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술 따르는 이성열
성규의 눈이 커졌다. 돌직구네 현아. 성규가 우현의 뒤에서 빠져나와 우현에게 했던 것처럼 제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명수에게 건넸다. 성규앤캐시에서 돈 빌리셨죠? 명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도망치려 몸을 트는 순간 이미 제 뒤에 선 우현때문에 앞뒤로 갇힌 꼴이 된 명수가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근데 명수씨가 돈을 안 갚아도 너무 안 갚으셔서요. 오천, 갚으실 수 있나? 학생같은데. 이자를 안 붙여도 못 갚으실 것 같은데요.
"당신 신용 불량한 거 알면서도 믿고 빌려준건데."
"헐 신용불량자래, 난 안 그런데. 쩐다!"
"우현아 닥쳐."
"…잠시만 있어봐요, 돈 갚으면 되잖아."
명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가 파랗게 질리고 결국은 소위 똥빛이라고 하는 흙빛으로 물들었다. 명수의 말이 끝마치기가 무섭게 성규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명수에게 한발자국 더 다가가 명수의 귓볼을 살살 만지며 소근거렸다. 귓볼이 두꺼우면, 복이 많다고 하는데 그 쪽은 돈복은 없나봐요? 무,무슨…! 성규가 미소를 싹 지운채 명수에게서 떨어져 차갑게 말했다.
"당신, 또 다른 곳에서 사채쓰려고?"
"……."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한데, 애들 불러서 각서 쓰라고 할 수도 있어요. 난."
"…형!"
남우현, 끼어들지마. 명수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솔직히 사채쓰고 돈 못 갚을 거면 그 정도는 예상하시지 않으셨나? 신체포기각서. 성규의 말을 듣곤 오히려 우현이 작게 아주 작게 욕을 읊조렸다. 신체포기라니. 저에겐 천사로만 느껴졌던 성규가 갑자기 멀어진 느낌이었다. 하긴, 저 사람 원래 직업이 이러는 거였으니까. 나 혼자 괜히 착각한건가? 우현이 성규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성규의 입에서 뱉어진 말에 우현이 한숨을 내쉬곤 그러면 그렇지하고 웃었다. 환하게.
"신체포기 싫으시면, 저희랑 같이 일하실래?"
"…뭐요?"
"우리랑 같이 일하자구요, 그쪽 빚은 일하면서 차근차근 갚고 숙식제공. 쟤랑 같이 지내는 거야."
우현을 가르키며 말하는 성규는 전혀 일말의 흑심도 없는 깨끗한 백지같았다. 그 웃음에 우현이고 명수가 설레버린건 비밀로 하자. 그나저나 명수는 성규의 말에 말 멘붕이었다. 자길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왠 동업제의? 이 사람은 천산가? 아님 그 안에서 날 부려먹으려고 하는 악만가? 아 시발 모르겠다. 솔직히 저는 명품 옷에 명품 선글라스에 명품 명품으로 저를 치장하곤 그대로 유흥가에 쏘다니며 빌린 돈을 탕진한 머저리기에 이 제안은 솔깃하다 못해 천사의 목소리로 들려졌다. 어느새 명수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성규의 손을 덥썩 잡았다. 성규가 속으로 욕했다는건 누구나 알겠지.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그래 그러셔야지. 그럼 갑시다."
"형 어디가요?"
"한명 더 잡으러 가야해."
드럽게 오싹하네.
*
성규와 우현, 그리고 명수가 도착한 곳은 예의 그 유흥가였다. 다만 노래방이 아닌 룸살롱이었다는 거? 술이 이미 다 깨버린 명수는 룸살롱 간판을 보자마자 자연스레 아, 여기 미숙이 서비스 죽이는데.라고 중얼거리자 성규와 우현의 짜증스러운 눈빛을 받곤 쭈구리가 됐다. 쭈굴쭈굴. 명수가 입을 꾹 다물고 땅만 바라보자 우현이 성규의 옆에 붙어 물었다. 룸살롱이라, 여자가 빌린 거에요? 아니 남자. 우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럼 여기 주인이야? 아님 손님? 계속해서 성규에게 이것저것 물어오자 성규가 우현의 볼따구를 살짝 치면서 명수에게 물었다.
"여기 자주 와봤냐?"
"예? 예… 그냥 그럭저럭."
"그럼, 선녀란 애도 알아?"
선녀란 이름을 듣자마자 명수가 미친놈처럼 실실 웃었다, 야 저거 니 친구같다. 내 친구요? 그 그 만능열쇠 키인지 하는 애. 아 기범이. 성규와 우현이 속닥거려도 명수에겐 둘은 이미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우리 선녀…. 성규가 병신같은 명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곤 본 적 있냐?라고 하자 갑자기 침울해진 명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한번도 못 봤어요. 그러고 고개를 들자 우현과 성규가 충격적인 표정으로 명수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봐요. 니가 못 봤다고?!
"자주 안 나오는데다가 손님도 직접 고르니까, 못 봤죠…."
"와 콧대보소."
원래 룸살롱 아가씨들은 매일 나와야 팁을 받던지 월급을 받던지 하는게 정상이었는데 그 선녀란 아이는 얼마나 잘났길래 그러는지, 우현은 심히 궁금했다. 그러나 명수에게 밀려 성규에게 쭈구리가 된 지금 다시 우현은 성규의 팔에 딱 붙어 명수에게 물었다. 걘 호스트냐? 그러자 명수가 고갤 절레절레 저으며 걔 남자한테 술 따르는데라고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성규와 우현이 또 한번 놀란 것도 잠시 명수의 표정에 병신을 보는 눈빛으로 명수를 바라보자 명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번도 못 봤는데 선녀는 엄청 예쁘대요, 남자치곤.
"검은색 머릿결은 늘 찰랑거리고 우윳빛깔 피부에 빨간입술, 헐 발린다. 그리고 막 애기냄새도 나고 그렇다는데. 아 진짜 보고싶다. 눈은 얼마나 큰,"
"닥쳐 김밍수."
"예."
명수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힘껏 선녀를 찬양하고 있을때 눈이라는 대목에서 불쾌해진 성규가 명수에게 욕을 날리곤 우현을 데리고 룸살롱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형, 궁금한거 있는데. 뭔데? 신체포기 그거 진짜에요? …미쳤냐? 당연히 뻥이지. 그거 엄청 싸가지 없어 보여서 그냥 드립친거야. 낄낄낄. 우현과 성규가 마주보고 웃었다. 병신같은 김명수. 그 와중에 명수는 둘이 들어간 룸살롱 입구를 바라보며 욕을 해댔다.
"개새끼들이 나만 까댄다, 시바."
*
"누나, 선녀 오늘은 왔어요?"
"아 명수네. 완전 오랜만이다 얘, 오늘은 나왔어. 옆은 일행?"
"그런 것들이요."
것들? 성규가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자 명수가 한쪽 눈을 찡긋이며 윙크를 했다. 오 시발, 성규가 욕을 내뱉곤 성스럽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자 우현도 덩달아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쌍뻑큐다. 언제나 합동으로 저를 까대는 둘에게 명수는 눈물이 나는 것 같았지만 애써 마담에게 물었다. 선너 지금 방에 들어갔어요? 아니… 아직 마음에 드는 애가 없다고 휴게실에 있… 어머! 쟤 좀 봐!
"어휴 저 무대뽀."
우현이 마담의 말을 채 다 듣지도 않은채 안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성규가 제 이마를 짚곤 한숨을 길게 내쉬어 명수와 함께 휴게실로 걸어가며 될대로 되라라며 무책임한 말을 내뱉었다. 그 와중에 우현은 바깥 쪽에 있는 룸부터 하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휴게실이 어딨는지 모르니까! 못 들었으니까! 우현이 다섯번째 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을 때 우현은 두 눈을 의심했다. 오 씨발. 정녕 저것이 아가씨인가. 50대로 보이는 아저씨의 옆엔 여잔지 남잔지 구분이 안 가는 여자가 있었다. 마치 저희 사무실에 널려있는 깍두기 엉아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흐미, 근육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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