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주니어 - Believe
솔로로 데뷔한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아무래도 녹음 환경이 아닐까.
그룹으로 활동할 때는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도 하나하나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지만 솔로는 또 다르니까.
어차피 애드립을 하던 화음을 하던 뒤에서 깔아주던 작업은 늘 하던거니까 어려울 게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였다.
"가사 좀 외우라고."
"외우고 있다고."
바로 이 죽일놈의 기억력이었다.
유명 아이돌은 연애를 할까?
03
w. 복숭아 향기
그룹활동할 때도 물론 AR 때문에 대부분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AR이었다.
무대 위에서까지 내가 다른 멤버들의 가사를 외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솔로는 달랐다. 노래 가사는 물론이고 AR, 화음, 그리고 애드립까지 모두 내가 안고 가야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가사지를 보면서 녹음을 했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외워서 녹음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녹음할 때 가사지를 보면서 할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의 까다로우신 민피디님이 그건 절대 싫다고 말을 해놓으셨으니 안될 일이었다.
"안무는 어떻게 외웠었냐?"
"지금 다 까먹었어."
"잘하는 짓이다."
"아. 헷갈리잖아. 좀 닥쳐봐."
민윤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가사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중얼 가사를 외우고 있었다. 안그래도 바빠죽겠는데 왜 자꾸 그렇게 보는건지...
시선이라는 게 뚜렷한 감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사람의 얼굴을 따끔하게 만드는 그런 묘한 느낌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민윤기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민윤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뭐? 라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 얼굴 뚫린다."
"그냥 외워."
"그냥 외우는 게 쉬우면 내가 이러지도 않거든."
"너 자꾸 가사 틀리는 거 작사가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야. 지금 작사가를 뻔히 앞에 두고 녹음 당일날 다시 외우는 게 말이 되냐?"
"그니까 좀 닥쳐봐. 최대한 예의를 다해서 외우고 있으니까."
내 말을 들었는지 민윤기의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김남준이 푸스스 웃었다.
헤드폰 끼고 있으면서 내 말은 또 어떻게 들은 거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가사지를 다시 그러쥐었다.
민윤기 말마따나 작사가를 앞에 두고 이제 와서 가사를 외우는 건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김남준도 그렇고 민윤기도 그렇고 가사를 쓸 때 어떻게 쓰는지 내가 알고 있으니까.
오랜만에 달달한 내용의 가사였다.
지금까지 불렀던 노래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보다는 조금 오래된 연인들이 일상 속에서 속삭이는 듯한 그런 내용이었다.
어떤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왔는지는 안봐도 척이었지만.
이렇게 결과물이 나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좋은 거겠지. 아. 드디어 다 외웠다. 나는 가사지를 내려놓으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까먹으면 안되니까.
"다 외웠어?"
"어. 이거 가사 민윤기 너가 쓴 거지?"
"위에 써있는 작사가 이름은 괜히 있는 줄 아나봐."
"... 너 믹스테잎 언제 낼거야?"
"뭔 개소리야, 갑자기."
"그냥. 궁금해서."
"됐어. 마이크 놓은지 꽤 된 거 모르냐."
"..."
민윤기는 김남준의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무 대꾸 없이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남준은 민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민윤기는 역시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들었으면 하는데... 나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헤드폰을 썼다.
"녹음 시작하자."
겨우 외운 가사를 까먹기 전에 얼른 녹음을 시작해야했다.
-
"나도 잘 몰라."
"그래?"
"응. 연습생 그만 둔 건 다리 다쳐서 춤 못추니까 그만 둔 거로 알고 있는데..."
"그건 나도 들었어."
"처음에 프로듀싱 한다길래 그럴 줄 알았다 뭐 이런 생각은 했거든. 다시 믹스테잎 내면서 그렇게 지내겠구나... 이런 생각?"
"..."
"김남준은 가끔 앨범도 내고 그러는데 말이지."
"김남준은 알아? 왜 그러는지?"
"안물어봤어. 혹시 몰라서."
그렇구나...
나는 말끝을 흐리며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혹시나 알까 하고 물어봤는데 너 역시도 제대로 된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수민이 없을 때 물어봤는데...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언니 어디 아파요?"
"응?"
"나 없는 사이에 오빠가 뭐라고 했어요? 아니죠?"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니지?"
"아니거든."
"됐어. 도둑놈아."
언제 왔는지 수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내 그릇에 고기 한 점을 놓아주었다.
너 많이 먹어.
내가 다시 수민이의 그릇에 고기를 놓아주자 수민이는 나를 샐쪽 노려보며 상추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상추 위에 고기만 가득 싸서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 라고 말을 하며.
"수, 수민아?"
"언니 빨리 아. 아까부터 잘 먹지도 않더만."
도와달라는 의미로 너를 바라보았지만 너는 흐뭇하게 웃으며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볼 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내 입에 저게 다 들어갈 거 같아? 그렇다고 해서 수민이가 해맑게 웃으며 건네고 있는 상추쌈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상추쌈을 베어물었다. 한 입에 들어가는 건 절대 무리. 한 입 베어물고 우물거리다 남은 한 입을 다시 몰어넣었다.
아. 크다. 입 안 가득 고기랑 상추야.
"꼭꼭 씹어."
한참동안 우물거려도 고기는 다 씹히지 않았다.
겨우겨우 목구멍으로 넘기고 물잔을 집으려 손을 뻗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는 너와 눈이 마추졌다.
너는 환하게 웃어보이며 상추쌈을 만들고 있었다. 역시나 상추 위에는 고기만 가득 쌓여있었다.
"아니다."
"뭐가?"
"그,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넌 좀 먹어야 해."
"나 내일 사녹있어. 절대 안 돼."
"아, 맞아. 언니 내일 인기가요 나오죠?"
"응. 나 내일 사녹있어.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오빠. 더 올려. 안그래도 언니 요즘 너무 말라보인단 말이야."
"더 올릴까? 상추 모자란데."
"밑에 하나 더 깔아."
이런...
내일 사녹이 있다는 내 변명은 절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부추겼으면 부추겼지.
결국 나는 너와 수민이가 만들어주는 상추쌈을 모두 먹어야 했다. 거절을 못하는 게 죄라면 죄였다.
사랑이 넘치는 남매 덕분에 내 볼 역시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
연습이 있는 호석이는 먼저 가고 나와 수민이는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수민이는 아이스크림 한 입 먹고 나 한 번 보고 다시 아이스크림 한 입 먹고 나 한 번 보고 이렇게 번갈아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 저녁에 내려간다고 했었나. 교복입고 서울까지 올라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자기 오빠 이겨보겠다고 바락바락 달려드는 모습도 귀여웠지만 역시 자기 나이대처럼 마냥 어려보이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렸다.
"언니."
"응?"
"나 진짜 언니 좋아해요."
"고마워."
"솔직히 오빠가 여자친구 있는거 별로 안좋아했는데 언니는 언니가 아까워요."
10년이 넘도록 같이 지내온 오빠보다 내가 아깝다는 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러면 안 돼 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나는 푸스스 웃으며 수민이를 바라보았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수민이의 숟가락이 잠시 멈칫했다.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
"오빠 안그래도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수민아."
"오빠한테 말하지 마요. 나 이런거 말했다는 거 들키면 진짜 쪽팔려."
수민이는 다시 배시시 웃으며 숟가락을 움직였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남매는 남매라는 건가. 이런 말을 하기에 조금 미안하지만 수민이를 보면 가끔 은영이가 떠오르곤 했다.
외동이고 이제 그룹도 아닌 솔로가수인 나에게 동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은영이 뿐이었으니까.
아. 은영이 보고싶다. 다음달에 들어온다고 했었나. 나중에 전화 해봐야지.
딸랑.
문이 열리고 교복을 입은 소녀 두 명이 들어왔다.
구석진 곳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왔었는데. 지금도 가게 안에는 우리 말고도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두 소녀를 잠시 바라보다 바로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사람이 뚫어져라 바라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아이들은 주문을 하고는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 중 한 명이 자꾸만 우리 쪽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모자를 쓰고 나올 걸 그랬나.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왔던 냅킨을 만지작거렸다.
"대박."
"왜?"
"저기. 성이름 맞지?"
"성이름? 누군데?"
"몰라? 그 있잖아. 자기 멤버 감방 보내놓고 솔로로 나온 애."
"아. 한창 막 기사나고 그랬던? 그게 성이름이었어?"
"어. 여기 근처에 연예인들 많이 산다더니 이사왔나보네."
"대박이다, 진짜."
자리가 멀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이 하는 대화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들은 건 아니겠지. 다행히 수민이는 아무것도 못들은 눈치였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폈을 뿐 별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냅킨을 내려놓았다. 한참동안 만지작거려서인지 이미 냅킨 한 쪽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있었다.
"오빠?"
"네. 언니 너무 귀찮게하지 말고 들어오래요. 내일 버스 타야한다고."
"천천히 먹어. 다 먹으면 들어가자."
"다 먹었어요. 언니 내일 음악방송 있잖아요. 들어가요."
수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을 카운터에 갖다주러 갔다.
나는 곁눈질로 두 소녀를 힐끔 바라보고는 이내 아무것도 모르는 척 겉옷을 꿰입었다.
별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수민이가 이상한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의 화제는 다른 곳으로 넘어간지 오래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민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안이 따듯했어서 그런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한기가 오늘따라 더욱 차갑게만 느껴졌다.
-
기어코 괜찮다고 말을 하는 수민이를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아파트 단지 안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차가운 바람을 쐬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멤버를 감방에 보내고 혼자 나와 솔로를 하고 있는 가수.
어쩌면 이게 나를 지칭하는 말인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연예계에서 이런 일은 흔치 않았으니까.
요즘 내 옆에서 좋다, 잘한다, 예쁘다 라는 말만 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잠시 잊고 지낸 모양이었다.
그래.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고 좋게 봐주겠어. 하다못해 음식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사람은 더하겠지.
머릿속으로 괜찮아 괜찮아를 되네여봐도 한 번 가라앉은 기분은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이럴 때는 기복이 좀 심했으면 좋겠어. 나는 푸스스 웃어보이며 자꾸만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맛있게 고기도 먹어놓고 이게 무슨 청승이야. 얼른 들어가야지.
크게 기지개 한 번 켜고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씻고 자야지. 내일 새벽에 나가야하니까.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손가락 끝으로 작은 종이 조각이 만져졌다.
껌 종인가? 나 껌 안씹는데. 뭐지 하는 마음으로 종이 조각을 꺼내보았다.
작게 접혀진 쪽지였다.
[내일 사녹 잘해. 엠씨 석진이 형이 본다니까 심심하면 같이 놀아. 못가서 미안해.]
너의 글씨체였다. 바보.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쪽지를 꼭 그러쥐었다.
가라앉아있던 기분이 조금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까보다는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명에는 하나씩 불이 들어왔다. 별 거 아닌 이런 것 하나하나가 왠지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작은 이벤트인 것 같았다.
쪽지 하나로 진짜 별의별 기분을 다 느끼는구나.
오늘도 현관문 앞에는 작은 선물 하나가 놓여있었다.
투명한 비닐로 싸여있는 작은 곰인형과 하얀색 카드였다. 이건 또 누구지?
나는 조심스레 비닐을 뜯어 안에 들어있는 카드를 열어보았다. 내 손바닥만한 카드에는 워드로 적은 듯한 짤막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힘내요.]
너가 보낸 건가? 보낸 사람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나는 푸스스 웃으며 곰인형을 품에 안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 인형도 침대 머리맡에 놔두고 자야지.
나름 내가 기복이 안 심한 편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아까는 땅으로 꺼질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두둥실 떠올라 하늘에 닿을 것 같은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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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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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달
암호닉 신청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
혹시나 신청했는데 등록이 안되신 분들은 다시 말씀해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길거리 지나가다보면 요즘은 교복 입은 학생들이 몇몇 보이곤 해요.
개학시즌이 다가왔다는 거겠죠. 조금 있으면 봄방학이 바로 시작되겠지만요. (조금이 아닐수도...)
졸업을 한지 시간이 꽤나 흘러서일까요. 가끔은 교복을 입고 싶다는 생각도 들곤 해요.
근데 제 고등학교 교복은... 이사가면서 버리고 말았지만요. 나름 추억이니까 간직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요.
쪽지라는 것은 힘이 엄청난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손으로 쓴 편지 아니면 쪽지를 매우 좋아한답니다.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쪽지 주고받고 그랬거든요. 특히 저는 핸드폰이 없어서 쪽지를 매우 애용했었죠.
물론 폰트도 예쁘고 카톡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뭔가 내가 직접 쓰는 그런 게 그립고 좋을 때도 있으니까요.
제 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항상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그럼 맛있는 저녁식사 하세요! 저는 이만 밥먹으러 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