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떠안고 어쩔 줄도 모르는 주지훈과
어느 새 내 마음 다 가져가서는 안놔주는 송강
둘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썰
01
나는 2년 간 학교를 나가지 않아 제적을 당한 복학생이자 전학생 이었고,
그는 이 학교를 군림하는 왕이었다.
그런 유치한 서열이 당연한 학교. 집안의 권력이 전부인 학교.
그 역겨운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당연한듯이 앉아 아이들을 주무르는 그가 싫었던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사실 나는 이 학교의 무엇에도 관심을 둘 여유도 기력도 없었기에 뭐 그렇게까지 싫어죽겠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냥 재수 없잖아. 무슨 짓을 당해도 표정 없는 그 얼굴."
전혀 일면식도 없던 그가 뱉은 말 한 마디에 전학을 오자마자 귀찮은 따돌림을 받아내야 했던 것만 빼면.
정작 본인은 손 끝 하나도 안움직이면서 교묘하게 반 아이들을 조종하는데에 능숙한 그가 짜증나기는 나도 마찬가지 였으나
덤벼봤자 득될 것 하나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에 한 2주 정도였나 가만히 괴롭힘을 당해준건데,
그게 또 그에게 무슨 심경 변화를 일으키기라도 했나.
"그만 좀 하지."
"이제 그만 괴롭히라고 걔. 같은 반 친군데 사이좋게 지내야지."
마치 자기는 애초에 아무 관여도 하지 않았으며 내 편을 들어주는 착한 사람인 척 구는거다.
"같이 밥 먹고싶어서. 불편하면 나 자리 옮길까?"
"이러면 재밌어? 네가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네 장단에 맞춰줄만큼 재밌는 사람은 아닌데."
"역시 눈치 빠르네.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던건데, 기분 나빴으면 미안. 사과할게."
사이코패스. 또라이. 원래 재벌들은 다 이런가.
오만하고 재수 없기 그지 없는데다가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제가 뭘 잘못한지 알고 싶지도 않다는 듯 당당하게 구는 태도까지
내가 아는 그 사람이랑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싶어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돼?"
"뭐가."
"너랑 친하게 지낼려면. 어떻게 해야되냐고."
"나랑 왜 친해지고 싶은데?"
"그거야..., 모르겠는데. 그냥, 그냥 끌려."
"싫은데 난. 지 마음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랑 친구 하기 싫어."
그냥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
친구같은거 만들 생각도 없었고, 그게 어쩐지 멀어지고 싶은 송강이라면 더더욱 친하게 지낼 생각따위 없었으니까.
그가 어떤 대답을 했던 나는 어떻게 해서든 싫다고 했을거였다.
그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멍하니 앉아있는 그를 두고 먼저 일어나
발길이 드문 뒤뜰 화단에서 담배를 한 개비 물었을 때 였나.
"찾았다."
내내 나를 찾아 돌아다닌건지 땀 범벅이 되어서는 해맑은 얼굴로 갑자기 나타난 그에 쪼그려 앉아있던 내가 뒤로 넘어지자 내게 손을 내밀며 한다는 말이
"예뻐. 예뻐서 친해지고 싶어."
말렸다. 제대로 말린거다 내가.
내가 평소에 봐왔던 그의 교묘함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저 티 없이 맑은 웃음에 순간 온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나 되게 부끄러운데 이유 얘기 했으니까, 그럼 우리 이제 친구지?"
싫다고 친구같은거 안한다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졌다.
"응, 우리 친구야."
입에서 담배를 빼내고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 순간적으로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대답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입술이 닿을 거리에도 그는 한 발 물러서는 법이 없이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어 순식간에 명찰을 뜯어내듯 가져와 살짝 물러나,
"친구된 기념으로 나 주라 이거."
"그래, 너 해."
송강.
그의 이름 두 자가 정갈하게 적힌 네모진 명찰을 손에 꽉 쥐어본다.
그것은 살면서 처음으로 가져본 내 것이었다.
.
"간만에 시간 나서 태우러 왔는데, 표정 너무 대놓고 구린거 아니야?"
"학교엔 오지 말라고 했잖아. 소문이라도 나면 귀찮거든."
"알겠으니까 일단 타. 갈 데 있어."
"어디?"
"아니 뭐 그냥 밥이나 한 끼 할까 해서. 약속도 없고, 혼자 먹긴 쓸쓸하니까."
"밥은 무슨. 됐어. 그냥 집 앞에 내려줘."
"싫은데? 나 배고파서 너랑 기 싸움할 힘 없어. 오늘은 투정 금지, 제발 그냥 가자."
"하여간, 뭐든지 지 멋대로지."
"지라고 하기엔 내 나이가 벌써 서른 하난데, 스물 한 살아."
"운전할 땐 앞 좀 보시죠, 아저씨."
아저씨라는 말엔 또 금방 저렇게 발끈해서 흘겨볼거면서 시비는.
내가 벌써 스물 하나라면 이 남자랑 함께 한지도 벌써 11년째다. 지긋지긋해.
"하여간 쓸데없이 또 이렇게 비싼데 오지. 돈이 남아도는건 알겠다만 사람이 검소한 면도 있어라 좀."
"여기 니가 잘 먹어서 온건데? 검소하지 못한건 니 입맛이겠지."
어쩐지 반박할 수 없는 말에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자리에 앉는데
그의 시선이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는 내 손에 꽂힌다.
"뭐야? 주머니에. 뭔데 계속 쥐고 있어."
대답 없이 가만히 메뉴판만 내려보고 있자 손을 뻗어 주머니에서 내 손을 꺼낸다.
힘없이 떨어지는 명찰을 주워 가만히 보자 괜히 찔리는 마음에 그의 손에서 명찰을 빼내는데 순간 찌푸려지는 그의 표정을 마주하기란.
"그거 네거 아니잖아."
"내 거야. 받았어."
"받아? 걔한테?"
"어. 훔친거 아니니까 신경꺼."
"아 같은 반이랬나. 송강 걔, 제트 송 회장 손자인건 알고 있는거지?"
"...알아."
"신경 끄라고 했으니까, 신경 쓸 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 사생활이야. 끼어들 생각 하지마."
"네가 욕심내고 그럴 사람 아냐 걔. 너도 네 주제 파악 정도는 할 줄 알잖아?"
내 마음을 다 들켜버리는 기분. 쪽팔렸다.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아는 내가 내 감정 하나 어떻게 못해서 아등바등대고 있는 것이.
주지훈의 말은 늘 재수 없고 날카롭지만,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미리 예약해놨던 음식이 나오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기를 썰어 내 접시에 놔주는 그가 괜히 미운거지.
"먹어, 식는다."
"나 여기 안좋아해. 너나 쳐먹어."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은 쉬웠다.
내가 송강에게 흔들렸던 것이, 나에게는 쪽팔리는 일이었지만
"왜 걔야. 나 때문에 그랬다고 해 차라리. 걔가 제트 그룹 사람이라서, 나 엿 같으라고 해본 일이라고 하라고."
그에게는 정말로 분하고 화나고 피가 거꾸로 솟는 일 일테니까.
"미안한데, 아니야."
-
안녕하세요 여러분 근 일주일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이렇게 찾아뵙게 되네요.
사실 두 남주인공의 얼굴 합이 어떻게 보면 안맞을 것 같아서 고민을 했는데,
제가 설정한 캐릭터에 아주 딱 어울리는 사람들이라 ㅎㅎ
또 제가 너무 좋아하는 두 사람 이기도 하구요 !
이번 작품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