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몸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때까지 여기서 머무르라는 할머니의 호통에 그 애는 얼떨결에 신세를 지게 됐어. 조금씩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늘 좋은 생각만 하려고 애쓰는데 그게 잘 안됐어. 엄마는 잘 계실까? 수빈은 괜찮은 걸까? 만약에 살아있지 않은 거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집에 있게 된 지 3일 정도 됐을까 할머니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어. 무슨 일이 있으신 거냐고 물어도 답이 없으셨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걱정하고 있는데 방에 누군가 들이닥쳤어.
저 여자를 끌어내!
회색 늑대가 침대에서 그 애를 이끌어냈어. 할머니는 회색 늑대들이 던진 인질로 보이는 남자를 끌어안고 우셨어. 할머니의 아들이었어. 남자는 많이 다친 것처럼 보였어.
은색 늑대 우두머리 아내니까 숨은 붙여놔.
쓸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 애는 회색 늑대의 손에 정신을 잃었어.
27.
그 애는 춥고 어두운 곳에서 눈을 떴어. 악취도 심했고 굉장히 더러웠지. 좁은 공간이었는데도 꽤 많은 늑대들이 모여 있었어. 은색 늑대는 그 애 하나밖에 없었지만. 그 애가 눈을 뜨자 다들 몰려와 그 애의 몸을 걱정했어. 늑대의 몸으로 변해 그 애의 옆에 몸을 붙여 최대한 따뜻하게 해주려고 애썼어. 다들 회색 늑대에게 잡혀온 사람들이었어. 어느 하나도 그 애에게 적개심을 보이지 않았어. 다들 마음을 모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겨내려 했어. 배가 많이 불러온 그 애를 위해 회색 늑대들이 던져 준 먹이를 조금씩 남겨주었어.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다들 정말 고마운 사람, 늑대들이 아닐 수 없었어.
회색 늑대들은 처녀가 아니면 취하려 하지 않는다고 해. 그 부족에게 있는 관습이래. 여기에 모인 이들은 전부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었어. 인질로 쓰기 위해 살린 것 같다고 그 애에게 얘기해 주었어. 그리고 하나하나 차례대로 각자 이야기를 시작했어. 해가 지는지 떠오르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시간을 보냈어. 각자 저마다 사정이 있었어. 남편과 아이가 죽는 걸 눈앞에서 본 사람, 가족과 꼭 살아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 결혼식 다음날에 잡혀온 사람, 심지어 무리와 떨어져 떠돌이 생활을 하는 집시 늑대까지 있었어. 점을 치고 별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던 그 집시 늑대는 그 애의 배에 손을 대고 아이를 위해 축복을 줬어. 집시의 축복은 특별하다면서 아이는 건강할 거라는 말을 듣고 그 애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
처음 그 애는 이곳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거든. 그 할머니의 사정을 알지만 믿었던 이의 배신은 견디기 힘들었어. 친절과 배려를 거절하고 혼자 있으려고 애썼지. 또다시 아프기 싫으니까. 근데 그런 그 애를 보고도 이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어. 밥이며 물이며 자는 곳, 옷까지 아이를 가진 그 애를 제일 먼저 생각해 줬어. 그 애가 더 비참해질 뿐이라고 그만하라고 했을 때도 화를 내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라는 걱정의 말을 먼저 들었을 때 비로소 그 애는 사람들을 받아들였어.
28.
수빈은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야영지에 지친 몸을 뉘었어. 몸이 약하고 겁이 많은 그 애가 다른 때는 몰라도 꼭 아이를 낳을 땐 옆에 있어달라고 했는데.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수빈은 눈을 억지로 감았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이렇게 얼굴을 보지 못한 날이 이제 반 년을 넘어갔어. 수빈은 실소를 흘렸어. 시간 한 번, 짜증 나게 빠르다.
29.
집시 늑대는 작은 창문 사이로 하늘을 읽었어. 아름답고 용맹한 여자 늑대야. 별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어.
집시 늑대의 말에 다들 호들갑을 떨었어. 정말 귀엽겠다, 얼마나 이쁠까, 아름다운데 용맹하기까지 하다니 다 가졌네.
그 애의 눈물이 아무도 모르게 부푼 배로 떨어졌어. 손을 마주 잡고 기도했어. 흰 늑대 할머니,-은빛 늑대가 믿는 은빛 늑대의 수호신- 수빈이 보고 싶어요. 그 사람을 무사히 살려주세요. 제 아이도 무사히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발 우리 가족을 지켜주세요.
30.
춥고 어두운 지하실에 아기 울음소리가 꽉 찼어.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 옆에서 도왔어.
축하해 집시의 말이 맞았어 정말 공주님이야
산고에 헐떡이는 그 애 대신 오히려 다른 이들이 훌쩍거렸어. 수고했어. 아기의 이름은 모두가 둘러앉아 머리를 모았어. 각자 생각한 이름을 하나씩 얘기해보았지만 어느 하나 썩 마음에 차지 않았어.
집시, 별들이 이름은 안 알려줘?
글쎄, 한 번 볼까?
집시는 별을 읽었어. 그리고 말했지. 별들은 '솜'이 좋다고 하네. 집시의 말에 그 어떤 사람 보다 아이가 제일 먼저 반응했어.
아가야, 솜아
엄마의 부름에 아기가 까르르 웃었어. 모두가 솜이를 물렀어. 솜이는 마냥 좋아했지. 최수빈 딸 아니랄까 봐 솜이는 정말 순했어.
31.
수빈은 하루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수천만 번 고민했어. 지금 들고 있는 칼을 버리고 설산에 올라가서 그 앨 찾을까. 수빈이 회색 늑대들의 손에 죽지 않을 거라면 그 애가 보고 싶어 말라죽을 것 같았거든. 피차 죽게 될 거 그래도 그 애를 한 번이라도 찾아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부모님과 형, 누나의 무덤 앞에 서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
32.
솜이는 이제 이도 나고 아장아장 걸어 다녔어. 집시가 별을 읽어준 덕분에 솜이 생일은 똑똑히 기억하고 챙겨줄 수 있었어. 솜이의 생일이 오면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 줬어. 솜이는 이제 모두의 아이였거든. 솜이의 생일에 집시는 주술을 써서 허공에 촛불을 그려줬어. 솜이가 서툴게 후푸푸 하고 불면 촛불을 일렁이면서 사라졌어. 그 애는 솜이를 낳고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 오죽하면 간수들이 기침 소리가 거슬리니 닥치라고 위협할 정도였어. 몸이 안 좋은 엄마를 위해 다른 이들이 나섰어. 사람의 몸과 늑대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한 단어, 한 단어씩 말도 알려줬어. 수빈 없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막막했는데 정말 다행이었어.
33.
솜이가 이제 슬슬 사냥을 해야 할 때가 왔어. 송곳니를 지금부터 계속 안 쓰면 점점 무뎌질 텐데...
솜이를 돌봐주던 중에 들은 말이야. 그 애는 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솜이 사냥은 아빠가 가르쳐주기로 했으니까 그때 배우자. 솜이는 엄마의 말을 듣기는 안 건지 그냥 활짝 웃었어. 가끔 이렇게 수빈의 빈자리를 온몸을 체감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곤히 잠든 솜이의 배를 쓸어주다 눈물이 뚝뚝 흘렀어. 솜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수빈이 너무 보고 싶어서.
34.
수빈은 이제 완전히 머리를 쓰기로 했어. 회색 늑대들이 지치지 않고 끝없이 싸울 수 있었던 게 보급로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 보급로를 막아버리기로 했지. 한 번에,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 수빈은 철저하게 준비했어. 이번이 마지막이었어. 마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었고, 정말 많이 다쳤고,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어. 이제 먹을 것도 거의 다 떨어져 갔어. 불을 피울 땔감도 점점 바닥을 보였고. 더 이상 질질 끌다간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 위험했어.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35.
솜이를 돌봐주던 이모가 솜이의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천을 조금씩 찢어 모아 솜이의 새 옷을 만들어줬어. 그 애가 솜이에게 옷을 입혔어.
솜이야 너무 예쁘다. 아빠가 너 보면 깜짝 놀라겠다.
이제 옹알옹알 말문이 트인 솜이의 코를 부비며 말했어.
36.
수빈은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다 어린 늑대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어. 오랜 시간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인지 삐쩍 마른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곳이었어. 지민은 회색 늑대들이 또 공격을 퍼붓기 전에 얼른 아기 늑대들을 옮겼어. 수빈의 하루는 긴박함과 아슬아슬함만 가득 차 있었어. 도저히 미소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지. 언젠가부터 모습을 감춘 그 애에 사람들은 그 애가 죽었기 때문에 수빈이 이렇게 피폐해진 줄로만 알고 있어. 아기 늑대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나서도 수빈까지 그 아이들의 치료에 나서야 했어. 예닐곱은 되어 보이는 늑대의 등에 있는 갓난쟁이 늑대를 보고 수빈이 잠깐 생각에 잠겼어. 아기가 무사히 태어났다면 딱 이 정도 됐겠지. 안아주고도 싶고, 온종일 품에 넣고 돌아다니고 싶다. 하루 종일 울고 칭얼거려도 그래도 사랑스러울 거야.
37.
온몸으로 햇빛 한 번 제대로 맞아보지 못한 솜이는 요즘 부쩍 바깥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했어. 이모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 까무룩 잠에 들었지. 새근새근 자는 솜이를 품에 안고서야 그 애도 잠에 들었어. 요즘 간수들의 얘기가 심상치 않았거든. 전에 잡아온 은색 늑대를 찾아야 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거든. 우두머리가 아마 그 애를 애타게 찾는 모양이었어. 모두의 신경이 그 애를 지키기 위해 곤두섰지.
38.
은색 늑대들의 마을에 은색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어. 회색 늑대가 마을에 쳐들어온 지 2년 만에 다시 온전히 마을을 되찾았거든.
수빈이 회색 늑대의 우두머리의 목에 칼을 겨눴어.
너를 죽이기 전에 하나 물어야 할 게 있어.
아이를 가진 은색 늑대, 니가 잡아갔어?
수빈의 살기 어린 표정에 우두머리가 크게 웃었어.
글쎄 모르겠다. 죽였나?
제대로 대답해.
내가 대답하면 살려주기라도 해?
빨리 데려와
목숨만은 붙여주겠다는 수빈의 말에 우두머리가 말했어. 설산 중턱에 있는 소나무를 기준으로 10시 방향으로 걷다 보면 큰 동굴이 나온다고. 그곳이 회색 늑대들이 지금까지 잡아둔 인질들이 있는 곳이라고. 수빈은 당장 설산으로 달렸어.
39.
그 애가 있는 곳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어. 간수들이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거든. 집시 늑대는 자물쇠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 솜이는 엄마에게 물었어.
바께? 그 애는 솜이를 꽉 안고 대답했지. 응. 이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대신 우리 쉿하고 있어야 알겠지? 무서운 아저씨들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솜이는 엄마의 말에 검지를 입에 갖다 대고 싯! 소리를 냈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때 집시 늑대가 드디어 자물쇠를 열었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주변을 살핀 다음 한 명씩 차례로 나갔어. 집시 늑대는 바로 다른 사람들의 자물쇠를 풀었고 이모들은 조용히 동굴 밖으로 나갔어. 솜이와 엄마도 마찬가지였어. 솜이를 안고 동굴 밖으로 나왔지. 솜이는 처음 보는 밝은 빛에 눈이 부셔서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했어.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마도 남자가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
그 애의 심장이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어. 무작정 소리가 들리는 반대로 뛰기 시작했어. 여기서 다시 잡히면 안 돼. 솜이를 안고 온 힘을 다해 뛰었어. 솜이를 안은 두 팔은 이제 힘이 빠져 달달 떨려왔어.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데도 누군가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어.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어. 그 애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솜이에게 말했어. 솜아 빨리 뛰어 가 엄마가 금방 솜이 쫓아갈게 그러니까 얼른 가 얼른! 가지 않겠다고 우는 솜이의 등을 떠밀었어. 솜이가 엄마의 힘에 억지로 뛰었어. 다시 누군가가 소리쳤어. 찾았습니다! 솜이가 엄마를 돌아봤어. 엄마는 쓰러져 있었고 커다란 사람 여러 명이 엄마를 향해 뛰어왔어.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솜이가 뛰었어. 그러다 무언가에 부딪혀 쓰러졌어.
40.
수빈은 동굴에서 빠져나온 모든 사람들을 확인했어. 마을 사람들에게 이들을 마을로 데려가라 말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어. 자물쇠는 모두 풀린 채 텅텅 비어있었지. 정말 죽은 건가 싶었는데 마을 청년의 소리에 금방 동굴을 빠져나왔어. 소리를 따라 무작정 뛰어가는데 무언가 다리에 부딪혔어.
어린 늑대. 아이는 수빈과 부딪히자마자 늑대로 모습을 바꿨어. 은색 털. 수빈의 뒤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수빈이 물었어.
우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늑대가 몇 살이었나요
7살입니다
수빈이 어린 늑대를 안아올렸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는데 수빈의 힘이 제지시키자 금세 멈췄어. 아이를 잘 안고 다시 달렸어. 제발.
41.
여깁니다!
마을 청년이 수빈을 향해 손을 흔들었어. 청년은 누군가를 안아올린 상태였어. 긴 검정 머리. 창백한 피부. 수빈이 얼굴을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넘겼어.
맞습니까...?
수빈이 안고 있던 어린 늑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제가 안고 갈게요
드디어 만났어.
42.
수빈은 마을 정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어. 차갑게 식어있던 벽난로에 다시 물이 붙었어. 아주머니 한 분이 수빈을 맞았어.
아직 일어나지 못했고 아이는 엄마 옆에 있겠다고 해서 침실에 같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집을 나갔어. 수빈은 손을 떨면서 방 문을 열었어. 아이는 화들짝 놀라면서 등 뒤로 뭔가를 감추고 있었어. 수빈은 목도리를 의자에 걸어놓고 아이의 눈높이를 맞췄어.
뭐 보고 있었어?
아이는 조금 망설이더니 등 뒤로 감췄던 걸 수빈의 앞에 꺼냈어. 액자였어. 그 애와 수빈이 나란히 다정하게 서서 찍은 첫 번째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 그 난리 통에도 수빈은 이 사진 하나에 목숨을 걸었어. 그냥 두면 찢어질까, 바람에 날릴까, 타버리진 않을까 싶어 늘 가지고 다녔더니 조금 구겨져 있었어.
이거 누군지 알아?
엄마! 소미 엄마!
이름이 소미야?
소미 말구 소미
수빈은 이름을 세 번이나 더 물어보고 나서야 정확하게 알았어. 이름을 '솜'이라고 지었구나. 잘 지었다.
그러면 엄마 옆에 있는 사람은?
우움... 모루게써여...
다시 한번 봐봐. 진짜 모르겠어?
수빈은 솜이의 머리에 손을 살짝 올리고 살살 쓰다듬었어. 귀여워.
솜이는 액자를 들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 액자를 이렇게도 들어보고 저렇게도 들어보다 수빈의 얼굴 옆에 딱 멈췄어. 수빈의 얼굴과 사진을 몇 번 번갈아 봤어.
얼구리가 똑가타
엄마 옆에 있는 사람 나야.
수빈의 말에 솜이가 약간 얼이 나간 표정으로 수빈을 바라봤어. 그러더니 수빈을 향해 짧은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말했어.
소미 아빠야?
응. 솜이 아빠야.
43.
솜이는 수빈을 향해 끝도 없는 질문 공세를 날리다 지쳐 잠들었어. 수빈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그 애의 옆에 앉아 솜이를 안고 있었어. 많이 닮았다. 수빈이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어. 수빈이 그 애의 이마에 입을 맞췄어. 잘 자.
44.
솜이는 처음에 수빈에게 낯을 많이 가렸어. 엄마는 아침이 되어도 침대에서 꿈쩍 안 하고 있어서 더 무서웠나 봐. 수빈은 솜이에게 무작정 다가가지 않으려고 애썼어.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직 솜이가 힘들어하니까. 그러다 수빈이 솜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어. 많이 망가져 있었지만 꼭 데려가보고 싶었거든. 솜이를 도서관에 데려가니까 정말 신기하게 수빈과 그 애 둘 다 좋아하던 그 자리에 앉더라. 수빈이 솜이의 옆에 의자를 빼고 앉았어. 엄마도 매일 그 자리에 앉았어 솜아. 엄마두 와써? 그럼. 여기서 매일 책 읽었어. 솜이도 책 읽을래?
도서관에 무슨 힘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솜이가 수빈에게 장난을 쳤어. 작은 손으로 수빈에게 눈을 던지고 오도도 뛰어갔어. 수빈은 깜짝 놀라서 가만 서 있다 금방 솜이를 잡으러 갔어. 아빠에게 잡힌 솜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듣기 좋았어.
45.
솜이는 아빠와 둘이 지내는 동안 배운 게 많았어.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해야 했고 아빠가 먼저 밥을 먹기 전에는 먹으면 안 됐어.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보는 것도 처음이고. 눈을 보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전부 다 처음 하는 것들이었어. 하루 종일 새로운 걸 배우고 즐겁게 놀다 밤이 되면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하고 돌아와 아빠의 팔을 베고 잤어.
46.
그날도 아빠의 다리 사이에 쏙 들어가 동화책을 읽고 있었어. 아직 글을 몰라서 수빈이 읽어줘야 했어. 밥을 배부르게 먹고 아빠의 잔잔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잠이 솔솔 왔어. 이제 거의 잠에 들려고 하는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47.
엄마아!
솜이가 뛰어가 엄마에게 안겼어. 수빈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어. 동화책이 떨어졌어.
수빈이 성큼성큼 걸어 둘을 품에 안았어.
나 솜이랑 동화책 읽고 있었어
그 애가 수빈을 꽉 안았어.
몸은 괜찮아?
엄마 개차나?
하나도 안 아파
48.
수빈이 집에 돌아왔어. 솜이가 수빈을 향해 뛰어왔어. 수빈이 솜이를 안아올렸어. 이제 많이 커서 전보다 무거워졌어. 그래도 한참 가벼웠지만.
엄마는?
엄마 뽀그뽀그
수빈이 솜이를 잠깐 내려놓고 겉옷을 벗었어. 그 사이에 솜이가 얼른 안아달라고 칭얼거렸어.
됐다 됐다 솜이 다시 안아줄게
솜이를 안고 수빈은 안으로 들어갔어.
엄마아 아빠 와써여
왔어? 배고프지. 다 됐어. 아빠는 솜이랑 손 씻고 오세요
그 애는 국자를 들고 반갑게 인사했어. 수빈과 솜이까지 같이 인사했어. 수빈이 솜이를 데리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어.
수빈이 솜이 의자에 솜이를 앉히고 그 옆에 앉았어. 식탁에 요리가 하나씩 올라올 때 수빈이 솜이에게 턱받이를 둘러줬어.
엄마까지 자리에 앉자 솜이가 숟가락과 포크를 양손에 쥐었어. 수빈이 먼저 잘 먹겠습니다 하자 솜이가 수빈을 따라 혀 짧은 발음으로 말했어.
한창 밥을 먹다 엄마가 솜이에게 먼저 말을 꺼냈어.
내일 솜이 처음으로 사냥하는 날이네!
엄마두 소미랑 가치해!
엄마? 엄마는 잘 못하는데.. 아빠가 훨씬 잘해 솜아
가치해!
솜이의 땡깡에 수빈이 웃었어.
그래그래 내일 엄마도 같이 가자
49.
솜이가 헐레벌떡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어.
엄므아! 이거 빠!
도서관을 문을 닫기 위해 마지막으로 창문을 내리고 있던 엄마가 깜짝 놀라서 돌아봤어.
솜아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나 톡끼 자바써어...!
엄마랑 같이 가자고 했으면서 아빠랑 먼저 간 거야?
엄마 기다리는 데에... 으응... 앞에 톡끼가 깡충깡충 뛰어갔소...
엄마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토끼를 잡아버린 솜이가 귀여워서 엄마는 쿡쿡 웃었어.
잘했어. 그럴 땐 바로잡아야 해. 솜아 근데 아빠는?
여기 있어.
수빈이 닫다만 창문을 마저 닫아주면서 말했어.
50.
왼쪽은 엄마 손, 오른쪽은 아빠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 솜이가 손 그네를 태워달라고 했어.
하나~ 두울~ 세엣!
솜이가 붕 뜨자 엄마, 아빠가 빠르게 움직였어.
웃음소리가 마을 전체에 퍼져나갔어.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ㅠㅠ
이 한 편 쓰는 게 그렇게 힘들었네요..
막상 쓰고 보니 별 게 없어서 좀 허무하다.. 핳하..
솜이는 리틀포레스트 유진이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정말 진짜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수빈이랑 약간 닮았어...
제가 보기엔 유진이도 토끼상이에요
유진이 보고 가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