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떠안고 어쩔 줄도 모르는 주지훈과
어느 새 내 마음 다 가져가서는 안놔주는 송강
둘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썰
02
"김여주 !"
"뭐야? 아침부터 여긴 어떻게..."
"너랑 학교 같이 가고싶어서. 우리 어제부터 1일이잖아, 친구 먹은지 1일."
"오늘부터 1일 그런 말 함부로 쓰지마 낯간지럽게. 너도 말 되게 이상하게 하는 재주가 있네.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왔어?"
"너 짝꿍, 걔 저번에 너네 집까지 같이 걸어간 적 있다고 그래서 물어봤어. 아, 혹시 멋대로 물어봐서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아니 기분 나쁘다기 보다는...,"
아주 불편하게 됐다 이거지.
주지훈이 출근하면서 매일같이 태워주니까.
어제 우리가 친해졌음에 굉장한 반감을 보였고, 더군다나 제트 그룹을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서 증오하는 주지훈이니.
"뭘까, 아침부터 골 때리는 이 상황은."
"주 그룹이랑 관련된 말은 들었는데, 주지훈이랑 같이 살 정도야?"
"같이 살기만 할까봐? 겨우 이 정도로 놀라시고 그러실까, 우리 도련님 뭘 잘 모르시네."
"그 쪽한테 물은거 아닌데. 오지랖 넓은 것도 습관인가보네."
"근데 아까부터 말이 지나치게 짧다. 아무리 제트 후계자니 뭐니 안하무인이어도 그렇지,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인데 여기가."
"그만 좀 하지 둘 다."
둘의 조합이라 함은, 안봐도 피곤한데 보고 있으면 피곤하다 못해 머리가 지끈거리는 조합이랄까.
과거사고 뭐고를 다 떠나서 애초에 둘 성격 자체가 안맞다. 상극 중에 상극.
"타, 태워줄테니까. 우리 도련님 여주랑 같이 학교 갈 생각에 기사도 보내고 혼자 왔나본데."
"그래, 일단 타고 같이 가자. 걸어가면 늦겠다 둘이 실랑이 하느라 아까운 시간 다 버렸거든."
"나 원래 아무 차에나 덥썩 타고 안그러는데 네가 타래서 타는거야. 대신 뒤에 타 나랑 같이."
"알겠으니까 타 빨리."
원래 남자들이 기 싸움을 하면 여자보다 무섭다 했는가.
어쩌면 그냥 둘을 떼어놓고 내가 송강이랑 따로 걸어가는게 맞았는지도 모른다.
송강을 주지훈의 차에 태운 순간부터 나는 기가 쭉 빨리는 기분이었거든.
"오늘 우리 그룹에서 하는 신년회, 너도 올거야?"
"철이 없어도 적당히 없어야지. 김여주한테 제트에서 주최하는 파티를 오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제발 운전에 집중하시죠 주지훈 씨."
"아니 어이가 없잖아 자기야? 뭘 몰라서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참나."
"갈거야. 갈게."
"김여주, 진짜 그만하지 이쯤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충 들은건 있어. 그래도 언제까지 피할 수 없잖아. 내가 도와줄게, 내가 같이 있을게."
제트 그룹. 이름만 들어도 온 몸이 떨리는 지긋지긋한 곳.
내 하나뿐인 그늘이었던 엄마가 전부를 걸고 지켜냈지만, 결국 차갑게 죽어가야만 했던.
그 후로 그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괴로웠고 맞서 싸우기엔 두려웠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아팠으니까.
그런 내게 네가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있자니, 우리는 어쩜 운명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 드레스 하나만 사주라. 그냥 아무거나 괜찮아."
"미친거지?"
"너도 알고 있었잖아,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 만은 없다는거. 차라리 지금이 때인지도 몰라."
"아니 지금은 아니야. 네 존재 송 회장이 알면 우리가 여태 계획 했던거 다 무너져."
"오히려 이렇게 얼굴이라도 각인 시켜놓는게 나을지도 몰라. 이게 원래 처음에 생각했던 방법이었고."
"너무 위험 부담이 커서 물렸던 방법이었기도 하지. 너를 어떻게 거기에 보내. 내가 널 어떻게 지켜왔는데."
"주지훈, 나 믿지."
"억지야, 내가 너 믿는거랑 다른 문제고."
"아니, 그거면 돼. 나도 너 믿어. 우리가 서로 믿는거, 그거 하나면 돼."
그런 말에 마음이 잘 흔들리는 주지훈을 알아서 한 말이었다.
나쁜 일인줄 알았지만, 차에서 먼저 내려 가만히 내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창 너머로 보자니 마음이 급해져서.
유일한 장점이라고는 차분함과 무던함 뿐이었던 내가 이토록 충동적으로 일을 벌인적이 있던가.
"얘기 잘 했어? 주 이사가 네 아빠도 아니고 그런거까지 일일히 의논해야해?"
"아빠는 아니지만, 나한텐 유일한 사람이잖아."
"유일? 그럼 난?"
"넌, ...친구지. 처음 사겨본 친구."
주머니 속에서 굴리던 명찰을 꽉 쥐었다.
너는 내가 처음 가져본 물건의 주인.
너는 내가 처음 가져본 내 것.
너는, 내가 처음 가져본 세상.
"아무튼, 너 때문에 그런 데도 다 가본다고 내가."
"나도 누구랑 같이는 처음 가보는데."
그렇겠지. 너한텐 감흥도 없는 그깟 파티같은거.
미친 놈, 싸가지. 사교계에서 그런 말을 달고 살아왔던 네가 어쩜 그렇게 내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지.
"되게 좋다 그거. 서로가 서로한테 처음인거. 그럼 난 너한테 처음인 사람인걸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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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저번 작품보다 조금은 깊은 내용이 담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다 표현이 될지 몰라 고민이 되네요 ㅠ_ㅠ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신다면 그게 제 힘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