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 시점도 있고 여러분 시점도 있음! 1. ㅇㅅㅁ? " 아, 진짜. 나 졸리다구요... 졸려... " 눈이 반쯤 감긴 네가 내 어깨에 머리를 부비며 칭얼댄다. 왜, 또 애 같이 굴어. 애 같이 대하고 싶게. 애 같이 대하지 말라며. 천둥 번개 치는 밤이 무섭다고 재워달라고 부른 녀석이다. 얼른 자, 잠 들면 갈 테니까. 내 말에 또 그건 싫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근데 너, 남자를 부를 거면 꽁꽁 싸매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짧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못마땅했다. 녀석을 떼어놓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갖고 나오니 영문도 모르고 눈만 끔뻑거리며 날 쳐다본다. 정신 나갔구만. 이불로 녀석을 감싸고는 들어안아 방으로 들어왔다. 네가 자야 내가 가지, 더 여기 있기는 힘들 것 같은데. 아까의 졸음에 푹 젖은 얼굴은 어디 가고 말똥말똥 눈 뜬 채로 날 올려다본다. 그리고 날 보던 녀석의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한다. 왜. 내 물음에 대답을 안 하던 녀석이 갑자기 저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을 확 잡는다. 깜짝 놀랐네. " 사장님. " " 왜. " " ...막 결혼하면 이런 기분이에요? " " 어, 어? " " 우리 애기 재워 놓고, 사장님이 옆에서 나 재워주면 진짜 행복하겠다. 그쵸. " 저 말이 미친 건가, 아니면 지금 내가 미친 건가. 심장이 땅 끝으로 곤두박질 치는 기분이었다. 아니, 입으로 토해낼 것 같다고 표현해야 하나. 왜 상상하게 만들어. 녀석에게 잡힌 손에 열이 확 오르는 느낌이다. 아 부끄러워... 하며 베게에 얼굴을 묻는데, 예뻐 죽겠다고 하면 맞는 거지. 그 때 녀석이 다시 고개를 번쩍 들며 입을 연다. " 사장님! " " 또 뭔 얘기 하려고. " " 부끄러운 김에 더 부끄러운 얘기 하나만 해도 되나? " " 해 보던가. " " 자, 이제 난 사장님 예비신부예요. " " ... " " 사장님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 " ...야. 너, " " 무, 무섭기도 하고... 나 일어나서 사장님 얼굴 바로 보고 싶은데... 요... " 말 가지고 사람을 아주 갖고 노는구나. 내 인내심 테스트 하는 건가. 사랑해 달라는 말로 들리는데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나. 내가 아까 그랬지, 더 여기 있긴 힘들 것 같다고. 지금 그 한계인 것 같은데 아가. 2. 몸살감기 아, 죽을 것 같아... 집 안에 지진 난 줄 알았다. 극도로 어지럽고 몸이 물에 젖은 솜 처럼 무겁다. 몇 시지... 헐. 11시 30분? 망했다, 망했어. 내가 카페로 가야 하는 시간은 9시인데. 혹시나 해서 핸드폰을 보니 역시나. 장난 아니다. 부재중이랑 문자가 몇 개야... 그리고 바로 전화가 와서 조심스럽게 받았는데 건너편에선 아무 말이 없다. 부, 불안하게. " 여...보세요? " - 뭐 하는데. " 저 지금 일어났어요. 죄송해요... " - 왜 지금 일어났냐고. " ... " - 목소리 꼴이 그게 뭐야. 혼날래 진짜. " 큼, 아,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 지금 갈게요! 안 간 시간은 월급에서 까주세요. " - 너 나오지 말고 있어. 움직이기만 해봐. 지금 갈게. 그리고 전화가 순식간에 툭 끊어졌다. 좆됐다... 집 꼴 장난 아닌데! 화장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고양이 세수 한 다음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10분은 있다 오시겠지... 제발.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집이 어느정도 깨끗해지고... 한창 움직여서 힘든 몸을 소파에 뉘이고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사장님이 있었다. 뭘 했길래 이렇게 땀을 흘려요... 손으로 사장님 이마를 쓸며 땀을 닦자 와락 날 끌어안는다. 아픈 와중에 사람 설레게 하네! " 사람 진짜 걱정되게 만드네. " " 그게요. " " 아무렇지도 않다고? " " ... " " 이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몰골인가. " " ...우씨. " " 약국 찾느라 죽는 줄 알았네. 들어가자. " 날 끌어안은 채로 신발을 벗고 뒤뚱뒤뚱 들어온 사장님은 식탁에 날 앉히고 약봉지를 거꾸로 들어 온갖 약을 우수수 쏟아냈다. 헐, 이게 다 뭐예요... 사장님은 그냥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리고는 아직 먹지 말라며 몸을 돌려 찬장을 여는 것이다. 햇반, 라면, 라면, 라면, 빵... 너 미쳤냐. 인상을 팍 찌푸리며 날 돌아봤다. 하하! 자취하는 사람이 뭐 먹을 게 있겠나요! 요리는 젬병인데. " 그러니까 아프지 멍청아, 진짜. " " 근데 저 요리 못 한다구요... " " 죽 해줄 테니까 다 먹어. " 여부가 있겠습니까. 싹싹 긁어 먹어서 자체 설거지 해야죠. 얼마 지났을까. 사장님의 귀여운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실실 웃고 있었는데 다 했는지 그릇에 옮겨담고는 식탁으로 온다. 왜 웃어.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좋아서요! 하자 저도 따라 웃는다. 숟가락을 들려 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숟가락을 뺏어갔다. 나 죽 먹고 싶은데... 고소한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씨발! 이거는 고문이야... 그 때 사장님이 숟가락으로 조금 푸더니 호호 불고는 내 입에 갖다대는 것이다. 헐, 나 먹여주는 거예요? 완전 설레... 볼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이자 살짝 웃던 사장님이 얼른 먹어. 한다. 사장님 선수 아니야? 흑흑. 다 먹고 미친듯한 식곤증에 꾸벅꾸벅 졸자 사장님이 쇼파에서 날 안아들고는 방으로 향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순간 예전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붉어진 얼굴 별로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이불을 덮어쓰자 이불 위로 볼을 살살 쓰다듬어 준다. 아... 진짜 좋아 죽겠다! 내가 흐흐 하고 웃자 그 새 손이 사라지더니... 어 이건 손이 아닌데. 이불이 그리 두껍지 않은 이불이라 그대로 느껴졌다. 이, 이건 입술... 입...술... 입술!! " 이불 때문에 좀 아쉽네. " " ... " " 마음같아선 확 옮아버리고 싶은데. " " ... " " 우리 둘 다 아프면 넌 누가 돌봐. " " ... " " 니가 안 아플때 내가 아파야지. " " ... " " 그래야 니가 나 돌봐 주던가 할 거 아냐. " 3. 신혼 오랜만에 사장님이랑 장을 보러 나왔다. 사장님이 카트를 끌고, 난 따라다니면서 담고. 이거 완전 내 로망이었는데! 너무 좋아서 사장님 팔에 팔짱을 끼고 없는 애교도 부렸다. 진짜 완전 좋아 죽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날 내려다보며 웃음짓던 사장님은 오늘따라 진짜 잘생겨 보였다. 아니, 평소에 못생겼다는게 아니고. 평소에도 잘생겼는데 오늘따라 더더 잘생겨 보인다는 거다. 나는 과자를 막 골라담고, 사장님은 몸에 안좋다며 담는 족족 제자리에 놓고. 이걸 반복하다 결국엔 지쳐서 포기했다. 나도 과자 먹고 싶은데! 그러자 계란과자랑 애기들이 먹는 과자 몇개를 담는 거다. 맛있긴 한데... 짭짤한 거랑 단 거 먹고 싶단 말이에요... 입을 삐죽거리는 날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금세 과자 코너를 벗어난다. 하여튼 깐깐쟁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애기들 용품 파는 코너가 보였다. 너무 귀여워! 아... 진짜 사고 싶다. 유모차에 애기 신발까지... 와. 진짜 여기는 천국인건가. 정신이 팔려 실실 웃으면서 이것저것 구경하자 옆에 사장님이 슥 다가오더니 앞에 빨간 신발 하나를 들어올린다. " 좋네. " " 그쵸! 완전 좋죠! " " 애가 둘로 늘어나는 건가. " " 네? " " 애가 애 낳으면 되게 이상하겠다. " " ...아 진짜! " 또 애 취급이야. 짜증나 사장님 어깨를 퍽퍽 치는데 옆에서 직원이 다가오더니 웃으며 몇 주 째세요? 하고 묻는 거다. 아, 아직... 하고 얼굴을 붉히자 아! 하면서 더 보다 가라고 한다. 그 때 사장님이 완전 폭탄 발언을 했다. 이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발언이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라고 하면 감이 잡히려나... " 마이너스 2주요. " " 네? " " 2주 내로 한번 만들어보죠 뭐. " " ...어머. " " 빨간색은 여자든 남자든 다 어울립니까. " " 네, 그렇죠! " " 전 개인적으로 얘 꼭 닮은 딸이었음 하는데. " " 아가 정말 예쁘겠어요. 그럼 꼭 성공하세요! " 그리고는 바로 내 손목을 붙든 채로 카트를 질질 끌고 계산대로 향한다. 미쳤어, 미쳤어!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질질 끌려갔다. 하... 저 사장님 입을 어떻게 꼬매야 잘 꼬맸다고 소문이 날까. " 한 명만 있으면 너무 외롭지 않으려나. " " ... " " 아가 예쁘겠다잖아. " " ... " " 빨리 보고 싶은데. " " 진짜... " " 방에 애기 공장 하나 차리는 거 어때. " ----- 제가 일찍 왔죠 ㅎㅎㅎㅎㅎ 너무 오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번외 들고 왔어요! 쓰면서 상상하니까 설레 쥬금... 하ㅠㅠㅠ 시험기간인 학생분들(저포함) 힘쇼...(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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