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반복
꼬박 하루를 납치당해 있었던 이용대는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에 의해 정재성에게 알려지고, 감독에게 알려지고, 경찰에까지 알려진 것이었다. 바보 같은 여자는 가방 깊숙이에 들어있었던 이용대의 핸드폰을 꺼두지 않고 그냥 둔 채로 하루를 재워두고 위치 추적을 당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선수촌의 여자가 아니었다. 이유미라는 여자는 있지도 않았다고 했다.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괘씸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하지만 곧 조용했던 이용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를 돌아봤고, 그의 강아지 같은 눈망울에 조용히 웃어보였다. 마주보고 있던 그도 내 웃는 모습에 같이 웃어보였다. 별 생각 없이 웃은 거였는데, 그의 웃음을 보니 정말 살인 미소라는 게 있긴 있구나ㅡ 하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듣고 싶네."
어깨를 으쓱 해보이고는 능청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는 내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손가락으로 벤치를 가리키며 저기에 앉자고 말했다. 걷다보니 어느 샌가 인적이 드문 곳까지 와있었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있어봤자 지나가는 외국 선수나 감독이었다. 시간도 시간인지라 꽤 어둑어둑 해져서 가로등 불이 켜져있었고, 그 아래에 있는 벤치였다. 나란히 걸어가서 나란히 앉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두근거렸다.
"이렇게 불러내서 죄송해가지고… 음료수라도 사야 되는데……."
"괜찮아요."
또 한 번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사람들이 내 눈웃음 좋다고 해주던데, 이렇게 웃으면 이미지 좋아 보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에게만은 좋아보였으면 좋겠다.
그를 쭉 주시하고 있으니, 그는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할 건지는 몰라도 내가 다 긴장되는 숨소리였다.
"재성이형 만났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흡사 엄마에게 잘못을 걸린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1초에도 수백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답지 않은 머리 회전에 나조차도 놀랄 만큼 생각이 많아졌다.
아 그러네요, 이용대 씨. 당신이 이걸 물어본 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떨리려는 손을 들키지 않게 주먹을 꽉 쥐고는 나름 여유 있어 보이게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웃어 보이며 물었다. 그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우물쭈물하더니 모기가 기어가는 소리로 네… 하고 대답을 내뱉었다.
이로써 정재성의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분하지만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없는 절대적인 연대감이 있다는 것까지 진실일 것이다. 이용대는 정재성의 말대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번호를 물어보고 나와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같이 잔건? 그건 정말로 모두 동정이라는 소리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용대의 반대편에 있는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머리로 손이 올라가 머리를 헝클어트렸고, 한숨도 터져 나왔다.
"재성이 형이 뭐라고, 어디까지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끝을 흐렸다. 그에게는 괜히 듣는 사람 더 떨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까지 느껴질 만큼 목이 메어오고 있었다. 용대 씨 말 대로 마실 거라도 사서 앉을 걸 그랬어요. 나도 목이 타들어가고 있어요.
"저… 저는……."
그가 더 입을 떼려 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 먼저 얘기해도 되요?"
다급해진 마음은 나도 이젠 주체할 수가 없이 빨리 뛰고 있었다. 제어되지 않는 몸은 이제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니, 오히려 다행인지… 차여도 고백은 하게 해줄래요?"
"…… 네?"
"좋아합니다."
"……."
"이젠 제 스스로 아니라고 최면을 걸어 봐도 발뺌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해요."
"……."
그는 나를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부담됐지만 나도 역시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치고 있었다. 멍하게 살짝 벌려져 있는 입술이 귀여워 뽀뽀라도 해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그만뒀다. 여태까지 겪은 일도 모두 트라우마일 텐데 나까지 섣불리 행동해서 트라우마를 얹혀주고 싶지는 않았다.
"조… 좋아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두근 두근 두근 두근ㅡ. 또 다시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렇게 짝사랑은 끝나는 건가…….
"차일 거라는 게 무슨 소리에요… 형한테서 무슨 얘길 들은 거예요?"
두근ㅡ. 의외의 대답에 일단은 긴장을 놓았다.
"아 그게……. 이용대 씨는 다 알고 있는데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고……."
뒷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보고 그는 활짝 웃어보였다.
순간 천사의 미소를 보는 것만 같았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심술궂네요.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면 제 얘기를 상대방한테 해준다고 했어요, 재성이 형은……."
"…… 네?"
이게… 무슨 소리에요, 이용대 씨?
"저도 좋아해요, 기성용 선수."
그가 또 한 번 내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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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여요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오자마자 저는 학원을 갑니당 헿헿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