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떠안고 어쩔 줄도 모르는 주지훈과
어느 새 내 마음 다 가져가서는 안놔주는 송강
둘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썰
03
신년회에서 본 그는 학교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달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 파티의 주인공은 저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질 만큼 빛나는 것 같았지.
학교에서 철없이 굴던 그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왕 왔는데 그렇게 기 죽은 표정은 하고 있지 말지. 마음 아프게."
"건물 한 번 드럽게 높네. 이런 데 살면 무슨 기분이야? 넌 살아봤잖아."
"좋지. 집 넓으면 외롭다 그런거 다 못 살아본 사람들이 배 아파서 하는 얘기고, 한강뷰에 손 하나 까딱 안해도 되는 시스템에 따로 설계된 금고방 들어갈 때는 아주 보기만 해도 배불러."
"참나, 그렇게 좋은데 왜 나왔대."
"난 그거보다 그냥 김여주랑 주택 하나 지어놓고 사는게 더 좋더라고."
"하여간 말은 잘해요. 너도 인사 드리러 가봐야하는거 아니야? 가 봐 나 신경쓰지 말고. 배고픈데 뭐라도 주워먹고 있을게."
"너 혼자 두고 가려니까 물가에 내놓은 애가 따로 없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폰 보고 있을게."
"또 그놈의 애 취급. 알겠으니까 얼른 가시죠."
주지훈과 붙어 다녀서 좋을 건 없었다.
안그래도 주지훈이 코 꿰인 여자가 한 명 있다는 소문에 머리가 다 아픈데, 굳이 대놓고 얼굴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또, 좀 더 자유롭게 구경도 하고 싶었고. 이를테면 송강의 모습이랄까.
"어쩐지 눈에 띄게 예쁘다 했더니 맞네 김여주. 주지훈 보고 너 왔을 줄 알고 찾아다녔어."
"주최자가 자리를 지켜야지 날 왜 찾아."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멀어보이는 네 모습에 괜히 퉁명스러운 말투가 새어나왔다.
내 세상이라고 믿고 싶으면서도, 절대 나와는 같은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사람.
나는 어려서부터 주제 파악을 하는데에 지나치게 익숙했으니까.
"밥은 먹었어? 오늘 셰프님 내가 좋아하는 분인데. 되게 맛있어."
"이런 데서 밥 먹으면 체하는 편이야. 나랑은 좀 안어울린달까?"
"그런거 치고 드레스가 너무 잘 어울리는데. 공주 같아."
"넌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참 자연스럽게 잘도 하더라."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로 금세 발그레해진 볼을 감추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웃으며 눈을 맞춰오는게
하여튼 보통 내기는 아니다 얘도.
"여기 보는 눈이 많아서 좀 불편하지? 나갈까?"
거기에 홀려서 정신 못차리는거 보니 난 참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고.
나가자는 말이 이렇게 소연회장에서 둘만 있자는 말인줄은 몰랐다 정말.
"사람들 많을 때는 주지훈이랑 따로 있나봐."
"그냥, 괜한 말 나오면 피차 불편하니까. 소문 뭐 그런거 지겨운 사람들이잖아 나 같은 사람들."
"너 같은 사람이 뭔데?"
"음, ...이용하기 쉬운 사람? 그냥 단순히 재미로 입에 올리기도 어렵지 않고 덤빌 힘도 없으면서, 또 얼굴은 멀쩡한게 소문으로 남자 하나쯤 골로 보내긴 딱 좋잖아."
"너도 아네. 너 예쁜거."
"야, 방금 말의 포인트는 그게 아니었거든?"
"아 그런거 몰라. 무슨 소문이 나건 그냥 좋은데 난."
"친구끼리 그런 야시꾸리한 말 자꾸 하는거 아니다 너. 그거 사람 되게 착각하게 하는거야."
"넌 나한테 무슨 착각이든 해도 돼. 근데 착각 아니다 그거."
"내가 지금 너 대놓고 열심히 꼬시는거 맞다구."
"미친 놈."
"너 얼굴 되게 빨개."
"알아. 굳이 짚어주지마 쪽팔리게."
"키스해도 돼?"
미친 놈인거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더 미친건 알고도 멈추지 못하는 내가 아닐까.
"여기까지 하자. 좋은 분위기 망쳐서 미안한데, 이 이상 더 봐줄만큼 내가 착한 성정은 못돼서."
"그릇이 작은 줄은 알았지만 분위기 파악까지 못하시면 어떡합니까. 이럴 땐 조용히 나가주는게 보통 예의인데."
"우리가 격식 예의 뭐 그런거 차릴 사이는 아니잖아? 어쩐지 김여주가 눈에 안보이는게 느낌이 쎄하더라고."
사람이 왔으면 왔다고 말이라도 하든지, 인기척도 없이 와서는 대체 어디서 부터 있었던거야.
민망할 것도 없는데 괜히 민망하다.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 마냥.
"나와 김여주. 이럴려고 오자고 했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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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해서 뭔가 좀 애매하게 끊겼네요 ㅠ_ㅠ
오랜만에 와서는,, 미안합미다 녀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