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딱. 딱. 만약 여주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그 꼬리가 땅을 치면서 이런 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범규는 팔짱을 끼고 그 앞에 앉은 여주를 보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있었다. 여주는 철저한 경험론자라 아까 있었던 일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아니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걸 부정하는 것도 힘든 일이잖아! 그래서 뭐 어떻게 하겠다고 정기가 철철 넘치는 산에서 황무지로 온 건데 대책은 있고? 이제 꽤나 현실적인 질문으로 넘어간 여주에 범규가 말꼬리를 늘리며 시작했다. 으응 나도 나지만 사실 내가 없으면 제일 위험한 건 여주라 여주 옆에만 있으면 돼 폭탄 같은 호랑이의 발언에 여주가 한 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그러니까 내가 널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하는 거지 지금? 범규가 동그란 귀를 파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냥 해맑은 범규에 여주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물었다. 그 몸으로? 쿠키로 다시 변할 수는 있고? 여주의 말에 범규가 양손을 쥐락펴락했다. 지금 정기가 부족해... 인간의 몸으로 이렇게 오래 있는 것도 무리야. 어쩐지 범규의 피부에 점점 호랑이의 무늬가 점점 올라온다 싶었다. 이러다 사람 몸에 털도 돋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해? 여주의 말에 범규가 부드러운 꼬리를 슬쩍 앞으로 빼내어 여주의 무릎에 갖다 댔다. 이렇게 하면 조금 나아져. 여주 몸에는 내 기운이 있으니까. 근데 그 구슬 안의 정기도 이제 점점 바닥이야. 조만간 산에 들어가서 다시 정기를 채워 넣어야 해. 범규가 정기를 빨아들인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여주는 2n 년 동안 외쳤던 기 빨린다를 몸소 겪고 있었다. 와 씨 당 땡겨. 뇌가 당을 찾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편의점으로 뛰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진짜 가 말아 하는 순간, 충전 끝. 범규가 다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중에 산에 갔다 오면 내가 여주 충전해 줄게. 여주는 만화였다면 반짝이가 달렸을 법한 과하게 초롱초롱거리는 눈을 보고 남모를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신연령이 중딩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너는 뭐 먹어? 사료? 아니면 인간 밥? 여주의 말에 범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정기만 있으면 굳이 뭐 안 먹어도 괜찮아! 여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식비가 더 나갈 일은 없겠구나. 범규가 귀를 다시 쫑긋 세웠다. 여주랑 같이 있어도 되는 거지? 여주는 뜸을 들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 쟤나 그놈의 정기가 없어서 이 쌩난리를 치는데 안 붙어있으면 서로 위험하단 얘기 아니야. 난 자연사가 꿈인데 이런 허무맹랑한 기운 때문에 죽을 수야 없지. 그리고 솔직히 아까 호랑이 구슬이 몸 밖으로 잠깐 나왔을 때 보였던 것들이나 들었던 것들이 너무 오싹한 공포를 선사해 주는 바람에 쫄려서 허락하는 것도 없지 않았다. 여주의 허락을 받은 범규는 신이 나서 바닥을 뒹굴었고 여주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 할머니 나야... 쿠키가 적응을 했나 봐 내가 데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 웅... 알겠어... 밥 잘 챙겨먹구 나야 뭐 늘 잘 먹어서 탈이지 웅웅 나도 사랑해.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혼절할 뻔했다.
아 시발.
......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너무 놀라서 말이 헛나온 거긴 한데....
호랑이가 고양이의 몇 배나 될 것 같은 커다란 몸집으로 커다란 그르릉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여주를 똑바로 응시하며 다가왔다. 어우 미친 발자국 소리 하나 안 났다.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 큰 머리통을 여주의 몸에 비볐다. 정수리 쪽을 여주에게 들이밀며 못살게 굴었는데 그 와중에 (본인은 좋아서) 의도치 않게 이빨을 드러내는 바람에 여주는 정말 반쯤 기절할 뻔했다. 이거 만지라고 지금 그러는 건가... 여주가 눈을 질끈 감고 호랑이의 정수리에 살포시, 정말 살포~시 손을 올렸다. 그러자 호랑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분고분하게 앉았다. 정말이지 손을 벌벌 떨면서 조금씩 머리를 쓰다듬었다. 날이 선 그르릉 소리가 이제 좀 아주 낮은 음역대로 떨어지면서 한결 듣기 나쁘지 않은 소리로 바뀌었다. 고양이들은 (아 물론 호랑이는 커다란 고양이일 뿐이니까) 호르몬이 분비되는 곳을 긁어주면 좋아한다는데 싶었던 여주가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살살 긁었다. 물리는 거 아닌가 싶어 눈을 콱 감았는데 정작 아무 일이 없어 눈을 슬쩍 떠보니까 이미 꼬리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응 그래... 이거 좋은가 보네...
나 심장마비로 일찍 죽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