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는 아니고오... 나 호랑인데에... 그 말에 여주 식겁해서 본인을 위에서 누르고 있던 남성 옆으로 치워버리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남. 아니 그럼 호랑인데 쿠키는 아니고... 뉘신지...?여주가 관심을 가져 주는 거라고 생각한 건지 머리 사이로 둥근 귀가 뿅! 하고 나와서 자는 호랑이! 쿠키는 얼마 전에 내 산에 묻혔는데 그래서 내가 쿠키처럼 하고 있는 거야! 와 이게 무슨 신종 개소리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개라서 지금 계속 개소리를 하는 걸까. 아니 그니까 그게 대관절 무슨 쌉소, 말씀인지 차근차근 얘기해보라니까? 여주는 그 간격 그대로 유지하면서 방방 난리 난 호랑이 진정시키고 앉힘. 머리 사이에 난 귀며 뒤에 살랑거리는 꼬리며 믿을 수 없다고 해도 믿어야 할 것 같은 것들이라 일단 미심쩍은 눈으로 말해보라고 함. 눈치코치 없이 해맑은 호랭이는 지금 신나서 자기 얘기 줄줄 늘어놓음. 두서없이 말을 줄줄 내뱉는 통에 여주가 직접 나서서 정리함. 그러니까 댁이 호랑이? 응! 언제부터? 태어났을 때부터! 근데 왜 쿠키인 척했을까? 우응 그건 쿠키가 내 산에 묻혀서. 내 산에 묻히면 그 영이 막 떠돈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홀랑 잡아먹었어! 아니, 쿠키가 죽었어? 쿠키는 태어나자마자 내 산에 왔는데... 그러면 댁은, 아니 뭐야 그러면 계속 쿠키인 척했던 거야? 응! 그런 거지! 할머니는? 할망은 내가 잘 말했어! 마냥 해맑기만 한 이 망할 호랑이 덕에 머리가 지끈 한 여주는 입으로 바람을 불었음. 이마 위 잔머리가 푸드덕. 뒷산에 있으면 정기를 받아서 내가 힘이 세진단 말이야... 그래서 할망 기억을 좀 바꿨어... 여주의 눈치를 보는 건지 호랑이는 몸을 점점 움츠림. 잘못한 거야...? 여주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미간을 팍 찌푸림. 심각한 여주의 반응에 호랑이가 손끝을 만지면서 뭐라고 웅얼웅얼 거림. 아니이 할망이 자꾸 약속을 안 지키니까... 그래서 맘이 급해져서 그런 건데에 축 처진 귀를 하고 말하는 호랑이는 이제 거의 울려고 함. 잠깐 스탑. 약속?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말하는 호랑이 눈 밑을 손가락으로 닦아주고 다시 얘기를 시작. 그래도 다정하게 대해주는 여주에 또 괜찮아진 건지 다시 해맑게 웃으면서 쫑알쫑알 말함. 기억이 잘 안 나겠지마안 여주가 어렸을 때 많이 아팠단 말이야. 인간은 원래 음하고 양의 조화로 건강해지는 건데 여주는 음의 기운이 너무 세서 다 죽어가는 걸 내가 살려줬어! 그때 할망이 여주를 등에 업고 내 사당에 와서 청소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가져와줘가지고 내가 기특해서 할망 부탁을 들어 준거거든. 그래서 지금 여주가 가지고 기운 중에 반은 내 기운이야.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혼들이 여주 보면 깜짝 놀라 도망갈걸? 내 기운 때문에 여주는 진짜 특이한 기운을 만들고 있으니까. 그리고 여주 안에서 내 기운을 담고 있는 게 내 구슬인데 난 그 구슬이 없으면 안 돼서 빨리 되찾아야 하는데 할망이 자꾸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미루잖아.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그랬어... 휘몰아치는 과거사에 여주만 끔뻑임. 어렸을 때 아팠다는 얘기는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으니까 아주 개구라를 까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니 근데 하는 얘기들이 도통 믿을 수 있는 것들이어야지. 그 구슬이 지금 내 몸 안에 있다고? 보여주까? 호랑이가 여주의 명치 부근에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깝게 손을 뻗음. 그리고 눈을 감더니 숨을 후우욱 내쉬니까 여주 명치에서 영롱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주먹 하나 정도 크기 구슬이 점점 나오다가 호랑이 손에 닿으려고 하니까 끌려가듯 빠르게 여주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림. 나올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확 들어올 때는 숨이 턱 막혀서 여주가 가슴케를 부여잡고 몸이 앞으로 쏟아짐. 범규가 넘어지는 여주를 잡으니까 범규 주위로 은은한 황금빛 감돔. 안 아프게 해줄게 내가. 그리고 너네는 빨리 가. 범규가 여주 주변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혼들에게 경고함. 내 색시야. 더 가까이 오기만 해. 겨우겨우 정신을 붙들고 있는 여주 눈을 감겨주고 귀에 속삭임. 일어나면 다시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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