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컨택
w.신예음마
* * * * *
04.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정확히 1교시부터 지금 3교시까지. 꽤나 수업을 재밌게 해서 싫어하는 학생들이 없을정도로 알려진 언어 선생의 말도 지금은 들어오지 않는다.
종인은 본인의 입술끝이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는 것도 모른 채 그저 멍하니 칠판만 바라봤다. 그러니깐 저 초록생은 칠판이고, 흰색은 분필이지. 종인은 칠판위에
커다란 글자를 써내려가는 굵직한 손가락을 보다가, 천천히 팔, 어깨, 얼굴, 그리고 천천히 언어선생의 안경너머를 바라보았다. 단추구멍만큼이나 작은 선생의 눈은
자신의 수업에 흥분을 한 나머지 핏발이 서있었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하시던 선생이 잠깐 티비에 나오는 유행어를 툭 던지자, 아이들이 와- 하고 웃는다.
그제서야 종인의 입도 해방감을 맛본다. 별로 재밌지도 않은 개그인데, 종인은 열렬히 웃었다. 물론 소리는 내지 않고.
소리를 내면 분명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볼것이 분명해서.
30분동안 열렬히 수업을 하던 선생도 조금 더워진 날씨에 손부채질을 해가며 분필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마치 조금의 휴식시간을 가지겠다는 듯이.
팔에 털이 굉장히 많아 '고릴라'라고 별명이 붙여진 선생은 자신의 우람한 두 팔을 교탁에 얹고선 이야기보따리를 천천히 풀어나갔다. 별로 재밌지는 않았지만, 남다른 입담에
아이들은 하나둘씩 이빨을 보여가면서 웃기 시작했다. 종인은 왼쪽손으로 턱을 괸채 오른쪽 손으로 열심히 샤프를 빙빙 돌렸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샤프를 보면 누가봐도
입을 떡벌릴정도였지만, 종인은 지금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습관이기에, 종인의 신경은 온통 다른곳으로 쏠려 있었다.
항상 퀴퀴한 담배냄새만 맡았던 종인의 코는 어두컴컴한 구름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은듯이, 열렬하게 향기를 맡고 있었다.
바로 레몬향.
종인은 자신의 입담을 열심히 과시하는 선생의 입을 멍하게 들여보았지만, 귀와 코는 온통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산뜻한 웃음소리.
방금 '고릴라'가 한방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일제히 와- 하고 웃으며 넘어갔고 대개는 박수까지 치더랜다. 순간 옆에서 평소보다 높다할 웃음소리가 들린다.
지 같이 웃네. 종인의 잘난 입술이 슬그머니 벌어졌다. 순간적으로 귀에 들려오는 '고릴라'의 이야기가 꽤 재밌다.
그 순간 아이들은 또 한번 더 터졌고, 종인도 어깨를 흔들어가며 웃었다.
그 바람에 빙빙 멋지게 돌던 샤프심이 툭 나가 떨어진다. 에이씨. 종인은 서둘러 샤프심을 줍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시발, 뭐야. 한참이나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없다. 둘러보던 중, 종인의 시선은 지금 활짝 웃고 있는 백현에게로 머물렀다.
'고릴라'의 이야기가 그 순간 귓가에서 멀어졌다.
참 지같이 웃네. 얼굴도 하얀게 이빨도 하얗다. 근데 뭐 저렇게 입술은 빨간지. '고릴라'의 이야기가 꽤 재밌는지, 녀석은 하하-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엔 '꺄르르'로 들렸다. 멍하게 녀석의 웃음을 지켜보던 종인은 백현의 책상에 자신의 샤프가 놓인 것을 보고 혼자 고민의 시간에 빠져버렸다.
저걸 주워, 말어?
입술을 아프지 않게 이빨로 꾹꾹 누르던 종인은 슬쩍 다시 백현을 쳐다본다. 여전히 웃는다.
녀석은 자신의 책상에 김종인의 샤프가 올려진 것 자체를 모르고 있는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오기가 생긴다. 종인은 계속해서 백현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래, 언제 발견하는지 함 보자.
아예 백현쪽으로 몸을 튼 종인은 왜인지 모르게 백현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아까 계속 몰래 얼굴을 만져서 그런가, 아님 미쳐서 그런가. 종인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는지 스스로 알수있었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뗄수없었다.
"아.."
그제서야 눈이 마주쳤다. 꽤나 길어지는 '고릴라'의 이야기가 조금 지루했는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백현은 자신을 쳐다보는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엄청나게 당황한것이 눈에 띈다. 허둥지둥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 백현의 눈을 집요하게 쫓았다.
그 바람에 녀석의 눈동자도 떼구르르 굴러버리다, 정확히 종인의 눈동자에 맞춰졌다.
시간이 멈춘것 같았다. 아직까지 고릴라의 이야기는 들려오고 있었지만 자체 음소거가 된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 교실에서 둘만 나가떨어진듯이, 서로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종인은 슬그머니 백현의 책상위에 있는 자신의 샤프로 눈을 돌렸다.
그 바람에, 녀석의 시선도 따라온다. 아-. 짧게 감탄사를 내뱉고선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검은 샤프를 들어올린다. 미세하게 손이 떨리는것이 눈에 보이자, 알수없는 희열감이 든다. 순간적으로 찬열을 찾았다. 병신새끼.
종인은 물개박수를 치면서 웃어대는 찬열의 머리통이 보였다. 뭐가 저렇게 좋은지, 아예 옆짝꿍을 끌어앉고선 그 녀석의 등짝을 퍽퍽 때리고 있었다.
종인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손이 쫙 펼쳐지자, 검은 샤프가 낙하한다.
툭, 안전하게 착지했지만, 종인의 표정은 썩 좋지 않다.
"다시."
"응?"
"다시 올려놔."
몇주만에 자신에게 입을 연 종인에 당황한 백현은 그저 눈만 떼구르르 굴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무심한 종인의 눈이 여전히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샤프를 보고 있자,
백현은 그제서야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밀가루같이 하얀 손이 종인의 손바닥 위를 스쳐지나간다. 천천히 검은 샤프를 집어올린 하얀 손은 몇초간 공중에 떠있다, 다시
종인의 손 위로 착지했다. 물론 이번엔 부드럽게. 종인의 손바닥과 살짝 닿인 곳이 괜히 화끈거린다. 백현은 불에 덴 것 마냥 화들짝 놀라, 손을 떼내었다.
어색하게 웃어보인 백현은 종인이 무슨 괴물이라도 된것마냥 서둘러 시선을 고릴라 쪽으로 돌렸다. 귀여워 죽겠네. 여전히 시선을 백현에게로 향한 종인은
정말 미친놈처럼 백현의 여기저기를 훑어 내렸다. 단정하게 가라앉은 갈색머리. 한올 한올 세어버리겠다는 듯 열심히 관찰하던 종인의 눈은 백현의 귀로 향했다.
사과처럼 빨개.
또 웃음이 나온다. 이 놈의 주둥이가 고장났는지. 종인은 갑자기 조용해진 반에 황급히 고개를 올렸다.
고릴라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한것을 알자, 아차싶어 자세를 똑바르게 했다.
그런데 망할 집중이 안된다. 이제 12분정도 밖에 수업이 안남았는데, 집중이 안된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건 자신의 손안에 얌전히 있는 검은색 샤프일뿐.
왠지 여기에서도 레몬향이 날것 같다.
시발, 나 진짜 호모 아닌데.
*
자꾸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러니깐 말야, 레몬향이 계속 났단 말이지. 종인은 천천히 생각햇다. 분명 변백현은 쉬는 시간마다 어디론가로 나갔다.
물론 그때마다 빠르게 돌아왔지만.
그러고나서 항상 자리에 앉으면 미친듯이 풍기는 상큼한 레몬향. 그것도 매번 빠짐없이 매시간마다.
또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이러면 안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설마, 내가 그때 유진이한테 냄새 좋다고 해서..... 에이 시발, 말도 안돼. 시발. 드라마를 써라, 김종인.
정신차려, 김종인.
"야, 시발 김종인 개새끼야!"
그래, 난 개새끼다. 개새끼. 호모는 아니야...?
앗, 따가! 고개를 주억거리던 종인은 등짝으로 퍼지는 따가운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김종대다. 이 새끼 뭐야. 종인은 씩씩 거리며
거칠게 숨을 내뱉은 종대를 쳐다봤다. 땀을 뻘뻘 흘린 녀석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아유, 븅신아! 뭔 생각해서 시발 저 공을 걍 보내냐!"
"어?"
"아오, 시발! 야- 우리 지면 뒤져. 미친놈아. 아이스크림 사내야 된단 말야!"
"언제 그랫는데?"
"아까전에! 븅신아!"
"......."
그렇고 보니, 체육시간이다. 멀쩡하게 체육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신고 있는 빨간색 축구화가 오늘따라 깨끗해보인다.
반면 종대의 허연 축구화는 벌써 흙먼지가 덕지덕지 붙어서 원래 하얬던것인지 못 알아볼만큼 더러워져있었다.
으어어. 김종인 개새끼야. 나 오늘 돈 없단 말야! 작달만한 종대녀석이 펄쩍펄쩍 뛴다. 얼마나 악을 써대는지, 목에 시퍼렇게
핏줄이 서있었다. 녀석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이마에는 언제 묻었는지 모래덩어리들이 땀과 어울러져 있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정신나간 종인을 대신해서 녀석이 펄펄 뛰어다닌게 분명하다.
"야, 너 에이스잖아. 시발 사지멀쩡한 새끼야. 오늘 지면 안돼. "
"박찬열있잖아."
"아오! 그 새끼 저 팀이잖아, 븅신새끼야. 팀 갈린것도 모름? 개새끼."
".....미안."
몰라 꺼져! 씩씩, 신경질을 있는대로 낸 종대는 저 멀리 뛰어갔다. 한순간 경기의 흐름이 끊겨버리자 모두의 시선이 종인에게로 향해있었다.
종인이 괜찮다 듯, 손을 들어보이자
공을 잡고 있던 골기퍼 녀석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공을 뻥 차버렸다. 뚝 끊겨있었던 소음들이 한순간에 터져버렷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고함소리와 거친 욕설들이 운동장 한가운데서
터져나왔다. 그제사 정신을 차린 종인은 자신이 있는 쪽으로 공을 차며 다가오는 한 녀석을 보았다. 빨간색 유니폼을 걸치고 있었다. 황급히 내려보자, 자신은 파란색이다.
상대팀이다. 종인은 상대편에게 미친듯이 뛰어갔다. 정확히 공을 향해 발을 뻗은 종인은 깔끔하게 공을 빼앗아버렸다. 넋이 나간 상대팀을 뒤로하고 골대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나가던 종인의 눈이 순간적으로 뭐에 홀린 듯 옆을 돌아보았다. 기다란 농구골대 밑에 아무도 없었다.
몸이 약해 체육선생에게 항상 손을 들어보이고선 쉬던 녀석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어디갔지? 멍하게 달리던 중, 뒤에서 김종대의 외침이 들려온다. 개새꺄! 이크, 그제서야 종인이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선 슛을 날렸다. 뻥! 소리를 내며 날아간 축구공이
철렁 소리를 내며 골대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뭐지. 골대를 멍하게 바라보던 종인은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려 있었다.
공중을 향해 쏠려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내려온다. 팡 소리가 뒤에서 들리자, 종인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체육 창고 옆쪽으로 무지막지하게 떨어진
축구공이 통통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가버렸다. 푸하하, 병신새끼!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종인의 얼굴은 구겨졌다. 일제히 사내놈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야, 김종인. 무슨 생각하냐?"
"천하의 김종인이 골을 놓치네."
"애인 생각했냐?"
"야 주워와! 주워와!"
"얼른 주워와라!"
"야, 좀만 쉬자. 존나 더워 디지겟네."
"김종인 감사- 덕분에 우린 휴식!"
시큼시큼한 흙먼지 냄새에 짜증나 죽겠는데, 녀석들의 걸걸한 외침이 동시에 들려오자 기분이 급격히 나빠진다. 뒤에서 투덜투덜 거리는 김종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종인은 서둘러 체육창고쪽으로 달려갔다. 에이씨. 햇빛은 또 왜저렇게 강렬한지. 있는욕 없는 욕 내뱉은 종인은 체육창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없는 걸 보니 확실하게
뒤로 넘어간것 같았다. 무릎근처까지 닿이는 따가운 풀의 느낌은 정말 제대로 더럽다. 가뜩이나 더운데, 벌레가 여기저기 매달린 풀잎이 다리를 긁고 지나가니, 종인의 표정은
한층 더 굳어졌다. 아오, 개 덥네. 땀냄새와 흙먼지 냄새가 오묘히 섞여 불쾌감을 주었지만, 종인은 자신의 유니폼을 펄럭이며 체육창고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김종인."
그닥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갑다라고 해야되나, 놀랍다라고 해야되나. 종인은 벌어지는 입을 신경쓰며 돌아섰다. 백현이 서있었다. 축구공을 든채.
"이거."
흙먼지가 여기저기 묻은 더러운 축구공이 하얀손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순간, 그 작은 손이 더러워지면 어떡하나, 종인은 서둘러 축구공을 빼앗아들었다.
다행히 녀석의 손은 깨끗했다.
"고마워."
대체 왜이러는건지, 망할 주둥이에선 퉁명스럽게 말이 삐져나온다. 종인은 발가락에서 올라오는 원인모를 근질거림에 입술을 깨물었다. 녀석이 웃는다. 또 간질거린다.
그래도 백현은 꽤나 기특했다. 허구헌날 빠지는 체육시간인데도 체육복은 착실하게 입고 있었다. 꽤나 체육본이 큰지, 헐렁헐렁해보였다. 게다가 녀석의 소매는 녀석의 손을
반쯤 덮고 있었다. 아, 시발. 그 모습이 또 귀엽다. 시발, 나 진짜 호모아닌데. 종인은 애꿎은 태양열을 탓하며, 점점 달아오르는 몸을 느끼곤 계속해서 유니폼을 펄럭거렸다.
"근데 말이야."
"아, 응."
"너 아까 왜 운동장에 없었어?"
"응?"
"너 맨날...그.. 뭐냐, 농구골대 밑에 있었잖아."
손가락을 흔들어보이며 말한 종인은 계속해서 땀이 나자 거칠게 이마를 닦아내렸다. 시발, 말이 겁나 안튀어나오네. 가오상하게.
"아-. 더워서 그늘에 있었어."
"그렇구나."
끄덕끄덕. 할말이 이젠 없다. 종인은 괜시레 쩝쩝 입을 다셨다. 뜨거운 태양을 한번 올려봤다, 녀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늘에 있었던 터인지, 녀석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진
다른 놈들과 달리 허여멀건했다. 그래도 더웠던지, 하얀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땀방울이 보인다. 종인은 닦아주려고 올라간 자신의 손을 황급히 붙잡았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이런 더운 날씨에는 황금같은 존재인 바람이 살랑살랑 그들 주위를 빙돌았다. 순식간에 레몬향이 세상을 가득채우자 종인은 머리가 아찔해졌다.
미치겟네. 허여멀건 한 놈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레몬향이란 정말 미칠것 같았다.
"그럼..."
인상은 있는 대로 다 구긴채 아무말없이 서있던 종인을 어떻게 할지 몰라, 백현은 돌아섰다. 다시 그늘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려는 백현의 뒷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야! 순식간이다. 망할 주둥이가 녀석을 붙잡아세웠다. 멈칫 뒤돌아선 허여멀건한 백현의 얼굴이 보인다. 기분탓일까? 녀석도 꽤나 오래 햇빛아래에 서있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있었다.
"너..."
시발, 뭔 말을 해, 대체. 종인은 손에 들린 축구공만 애꿎게 쳐다봤다. 입이 방정이다, 망할! 그때 어렴풋이 운동장에서 녀석들의 외침이 들린다. 김종인 어디갔냐, 뭐하냐 등등
알수없는 말이 들려왔다. 그거에 괜히 초조해진다. 이마에 솟아나오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백현에게 다가섰다. 멀뚱멀뚱 쳐다보던 처진 눈은 종인이 다가오자 슬그머니 땅바닥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까이서보니 녀석의 얼굴은 더욱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꽤 덥나? 종인은 계속해서 솟아나오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너 뭐 발라?"
"응?"
"뭐 바르는것 같은데, 너 냄새...나던데."
"아... 그냥."
냄새가 아니고 향기겠지, 시발! 입을 두어번 녀석 몰래 세게 내리쳤다. 정말로 더운건지, 이제 녀석의 귀까지 빨갛다. 손을 갖다대면 따뜻할까? 종인은 양손으로 축구공을
이리저리 토스했다. 녀석의 고개가 점점 숙여진다. 이젠 정수리만 보인다. 단정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자 또 레몬향이 난다.
"그거... 많이 바르냐?"
"응..좀"
"냄새 좋더라."
계속 발라라. 황급히 내뱉은 말이 공중에서 쉽게 분산되지를 않는다. 손가락 끝이 간질간질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녀석이 고개를 번쩍 들어올리자마자, 종인은 황급히 뜀박질을 했다.
순간적이였지만, 녀석의 붉게 얼룩진 얼굴에서 반짝 반짝 빛나던 눈이 기억난다. 아, 시발!!!!! 축구공을 터뜨릴 기세로 발로 뻥 차버렸다. 로켓처럼 하늘로 솟은 공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추락하자, 녀석들의 야유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시발, 이 시발, 저 시발, 시발시발 거리던 사내녀석들은 충분히 쉬었는지 얼굴에 땀은 흔적도 볼수없었다.
녀석들은 김종인을 죽일듯이 달려왔지만 한순간에 들려오는 종소리에 황급히 멈춰섰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종대만이 뛰어왔다. 녀석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으로 가득했다.
"으헤헤! 야, 우리 경기 취소임. 취소"
그 말을 끝으로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던 녀석들이 하나둘씩, 유니폼을 벗으며 종인에게로 다가왔다. 녀석들의 얼굴에는 개구진 웃음만이 가득했다.
반면 저 뒤로 뭉친 빨간 유니폼을 입은 녀석들의 얼굴은 죽상이었다. 다 이겨가던 경기였는데, 종인이 늦장부리는 바람에 경기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 아이스크림! 허공을 향해 쓸쓸히 외치는 찬열의 모습에 종인은 알수없는 희열감을 또 느꼈다. 왜 이럴까. 그날따라 녀석의 날라리같은 머리색이 눈에 띈다.
"아. 싸랑하는 김종인! 1등이여서인지 경기날리는 방법도 참 엘라스틱하네요."
"엘라스틱은 뭐냐."
"몰라. 쨌든 감사! 시발, 근데 너 오늘 진짜 뭐 약빨았냐. 애새끼 눈 멍해갖곤 실실 쪼개는게 존나 무섭더라."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겟다. 뭐가 뭔지.
유니폼을 벗어던진 종인은 그래도 덥다고, 반팔 티를 벗어던졌다. 구릿빛의 탄탄한 상체가 햇빛아래 드러나자 반아이들의 이상야릇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김종인 몸 만든대요, 공부도 안하고! 한 아이의 말을 가볍게 넘긴 종인은 수돗가로 달려갔다. 쏴아아- 물줄기에서 튀어나온 물방울이 햇빛아래에서 번쩍인다.
시원한 냉기가 쏟아져나오자 종인은 그것이 오아시스라도 되는 마냥 거칠게 입으로 퍼부었다.
입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한 물이 턱을 따라 목까지 흘러내려간 느낌이 썩 좋았다.
목의 가뭄을 달게 씻겨내린 종인은 커다란 손에 물을 담아 자신의 어깨에 뿌렸다. 시원한 느낌이 온 몸으로 쏟아내리는것이 황홀스럽다.
불쑥, 보기만해도 보송보송한 수건이 눈 앞에 들이밀어졌다. 그 밑으로 보이는 작고 하얀 손에 종인은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는 땀에 젖은
놈들이 보인다. 누가 볼세라, 황급히 받아들었다. 녀석은 수돗가 옆에 있는 돌계단 위에 올라서잇었다.
"...이건 왜?"
계단을 올라갈듯 말듯, 사람의 가슴을 애태우며 녀석은 아무말 않고 그저 비비적거린다. 이상하다. 그늘아래인데도 녀석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있었다.
종인은 저도 모르게 귀로 올라오는 열기에 손에 든 수건을 꼬옥 쥐었다. 덥다, 더워. 애꿋은 하늘만 올려본다.
"그냥..."
황급히 사라지는 가는 발목이 눈에 띈다. 허얘서 그런가? 종인은 불이 난 곳에 황급히 물을 끼얹듯이,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 수건으로 감쌌다.
보송보송한 수건에서 미세하게 레몬향이 맡아지자, 점점 벌어지는 입은 숨길수가 없었다. 그냥. 녀석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냥. 다시 리플레이. 그냥
아, 정말 미치겠네. 종인은 점점 뜨거워지는 얼굴을 괜시리 수건에 비벼댔다. 더워 죽겠다, 썅!
점점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종인은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닫으며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마치 이 소중한 것으로 물 한방울이라도 더 닦아내겠다듯이.
얼굴을 꼼꼼히 닦아 내린 종인은 물기로 젖은 수건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것이 지 주인을 꼭 닮았다. 수건을 이쁘게 접은 종인은 누가 볼새라, 그것을 꼭 껴안고 천천히 계단위를 올라갔다.
보송보송한 느낌이 가슴팍에 느껴지자, 망할 심장이 거세게 뛴다.
....아 정말, 호모아닌데. 썅
d
안녕하세염 ㅜ 신예음마입니다
한번 글을 이렇게 바꿔봤습니다;;; 혹여나 불편하시거나 원래대로가 좋다고 하시면 원래대로 돌려드릴게영 헝헝
그리고 읽다가 문체나 아니면 뭐 지적하실거있으시면 지적해주세염ㅋㅋ
원래는 단편이였는데 그냥 중편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내용은 솔직히 별게없어요 그냥 학원로맨스입죠.
즐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