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하고 사근사근 내린 눈을 밟고
혹은 그 무릎까지 풍풍 빠지는 눈길을 걸어 찾아가면
가지마다 가득히 숯불 같은 꽃을 피워 어린 나를 맞아 주더니..
동백꽃_중
어느 새 따뜻한 노을빛이 우리들 발 밑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금빛 풀들도 춤추고 있었다.
"오빠..."
"응, 연제야."
"온다."
"?"
연제는 창백한 손으로 앞을 가르켰다.
내 눈에는 내 키보다 더 큰 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만 보일 뿐..
연제는 내 어깨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어릴 적부터 많이 앓은 탓에 머리가 많이 빠진 어린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아인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안녕!"
"!"
큰 소리였다.
"안녕~~"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나는 한참을 두리번거렸고 연제는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쳐다보았다.
나도 따라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빛이 나는 아이가 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지?
"안녕!"
하얀 그 아이는 우리쪽을 해맑게 내려다보며 한번 더 큰소리로 인사했다.
"아..안녕"
내가 놀란 눈으로 인사를 하니 아이는 큰 소리로 웃더니 씩씩하게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가볍고도 유연한 움직임이였다. 여자일까?
나무를 다 내려온 아이는 그의 하얗고 투명한 피부와는 다르게 크고 더러운 흰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아이보다도 너무 커서 바지를 입었는 지 알 수 없을 정도 였다.)
"타혀나..."
"연제야, 오랜만이야! 어라, 오늘따라 얼굴빛이 더 안 좋아.."
"우리 오빠, 차니오빠."
"히히, 반가워! 나는 유창현이라구해~. 되게 잘생겻다, 너."
"안녕..난 이찬희."
학교에서도 부끄럼을 많이 타 친구들이랑도 여름방학이 다가와서야 겨우 반 친구들과 한번씩 말을 나눌 정도 수줍은 나는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봤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쁜 아이다.
"이야, 너 되게 예쁘게 생겼다. 알고보니까 막 여자 아니야? 헤헤"
"뭐?!"
순간 욱했다. 나보다 더 예쁜 이 녀석이 내게 그런 말을 한 것보다는 ....
아니 뭐, 예쁘게 생겼다는 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늘 무시당하는 엄마와 항상 싸우는 할머니. 서울에서 방구석에서 돈 받고 일하는 집없는 아줌마.
늘 나를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은 다 여자였다. 약하고 늘 아픈 존재.
그래서였을 까. 나는 여자 같다는 말에 처음보는... 하얀 이 아이 앞에서 욱해버렸다.
"기..기분 나빴어? 미안...나는 그냥 잘생겼다는 말이였는데.."
"아...아니야,내..!내가 더 미안."
"오빠, 하아...하..."
"연제야!"
연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창백한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쓰러질 듯 휘청휘청거리는 연제를 하얀 아이는 힘 있게 업었다.
"내가! 내가 가도 되는데!"
"연제, 연제네 데려다줄게!"
둘이 동시에 말했다..
"...둘 다 가자! 연제네 어딘지 모르지?"
"아, 응."
"가자."
"응."
아이는 나도 모르는 연제의 집을 알고 있었다.
연제는 할머니와 삼촌이 살고 있는 집과 달리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몸이 약하고 자주 아파서 그를 옆에서 보살펴줄 사람이 있고 어른이 많은 곳에서 지내야했다.
그에 비해 삼촌은 그의 딸에게 매우 비책임적이였다.
오래 달려 이 아이와 도착한 집은 마을에 있는 집에서도 제일 가운데에 위치한 이장이라고 적힌 집이였다.
"내가 들어갔다 올게."
"어어...저기!"
같이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전에 아이는 아픈 이를 없고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따라 들어가고 싶었지만 마을 사람들과 만날 자신이 없는 나는 그냥 대문 옆에 기댔다.
나는 숨을 내리쉬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까지 뛰어오는 동안 나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아이 때문에 그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매우 우스웠다.
연제가 아파 식은 땀을 흘리는 상황이었는 데 나는 처음보는 아이 때문이었는지 설레고 즐거웠다.
이상하지.. 그 아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자기만한 어린 아이를 업고 그렇게 뛰었는데 숨 한번 쌕쌕거리지 않고 씩씩하게 집 안으로 뛰쳐들어가는데..
위에 걸친 옷은 아이의 몸을 거의 다 가리고 있었지만 뛸 때마다 크게 펄럭이며 슬쩍슬쩍 고운 속살이 보였던 것 같다.
"무슨 생각해?"
"어! 언제 나왔어?"
"방금. 저기 너 어디 살아?"
"나...나 저기"
"아~ 심술이네? 손자야? 할매와 안 닮았네. 푸히히히.. 다행이네."
할매? 혼자 사나? 어른한테 말버릇이...
어?
"너 팔에!"
"아무것도 아니야~."
"봐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봐보라고!"
옷 사이로 살짝씩 보이던 아이의 하얗고 여린 팔을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괜찮은거야?!"
"진짜! 진짜 괜찮아.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연제 때문도 아닌 걸."
"그럼?!"
"........원래 그래."
"원래?"
"원래."
"그런게 어딨어."
"있어. 원래."
아이는 나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우리 집쪽으로 걸었다.
"어디가?"
"너희 집."
"뭐? 너 어디 사는데."
"나 여기 안 살아."
"뭐라고? 너 자꾸 내가 못 알아 듣는 말만 할래?"
"나 여기 안 살아~ 이 동네 안 산다고. 이 옆에... 그래, 이 옆에 살아!"
"........."
"안 가?"
"....가..."
".............."
"야!"
"응?"
"같이 가."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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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유...오랜만에 글 썼네요ㅠㅠ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