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
"- 뭐하냐고, 거기서."
"......."
왕자, 그가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날 이 쪽으로 데려온 김지원, 저 자가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근데 왜 일까, 그의 말 한마디에 난 곧바로 날 감싸고 있던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왕자는 허탈하게 웃어보였다. 지원이 이 쪽으로 황급히 걸어오는게 느껴졌다. 둘 중 하나일거다. 날 끌고 가거나, 아니면 왕자한테 뭐라하거나.
"... 가요."
전자였다. 가자는 말과 함께 전처럼 내 손목은 그에게 잡혔다. 아침처럼, 난 또 왕자에게 떨어졌다. 경희루에서 얼마나 멀어졌을까, 스르륵 그의 손이 풀린다. 한숨을 쉬던 그가 날 보며 운을 뗀다. 내가 말했- 그의 말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앞섰다.
"내가 말했-"
"-나도 말했죠. 애초에 날 두고가서 무슨 일 당하게 하지 말라고. 나도 분명 말했죠."
"......"
"그리고 또 말했죠. 지원, 당신이 날 두고가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
"그건 내 잘못 아닐거라고."
아마 그 때였다. 울분터지듯 그에게 쏘아붙인게. 난, 난 뭐 여기 오고 싶어서 왔나.
"언제 갈 지 모르잖아요. 막말로 나 여기서 죽을 때까지 못 돌아갈 수도 있는거잖아요."
"그럼 나 안전하게 지켜줘야죠. 적어도 나 데리고 왔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죠."
"월식일어나는 자정이고 나발이고-"
"-그딴거 모르는 나는요,"
"맨 몸으로 강가 나앉아있는 갓난 애랑 별반 다른게 없어요."
눈물 지을 일도 아니였다. 뭐, 그렇게 감정 소비하는 타입도 아니였다. 그래서 여기가 조선이라 했을 때, 못돌아갈 수 있다는거에 난리부르스를 친거지 상황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세자빈 궁 보면서 우와- 했던 나고, 내가 사는 21세기에서는 볼 수도 없는 비내리는 조선의 저자거리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래, 상황에는 불만 없다는 말이다. 단지 나는, 그런 상황이 위험하게만 흘러가지 않으면 된다는거다.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확신만 있으면 된다는건데.
"... 나 정말 발표 젬병이에요. 알아요?"
"......?"
"누구 앞에서 떠드는데, 것도 침착하게 정리해서 말하는거 젬병이라고요."
"........"
"나 지금 처음으로 멀쩡하게 얘기했어요. 그것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당신한테요."
"........."
"부탁할게요, 응?"
내 진심이 통했을까, 날 내려다 보는 눈을 보는데도 아무 감흥이 안느껴진다. 고개라도 끄덕여줄 것이지. 매정하기는. 지원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먼저 세자궁으로 걸어간다. 그의 뒷모습을 보곤 어깨가 축 쳐진다. 알겠다고 한거라 생각하지 뭐.
.
.
.
.
.
"화희라뇨, 어마마마. 이는 당치 않사옵니다. 어찌 세자저하께서 안계신 와중에 축제를 열 수 있단 말입니까...!"
"... 빈궁, 이번 화희는 보통날의 연회가 아니라는걸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어마마마...!"
"전하께서도 많이 고민하셨던 사안이라는걸 기억해주게."
세자가 살아 있는지, 혹시 이미 이 세상에 없는건 아닐지. 빈궁은 하루하루가 피마르는 나날의 연속이였다. 그 와중에 들린 화희 소식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빈궁의 갸날픈 체구에 화를 실어 움직이게 했다. 세자의 생모, 왕비를 만나러 갔지만 과연 그녀가 세자의 생모가 맞는지 의구심만 갖게 된 만남일 뿐이였다.
보통날의 연회. 이번 화희가 평소와 같은 축제가 아니라는 것 쯤은 빈궁도 알고 있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서는 아니였다. 이번 화희는 세자 책봉을 다시 하게된다면 가장 유력할 둘째 왕자, 진환의 정혼자를 가려낼 대신들의 기싸움 전쟁터가 될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억울했고, 서러웠다. 아직, 아직 너무 이른 일이 아니던가.
"... 마마! 괜찮으신-"
"-너무하지 않냐, 다들."
"........."
"... 돌아올 수도 있는거 아냐? 안그래 준회야?"
교태전에서 나와 자선당으로 향하던 도중에 넘어진 세자빈에 놀란 준회가 곧바로 그녀에게 뛰어갔다. 세자빈은 넘어졌음에도 일어나지 않고 흐느끼며 울고만 있었다. 여태껏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노력은 이번 일로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흐느끼는 것에 누가 볼까 주위를 보던 준회가 세자빈을 일으켜세우려는 손길을 내밀어도 그녀는 그것을 내쳐버렸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
"......."
"... 갈 때도 그러셨으니,"
"......."
"올 때도, 그리하지 않으실까."
그녀에게 내쳐진 손, 그리고 들리는 그녀의 소원. 준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만, 울고 있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내뱉고 있을 뿐.
미드나잇 인 서울
세자궁에 들어오고 나서 부터는, 지원과 나 사이엔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어색한 기류만 흐르고 있는게 영 찜찜하다. 그나저나 이제 곧 불꽃놀이 할텐데. 아, 보고싶다.
"저,"
"왜요."
"오늘 불꽃놀이 한대요."
"알고 있어요."
"... 보고, .. 싶지 않아요?"
"보고싶어요?"
그걸 말이라고 묻는겁니까?
눈은 땡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애원하는데도 그는 매정하게 고개를 젓는다. 안돼요, 그래도.
"왜요?!"
"가서 또 무슨 일 당하려고요."
"아, 나 지원씨 옆에만 있을게요!"
"안돼요. 위험해요."
"아아아아!!!!!!"
".......?"
막무가내로 떼쓰며 그를 보자, 이게 무슨? 하는 표정으로 날 아래 위로 쳐다본다. 가자고!!! 가자!!! 응? 가자고오오오 보고싶다고오오오!!! 한참을 떼를 쓰니 그도 더이상은 안되겠다는듯 크게 한숨을 쉬며 자리서 일어났다. 가는거죠? 응?
"........ 아이고야-"
"- 그래요, 가요 가."
"보러갑시다, 그 놈의 불꽃놀이."
.
.
.
.
.
"그 왕자 보게되면 바로 돌아가는거에요. 알겠죠."
"아 알았다니까요."
저 소리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귀에 딱지앉겠네, 아주. 귀 후비적 파는 시늉하고는 대신들은 물론, 궐의 모든 사람이 모여 바글바글한 경희루로 향했다. 가지런히 줄지어 달아놓은 홍등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정말 예뻤다. 이 말로 밖엔 형용할 수가 없다.
"진짜 예쁘네요 ..."
"입 닫아요. 벌레 들어가겠어요."
무드 깨는데는 뭐 있다, 저 양반.
"어어! 시작하나봐요."
이윽고 밝게 켜놓았던 홍등을 하나 둘씩 끄기 시작했다. 경희루 주변에 세상의 어둠이라는 어둠은 다 끼얹은듯 어둑어둑해졌고, 곧이어 불꽃 하나가 쏘아올려졌다. 파바박-. 하나, 하나씩 밤하늘에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물론 현대의 불꽃놀이와는 다르게 고전적이라면 고전적이였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아왔던 불꽃놀이보다 안예쁜 것도 아니였다. 소박하다고 해야할까.
"좋아요?"
"응. 예뻐요."
밤하늘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본건지, 옆에서 슬쩍 보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옆을 돌자, 그가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파바박-. 붉은 빛에 그의 얼굴이 더욱 빛나보인다. 다시 한번 불꽃 소리가 들리고, 그가 말했다.
"예쁘네요, 이렇게 보니까."
파바박-.
그의 눈빛에 불꽃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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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병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미쳤다고 이걸 빼먹을 뻔 했네요. 우리 사랑둥이 김동동 생일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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