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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보낸이
04
완벽한 이혼
“지원아 사랑해!”
“아, 권도아 또 취했네.”
지원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자꾸만 옆에 달라붙는 도아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냈다. 뭉개진 발음으로 별안간 사랑 고백을 해대며 강아지처럼 모든 사람에게 들러붙는 도아의 주사는 평소 그녀의 텐션보다 몇 배를 뛰어넘었다. 몇 년째 도아의 술주정을 받아내는 지원은 이 상황에 이미 익숙할 만큼 익숙해졌다. 지원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자신의 볼에 입술을 갖다대는 도아를 차에 구겨 넣다시피 태우고 편의점에 들러 숙취해소제를 하나 구매한 후 도아의 가방 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도아가 취할 때마다 틀어달라고 징징대는 음악을 빵빵하게 튼 후 차를 출발시켰다.
도아는 살구처럼 붉게 물든 볼을 하고 잔뜩 풀어진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늘 들었던 그 노래를 들으며 차 창문을 열었다. 도아가 차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대, 그 밤의 작은 불빛 외로움 짙은 차가운 밤
부질없는 욕심에 눈물을 삼킨 날도 많았소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고 그대 손 마주잡고
함께한다면 이 세상 어떤 것이라도
견뎌 내리라 나 약속하겠소.
도아의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지원은 바람을 맞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도아를 쳐다봤다. 그때 자신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울며불며 노래를 틀어달라는 도아에게 잔뜩 성을 낸 적이 있었다. 그때 지원이 본 도아의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도대체 그 노래가 그녀에게 무슨 의미이기에 술만 마시면 그렇게 집착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노래는 이미 수백 번도 더 들었잖아. 대체 왜 이래? 지원이 그렇게 물었을 때, 도아는 잔뜩 붉어진 눈을 소매로 벅벅 닦으며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란 말야, 우리 엄마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죽어도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대답이었다. 저기 창문에 기대서 헤롱헤롱거리는 권도아는 기억도 나지 않을 그 말. 그 두 문장에 지원은 저까지 울음이 터져나올 뻔한 것을 꾹 참고 노래를 재생시켰더랬다.
“권도아, 근데 너 주사는 이제 좀 고쳐.”
“응?”
“너 취할 때마다 매번 이러는 거 보면 네 남편이 놀라서 도망가겠다.”
“나는 남편 없는데…”
아휴, 저 바보를 어쩌면 좋아. 지원이 헛웃음을 지으며 검은색의 큰 대문 앞에 차를 정차시켰다.
“다 왔어. 집에 가서 빨리 자.”
“응. 알러뷰 지원!”
자신에게 난데없는 하트 세례를 퍼붓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는 도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길고 긴 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도아를 확인 한 후에야 파킹을 푼 지원이 다시 액셀을 밟았다.
도아가 위태로운 걸음으로 계단을 하나 둘 올랐다. 아, 계단. 계단 올라가기 너무 힘들어. 도아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방에 들어온 도아는 겉옷도 벗지 않고 바닥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문에 등을 기대고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핸드폰을 켜고 다이얼을 꾹꾹 눌렀다. 도아의 엄지손가락이 초록색 통화버튼 위를 서성거렸다. 누를지 말지 머뭇거리는 손길이었다. 도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나는 뭘 원하는 거지. 그 모든 게 꿈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매번 수신자도 없는 번호에 전화를 거는 저가 참 미련하게 느껴졌다. 나 진짜, 오늘만 마지막으로 걸어볼게. 도현아, 그러니까 나 용서해주라. 도아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질끈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나오는 통화 연결음에 그녀가 감았던 눈을 떴다. 아, 누군가 그의 번호를 쓰고 있구나. 잠깐 부풀었던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도아가 통화연결을 끊으려는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보세요.
“……”
-권도아? 전화는 갑자기 왜…
평소보다 낮게 깔려있는 톤이었지만 도아는 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김선,호……”
-무슨 일 있어?
“네가 왜 이 번호를 써, 네가 뭔데……”
도아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다짜고짜 새벽에 전화해서 네가 뭔데 이 번호를 쓰냐며 따지는 것도 모자라,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에 선호는 영문도 모른 채 전화기를 붙들고 도아를 달래주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너무 취한 탓에 술을 마셨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걸까. 그녀는 다이얼을 눌렀던 자신의 손가락이 몇 번이나 미끄러졌는줄도 모르고, 선호에게 하염없는 원망만 쏟아 부었다.
완 벽 한 이 혼
아, 머리 깨질 것 같아.
도아가 앓는 소리를 내며 끈적하게 붙어있던 두 눈을 떴다. 숙취가 가시지 않은 탓에 쓰린 속을 분질렀다.
“와, 나 바닥에서 잔건가…”
화장도 그대로, 옷도 그대로 입은 채 방문 앞에서 쓰러져 잔 도아가 둔한 움직임으로 일어났다. 옆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 화면을 켜자 바로 보이는 통화 목록에 도아가 핸드폰을 그대로 툭 떨어트렸다.
“…이게…, 이게 뭐야…?”
저의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지도 않은 번호가, 통화 시간이 세 시간이나 된다니. 그런데 심지어 발신자가 나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도아가 손을 입에 물고 불안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죽죽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스쳐지나가는 기억에 도아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숨이 저절로 멎어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내가 이 말을 꼭 하려고 했는데'
왜
‘사랑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나도.’
들리는 걸까.
“이런 미친…!”
그 기억의 파편은 너무나도 위험하고 날카로워서, 도아의 뇌 속을 북북 찢고 파고들어갔다. 그녀는 피가 차게 식는 것을 느꼈다. 미쳤어, 미쳤어 진짜. 나는 개 미친년이야. 무슨 이딴 우연이 다 있냐고. 왜 하필 잘못 걸어도 그 사람이야. 내가 진짜 술을 또 마시면 짐승이지 짐승. 이게 사람이야? 이게 사람이냐고! 도아가 침대에 머리를 퍽퍽 박으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아 잠시만, 토할 것 같아.”
온 몸으로 침대 위를 붕방거리던 도아가 속을 부여잡으며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갔다. 현재 도아의 머릿속은 너무나도 뒤죽박죽인 데다 자신의 술주정, 아니 흑역사를 세 시간동안이나 받아 준 이가 선호라는 사실에 금방이라도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마구 들었다. 나 이 남자랑 결혼 못 해. 절대 못 해… 도아는 그렇게 한참을 화장실에서 보내야만 했다.
“아줌마, 오늘 점심 뭐예요?”
도아가 숙취해소제를 들이켜며 물었다. 국자로 냄비 안을 젓던 메이드가 도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미역국 했는데… 콩나물 국 끓여드릴까요?”
“네, 제발요….”
도아의 말에 메이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안에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메이드가 유일했다. 어렸을 적부터 늘 함께 있던 사람. 어쩌면 나를 가장 제일 잘 아는 사람. 양엄마가 메이드를 바꾸려고 할 때 도아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화를 내곤 했었다. 오죽하면 늘 양엄마를 잘 따르라며 타이르던 아버지조차도 그녀의 편을 들어줄 정도였다.
“아가씨, 어제 술 많이 드셨어요?”
“네 조금…. 아빠한테는 말 하지 말아주세요. 알죠?”
“그럼요. 금방 해드릴게요, 앉아계세요.”
도아가 식탁에 앉아 주방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재료들을 준비하는 메이드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어느새 흰머리가 저렇게 자랐구나. 도아는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어느 새벽에 엄마와 아빠가 다툴 때, 베개를 들고 메이드 룸으로 가면 아줌마는 울먹이며 방문을 두들겼던 저를 거부하지 않고 늘 받아주셨다. 내 귀를 막아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나를 토닥여주던, 나의 두 번째 어머니 같은 사람. 그 때도 나는 넓고 화려하게 꾸며진 나의 방 보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아주머니의 작고 좁은 메이드 룸이 훨씬 포근했다.
“자, 여기 해장국 대령이오.”
어느새 다 완성된 콩나물 해장국을 들고 온 아줌마가 귀여운 말장난을 치자 도아가 푸스스 웃었다. 잘 먹을게요. 도아가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
아, 이제야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네. 도아가 그릇을 정리하며 살짝 나온 배를 통통 두들겼다. 그러자 뜬금없이 울리는 메신저 알림음에 핸드폰을 들었다.
[우리 할 얘기 있지 않나?]
“좆됐다…”
김선호야, 김선호! 김선호라구! 김선호에게 카톡이 왔다구!
이건 마치… 유미의 세포들처럼 온 몸의 세포들이 김선호를 외쳐대며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 세포들아, 진정해. 아니야, 진정 못 해! 어떡해, 뭐라고 이야기 하지? 오빠 미안해? 그냥 파혼하자?
경직된 자세로 분주하게 고민하는 사이 다시 울리는 알림음에 도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
[무슨 대답할지 짱돌 굴리는 거 다 보여. 데리러 갈 테니까 준비하고 나와. 딱 30분 준다. 어제 세 시간동안 나 붙잡아 둔 벌이라고 생각해.]
아, 권도아 인생. 진짜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하하.”
하하하…
미동 없이 실성한 웃음소리를 내던 도아가 핸드폰을 들고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쿵쿵- 시끄럽게 울리는 발소리가 도아의 머릿속을 대변하는 듯 했다.
**
“32분이네. 정확히는 2분 37.5초 늦었고.”
선호가 시계를 확인하며 숨을 잔뜩 헐떡이는 도아에게 말했다. 도아가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만, 나 숨, 숨 좀 쉬고. 하며 손으로 T자를 만들어 타임이라는 표시를 내보였다. 선호가 몸을 도아 쪽으로 틀어 의자 헤드에 팔을 대고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됐어?”
“…응…….”
도아는 벌 받는 강아지처럼 요리조리 선호의 눈치를 봤다. 자동차 안, 숨 막히는 적막을 이기지 못한 도아가 차 창문을 열었다.
“닫아.”
곧바로 들려온 그의 한 마디에 다시 닫아야만 했지만.
“어제 술 많이 마셨나보더라?”
“어 조금…”
“조금?”
“많이….”
선호가 헛웃음을 뱉으며 핸들 위로 손을 툭 얹었다. 도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변명할 기회는 줄게, 30초 준다.”
“삼십초…? 아 너무하잖,”
“10초 지났다.”
“아니 무슨 벌써,”
“15초.”
“아니! 나는 그게 오빠 번호인 줄 모르고 손가락이 막 이상해서 술 마시니까 머리가 어떻게 됐나봐 그거는 다 실수야 실수!”
아, 나오면서 어떻게 말할지 다 정리 하고 왔는데. 예상치 못한 시간제한 덕에 뇌를 거치지 않은 말들이 뒤죽박죽 모조리 다 섞여서 나와 버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도아를 바라보던 선호가 핸들 위를 검지손가락으로 톡, 톡 치며 혀로 볼 안을 쓸었다.
“실수?”
“응! 실수!”
도아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자 선호가 으음…. 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들었다. 도아는 그 순간 밀려오는 쎄한 느낌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몇 번 핸드폰 화면을 두들기던 선호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음성을 재생시켰다.
-사랑해 지짜루…
-나랑 평생 살아야지… 으응? 나랑 평생 살자-
도아가 숨을 참았다. 지금 들려오는 이 목소리가 나라고? 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선호를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서는 한 쪽 입 꼬리를 쓱 올렸다. …나 진짜 개 또라이구나. 입술을 꽉 깨문 도아가 안전밸트를 풀고 선호의 핸드폰을 뺏으려 다가갔다. 선호는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음성을 반복해서 틀었다. 도아가 못내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뺏으려 들자 그가 핸드폰을 저글링 하듯 들고 요리조리 피했다. 그 순간 한 쪽 무릎으로 지탱하던 도아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생존 본능으로 선호의 어깨를 부여잡은 도아와, 저도 모르게 도아의 허리를 감싼 선호. 현재 둘의 자세는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아슬했다. 서로의 시선이 맞닿자 잠깐의 침묵이 둘을 에워쌌다. 그 순간 선호가 얄궂게 웃으며 도아의 뒤통수를 쓸었다.
“나랑 평생 살고 싶어서 덮치는 거야?”
“이 오빠가 미쳤나!”
도아가 주먹으로 선호의 어깨를 팍 치며 자리를 털었다. 선호가 아야 소리를 내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나 갈 거야. 얼굴이 잔뜩 붉어진 도아가 인사도 없이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양 볼을 붙잡은 채 급하게 집으로 뛰어가는 도아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선호의 입 꼬리가 한없이 치솟았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번에 매서운 눈으로 돌변한 그가 다시 손가락을 톡톡 거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사랑해… 도현아.
-…나도 사랑해.
-으응, 내가 더.
-근데 많이 마셨나 보네. 그거 내 이름 아닌데.
"도현아."
그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처음에는 내가 귀여워했던 동생이 저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서운했고, 그 다음에는 아무리 정략결혼이라고 해도 제게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듯 그저 아는 오빠처럼 대하는 그녀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냥, 내 자존심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건데. 지금은 왜지? 그저 그런 서운함, 자존심이 상해 나오는 짜증과는 다른 느낌의 감정이었다. 선호가 무거운 숨을 씹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 새벽에 뜬금없이 떠오른 권도아 이름 세 글자에 왜 가슴이 뛰었는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그녀의 술주정을 왜 세 시간 동안이나 받아주고 있었는지. 왜 제게 잘못 날아온 단어들마저도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수백 번 곱씹느라 밤 잠을 설쳤는지.
저가 여지껏 모르는 척해왔던 사내의 연정이란 그런 감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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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대사...
저도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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