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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먹-"
"-안먹을거죠? 내가 먹어요, 그럼?"
"... 다 먹어요, 다."
여기가 조선이던, 한국이던, 제 3세계던 간에 내 먹성은 절대 변하지가 않는다. 아 기특하네. 그래, 먹고 봐야지 뭐든간에.
"아유, 비온다 또!"
"밖에 내놓은거 다 들여놔, 얼른!"
"비오네요."
".....?"
한참 얼마 안남은 국물을 사발을 든 채로 마시고 있는데, 비온다는 소리에 바로 그릇을 내려놓고 밖을 보았다. 툭-, 투둑. 지붕에서 새는 빗물이 작은 그릇 안에 떨어진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상인들이 황급히 물건들을 상점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고, 꼬마들은 비가 오니 마냥 좋다고 꺄륵거리며 뛰어다녔다. 지원과 한참동안 바깥을 보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어떻게 돌아가요?"
"... 뭐, 비맞으면서 가던가. 아니면, 그칠 때까지 기다리던가."
"한번 오면 징하게 온다니까는."
"올 때도 아닌데 요즘따라 왜 이렇게 내리는지 몰라."
"... 기다리죠, 뭐."
그가 이어 답했다. 뒷배경으로 들리는 대화에선, 이 비가 곧 그칠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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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모양이구나."
이젠 하루일과를 준회와 시작하는건 세자빈의 습관과도 같은 일이였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온 준회에, 오히려 당연하다는듯 먼저 말을 꺼내는 세자빈이였다. 준회가 들어오자마자 들리는 빗소리에 잠깐 창가를 바라보던 세자빈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준회는 역시 오늘도 수놓아진 얇은 천에 가려진 그녀의 실루엣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설렜고, 들끓는 욕정이 샘솟았다. 갖고 싶다, 그녀를, 갖고 싶다.
"준회야."
세자빈의 실루엣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 옆의 창가로 향했다. 준회의 눈또한 그 쪽에 닿았다. 세자빈은 잠깐 회상하는듯 창가 앞에 놓인 화분의 꽃잎을 어루만지다 말을 이었다.
"너가 온 날, 그 날."
"그 날도 비왔었는데. 그치."
"그리고,"
아무 말 못하고 있는 준회를 슬쩍 바라보던 세자빈이 다시 꽃잎으로 눈길을 돌렸다. 부드럽게 쓸던 꽃잎을 톡- 하고 잎 하나를 떼어버린다. 손 끝에 쥐고 있는 꽃 잎 하나를 후- 불던 세자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마저 말을 이었다.
"저하께서 떠나시던 날도-"
"-비가 왔었지, 아마."
툭-, 투둑.
빗소리인지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비는 거세게 내렸다.
"그나저나 우리 아드님도 곧 혼인을 해야할텐데."
"..."
"마음에 드는 규수가 없어서 그런건가?"
"....."
"말이라도 해주지."
"아직 생각 없습니다."
"그건 대대손손내려오는 고질병이라도 된다니? 네 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니 동생도 그럴 셈이지?"
윤형이 짤막히 웃어보였다. 저 어머니가 가끔 저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귀여워보이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윤형은 이만 나가보겠다며 안채에서 나왔다. 방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자, 동생 찬우가 수고했다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형은 괜찮다는 눈빛으로 화답하며 찬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냥 아무나하고 혼인해버려, 형."
"농이라고 하는 말이냐 지금?"
"아니 큰 형님한테 했던 거 생각 안나서 그러는거야 설마?"
"그럴리가."
저 형이 당했던 혼인 전까지의 나날들을 생각하면 윤형이고 찬우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얼마나 들들 볶던지. 며느리로 들어온 그 규수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속으로 얼마나 했는지 모를 두 사람이였다. 찬우에게도 역시 가보겠다며 옆을 지나치려는데, 찬우가 다시 윤형을 붙잡았다.
"왜?"
"아, 형 그 소문 알아?"
"어떤?"
"며칠 전에 하늘에서 뭔가 반짝하더니 궐에 떨어졌다고 했던 소문. 그거, 생각해보니까 몇 년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은-"
"-찬우야."
"... 응?"
"소문이라며, 소문."
"....."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소문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거야 원래."
간다, 나.
찬우를 다시 다독이는 윤형의 손길에 알 수 없는 힘이 들어가 있는 듯했다. 찬우는 다시, 안채로 들어갈 생각에 머리만 싸맬 뿐.
.
.
.
.
.
"스물 하루, 스물두째, 스물셋-."
"스물... 셋."
윤형이 안채에서 제 방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핀 건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 적힌 서책이였다. 별자리표 마냥 생긴 것을 한참동안 이리저리 돌려보던 윤형은 손으로 하나하나 숫자들을 세고 있었다. 그러다 스물셋, 에서 멈춘 그는 옳거니 하며 책의 맨 뒷장을 펼쳤다. 그가 매일같이 성균관에서 몰래몰래 써가던 시기 별로 달의 움직임을 그린 것이였다. 스물셋. 그만의 방법으로 적어놓은 표의 23번째를 보니, 월식이 맞아떨어졌다.
"스물 셋, 스물 셋째날."
윤형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 잠깐 어디 좀 다녀-"
"-또또!!!"
"왜, 왜요."
"나 놓고 또 어딜 튀려고! 그리고서 내가 누구만나기라도 하면 뭐라할거면서!"
"... 아 그니까,"
"됐어요. 가요, 가. 대신 나 누구 만나도 뭐라하기만 해요."
안그래도 어쩔 줄 몰라하던 그가, 내 마지막 말에 더욱이 어쩔 줄 몰라한다. 갈거면 가라지, 그리고 내가 누구 만났다고 욕하기만 해보라지.
"그럼 나 오늘은 5분. 5분 안에 올게요."
"5분?"
"응, 5분."
뭐 사실 나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라 그가 혼자 가던말던이긴 했다. 그래도 이게 무슨 심보인지는 모르겠다만 괜히 더 붙잡고만 싶다니깐.
"그래요, 그럼. 5분 줄-"
"-다녀올게요!"
-게요.
말 끝나지도 않았는데 쌩하고 가버리는 그를 또 한번 째려보고는 아까 있던 세자궁으로 들어갔다. 물론, 이쪽을 보는 이가 없도록 양 옆 주위 다 살펴가면서.
"5분 안에 안와서 누구 만났다고 뭐라하기만-"
"......?"
... 해봐라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끝까지 말을 하고는, 문을 열자마자 복도에 서있는 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날 보자마자 아래 위로 쭉 훑어본다. 뭔가 건들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 떨리는 손으로 잡고 있던 문고리를 슬며시 놓곤 다시 그를 마주했다. 그 눈빛에 못 이겨 고개를 숙이려는 찰나 그가 먼저 물었다.
"...... 누구."
"......"
"... 누구."
"......."
"말 못해? 누구."
아, 그니까 저는.
김지원 이 사람은 내가 누구랑 마주치게 되면 설명할 거리라도 만들어주고 갈 것이지. 아 또 난관 봉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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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아, 코니스마스! ㅋㅋㅋ
분명 처음 글잡에 글 올렸을 때가 2월 때로 기억하는데 벌써 크리스마스네요. 참 시간이 빨라요, 그쳐?
오늘 하루 크리스마스 한껏 즐기시길 바래요♡ 전 집에서 열심히 스밍돌리고 있을게요 ㅋㅋㅋㅋㅋㅋ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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