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Hangers-on-dependent
구준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2층에 위치해 있는 내 방 창문을 이용해 우리집에 기어들어오는 몰상식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그 덕에 내게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었고, 구준회에게 존중을 부탁하거나 요구를 한다 해도 구준회에게 있어서 내 말은 재채기나 기침처럼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으니 별 소용이 없더라 이거였다. 더군다나 구준회는 성적도 좋고 똑똑했으며 누구에게나 말을 잘 붙이는 싹싹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우리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곤 했다. 물론 단순히 구준회가 성적이 좋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 가끔씩 정상적인 입구, 그러니까 현관을 통해 우리 집을 드나들며 엄마에게 꽃다발이나 과일이나 자그마한 케익 등등을 선물한 것이 좀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쨌든 엄마는 구준회라면 그냥 껌뻑 죽었으니, 구준회 같은 애가 나와 놀아주는 걸 감사히 생각하라며 내 불평이나 불만 따위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기 마련이었다. 아니 엄마, 그래서 구준회가 창문으로 드나든다니까? 방범창이라도 달자. 하고 징징대자면 엄마는 또 그런 구준회의 대범함과 남자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그 애를 좀 본받는 것이 어떻냐고 역으로 날 몰아붙일 뿐이었으니,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준회가 뜬금없이 들이닥치는 타이밍 중에 가장 좆같은 걸 골라보자면, 두말 할 것도 없이 가끔 내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을 타이밍에 들이닥치는 거였다. 구준회는 소리소문없이 창문 밖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알아차릴 때까지, 그러니까 내가 주섬주섬 옷을 다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빙글빙글 웃으며 노크를 하곤 했다. 차라리 내 방에 먼저 들어와 있기만 해도 조금 몸을 돌리고 옷을 갈아입으면 될 일인데 굳이 관음증 환자처럼 왜 숨죽이고 거기에 앉아 내 몸을 관찰하고 있는 건지. 아무리 고심해 봐도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짓거리였다. 발끈해서 왜 안 들어오고 있었냐고 역정을 내자면 구준회는 다시 그 유한 곡선을 그리는 입매로 오, 내가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앞으로도 자주 놀러와 줄게. 하고 말하며 긴 다리를 내 책상에 턱 하니 올려놓으며 방 안으로 잠입하곤 했다.
그야말로 엿 같은 일이었다. 졸지에 구준회와는 집주인과 객식구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더 웃긴건 내가 객식구고 구준회가 집주인 같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는 거다. 덕분에 학교를 다니며 확고한 목표가 하나 생겼는데, 돈을 열심히 모아서 방범창을 달아야겠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진작에 여기서 잘 걸 그랬어."
그런데 이제는 그런 구준회로도 모자라서 김한빈까지 합세해 내 사생활을 처참히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듯 했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브리스톨의 외곽에 위치한 고즈넉하고 이국적인 2층 집의 작은 방에, 한국인 남자애들이, 그것도 세 명씩이나 우글거리다니. 참 이상한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김한빈은 이번 달 말까지만 내 방에서 신세를 지고 싶다 했는데, 딜런이 이번 달 말이 되면 기숙사에서 짐을 빼고 집에서 통학을 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딜런과는 조금 서먹한 사이가 된 김한빈은 더 이상 그 애와 좁은 방 안에 단둘이 있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알잖아. 물고 뜯는 류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눈치만 보는 심리전이라 말 그대로 걔랑 있으면 기빨려. 김한빈이 조곤조곤 말했다. 그치만 매몰차게 김한빈을 내쫓을 수도 없는 것이, 정말로 그런 낭패감이 어떤 식으로 김한빈을 괴롭힐 지 상상이 갔기 때문이었다. 불리한 입장인 김한빈이 딜런과 싸우며 상처를 받는 것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옆에 두고 위로해주고 돌봐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리바리 잠옷과 간단한 세면도구 등을 챙겨 내 방으로 슬그머니 침입한 김한빈은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았는데 피곤하다며 내 작고 낡은 싱글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가정집의 침대는 다르다니까. 기숙사랑은 비교가 안 된단 말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구준회는 내 낮은 책상 위에 그대로 걸터앉아 그 긴 다리를 홱 꼰 채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원서를 꽤나 집중해서 읽는 중이었다. 혹여나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한 책상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두려워져 의자에 앉아서 읽으라고 말해도 구준회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다가 책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아. 하고 무신경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침대에는 김한빈이, 책상에는 구준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도무지 내가 앉을 곳이 하나 없었다. 내 방인데도 객식구들 때문에 아무데도 앉지 못하다니.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결국 그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You guys are really super-great fuckers.
구준회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So… What happened to you and Dillon?"
한참 후에야 책을 다 읽은건지 구준회가 탁, 소리나게 표지를 덮고서 뜬금없이 김한빈에게 질문했다. 김한빈은 침대에 누워있다 말고 인상을 팍 찡그리며 대꾸했다.
"He's, just like, switched about me being… you know."
"Asian?"
"No."
"Short?"
"Fuck off, of course not!"
구준회가 키에 대해 논하자 김한빈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발끈했고, 이내 어이없다는 탄식조의 웃음을 흘리며 다시 맥없이 말을 이었다.
"You know, just gay."
털썩, 하고 다시 침대로 몸을 눕히는 꼴이 마치 제 침대를 쓰는 것 마냥 자연스러워 보여 나는 또 나대로 기분이 이상했다. 원래 저게 내 침대가 맞기는 맞았던 거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한빈이 다시 주절주절 설명을 보탰다. 내가 게이인거 말야. 그게 우리의 친구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대.
"Oh."
구준회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반응했다. 사나운 눈매가 일순 반짝이며 산란하게 빛을 발했다. 묘하게 들뜬 음성이 방 안으로 내려앉았다. 구준회가 재밌는 걸 발견할 때마다 내는 목소리였다. 짙은 눈썹이 움틀거렸다.
"And you know, my height's similar with Dillon."
김한빈이 꿋꿋하게 중얼거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Oh-oh. Dillon is much taller than you."
"Fuck's sake. Believe me."
내가 덧붙이자 아까보단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김한빈이 대답했다. 나는 낄낄 웃으며 침대 옆의 탁자 위에 놓인 쿠키를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오트밀에 크랜베리가 박힌 쿠키였다. 우물우물 쿠키를 씹어먹으며 김한빈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니 김한빈이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잠꼬대와 비슷한 소리였다. 누운지 10초도 안된 것 같은데. 쿠키를 먹다 말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심스럽게 말하자 구준회가 아무렴 어떻냐는 듯 대답했다. 10초 안에 잠드는 법 연습이라도 했나 보지 뭐.
*
클로이네 부모님이 해외에서 돌아오시고 난 뒤로 한동안은 이 근방에 파티를 하는 곳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쩐 일로 바비가 아침 수업엘 다 나와서, 그것도 약에 쩔어 비척거리는 걸음걸이가 아닌 건강한 발걸음으로, 저렇게 신나게 웃고 있는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웬의 친구가 커다란 스포츠 클럽을 빌려 꽤나 성대한 파티를 연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바비가 기지개를 피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So, that's why you get up early in this morning?"
"Yup. What the fucking else am I supposed?"
음악과 약으로 밤새 노는 것을 즐겨 한 탓에 늘상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바비는 제일 힘겨워 했다. 끼니를 제때 챙겨먹지 않는 날들도 잦았고, 무엇보다 될 대로 되라 식의 태도로 일관하며 수업은 좆이나 까라고 무시를 해버리는 바비의 사고방식 탓에 아침 수업에서 바비의 얼굴을 보는 일은 김한빈이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일과 맞먹을 만큼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금요일 아침 수업인 Philosophy 선생님은 바비의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애를 전학생 쯤으로 생각할 것이 뻔했다. 어쩐 일로 빨리 온 거냐며 묻자 바비는 기분이 좋아서 그 염병할 철학자들이니 사상들이니 운운도 들어줄 마음이 생겼다고 답했다.
그런 바비가 유일하게 지겨워하지 않는 과목이 하나 있다면 다름 아닌 Physical Education 시간이었다. 몸으로 하는거라면 그게 농구가 됐든 미식축구가 됐든 바비는 가리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순발력과 지구력이 좋은 것 같았다. 사실상 곰곰히 생각해보면, 바비가 매일 해치우는 감자튀김이나 햄버거 같은 정크푸드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주입하는 약물과 피워대는 담배들로 보았을 때 지금까지 죽지 않고 건강히 살아 지낸다는 것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바비의 Physical 과목 성적이 7학년 때부터 올 A+를 유지해 왔다는 건데, 정작 바비는 그걸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체육에는 젬병인 내가 간절하게 체육을 잘 할 수 있는 팁을 물어보면 바비는 스치듯 말하곤 했다. Take it easy. Do what you want.
그런 바비의 불규칙한 생활 습관과 여유로운 태도와는 다르게 구준회는 꽤나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근력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뒤 그 날 있을 과제와 발표를 한 번씩 확인한 뒤에 버스를 탔고, 약이나 담배도 바비에 비하면 그 빈도가 잦지 않은 편이었다. 원체 머리가 좋은 탓도 있지만 구준회는 탁월하게 제 시간을 잘 다루는 편이었다. 바비가 농구를 하고 늘어져 퍼져 있다가 수업에 들어와 과제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하면 구준회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이 없었다고? 난 운동하고, 샤워하고, 아침 먹고, 화분에 물주고, 과제를 끝내고, 옆집 꼬맹이까지 학교에 데려다주고 왔는데? 그러면 바비는 오, 헤르미온느의 시간을 돌리는 시계라도 훔치셨나보군. 하며 구준회를 되려 비꼬곤 했다.
"Jesus, what on earth are you doing here? "
바비가 이번 학기 들어 한 번도 나오지 않던 Philosophy 수업엘 나오자 막 교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던 김한빈이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더니.
"Oh, yeh. I'm gonna die today in the party."
바비가 장난스럽게 김한빈의 머리칼을 흩뜨러뜨리며 말했다. 안 그런척 했지만 그래도 역시 바비가 수업에 나온 것이 기분이 좋은 건지 김한빈이 연신 웃음을 감추질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It's gonna be the best party of this year."
리투아니아산 엑스타시도 미리 구해놨지. 뻑가는 약이라고 했으니 분명 죽여줄 거야. 바비가 신랄하게 내뱉었다. 파티가 시작되는 건 오후 7시 쯤이었는데도 바비는 흥이 오르는 건지 자꾸만 몸을 뒤척이며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Fuck it….기대가 돼서 못 견디겠어. 시간은 또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거야? 평소의 여유로운 태도와는 상반된 조급한 모습이 웃겨서 다붓히 지켜보고 있자니 이번엔 옆에서 덩달아 잔뜩 기분이 업 된 듯한 딜런이 끼어들었다. 이번엔 DJ들도 죽여주더라. 라인업 목록을 훑어봤는데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고, 바비. 알아? 오늘이 날이란 거야.
"Alright. Let's go get fucked."
가서 미치고 오자고. 바비가 몸을 뒤로 제끼며 기분 좋게 웃어보였고, 딜런은 도저히 기분이 좋아서 안 되겠다며 안달난 듯 뒷주머니에 몰래 쑤셔넣고 온 대마를 조금 꺼내 뒷문으로 뛰쳐나갔다. 학교에서 대마라니. 쟤도 존나 미쳤다니까. 그웬이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옆에 있던 클로이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
클럽으로 가는 길은 사실상 그다지 즐겁지 못했다. 구준회가 클로이의 가슴을 짝짝이라고 놀려대며 성질을 긁은 것이 주된 원인이었는데, 잔뜩 화가 난 클로이가 신경질적으로 내게 자신의 가슴이 정말 짝짝이냐며 물어왔고,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쩡 거리자 구준회가 끼어들어 네가 본 그대로 대답하라며 나를 채근했다. 사실 본 거라곤 클로이의 가슴이 아닌 음영이 진 흐릿하고 순간적인 형상이었을 뿐인데, 졸지에 친구 여자친구의 가슴을 공유하는 변태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몹시 불쾌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하고 대답하자 구준회는 그래서 어쩌라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Well, you told me it's lovely."
그러자 옆에 있던 딜런이 입을 쩍 벌리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Is it true? You such a wanker!"
너 진짜 씨발놈이다! 왜 그 좋은 걸 혼자 감상하고 끝내버린 거야? 적어도 나한테 정도는 말해줄 수 있는거잖아! 딜런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쏘아붙였다. 오, 정말, 정말 보고 싶었던 건데… 괴로운 듯 제 머리칼을 두 손으로 감싸고 절망하는 딜런에 바비가 킬킬거리며 웃었고, 그웬은 저질스럽다는 듯 제발 좀 닥치라고 대꾸한 뒤 딜런의 등짝을 찰싹 소리가 나게 갈겼다. 지치지도 않는 건지 딜런이 다시 덧붙였다. 가슴 못본 것도 서러운데 왜 때리기까지 하는 거야. 너 정말 못됐다, 그웬.
생각컨데, <매를 버는 방법> 따위의 과목이 있다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딜런은 전체 수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클로이는 딜런의 질낮은 농담과 구준회의 뻔뻔스러운 태도에 기가 찬다는 듯 팔짱을 끼고 빠르고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우리를 앞질러 갔다. 또각또각하고 바닥과 구두의 굽이 마찰하는 소리가 크게 거리를 울렸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 이내 그런 클로이를 뒤쫓아 가던 그웬이 다시 몸을 틀어 쨍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Stop fucking about, yeh?"
그런 그웬에게 딜런이 눈썹을 씰룩이며 대답했다.
"You know, shits happen everyday. Like this."
장난스럽게 맞받아치는 딜런에게 신물이 난다는 듯 그웬은 Jesus, dozy fuckers. 하고 중얼거린 뒤 클로이를 쫓아 달려갔다. 딜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애들은 가끔 너무 예민하단 말이지. 그리곤 잠시도 입을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는 듯 조금 걷다 말고 내게 고개를 들이밀고 물었다.
"So… What about boobs?"
오. 꺼져.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볼 생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자 딜런이 워, 너도 오늘 까칠하구나 제이. 하며 진정하라고 두 손을 들어 항복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사실 내가 봐도 구준회가 클로이를 놀리는 빈도가 너무 잦았고, 그 정도가 좀 지나칠 때가 있었는데 아무렴 당사자인 클로이는 어떻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구준회가 조금 원망스러워졌다. 구준회는 보나마나 클로이를 놀리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거 재밌어서, 라고 답하며 능글맞게 웃어넘길 것이 뻔했다. 구준회도 구준회였지만, 그런 구준회가 키스를 하며 성의없는 사과를 하면 그걸 또 받아주는 클로이도 딱히 정상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뭐 둘의 관계에 대해 깊게 관여할 자격은 없었지만 그냥 둘의 사이를 보고 있다보면 답답했다. 여하튼 구준회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뭐가 좋고 싫은 건지,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바비는 느긋하게 담배를 손가락에 걸치고 허공으로 연기를 흘려보내며 음악을 흥얼거렸고, 김한빈은 아무래도 딜런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신경이 쓰이는 듯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바비와 보폭을 맞추며 묵묵히 걸었으며, 딜런은 풀쩍풀쩍 뛰어다니며 조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구준회의 옆에서 조용히 걸으며 파티가 있을 클럽이 얼마 정도 남았을 지 곰곰히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정수리께로 구준회의 커다란 손이 푹 덮였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어 구준회의 옆 얼굴을 올려다보자 그 탁한 카키색을 띄는 척척한 홍채가 웃음기를 담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What."
"Today is the day."
클로이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건지 연신 빙글빙글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는 꼴이 어딘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구준회가 저런 식으로 웃는다는 건 곧 재밌는 일을 벌일 것이란 걸 의미했다. 요즘 좀 잠잠하다 싶더니 또다시 구준회가 무슨 병신같은 일을 벌이고 싶어 저렇게 신나 보이는 건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구준회는 스릴을 즐기고 무언가 어지럽히는 것을 좋아하는 애였기에, 늘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존재였다. 어딘가 의미심장한 말이 쿡쿡 정수리께를 난도질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구준회가 소리내어 낄낄거렸다. 저번처럼 그냥 가지말고 파티를 즐기란 뜻이야. 파티를 못 즐기게 한 장본인이 자기인건 알고 하는 소리인가 싶어 어이없는 눈초리로 구준회를 쏘아보자 구준회는 뭔 일 있었냐는 듯 눈썹을 씰룩이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제이. 내가 준 선물은 뜯어봤어? 어울릴 것 같아서 사온 건데.
"You talking about that fucking crap?"
"Oh, that's a bit harsh, mate."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구준회가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클로이네 집에서 파티가 열렸던 날 구준회가 내게 건네었던 것은 여자애들이 즐겨 쓰는 염색약 나부랭이였는데, 금발에 가까운 오렌지 빛의 염색약이라 도무지 시도를 해 볼 엄두도 나지 않은 데다가 그딴 걸 왜 뜬금없이 내게 건넨 건지도 의문이었다. 괜히 기대하고 있던 내가 바보지. 아마 구준회는 얼떨결에 얻게 된 염색약이 저에겐 전혀 필요가 없는 데다가, 그런 선물이라도 없으면 저와 클로이가 쪽쪽거리며 애정행각을 나누던 방에 나를 가둬놓을 어떠한 명분도 없으니 그냥 그걸 선물이랍시고 준 것일 것이다. 보나마나 뻔했다. 재수없게 실실 웃어 보이는 반반한 낯이 아니꼬왔다.
"I'm your friend, but I really don't know what the fuck you're on about most of the time."
오, 아니꼽게 듣지 마. 그냥 정말로, 정말로 네게 어울릴 것 같아서 사온 거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구준회가 낄낄거렸고, 딜런은 여전히 클로이의 가슴을 본 것이 제가 아님에 원통해하며 애꿎은 길바닥에 화풀이를 해댔다. 김한빈의 어깨에 한 쪽 팔을 걸치고 담배를 빨아들이던 바비가 별안간 입을 뗐다.
"You hear that?"
"Hear what?"
음악소리 말이야. 디제이가 벌써 도착했나봐. 바비의 말 대로 어느새 제법 가까워진 클럽에서부터는 벌써 요란한 조명과 더불어 쿵쾅거리는 비트가 새어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새하얀 벽돌로 만들어진 클럽 건물 위로 형광빛이 도는 다채로운 LED조명이 마구 덧대어졌다. 바비의 가느다랗게 접힌 눈동자 안으로 산란한 빛무리들이 가득 고여들었고, 기다란 손가락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담배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발로 대충 짓이긴 바비는 김한빈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클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딜런도 못 참겠다는 듯 죽인다! 를 연발하며 그 둘을 쫓았다. 구준회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걷다말고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It'll be fun, mate."
어울리지 않게 석류 빛이 도는 불그스름한 입술로 구준회가 조음했다. 묘한 빛을 띠는 눈이 진득한 시선으로 나를 담고 있었다. 정말로 재밌을 거야. 정말로.
구준회의 얼굴에 걸쳐진 비스름한 웃음이 무언가 꺼림칙했으나 그 뿐이었다. 물에 풀어놓은 푸른 색 잉크 같은 하늘로 어느새 점점이 어둠이 뻗어있었다. 나는 성의 없이 대답했다. 그러게. 재밌는 파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번처럼 거지같은 파티 말고 말이야. 그러자 구준회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낄낄 웃어보였다. 아이 같이 천진한 웃음이었다.
*
헥헥 뭐했다고 벌써 힘드네요.. 늙은이체력^^....
위는 그웬의 글 속 이미지입니당 존예.... 아리아나 그란데... 너무 예뻐요... 너무 예쁘고요...
블로그에서보다 오타수정 + 맞춤법을 확인했고 나중에 텍본낼 때 또다시 퇴고를 거칠 예정이에요...TㅆT 글 완결날때까지 수십번은 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 앞 막막^^/.... 곧 4편 업로드 하겠읍니닷..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