자신인것 같은지 날 품에 껴안곤 연거푸 미안해, 라며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너를 본 것만으로도, 지금 이렇게 품에 안겨있는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그동안 나를 바라보며 네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그득 들어차있다. 김종인이 우는거 진짜 보기 어려운데. 울지마, 종인아. 응?
" 내가 그동안 너 보면서, 씨발, …진짜…내가…."
" 내가 더 사랑해, 내가 더…. "
김종인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를 제 품에 다시한번 꽉 껴안았다. 나 또한 힘겹게 손을 올려 너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다 불현듯 불안을 느꼈는지, 뒤를 한번 돌아보다 너는 내 손을 잡고 말한다.
" 일단 여기서 나가자. "
"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자, 응? "
우리는 이곳에 오래 없을 수 없었다. 너가 맥이 풀려버린 내 팔을 제 목에 감았다. 움직이는 갈비뼈가 너무 아파, 이빨을 악물어야만 했다. 나를 업은 종인의 등에 고개를 아득히 기대었다. 이 등을 느껴보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몇 걸음 안가 붙잡힐게 뻔했지만 나는 김종인을 믿었다. 설사 들키지 않고 나간다하더라도 평생을 숨어살아야할텐데,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저 행복했다.
여기서 얼른 나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뜨거운 차를 앞에 놓고는 종인이와 단 둘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을 해야지. 얼만큼 힘들었는지, 어떻게 이겨냈는지, 내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길었던 서로의 부재를 채우려 더 짙은 사랑을 속삭이고, 깊은 마음을 나눠야지.
입꼬리에 엉겨붙은 피딱지들이 갈라져 떨어질 정도로 나는 웃으며 그의 목에 손을 둘렀다.
" 그래…, 도망가자. "
그날따라 어두웠던 철창에 비춘 달이 유난히도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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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 Slip Away
오랜만에 와서 미안합니다. 심각하게 보고싶었어요...ㅠㅠㅠㅠㅠ
+ 암호닉 신청은 없지만 닉넴처럼 사용은 가능하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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