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오빠들 - Smile Again
너를 처음 만난 날은...
언제더라?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네 첫인상은 그저 동아리실에 갈 때마다
'선배. 제 이름 뭔지 기억해요?'
라고 물어보는 귀찮은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연하랑 연애하는 법
07 下 (그녀의 이야기)
w. 복숭아 향기
나는 사람 이름이나 얼굴을 외우는 걸 잘 못했다. 아니,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사람 이름이나 얼굴 외우지도 않고 그냥 다니면 말 그대로 모태 싸가지지.
중고등생을 지나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내가 겪어왔던 일을 경험삼아 내린 나만의 결론이었다.
어찌보면 나만의 방어책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무슨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고 그 말은 곧 내가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으면 실망감도 생기지 않는 법. 그래서 내 인간관계는 점점 더 좁아지는 거 일수도 있었다.
사실 별 상관없었다.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 그러니까 알바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교수님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싹싹하게 대하는 그런 아이였으니까.
어디 가서 싸가지 없다 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고 (내가 못들었던 거 일수도 있지만) 굳이 이런 나에게 달라붙어서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적당히 부대끼면서 살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거리감을 두고 살자. 이게 내 신조이자 모토였다.
그런데
"선배."
"선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 15학번 영어영문학과 김남준입니다."
"김남준이에요."
"선배. 제 이름 기억하죠?"
귀찮은 똥강아지 한 마리가 달라붙어버렸다.
-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막말로 매일같이 와서 자기 이름 기억하냐고 물어보는데 그걸 기억못하는 사람은 지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게?
사람들이 공부를 할 때 반복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네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름은 물론이고 15학번이라는 것도 영어영문과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올 때마다 네 이름도, 아니 너의 존재라는 것도 모르는 척 너를 마주보았다.
도서부라는 우리 동아리 특성상 들어오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그리 적지는 않았다.
처음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은 많으면 30명이 다 되어가기도 했으니까. 대부분 들어오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장학금.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는 동아리다보니 장학금을 받는 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혜택이었다.
그러나 혜택이 있으면 그만큼 의무도 있는 법이었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이런 의무를 버티지 못하고 동아리를 나가곤 했었다.
나랑 같이 들어왔던 동기들도 다 나가거나 휴학을 해 지금 14학번 중 남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으니까.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소문도 많이 도는 법이지.
아마 내가 동아리 안에서 사람들을 더욱 믿지 못하는 건 이러한 소문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한 단체 안에 있는데 어떻게 무슨 썸씽이 안생기겠어.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서 바라보는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언젠가 어떤 아이돌이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 있었지.
'이건 완전 동물의 왕국이에요.'
그래. 한 명이 먹히면 그 옆에서 보고 있던 또 누군가에게 먹히고 이런 동물의 왕국.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 때의 나는 그런 동물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카메라 감독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은 다짐 하나를 했었지. 절대로 저 사이에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선배."
"어. 왜."
"제 이름 뭔지 알아요?"
"..."
"15학번 영어영문과 김남준이에요. 김남준."
"그래..."
하지만 이런 내 다짐이 무색하게도 너는 나에게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동아리실에 있을 때마다 내 앞으로 와서 자신의 이름을 꼬박꼬박 알려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책을 보거나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곤 했었다.
'왜 그렇게 대꾸를 안하는데?'
언젠가 석진 선배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대답했던 말이 뭐였더라.
'굳이 필요성을 못느껴서요.'
그래. 이렇게 대답을 했던 것 같았다. 틀린 대답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네 이름을 외우고 너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책 한 권 더 읽고 레포트 한 자를 쓰는 게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내가 너에 대해 이렇게 생각을 하고 너와 했던 말을 떠올리고 그러는 거지?
짜증나게도 나는 너가 조금씩 신경쓰이고 있었다.
-
그렇게 조금씩 신경쓰이던 너가 작은 내기를 걸어왔다.
"나 이제부터 선배 따라다닐 거에요."
"뭐?"
"일주일동안 선배 따라다닐 거에요."
"..."
"일주일 후에도 선배 막 이렇게 내 이름도 못외우고 그러면 나 이제 선배 귀찮게 안할게요."
"뭔 개소리..."
"선배도 귀찮았잖아요. 이름도 모르는 애가 자꾸 와서 자기 이름 물어보는 거."
"..."
"대신 선배가 일주일 후 제 이름 기억하면 내가 이기는 걸로."
"그런 내기를 내가 왜 하는데."
"아까 말했잖아요. 이제 다시는 귀찮게 안한다고."
"..."
제가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줘요.
이런 말도 안되는 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동안 모른척 지내오다가 마지막에 네 이름도 모른다고 말하면 그만이겠지.
너는 순진한건지 아니면 멍청한건지 그저 입꼬리만 말아올리며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까지도 너는 위에서 나를 가만히 내려보고 있었다.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 때 진짜 신경쓰였었다. 물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 바로 동아리실을 나와버렸지만.
-
"진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적당히 마셔라. 너 술주정 받아주기 힘들다."
"아니, 내가 무슨 술고래도 아니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소주 2병 마시는 게 술고래지 그럼 인간이냐?"
"됐어요. 됐어."
무슨 자신감인걸까. 동아리실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던 네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내가 거짓말로 너에게 기억이 안난다고 말할 것이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은 건가? 윤기 선배랑 석진 선배가 하는 말 들어보면 수석으로 입학했다던데...
그냥 공부 머리만 좋은건가?
아 모르겠다. 자꾸 생각하면 내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술잔에 소주를 쪼르르 따라냈다. 맞은편에서 자작하면 몇 년동안 솔로라며 울부짖는 석진 선배는 알 바가 아니었다.
말로만 그렇게 하면서 여자 후배들 많은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나는 그대로 소주를 목구멍으로 털어넣었다. 아. 쓰다. 소주 특유의 향이 확 올라오면서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 일주일만 참으면 되는 것이었다. 일주일만.
일주일만 있으면 이런 복잡한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
라고 생각을 했던 내가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뭐. 일주일만 참으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내기를 시작한 이후 너는 전보다 더욱 대담하게 나를 찾아왔다.
내 시간표는 어떻게 알아낸건지 수업이 끝날때마다 강의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어디서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또 공부를 할 때 어디서 공부하는지 알고 있는 것은 기본이었다.
내가 점심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서 같이 밥을 먹자고 말을 할 때도 있었고
공부를 하다 출출해서 편의점에 가려고 할 때면 뒤에서 작은 과자 봉투를 건네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디서 사왔는지도 모르는 샌드위치를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너를 올려보았다.
너는 여전히 오늘도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샌드위치가 들어있는 봉지를 살살 흔들어보였다.
"이거 먹어요."
"나 아침 안먹어."
"그럼 점심 같이 먹어요."
"싫어."
"선배."
"왜."
"제 이름 뭐게요?"
"몰라."
"난 선배 이름 아는데."
"..."
"성이름 선배."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저 한마디가 다였다.
수업이 있기는 개뿔. 오늘 수업은 커녕 그냥 공부 하려고 학교 나왔는데. 게다가 너는 내 시간표도 알고 있었다.
통하지도 않을 거짓말이었다. 성이름. 요즘 정신 놓고 지내더니 진짜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일부러 내가 평소 가는 도서관과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너는 방금 전 너가 서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젠장젠장젠장.
오늘은 그냥 도서관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서 공부를 하던지 해야지.
학교에 남아있으면 내 손목에 있는 봉지 처럼 너가 달랑거리며 계속해서 내 뒤를 졸졸 따라올 것만 같았다.
-
말도 안되는 내기를 시작한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도 수업 끝나면 강의실 앞에 서있으려나.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는 계절이었지만 아침저녁으로 꽤나 쌀쌀했다.
복도에 혼자 그렇게 서있으면 추울 수도 있는데... 나는 가방을 챙기며 작게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왜 자꾸 나를 신경쓰이게 하냐고. 그냥 다른 사람들 대하는 것처럼 싸그리 무시해버릴까.
오늘도 역시 복잡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선배! 라고 부르며 달려올 너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벌써 일주일이 다 지나간건가?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복도에 서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차마 네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다.
어디서 너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선배, 이제 제 이름 아네요?' 라고 능글맛게 웃을 지도 모르니까.
첫 강의가 끝나고 두번째 강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도 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짜 내가 내기에서 이긴건가? 3일동안 계속 내가 무시를 하고 또 무시하니까 이제야 겨우 지쳐서 그만둔건가?
그럴거면 지금까지 왜 그렇게 달라붙고 그랬던 거래.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사물함 문을 쾅 닫았다. 사람 잔뜩 신경쓰이게 해놓고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고.
아니지. 이제 너를 신경쓰고 그럴 일은 없을테니까 그럼 나에게는 좋은 거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나도 오락가락할 정도로 기복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이 마구 울려댔다.
화면을 보니 석진선배였다. 선배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지? 그냥 카톡만 하면 될텐데... 어지간한 일 아니면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선배였다.
도서부에 무슨 일 생겼나? 아니면 지난번처럼 졸업한 선배들이 와서 깽판치고 그러고 있는 건가?
"여보세요?"
[어. 이름아. 거기 혹시 남준이 있어?]
"... 없어요."
[아. 그래? 도서부 일 때문에 잠깐 보자고 했는데 애가 연락이 안되네. 혹시 너랑 있나 해서 전화한 거야. 알았어.]
"저기, 선배."
[응?]
"저기... 음... 제가 전화해볼게요."
[너가? 웬일이냐.]
"뭐요."
[너 근데 남준이 번호는 알아?]
"..."
[병신. 카톡으로 보낼게. 전화해보고 연락 줘. 어떻게 된게 전화 한 통을 안받냐.]
010 - 1994 - 0912
선배에게서 온 네 번호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음이 길게 들려왔지만 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라서 안받는 건가? 생각해보니 너는 내 번호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잠깐만. 번호도 안물어보고 그런데 자꾸 앞에서 알짱거리고. 이건 또 뭐지?
내 시간표도 다 알고 있으면서 내 번호 하나 안물어봤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어째서?
세상에 이런 어장관리라는 것도 존재했었나?
괜히 분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하잖아. 지금 어장관리하다 지겨워서 잠수 타버린건가? 아니면 진짜 아파서 학교도 안오고 그런건가?
됐어. 나 이제 진짜 신경 안쓸거야.
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다르게 내 손가락은 계속해서 통화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진짜 아픈 거는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었나보다. 립밤을 제대로 바르지 않아 갈리진 입술 사이로 비릿한 피맛이 났다.
[여보세요?]
씨발. 받았다.
"너! 너 어디야."
[선배?]
"김남준 너 어디냐고? 학교 안왔어? 어디 아파? 병원 간거야? 그래서 안온거야?"
[선배. 제 번호는 어떻게 알고...]
"석진 선배한테 물어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파? 그래서 학교 안왔어?"
[...]
전화를 받자마자 석진선배에게 연락을 하라고 말만 하고 바로 끊을 생각이었는데 이놈의 입은 주인 말을 듣지 않았다.
속으로 혹시나 혹시나 생각했던 것들이 다다다 경쟁이라도 하듯 뛰쳐나오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의 너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왜 대답을 안하는 거야. 진짜 잠수타다가 내가 번호까지 알아내니까 당황스러워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진짜 아픈가?
"김남준. 너 진짜 어디 아파? 응?"
[선배.]
"왜. 감기는 아닌 거 같은데..."
[제가 이겼어요.]
"뭘 이겨... 아..."
젠장.
[나 지금 학교 가고 있는데 선배 어디에요?]
"..."
[정문 쪽에서 봐요. 안나오면 안돼요. 나 이제 선배 번호 알아요.]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통화는 끊어졌다.
아악. 씨발. 젠장. 이게 뭐야.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사물함에 머리를 쾅쾅 박아댔다. 미쳤나봐. 미쳤어.
아까까지도 절대 이름같은 거 안부른다고 고개만 두리번거리던 성이름 어디 갔다온거야. 귀신에 홀렸던 것도 아니고.
아니면 석진 선배한테 홀렸던 건가? 왜 갑자기 선배는 나한테 전화를 한 거야. 안그래도 복잡한 사람 머릿속 더 복잡해지게...
나는 울상을 지으며 한바탕 난리를 치느라 잔뜩 어지러진 가방 속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망했어. 어디부터 잘못된거지? 석진 선배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아니. 아니야. 그냥 너와의 내기를 시작한 거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래. 그거부터가 잘못된거야.
가방을 등에 맨 나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 정문으로 향했다.
언제 왔는지 정문 앞에 기대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망이라도 갈까.
안그래도 천천히 옮겨지던 발걸음이 점점 더 느려져만 갔다. 지금 핸드폰 보고 있는데 도망가면 나 못찾지 않을까.
"선배."
"..."
짧디 짧은 내 다리와 다르게 기다란 네 다리를 내가 잊고 있었나보다. 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서 허리를 살짝 숙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 그래... 안녕...
나는 쪽팔린 마음에 얼른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귀부터 달아오른다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려댔다. 어디를 봐야할지 조차도 감이 오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네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방금 전 너와 전화할 때 다다다 쏟아냈던 말들이 머릿속을 자꾸만 맴돌았다. 아. 쪽팔려. 따듯한 사람의 온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선배."
"왜, 왜."
"소원 들어줘야죠."
"빨리 말해. 석진 선배가 너 찾아."
그러자 너는 두 손으로 내 양볼을 감싸쥐고 고개를 들게 해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뭐, 뭐야...
모양빠지게 자꾸만 말이 더듬더듬 튀어나왔다. 주머니 안에 있던 두 손을 뒤로 해 꼭 그러쥐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너는 오늘도 여전히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랑 내기 한 번 더 해요."
"무슨 내기..."
"나랑 한 달만 사겨요."
"..."
"나 선배 좋아하는 거 같거든."
"뭔 개..."
"한 달 사귀고 나서도 선배가 나 귀찮고 싫으면 이제 내기는 그만두기."
"..."
"한 달 사귀고 나서 내가 좀 괜찮다 싶으면 계속 사귀는 거고."
"..."
"이게 소원이니까 무르기 없어요."
"야, 야..."
"남준이."
저 15학번 영어영문과 김남준이에요.
너는 웃음기 섞인 말투로 작게 대답하고는 뒤에서 꼼지락 거리던 내 손을 그러쥐며 살짝 흔들어보였다.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같이 밥 먹어요. 라는 매우 겁나 진짜로 느끼한 말을 내뱉으며.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그 내기는 어떻게 되었냐고?
제길스럽게도 젠장스럽게도 이번에도 내가 졌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았다.
"선배. 무슨 생각해요?"
"응? 아무것도 아니야."
내기에서 진 대가가 생각보다 귀여운 그런 똥강아지였으니까.
아무런 대가도 없는 이겼을 때 보다는 더 나쁘지 않고 좋잖아? 그치? 나만 그런가...
-
(흔한 내기에서 진 대가.jpg)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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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석진이의 거짓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주는 절대로 먼저 남준이를 찾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의 여주는 석진이가 남준이에게 거짓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답니다.
까맣게 몰라요.
눈치가 빠른 척 하고 빠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여주는 눈치고자랍니다.
"좋아해요."
"응?"
"나 선배 좋아해요."
"저기. 남준아..."
"선배는 나 어때요? 싫어요?"
다음편부터는 또다른 에피소드로 찾아올게요. 오늘도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