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
02. 연습
-본 이야기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신체적 특성 또한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고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비하 할 의도는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피드백 및 수정 요청 언제나 환영, 부드럽게 댓글 남겨 주세요!)
w.선샘미가좋마묘
희연이의 이야기를 듣자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 내가 향수를 뿌렸었나? 목소리가 조금 잠긴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내가 말을 걸었다가 나를 불편해하면 어쩌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얽혀 내 시선이 지훈이에게 꽂혀 있는데 희연이가 나를 한 번 콕 쳤다. 사랑은 타이밍. 그 말을 누가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게 가장 들어 맞는 말일 거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쥐고 있는 손에 땀이 나는 듯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창 밖에 시선을 두는 지훈이의 뒤로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교수님이 들어서기 전 까지는 항상 떠들썩 하기만 한 강의실이 조용해지는 듯 했다. 내 착각일까. 동그란 뒷통수가 가까워질 수록 조용한 강의실에는 내 심장 박동 소리와 해피가 가만히 앉아 헥헥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다른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교실이 조용해지자 지훈이는 교수님이 들어오셨다고 생각한 건지 고개를 틀었다. 어깨를 가볍게 치려다가 갑자기 누가 몸을 만지면 놀라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떨리는 숨을 한 번 내쉰 후에 지훈이 앞의 책상을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네? 아, 네…"
강의실에서는 조용히 해야한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지훈이의 옆 바닥에 앉아 있던 해피가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나에게 아는체를 했다. 횡단보도에서처럼, 평소처럼, 살짝 웃어보인 나는 우리 둘 사이를 감싸는 어색함에 괜히 손을 만지작 거렸다. 공기마저 답답하게 느껴졌다. 히터가 좀 세네. 괜히 혼잣말을 하자 지훈이가 입술을 살짝 물었다. 숨막힐 듯한 어색함이란 게 이런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부터 생각하고 올 걸… 느릿 느릿 주변을 맴돌며 다가가겠다고 마음 먹었으면서 이런식으로 대책 없이 행동하다니!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는 지훈이를 자주 봤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지훈이가 어떤 애인지 많이 물어봤어서 익숙하지만 지훈이는 내가 그렇지 않을텐데. 내 입장만 고려했구나 이기적인 김칠봉.
"아, 기억났다. 그때 예- 전에 작곡과 그 분… 맞아요?"
"어, 어! 맞아요! 저한테 핫팩도 주셨잖아요!"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점 덕분이지. 한참을 미간을 찌푸리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너는 자그마치 1년 전 일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깜짝 놀란 내가 제법 큰 소리로 맞다며 대답을 하니 너는 눈을 너무 예쁘게 접으며 웃어 보였다. 비록 시선의 끝은 내가 아닐지라도, 너의 웃음을 가까이 볼 수 있음에 좋았다.
어떻게 알았냐며 저의 방향으로 가까이 당겨 앉는 나에게 자신은 청각이 아주 예민해서 목소리로 사람을 구분한다며 자랑스레 대답하는 너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자신에게로 당겨 앉는 순간, 옅게 숨을 훅- 들이쉬며 그때하고 같은 향수를 쓰는 것도 맞추는 데 한 몫 했구요. 라며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 달다. 공기가 너무 뜨겁고 달아서 질식 해버릴 것만 같았다.
두근 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혹여 너에게 닿을까 자세를 고쳐 앉으면 네가 내 이름을 물어온다. 살가운 목소리에 입꼬리가 주체 할 수 없이 올라갔다.
"작곡과 19학번 김칠봉이에요."
"칠봉… 기억할게요."
"말 놓으셔도 괜찮아요. 지훈씨도 21살 맞죠?"
"아, 불편하실까봐 그랬어요. 저도 놓을테니까 칠봉씨도 말 놓아요."
알겠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급하게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너를 좋아하는 과정은 당연하다 생각하는 행동들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고치는 데서 온다. 한 발자국 다가갔을 뿐인데 너와 말까지 놓게 되었다는 사실에 혼자 기뻐 웃으며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오시고, 강의실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평소처럼 출석 부르기를 건너뛰신 교수님은 강의를 시작하셨다. 나는 아까부터 지훈이가 고개를 두고 있던 창 밖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 시선을 두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버릴 듯 내리는 눈이 지훈이의 피부만큼 하얗고 하얗다. 눈은 너하고 꽤나 비슷했다. 밤새 집 근처에 눈이 소복히 쌓이는 것 마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깊숙한 곳에 네가 잔뜩 쌓여버리는 것도, 어느샌가 녹아버려 내 안에 스미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네가 눈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생각보다 차갑지 않다는 것이다. 아주 아주 차가울 줄 알고 손을 호호 불고 양 손을 맞대어 비비며 차가워 놀라지 않도록 준비하며 너에게 다가갔지만, 막상 손이 닿은 순간에는 차갑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 네가 차갑지 않게 조금은 녹아내린 이유는 한겨울 매일 들고 다니는 핫팩 덕분일까.
교수님의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미간을 좁힌 채로 교수님의 말에 집중하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책상 위에 올려진 두 손이 참 예뻤다. 매일같이 피아노를 치는 덕분인지 깔끔하게 정리 된 손톱에 뭉툭한 듯 곧게 뻗은 손가락은 정갈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참 예쁘다, 안 예쁜 구석이 없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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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에 안 쓰는 음악실 알아? 거기에서 자주 연습하니까 심심하면 놀러와."
"진짜로 가도 돼?"
"와서 네가 만든 곡도 들려줘"
며칠 전 지훈이가 한 말이 생각나서 강의까지 2시간 정도가 남은 4시쯤에 학교로 향했다. 앞이 안 보이는 대신 청각이랑 후각에 예민한 건가 싶어서 양치도 두 번이나 하고, 지훈이가 좋다고 했던 향수도 뿌렸다. 너에게 나는 어떤 색일까.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기에 더욱 떨렸다.
본관의 4층으로 올라가자 불이 거의 다 꺼진 어두운 복도가 펼쳐졌다. 약간은 무서운 분위기에 몸을 살짝 움츠리고서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자, 저 끝에서 작은 빛과 함께 매끄러운 피아노 선율이 새어나오는 게 보이고 들렸다. 저곳이구나 싶어서 조금은 속도를 높여 음악실 앞에 다다랐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쉰 후에 문고리를 잡았다.
녹턴 2번을 치고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가까워진 며칠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훈이는 웬만한 행동에는 잘 놀라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된 건지, 그렇게 되려고 한 건지는 몰라도 말이다. 조금 놀래킬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지훈이의 뒤로 살금 살금 다가갔다. 얼굴부터 손 끝까지 시선을 천천히 옮겨가던 와중에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 위가 보통 건반들과는 달랐다.
앞이 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피아노과에서 상위권을 다툴 정도로 피아노를 잘 다루는 건가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피아노 건반 위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색을 보니 비단 하루 이틀만의 일이 아닌 듯 했다. 무더운 여름에는 물론이고 추운 겨울에도 손 끝이 부르트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것이었다. 손 끝이 아리다 못해 살이 터져 피가 흐르도록 그랬겠지. 본인은 물론이고 누군가 피아노 건반을 봐 줄 사람도 없었기에 핏자국이 가득한 건반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로 죽어라 연습만을 한 것이었다.
이렇게 노력했구나. 네가 너무 멋지고 또 대단하게 느껴져서 눈에 살짝 열이 올랐다. 네 담담함의 이유는 연습이었구나. 여름에도 혹여나 넘어질까 반바지조차 입지 않고 무릎이 넘는 바지만을 고수하던 지훈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칠봉아. 너 온거야?"
"응. 왔어!"
"온 줄도 몰랐네. 부시럭거리는 소리도 안 들렸으면 몰랐을 뻔 했어"
"너 새삼 느낀 건데,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뭐야? 갑자기 칭찬하니까 이상하잖아. 그래도 기분 나쁘지는 않네"
영문도 모르는 칭찬을 듣곤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모습에 나도 따라 웃었다. 너는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조금은 발갛게 달아 오른 귀와, 헤실헤실 웃는 너. 그리고 나는 너와 같이 따라 웃으며 내 가방 안에서 물티슈를 꺼내 건반 위에 뭐가 묻었다며 건반위 너의 노력들을 깨끗이 닦아내었다. 그리고는 계속 피아노를 쳐 달라며 의자를 가져와 지훈이의 옆에 앉았다.
조금은 아픈 마음이 가시고 나서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파왔다. 너무 좋고 너무 설레는 일이 있으면 심장이 아리듯 아파온 적이 있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갔다.
네가 더 좋아졌다. 너와 같아지고 싶다.
사담 |
분량이 좀 짧은 듯 해서 그냥 오늘 또 올렸어요! 아마 며칠 간 일 때문에 조금 바쁠 거 같아요.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잉. 아마 다음 화 부터는 슬슬 로맨스 기운이 올라 올 거 같아요! (오늘 움짤 지훈이 웃는 거 넘넘 예쁘지 않나요? 전 몇 번이나 돌려봤으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