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ON/김한빈] 봄이 오기 전, 벌써 넌 내게 봄이 되었나
by. 2740
졸업한 학교에서 나는 유명한 편이었다. 학교에서 유명하다 하면 대회를 많이 나가거나, 예쁘거나, 사고를 많이 치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로 인해 유명해지는 경우.
좀 더 크게 다가가면 선생님들 사이에서 유명하거나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하거나, 혹은 둘 다.
나는 예쁘지도 않고, 사고를 많이 치지도 않고, 대회를 많이 나간다거나 주변 사람들이 난리를 치지 않는다. 물론 주변 사람이 몇 없는 것도 있지만.
선생님들 사이에선 유명하지 않다, 난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아니, 유명했다.
노래를 잘하는, 그런 아이로.
작년 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할 때 학교를 적응하기도 전에 동아리를 모집했다. 나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은 오래 전에 접었고 아쉬운 마음에 근처에서 서성이는 중이었다.
중학교 때는 노래를 멀리했었다. 정확히는 중학교 3학년. 노래하는 대회면 선생님께 울면서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주저앉아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뭐 그 정도.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 다양한 동아리 포스터를 접하고, 특히 '보컬반' 포스터를 접하고 나는 동공이 흔들리는 대신 마음이 흔들렸다.
창 밖에 부는 꽃바람처럼 다시 내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했다.
노래,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보낸지 1년이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마치 나에겐 숨쉬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아서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 지 모르겠는 기분.
아직 생각의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포스터에 적힌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면 내 생각도 함께 정리될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다.
[ 동아리 포스터 보고 연락드려요. ]
[ 학년, 반, 이름 보내고 다음주 금요일에 2학년 2반에서 만나요. 노래 한 곡 준비해오세요. ]
아마 동아리 부장이겠지. 노래 한 곡 준비하라는 거는 오디션일테고.
그 다음 금요일까지, 오디션 당일까지 나는 한 번도 연습을 하지 않았다. 두려웠다. 한 편으로는 실험을 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그 자리에서 뛰쳐나올까, 아니면 그 자리를 내 목소리로 채울까.
마지막 순서였던 나는 긴장을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동아리 선배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5명 정도 앉아 심사하고 있는 곳에서, 나는 갑자기 가슴이 쿵하고 뛰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마치 긴장이 풀린 사람처럼 다리가 풀림을 느꼈다. 무너지는 게 싫었다.
현실과 꿈에 부딪힌 내가 싫었고, 그 상황이 싫었다.
" 다리에 힘이 풀려요? 앉아서 할래요? "
다정한 목소리, 그리고 막혀있는 양쪽을 보고 책상을 넘어와 내게 의자를 가져다주는 사람.
김한빈, 노란색 명찰에 예쁘게 쓰여 있는 이름이 내 마음에 새겨졌다.
" 불러요, 노래. "
자리로 돌아간 김한빈이 내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나는 항상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면, 꼭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물론 난 소중함을 느꼈지만, 상대는 아니어서 그 노래는 꽁꽁 숨기며 살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마음에 담아둔 노래를 그 눈을 맞추며 불러나갔다.
노래를 마치고, 김한빈은 미세하게 웃었다. 종이를 보고, 입술을 만지며 펜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집에 가기가 싫었다. 버스를 여섯 번이나 놓친 것 같았다. 배차 간격이 짧은 편이 아닌데, 그렇게 꽤 오랫동안 멈춰서 '나'를 생각했던 것 같다.
" 김너콘? "
김한빈이었다. 심사가 모두 끝나고 각자 집으로 흩어진 건지 그 혼자였다.
내 옆으로 와서 앉더니 다짜고짜 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세웠다.
그의 손이 내 치마로 향했다. 눈은 내 눈을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치맛단을 잡고 한 두번 당겼다.
" 너무 짧아, 나 선도부다. "
웃으면서 내 치마를 내리는데 내려가지 않자 자신의 가디건을 벗어 내 허리에 둘러주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복장이 자유로운 편이라 누군가 내게 복장 지적을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선도부라며 내 치마를 내려주며 나를 보고 웃는 그가 따스했다.
" 나 같애, 너. "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 동안 내게 딱 네 글자를 건넸다. 마침 버스가 도착했다.
같은 버스를 타는 건지 같이 올라타 카드를 찍고, 뒷자리에 앉을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나 같애, 너.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김한빈은 노래같았다. 대하기 너무도 어려웠다.
" 나는 노래 아니고 랩, 근데 나랑 똑같다 너. "
" 뭐가요? "
" 나도 작년 오늘 다시 처음으로 랩했어. 나도, 다리가 풀렸어. 난 그냥 바닥에 앉은 채로 랩했는데, "
" ... "
" 너는 그렇게 안할 것 같아서. 그냥 도망갈 것 같은 눈이어서. "
날 알고 있다. 나도 몰랐던 내 속마음을 들킨 게 마음에 얹혀 눈물로 변질됐다.
눈물은 싫은데, 고개를 숙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봤지만, 그럴 수가 없지.
그 사람의 눈은 별을 담아뒀거나, 꿀을 채웠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 왜 울어. 목소리도 예쁘던데. 나중에 내 랩에 노래해줘. "
그리고 내게 내밀던 새끼 손가락. 그 손가락이 예쁘고, 손이 예뻐서 더 울었다. 소리 내서 울진 못했지만 고개를 더 숙이고 울었다.
김한빈이 나를 안았다.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등을 토닥이지도 않았다.
그냥 날 안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내게 말했다.
" 김너콘, 나 이제 곧 내리거든? 울지마. 넌 합격인데 난 불합격인가봐. 아마 동아리 첫날에 난 없을거야. 내 생각하면서라도 버텨줘. "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내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를 뒤로 넘겨주었다.
" 나중에 꿈에서 만나자. 나 갈게. "
봄이 갔다. 김한빈이 버스에서 내리고, 나의 봄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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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호 잡지인터뷰 -special guest
" 김너콘 씨, 이번에 많은 곳에서 신인상 후보로 언급되고, 몇 개는 이미 수상을 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
" 너무 좋죠. 도와주신 분들이나 응원해주신 분들, 항상 너무 감사했는데 또 감사할 일이 늘어나서.. 이제 베풀어야죠. (웃음) "
" 수상소감 끝에 항상 '김한빈 고마워'를 빼놓지 않으시던데, 김한빈이 누군가요? 이제 김너콘 씨를 치면 연관검색어에 김한빈이 오를 정도로 요즘 관심이 뜨거운데요. "
" 제가 사실은 음악을 포기했었거든요. 근데 고등학교 때 봄바람처럼 제게 다시 노래를 주고 사라진 사람이에요. "
" 정확히 지금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가요?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혹시 남자친구? "
" 남자친구는 아니고, 첫사랑이에요. 사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같은 하늘을 보고 있지 못해요. 저만 보고 있어요. "
" 아.. 혹시 그 분은 위에서 김너콘 씨를 지켜보고 있는 뭐, 그런 건가요? "
"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 "
**
"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배. "
" 어, 뭔데? "
" 김한빈 있잖아요. 아니, 김한빈오빠. "
" 김한빈? "
" 네, 어디갔어요? "
" 아마 지금쯤 천국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
" 네? "
" 근데 아마 넌 못 봤을텐데? 한빈이 어떻게 알아? "
" 그냥.. 오고가다 알게 됐어요. 갑자기 연락이 끊겨서.. "
" 2년 됐어. 그니까 니가 중학교 3학년 때? "
**
" 그럼 함께 덧붙인 '꿈에서 만나자'도 그 분이 말씀하신 건가요? "
" 네,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 그 말이에요. 꿈에서 만나자. "
iKON 데뷔 전에 처음 인사드렸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iKON이 데뷔한지도 5개월이 지났네요 -
단편으로 찾아온다던 기억이 있는데, 너무 늦게 왔죠 ㅠㅠㅠㅠㅠㅠ
오늘 한빈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잠깐 들렀습니다 ! 좋은 밤, 좋은 하루 :-)
지원아 아프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