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회씨 이거 좀 갖다 줄 수 있어요?]
[....그럼요. 가져다 드려야죠.]
정신병동 이야기05
이 곳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실상 그냥 작은 사회 같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의 1/5 이상이 정신병을 갖고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많다. 쓰레기 통을 비우러 가던 중 치매인 할머니에게 오빠소리도 들어보고 화장실에 갑자기 난입한 꼬마아이한테 훈계도 들어보았다. 그래도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이 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서도 이 곳 관계자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고 분위기도 자신이 생각했던 병원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은 환자들 뒷처리나 청소, 잡일 이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다.
"준회씨. 이것 좀 상담센터에 가져다 줄 수 있어요?"
"그럼요. 이것만 가지고 가면 되나요?"
수간호사가 자료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준회씨가 괜찮다면야 이것도..."
"네. 그것도 같이 가지고 갈게요."
"맨날 시키니까 내가 다 미안해지네. 고생해요 준회씨"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게 제 일인데요 뭘."
하누리 정신병원에는 청소년 정신상담센터가 붙어있다. 나라에서 내려온 지침이라나 뭐라나.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세웠다고는 하지만 정말 심각하게 상처가 있는 청소년들이나 입원을 할 수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센터이다. 입원을 하게 되면 학업에 지장이 가고 그렇게 된다면 더욱 상처입은 아이들이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차단해버리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은 정상수업을 들은 후 방과후 시간을 이용하여 상담, 즉 치료를 받으러 온다. 정신상담센터는 정신병원과 다르게 진료기록이 남지 않아 정신병원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편이었다.
"준회씨 그거 이쪽으로 주면 돼요."
"아 네. 그럼 수고하세요."
준회는 하누리 정신병원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알바생이었다. 정신병원이라는 특성도 있지만 이 곳은 다른 정신병원보다 찾는 인원도 많았고 딸린 부속기관도 많았기에 다들 한 두달 단기알바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무려 5개월동안 이곳에서 일하면서 투덜대는 것도 없이 지내는 준회를 많은 관계자들도 좋아했다. 성실하고 항상 웃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준회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그만큼 준회를 많이 챙겨주었다. 그러나 준회는 한번도 자신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비친 적이 없었다. 항상 웃으며 지내면서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고민을 들어주면서도 고개는 끄덕끄덕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고민은 말하지 않았다. 힘든 것은 없냐고 물어보아도 준회는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이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김동혁 군. 들어오세요."
준회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저 항상 대기장소 쇼파에서 두 손으로 머그컵을 쥐고 뜨거운 핫초코를 살짝씩 맛보던 학생이었다. 줄인 부분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단정한 교복에 마이까지 입고, 머리마저 나 모범생이오 티내듯이 단정한 소년을 보면서 준회는 항상 저런 학생이 왜 센터에 찾아오는 지 의문이었다. 저도 힘든 부분이 있겠지 하고 준회는 자신의 근무 장소로 돌아갔다.
정신병원에서의 근무가 모두 끝나고 뒷정리까지 다 한 후 시계를 보니 7시였다. 진짜 시작은 그 이후부터이지만 준회는 알바생임과 동시에 병원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6시면 퇴근했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 혼잣말을 한 뒤 크로스백을 매고 퇴근을 했다. 집으로 가던 중 새로 생긴 카페가 눈에 띄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아늑한 카페의 느낌에 준회도 한결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정신병원이라는 곳이 아무리 편하고 예쁘게 꾸며놓았다 해도 삭막한 것은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온갖 비명소리가 들리고 환자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간호사 분들까지....정신이 없어 정신병원이라지만 산만하고 삭막했다. 그런 곳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 카페 분위기는 더할나위 없이 준회를 노곤노곤하게 만들었다.
"토피넛 라떼 하나 주세요."
"네 3600원입니다."
라뗴를 시킨 후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원목느낌의 장식장이 눈에 띄었다. 그 위에는 주인장이 손수 만들었을법한 토끼 인형과 각종 머리띠 등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혼자 투박하게 세워져있는 찰흙으로 만든 조각품이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간절한 지 두 손은 모아져 있었다. 등에는 조그마하게 이니셜이 새겨져있었다. D.H...? 만든 사람 이니셜인가?
"그거 저희 아들이 만든거에요."
카페 사장님이 토피넛 라떼를 주며 준회에게 말했다. 준회는 들고있던 조각상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토피넛 라떼를 받은 뒤 감사합니다. 하며 짧은 인사를 했다. 아들이 만든거라면 어린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인데 작품만 봐서는 굉장한 회한과 절망이 들어있어 보였다. 어떻게 이런 감성이 어린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지...? 준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토피넛 라떼를 한모금 들이켰다.
"우리 아들 손재주 좋죠?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나도 마음이 좀 애리길래 가져다 놨어요. 어린 놈이 뭐 그렇게 한이 많은지...."
사장님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준회는 토피넛 라떼를 마시며 생각했다. 회한. 절망. 한.... 나이가 어리더라도 느끼는 것이 많겠지....그 나이 또래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지만 느낄 수야 있겠지....준회는 이 카페가 자신의 단골 장소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