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술은 오물오물. 손가락은 꼼지락 꼼지락. 심장이 달리기를 한 것 처럼 쿵쿵 뛰어댄다. 동우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대어 보다가 두근거림을 주체 할 수 없는 듯 이불을 꼭 쥐기도 하고 배게도 팡팡 쳐댔다. 도대체 저가 무슨 정신으로 호원에게 고백한 건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스무 밤을 고민하고 아홉 밤을 새서 겨우 입 밖에 조심스레 낸 고백이지만 아직도 자신의 선택이 바른 것인지 아리송한 동우다. 휴대폰에는 아직도 아 무런 연락이 없었다. 무심한 휴대폰을 잠시 째려보다 휴대폰은 던져버리고 다시 동동.
호원이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쪽빛 하늘은 호원이의 호탕함을 닮았고, 하얀 이불은 착한 호원이 성격을 닮았고, 분홍색 인형은 호원이의 달콤함을 닮았고, 붉은 책은 호원이의 다정함을 닮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이호원으로 가득하다. 동우는 멍하니 방 안을 바라보다 저의 두 뺨에 손을 대었다. 화끈화끈하다. 거울을 보니 얼굴에 사랑꽃이 활짝 피었다. 가슴은 여전히 감당할 수 없을만큼 뛰어댔지만 호원을 향한 저의 사랑이 느껴져 동우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한 밤이다.
2.
"그럼 형, 조심해서 들어가요."
걱정 마. 내가 애도 아니고, 뭐. 동우는 실실 웃으며 호원에게 들어가라며 등울 떠밀었다. 물론 진탕 술에 취해 호원이 걱정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나도 성인인데! 게다가 형인데! 동우는 자꾸 힐끔힐끔 돌아보는 호원에게 손을 흔들고는 방향을 틀어 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동우가 지나간 자리의 발자국엔 취기가 어룽졌다. 호원은 그 취기를 잠시 바라보다 결국 비틀거리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호원이?"
"네. 많이 비틀거리시길래."
"나 정말 괜찮다니까… 집이 바로 앞이라니까… 걱정 안해도 되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할 수가 있어요. 좋아하는데."
3.
카톡왔숑! 카톡왔숑!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울리는 휴대폰에 동우는 오만 상을 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PM 11:28.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동 우는 잠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눈은 반쯤 감겨있었고, 긴 속눈썹에는 졸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겨우 눈을 떠 카카오톡을 확인하니 둘 다 호원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창 밖 에','누가 있을까요.'
잠이 확 달아났다. 동우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니 호원이 서 있었다. 부서지는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저를 바라보는 호원은 참, 멋있었다. 형, 자고 있었어요? 그 말에 동우는 도리도리. 하지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살짝 부운 눈이 동우가 방금 일어났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호원은 잠시 미안한 기색을 비추다 휴대폰을 들어 동우에게 전화 를 걸었다. 동우는 그런 호원에게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밤중에 불러내서 미안해요."
"아니, 괜찮아. 근데 왜 부른거야?"
"과제를 하다가 잠시 쉬는데 갑자기 형이 너무 보고싶은 거에요. 온 집안 이 형이라 도망쳐 나오니까 이젠 온 길거리에 형이라서 결국은 이렇게 와 버렸어요. 온 세상이 형이라서. 내 머릿속이 온통 형이라서."
4.
하, 진짜 못 해먹겠다. 호원은 낮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매일 겪 는 아침이지만 출근길의 전철은 정말 견딜 게 못 된다. 겨우 자리에 앉으니 그제서야 주위를 좀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휙휙 주위를 훝자 늘 보이던 아이가 보인다. 오늘은 뒷통수.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칸에 타서 어느새 익숙해진 아이였다. 거북이 등껍질같은 커다란 녹색 가방을 매고 손잡 이를 잡은 채 자꾸 비틀거린다. 살짝 뜬 머리카락에서 졸음이 뚝뚝 흘러 내렸다. 그 모습이 불안불안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아이가 자리에 앉았다. 그 커다란 가방을 끌어안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저의 고등학교 시절과는 퍽 달라 호원은 웃음이 나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그란 머리통이 불안하면서도 사랑스러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계속 그렇게 꾸벅꾸벅 졸다 크게 고개를 숙이고선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동그래진 눈이 귀여워 호원은 소리를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번 역은 잠실, 잠실입니다. 내시릴 문은… 열차 안을 울리는 목소리에 호원은 가방을 챙겨 일어날 채비를 했다. 오늘은 아이의 재미있는 모습을 본 기분 좋은 아침이다. 그렇게 일어나려 하는데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인영에 호원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였다. 어째선지 얼굴은 발갛게 해서 제 앞에서 우물쭈물하게 서 있었다. 호원은 얼굴에 의문을 가득 품고 아이를 바라봤다. 뭐지? 아이는 여전히 우물쭈물하더니 눈을 딱 감고 호원의 가방 위에 쪽지를 올려놓고선 다른 칸으로 달아났다. 호원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아이를 쫓아가려다 열차가 역에 도착해 결국 열차에서 내렸다. 출발하는 기차의 차창에서 보인 아이의 귓불은 여전히 발갛다.
그 발간 귓불을 바라보다 호원은 서둘러 아이가 제게 전 쪽지를 펴 보았 다.
010-1990-1122
18세, 장 동우.
나 아저씨한테 관심 있는데 아저씬 어때요?
제게 건낼 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당돌한 내용이었다. 호원은 그 순간 동 우의 발갰던 귓불이 떠올라 웃음이 터져버렸다.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올라가는 호원의 귓불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Daybreak Kim |
예전 독방에 올렸던 글 긁어오기~ 조각조각 따따따~▽~ 장편 준비하는 중에 갑자기 끌려서 올리네요. 난 조각글이 운명인가봉가..? 왜때문에 장편은 코딱지만큼도 진도가 안 나갈까요? 그것이 알고싶다! 아 아 맞다 그 그 뭐냐 그 BGM은 정은채 - 소년,소녀! 혹시라도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