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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똑같은 일상, 그리고 늘 똑같은.
"야, 공부 제대로 안하지?"
"니 그렇게 살다가, 저기 지나가는 할아버지 보여? 저렇게 되는거야"
나에게 들려오는, 남을 깎아내리며 날 비판하는 목소리들
"야, 세븐틴인지 뭔지 그만 좋아해. 걔네가 네 인생에 도움되는게 있어?
걔네보다 더 중요한게 지금이시기야. 정신 안차리지?"
그리고, 들려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끔찍한 칼날들
저걸 밟으면 너무 아플텐데,
[세븐틴/홍일점]
이터널 선샤인 (1/5)
"나 왔어-"
쳇바퀴에 올라탄 햄스터처럼,
늘 반복 되는 일상.
그리고,
엄마 오늘 집에 못 들어가. 아빠는 급하게 출장갔어
여기 돈 두고가니까 배달음식 시켜먹어
-엄마-
나에게 무관심한 가족들
"하.........너무 힘들다 진짜"
무언가에 이끌리듯 켠 티비.
그리고 그 안에 비춰진
"우왕, 세븐틴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어쩌면 내 동경의 대상.
나랑 비슷한 또래인데도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꾸며 행복한 아이들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다"
답답해진 마음에 집을 박차고 나간다
그래봤자 향한 곳은 아파트 복도.
"하........"
하고싶은게 많으면 뭐해, 늘 이렇게 같혀사는데.
"따르르-릉"
그때, 울리는 전화
"여보세여?"
"어, 딸~"
"아빠?"
"어. 거기 지금 몇시지?"
"여기 열한시."
"이제 자야겠네 우리 딸~"
"아빠 술마셨어?"
"쬐-끔."
"아빠. 의사가 먹지 말라고 했잖아!"
"일하다보면 어쩔 수 없어. 싫어도 마셔야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
해선 안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 일이 나를 갉아 먹는 독이라는 걸 알아도, 해야만 한다.
"........그런게 어딨어!"
"어른 되면 다~ 그런거야"
"..............."
"딸, 지금 울어?
"....아냐. 안 울어"
"추우니까 전기장판 따땃하게 틀어놓고 자라. 굿나잇"
"아빠 지금 필리핀 갔구나?"
"역시 우리 딸. 잘자"
"응. 아빠도-"
피곤에 쩌들어있는 아빠의 음성.
내가 나에게 관심 가져달라고 투정부리지만 않았어도
아빠는 전화로 낭비한 5분을 더 잘 수 있었을텐데.
아, 난 왜 이렇게 남에게 도움이 안 되지?
+
"이제 wake up~ wake up"
정확히 6시 반이 되면 울리는 휴대전화.
로봇처럼 터덜터덜 일어나 향하는 화장실.
얼굴 씻고, 이 닦고 옷 입으면 어느새 일곱시.
또다시 터덜터덜 집 문을 열고 누른 엘리베이터 버튼.
그리고, 띵동, 하고 울리는 휴대전화
[17's 호시] 오늘도 화이팅! 팬분들 힘내세요! 저, 그리고 세븐틴이 늘 응원할게요♥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그들.
다시 띵동, 하고 울리는 엘레베이터.
올라타자 보이는 피폐한 얼굴.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는데.
다시 한번 띵동, 울리는 휴대전화.
(성수): 야, 이거 봄? (사진)
그리고 보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법}
이라는 말도 안돼는 개소리들.
미친 새끼, 얘도 공부만 하더니 정신을 놨어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성수가 보낸 사진 한장.
엘리베이터에 타서, 17층 한번, 13층 한번, 4층 한번.
4층이 열리면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다시 17층과 13층
그리고 1층에 도착하면, 절대 눈을 뜨지말고 바깥으로 걸어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4층.
그러면 다른 세계로.
지금은 20층.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미친 것 같지만. 미친 세상이니까
17, 13, 4
차례로 누른 엘리베이터 버튼
딩동, 차례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딩동, 4층입니다"
침을 꿀꺽, 삼키고 걸어나간 바깥.
이상하게 스산한 공기, 막 입고 나와 살짝 젖은 와이셔츠 안쪽에서 흐르는 땀 한 줄기.
다시 들어와 차례로 17층과, 13층.
그리고. 1층
눈을 꼭 감고 한발 내딛자, 들려오는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
삐-, 하고 귀를 울리는 이명.
절대. 절대 눈을 뜨면 안돼.
겨우겨우 돌아온 엘리베이터 안,
닫히는 문, 사라지는 소음, 땀으로 흠뻑 젖은 몸.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누른 4층.
"딩동, 4층입니다"
열리는 문, 느껴지는 밝은 햇살.
문 밖으로 발을 내딛자 또 다시 들리는 이명,
그리고 고꾸라지는 몸.
+
소란스런 소리, 쿵쿵대는 음악,
부산한 발걸음들, 코끝을 찌르는 아릿한 땀 냄새.
"세봉아, 세봉아 괜찮아?"
내 몸을 흔드는 익숙한 목소리.
"걱정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진작에 다이어트고 뭐고 다 집어치우랬지.
너 충분히 말랐다고"
힘겹게 뜬 눈 앞에 보인,
"...........최승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