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ty/재치있는
3일 남았다.
교복치마 끝을 만지작대며 쳐다본 달력에 커다랗게 동그라미가 쳐져있는 날, 이제 딱 3일남았어.
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박찬열도 어느새 달력쪽으로 시선을 떼지못하고 있는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가야지."
예상외로 담담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아? 내 질문에 어깨만 으쓱하더니 다시 숟가락을 집어드는 박찬열.
나만 예민한거야? 나만 여기 남고싶은거야?
"..."
"학교갈시간 됬다, 나가자."
"응? 응.."
이제 짐도 슬슬 정리해야겠구나.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눌러담고 한숨을 작게쉬었다.
가지말라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
"OO아."
"네, 네?"
"아버지가 왔다가셨어, 전학이라며."
"...아..."
"전학온지 얼마 되지도않았는데..선생님이 못해준게 많아서 미안해."
"아니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니 내 손을 꼭 잡아주시는 선생님.
박찬열도 못해주는걸... 씽긋 웃어보였다.
교실로 돌아갔을때 박찬열은 언제 사왔는지 모를 빵봉지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먹으라고 건네는 손이 새삼스럽게 예뻤다.
"OO아."
"응?"
"나랑 영화보러갈래?"
"영화? 나 영화 잘 안보는데."
"우리 오늘 수업하지말자."
"...우리 고등학생이거든?..."
"놀자, 응? 응?"
말이 되는소리를 해. 나 서울가려면 얼마 안남았단 말이야, 그동안이라도 공부해둬야돼.
딱딱 자르는 내 말투에 꾹 입을 닫아버리는 박찬열. 삐졌어? 내 말에도 묵묵부답이고. 뒤에앉은 변백현까지 잡고있던 샤프를 탁 놓아버린다.
"...3일 남았지?"
"엉? 엉. 나 공부해야돼."
"그럼 오늘 찬열이랑 놀러가."
"...너까지 왜이래?"
"공부는 3일후에 해도 충분하니까, 그냥 놀러가라고."
푹 한숨을 쉬었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정작 아무렇지 않은건 박찬열이잖아, 내가아니라.
어깨에 힘을 쭉 풀고 가방을 챙겼다. 그래, 놀자. 찬열아. 우리 이제 3일있으면 못보니까.
"영화 싫어해?"
"싫어하는건 아니고... 그냥 잘 안봐~"
"보자, 보자, 보자 영화보자!"
꼭 손깍지를 끼고 나선 교문앞, 신난 박찬열이 이리저리 손을 흔들며 영화를 보자고 난리다.
하긴 생각해보니까 데이트도 한적이 거의 없구나.
학교와 가까운 영화관으로 쪼르르 달려간 우리둘은 이내 박찬열이 끊어온 영화표 두장을 들고 2층으로 올랐다.
남자가 영화표를 샀으면 여자는 팝콘이나 콜라정도는 사주는거라고 어디서봤는데...
내가 사기전에 벌써 세트로 주문까지 해놓은 박찬열이, 씩 웃으며 내 손에 팝콘을 쥐어준다.
"근데 영화 뭐끊었어?"
"...그런게있어. 흐흐."
"야 웃지마 불안해..."
확실히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이 많이없다. 커다란 스크린이 우리둘만 확- 비추고 있는 상영관 안.
시작할려면 몇분 안남았는데...왜이렇게 사람이 안오는건가.
"...왜 우리둘밖에 없냐?"
"사실 내가 여기를 통째로 빌렸어"
"팝콘이나 먹어라."
내가 먹여주는 팝콘을 냠 받아먹곤 좋다고 베식베식 웃는다.
"박찬열 덩치만 큰게.. 귀여운거봐."
"니가 더 귀여워."
"뭔소리야.."
"난 니 볼이 제일좋아 통통한거~"
"변태야!"
조용조용, 시작한다. 조명이 내려앉자 종알종알 움직이던 입을 꾹 닫았다.
...근데 이거 시작부터 좀... 영화가 왜이렇게 어두워...
"..."
"..."
"박찬열."
"응?"
"죽을래?"
"왜, 이런거 못봐?"
이거 공포영화잖아!
내가 다른건 다봐도 이런건 진짜 못보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시작부터 이거 좀...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 팔을 탁 붙드는 박찬열.
돈 아깝잖아~ 무서우면 오빠한테 안겨! ...아무튼 별 지랄을 다해요.
"야..너 왜이렇게 떨어, 그렇게 무서워?"
"...아 말시키지마."
내 어깨를 끌어안더니 토닥토닥.
아 무서워... 꼭 눈을 감고 있으니 또 귀엽다면서 낄낄 웃는다.
"야 웃지마 나 진짜..무섭거든?"
쪽, 대답도 없이 입술에 닿는 감촉에 놀라 눈을 확 뜨니, 입꼬리를 살짝 올린채 나를 내려다보는 박찬열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둘밖에 없는데, 응?"
"...죽어"
그대로 입을 맞춰오는 박찬열이 내 손을 꼭 붙들어맨다. 따뜻한 손이 새삼스럽게 예쁘다.
W.멜리
9 END |
찬열아 잡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