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실은 사랑을 싣고
ep 02
한차례 자기소개가 끝나곤 같이 으쌰으쌰 해보자는 교수님의 흔한 훈화말씀이 이어졌다.
오예 간만에 여럿이서 고기 먹을 생각에 조금 들뜨는 기분이네.
이 테이블 고기는 내가 집도한다. 엇..
한발 늦게 손을 뻗은 탓인지 이미 박사님 손에 안착해버린 야속한 집게였다.. 힝..
“태오야, 집게는 여주 줘. 전에 내가 생각해줘서 구웠다가 혼났잖니.
쟨 삼겹살에 철학이 있어”
안희.. 겨스님.. 제 편 들어주시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말해면 제가 뭐가 됩니까...
유태오 박사님..? 왜 웃으시져..? 다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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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교수님, 제가 친구에게 배워온 황금비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오냐.”
옆 뉴비들 테이블에서 잔들을 건네받았다.
“선배님, 여기요!”
“선배님이 뭐에요.. 야라고 해도 안 울 자신있어요.”
“앜ㅋㅋㅋ 언니라고 부를게요!”
“좋아좋아! 재욱이랑 주혁이도 말 편하게 해요.”
다들 황금비를 들고 경쾌한 짠! 소리와 잔을 비운다.
어느정도 술이 들어가니 낯가림이 덜해졌는지 도란도란 이야기가 오갔다.
“어이 알바몬 오늘도 퇴근하고 회식온겨?”
“넵 교수님. 저 근데 오늘 그만둔다고 말씀드리고 왔어요! 헿”
“무슨..알바요?”
“저요? 박사님 맞혀보세요!
자자 여러분 제가 어디서 알바했는지 맞추는 사람 상품으로 아이스크림”
영화관, 편의점, 음식점 이어지는 오답행진에 집이라고 힌트를 던지자
“인테리어..?”
“와 박사님 어떻게 아셨어요? 아무도 못맞췄는데!
제가 특별히 콘으로 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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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과 박사님도 두분이서 오랜만에 만나셨는지 말씀들 나누셨다. 박사님 살풋이 잘 웃으시네
가운데 껴서 이야기 듣다가 맞장구도 치며 주위에 물잔들이 빌세 없이 채웠다.
박사님과 눈이 잠깐 마주쳤나 싶을 쯤 재욱이
“##여주 누나 왜이렇게 물잔만 보고 계세요..?”
“아.. 3학년? 처음 보는데 전과하셨어요?”
“아..넵 물리학과에서 왔어요.”
“저 1년 휴학한거라 그럼 동갑이에요! 우리 친구하자!”
“응 그러자”
“오예 친구생김”
내가 술마실 때 물을 진짜 많이 마시거든 그냥 나 먹으면서 주변사람도 채워두는거지 뭐. 동기들이 나 술자리에서 정수기 요정이라 불러 호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언니 캐릭터 왤케 특이해요”
옆에서 듣던 주혁이랑 수정이가 내가 신기하다는 듯 웃는다.
“이쁜이 칭찬으로 들을게 (윙크)”
“아 진짴ㅋㅋ 언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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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무르익고 조금 오른 취기에 바람도 쐴겸 아이스크림을 사려 조용히 일어섰다.
약간 욱씬거리는 발목에 살짝 휘청이자 재욱이가 눈을 맞추며 물어온다.
“괜찮아?”
“응! 괜ㅊ...”
“태오~ 콘 아이스크림 센스~”
어느샌가 박사님이 아이스크림을 한봉지 가득 사오셔서는 교수님부터 하나씩 나눠주곤 나에게 봉지채로 건넸다.
아 선수치셨넹..
“제가 사드리려고 했는데... 감사합니다. 어..! ”
아이스크림콘 사이로 보이는 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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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교수는 눈치껏 이만 빠져주지. 태오야! 내 카드 줄테니까 2차 너네들끼리 가.
난 마눌님 보러 간다~”
쿨하게 떠나시는 교수님
“황금카드를 쥔 박사님, 저는 국물이 맛있는 OO포차로 가고 싶습니다.”
“저는 이 동네 처음이라 잘 몰라요”
다들 괜찮으면 그렇게 할까요? 동의를 구하는 눈빛이 모두의 얼굴을 스친다.
네!! 힘차게 대답하며 수정이는 주혁이를 끌고 벌써 앞장서기 시작한다. 둘이 원래 친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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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다 간이 파티션이 처져있는 독특한 구조로 조금은 프라이빗한 분위기인 내부에 5명이 독서실마냥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거 완전 과팅에 적절한 인테리언데..?
자자 주목.
“결정바보인 저의 고질병을 고쳐준 이 포차의 히든메뉴 차돌버섯말이찜 먹어야합니다.
아묻따 다들 먹어보고 고맙다고 울지나 마십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 2학년 아가들은 나만보면 왤케 웃어..
“언니처럼 낯 안가리는 사람 첨봐ㅋㅋㅋ”
“엥 나 낯 완전 가리는데..?”
다들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니가? 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크흠..
나머지 메뉴들을 애들이 정하는 사이 열감이 오른 볼을 손의 찬기로 누른다.
“괜찮아요 ##여주씨?”
“네! 조금 취기가 있네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오늘 박사님께 괜찮냐는 소리 두 번이나 들었네요. 박사님의 살짝 휘는 입꼬리와 눈을 맞은편 가까이에서 보니까 와 느낌 빡왔다.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모아온 내 빅데이터상 이런 사람이 지금 애인이 없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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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시작된 번호교환식
“와 ##여주누나 이폰 얼마나 썼어요? 배터리가 부풀었는데..?”
“고거? 햇수로 5년 썼징”
내 폰이 폭탄이라도 되는 양 멀찍히 떨어뜨리는 주혁이
“딱히 맘에 드는 모델이 없어서 그랬어.
배터리 때문에 화면 흔들리는거보고 심각성을 인지해서 총알 모으는 즁~”
박사님 폰이 나의 다음 드림폰이란다. 블링블링하구만..
“배경화면 고양이 네가 키우는거야?”
“응응!! 넘 귀엽지!!”
“통학하는거?”
“아닝 옆동네에서 자취해. 다른 학교 다니는 친동생이랑 같이 살거든 ”
2학년 아가들은 긱사라던데 너는? 나도 기숙사.
박사님은요? 별안간 시작된 호구조사에
“저도 엊그제 그 동네 이사왔어요.
아직 집이 어수선해서 정리가 되는대로 다들 집들이 초대할게요.”
오예 아는 동네주민 생겼당.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류진이랑 같이 모은 동네 맛집 지도를 공유해줄 생각에 절로 뿌듯해진다.
짠할까요?
챙 하고 소주잔이 청명히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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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 오늘 좀 달리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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