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좋아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너는 남자, 나도 남자. 그러니까 우린 둘 다 남자라는것. 첫번째 문제였다. 그래서 포기하고 혼자 숨어왔었다. 분명 남자인 나와는 이뤄지지않을게 뻔하니까. 그런데 이젠 아니다. 너도 남자를 좋아한다. 몇 년을 고민했던 첫번째 문제가 허무하게 풀려버렸다. 하지만 해결과 동시에 두번째 문제가 생겼다.
너는 남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내가 아니다.
[홍정호와김영권] 세번째 문제
너가 첫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너는 내게 첫사랑의 기억을 하얗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큰 빛이였다. 환하게 빛났다. 그 모습에 첫 눈에 반했고 그 모습에 들러붙던 여자들 때문에 너를 포기하길 시도했다. 하지만 너는 끊임없이 빛났고, 나는 끊임없이 몰래 너를 눈으로만 쫓아다녔다. 그러던 중 발견한 건 그 남자. 절대 작은 키도 아니고 호리호리하다던가 여성스럽다던가 하는 부분은 전혀 없는 근육이 잔뜩 껴있는 웃음이 멋진 남자였다. 다만 너보다는 키가 작았고 예뻤다. 그 남자를 발견하고 난 뒤 바로 너를 봤을 때 너는, 그 남자를 쫓아다녔다. 나처럼 눈으로만.
자철이형!
어 정호야.
형 오늘 저녁에 약속있어요?
아니, 없는데 왜?
형이 좋아할만한 음식점 하나 길가다가 발견했거든요. 한 번 같이 가보자구요.
진짜? 무슨 음식점인데?
일본음식점인데, 딱봐도 형이 좋아할만한 스타일. 여기서 걸으면 20분 정도 걸려요.
오키! 나 수업 네시 조금 넘으면 끝나니까 걸어가면 되겠다. 연락할게 기다리고 있어! 너도 얼른 강의 들어가.
네, 좀있다가 전화할게요.
난 분명 눈으로만 쫓아다녔을 뿐인데, 소리까지 저절로 듣게 되었다. 듣기 싫었다. 그와 너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싫었다. 아마도 함께 걷고, 밥을 먹을 그와 너를 생각하면 나는 하루종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만 했다. 너가 만약 여자를 만난다면 적어도 밤까지 새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는 남자다. 그토록 나를 방해했던 남자라는 이유가 이렇게 쉽게 무너져 내려 되려 나를 괴롭힐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영권아!
어....어?
뭘 그렇게 멍때리냐, 니 옆자리 빈거같은데 나 여기 앉아도 되지?
이 까짓 것 강의따위가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물론 내 옆자리에 너가 없었다면 이 강의는 이 까짓 것 강의따위가 아니라 정말 집중해야하는 전공강의였겠지. 나는 너를 몰래 눈에 담느라 바빴다. 바쁘게 필기하는 너의 손, 교수님을 따라가는 너의 눈, 너의 입에서 나오는 편안한 너의 숨, 숨에 따라 움직이는 너의 가슴팍까지도. 너의 샤프가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마저도. 단 하나도 놓칠 수가 없었다.
- 백성동, 홍정호, 지동원, 김영권!
ㄴ....네?
- 너네는 3조다.
우리 조 발표 있잖아. 그거 조 불러주는거래.
.....아
- 이상 조 발표 끝! PPT 발표는 다음 주 이 시간에 할거니까. 다들 바짝 준비해 오도록!
야 성동아! 동원아! 너네 지금 시간 괜찮냐? 그럼 잠깐 모여서 회의 좀 해보자.
강의 때 우리가 앉았던 책상의 끝에 걸터앉은 채 회의에 참가하는 척 하던 나는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책상에 걸터앉은 너를 또 어떻게든 더 눈에 담아보겠다고 안달나 있었다. 우리의 회의는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금새 끝이 났고, 성동이와 동원이는 급한 일이 있다며 회의를 끝내자마자 급하게 나가버렸다. 미팅이겠지 아마.
영권아
응?
우리 PPT는 누가 만들기로 했었지?
동원이....
에고 성동이가 아니라 동원이었구나. 나 지우개좀.
어.... 나 지우개 없는데.
아 진짜? 그럼 거기 책상 위에 있는 내 필통 안에 지우개 있는데.... 아 아니다. 그냥 내가 가져갈게.
라고 말하면서 너는 내 쪽,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의 필통이 있는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꽤나 나랑 가까이 있었던 너의 필통을 가져가기 위해 너는 나와 밀착아닌 밀착을 하게 되었고, 지우개를 가지고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 가려는 너의 팔을 내가 무작정 잡은 건 그냥. 그냥 잡았다. 충동적으로. 너에게서 빛이 나길래.
정......호야
왜? 무슨 일 있어?
너........... 자철이형 좋아하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나는 그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너가 여기서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싫다. 그랬다간 첫번째 문제가 다시 살아나 나를 괴롭힐 거고, 또 밤을 새며 고민하고 힘들어할 내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싫었다. 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이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혹은 좋아했으면. 무슨 대답이던지 행복과 불행은 나에게 함께 찾아올 것이었다. 너의 입에서 무슨 대답이 나오던지 이제는 상관없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꽉 감고 겨우 던진 내 질문에 허무하기만 한 대답을 하는 너에게, 그런 사고를 저지른 걸지도 모른다. 아까 전에 충동적으로 니 팔을 잡아챈 것처럼. 빛에 홀려 충동적으로.
...............뭐하는 거야.
자철이형한테 이렇게 해주고싶지 않아?
방금 뭐한거냐고.
너도 자철이형한테 이렇게 만지고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키스해주고 싶잖아.
그래서?
나도 그래. 나도 너한테 만지고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키스해주고 싶고!!!!!!!! ........그래서.... 방금도 그래서..... 그랬어.
..........그런거였냐?
정호야................. 홍정호!!!!!!............................... 나...... 너랑 자고싶어.
비록 병신같지만 겨우 힘겹게 마음 속에서 방금 막 꺼낸 따뜻하게 뛰고 있던 내 고백은
헛소리하지마.
............너의 그 한마디로, 금새 얼음장처럼 차가워져버렸다. 이렇게 나는 너에게 허무하게 거부당했다.
그리고 동시에 거부당한 나의 고백은, 나에게......... 세번째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