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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새로 고침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12. 수면 아래 | 인스티즈

별이 떨어진다면 당신이 있는 공간으로

- 성동혁, 1226456





















특별 호 D-7.

그린 에이지 단독 인터뷰 「 이지훈의 모든 것」 트레일러가 삽시간 만에 1위를 기록했다. 메인 포털과 소셜 네트워크를 넘나들며 누적 조회 수 사백만을 넘긴 영상은 유튜브 상위 트렌드에 안착한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탔다. 기자 못지않은 발 빠른 기성 건축가 블로거들도 실시간 포스팅으로 사족을 덧붙였다. 그들이 알고 싶은 건 이지훈의 A to Z. 스노우 화이트지에 쓰이는 족족 그들의 배부른 양식이 될 예정이었다.

특별 호 제작에 참여한 직원들은 축배하듯 모닝커피를 맞댔다. 모두가 성공에 가까워진 얼굴들이다. 성공의 주축이라 부르며 내게 덕담을 주는 그들을 조용히 지나친다. 차마 어울리지 못한 낯이 사무실을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수십 개의 페이지가 열린 휴대폰을 꼭 쥐고서.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12. 수면 아래 | 인스티즈

지훈은 도화선의 거대한 불꽃이었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K건설과 지훈의 이름이 하나의 키워드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지훈의 예상대로 K건설 경영과 주식 등, 그의 등장에 이유를 묻고 추측을 갖다 붙인 파생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종국에는 그가 입상한 국제 공모전과 올해 젊은 건축가상까지 논란을 제기 받기도 했다. 대기업 K건설 외아들이라면 인맥으로 부정을 저지르고도 충분하다는 어느 익명 무리의 궤변 때문이었다.

모든 건 순식간이었다. 새벽 한 시를 기점으로 그들은 주최 측과 K건설의 유착관계를 사실처럼 떠벌렸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뒤가 구린 법이라고 여론을 선동했다. 선날의 파편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ID 저너누의 ‘이지훈은 갈채 받아 마땅하다’ 게시글이 아니었다면 대중은 수긍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지훈과 A대 건축학과 동기였다는 ID 저너누는 해당 대학 건축학도만 알 수 있는 506호 작업실 페프릭 소파와 그 안에서 쪽잠을 자는 지훈의 인증샷을 필두로 호소에 가까운 글을 써 내려갔다. 게시글 전문의 어조는 침착했지만 확신의 분노였다.

당시 건축 공모전 경쟁자 사이에서도 지훈은 의심할 여지 없는 실력자였으며, 타 학교 건축학과 교수까지 찾아와 면담했을 정도로 지훈은 우수한 학생이었음을 첫 줄부터 못 박았다. 규격화된 시선에서 벗어나 언제나 자신만의 건축을 이뤄냈던 지훈이었기에 젊은 건축가상 또한 마땅했다고 ID 저너누는 말했다. 건축학과 작업실에서 5년간 동고동락하며 지훈의 좌절과 실패를 직접 지켜본 ID 저너누는 현재 떠도는 논란에 대해 단호히 말했다.

고통 없이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은 잘도 신뢰하면서, 한 사람의 최선과 노력을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주 얄팍한 짓이라고.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12. 수면 아래 | 인스티즈

―  그래도 내가 인터뷰를 했던 이유는…… 내 이름 옆에 네 이름도 같이 있으니까.

……

―  같이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건 색안경에 가려진 그들의 피상적인 시선이었음을. 그로 인해 순수한 열망과 거룩한 성취마저 얼룩지게 되리라는 것도.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12. 수면 아래 | 인스티즈

― 인터뷰 담당은 네가.

……

―  연락할게.










어떤 마음으로 넌 매번 카메라 앞에 섰던 걸까. 결국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 위로 떠 오른 네가. 










― 여보세요?

― 응, 듣고 있어.

― 목소리 왜 그래.

― 나? 괜찮은데…….




현재 인천 공항 수속을 마친 지훈은 런던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타바코 면세점에서 돌아오지 않는 설계 팀장을 기다리며 나와 통화를 하던 그가 문득 말이 없다. 휴대폰 너머 분주한 여행객의 발소리만 가까워지다 멀어진다. 애꿎은 손톱 거스러미를 뜯었다. 빨간 핏물 위로 돋아나는 그것을 자꾸만 처리하고 싶었다. 지훈의 침묵이 내겐 그랬다.

멀리서 런던 행 탑승 안내 방송이 들렸다. 지훈은 직감하듯 먼저 말을 꺼냈다.




― 인터뷰하겠다고 너 찾아갔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야. 오해와 편견이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숨어있기엔 네가 준 명함이 너무 빛났거든.

……

―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네 앞에서 후회 없이 다 말하고 나니까 오히려 편해. 이젠 어떤 상처를 받아도 그건 더이상 나한테 상처가 아니야. 

……

―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말했잖아, 같이 있으면 무섭지 않다고.










바다는 수심이 깊을수록 완벽한 파랑에 가깝다.
하여 그 수면 밑은 누구도 쉽게 알지 못한다.










― 내 글, 써줘서 고마워.










그 바다가 당신이라면 더더욱.




















Oh My Rainbow
; The Finale






























12. 수면 아래






























대박! 저희 리트윗 이십 만 넘었어요!

오늘부터 다이어트라는 최가 생크림 빵을 날리며 방방 뛰었다. 특별 호 발행 기념 트위터 이벤트로 진행된 지훈의 친필 사인과 실제 도면 제작 과정을 담은 한정판 부록에 대박이 난 것이라.

지훈 씨 금빛 잉어 맞다니까요! 저희 이대로 쭉쭉 가는 거죠? 그렇죠? 지훈을 태운 런던 행 비행기가 이륙한 지 세 시간 째, 참을성 없는 최는 금빛 잉어 지훈의 초고속 귀국을 바랐다. 출근길 세안을 마친 박이 최의 이십만 타령에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뭐가 이십 만이에요? 예? 저희 공계 알티요? 이만 아니고 이십 만이요? 우리 뭐 잘못했어요? 사장님이 건물 날려 먹었대요? 설마 밴쿠버 본사 망한 거예요? 그래도 정규직은 살아남는 거죠? 저 장남인데!

최는 박의 뒷목을 잡고 모니터 앞으로 밀었다. 충북 순이네 추어탕 3주년 수건으로 입을 막은 박이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최도 그 뒤를 따랐다. 옥상에서 식후 담배를 빨고 있을 라이프지 팀장을 찾아간 듯싶었다.

그들을 태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공교롭게도 잔뜩 인상을 구긴 라이프지 팀장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줄담배를 피운 탓인지 입구에서부터 니코틴 냄새가 진동했다. 급한 성격과 비례한 팀장의 슬리퍼가 바닥에서 연신 파닥거렸다. 팀장의 목적지는 나였다.




― “방금 나온 기사 봤어?”

― “기사요?"




열 받은 아이패드는 팀장의 아치형 눈썹만큼이나 단단히 화가 났다. 기사는 타이틀부터 자극적이었다.










[단독] K건설 외아들, 드디어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나… 약혼 공식 입장을 기대하기도

이창병 (56) K건설 회장의 외아들인 이지훈 (27) 씨가 그린 에이지 코리아 단독 인터뷰로 베일을 벗는다.

일각에서는 그간의 행보를 통해 이지훈 씨가 K건설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11일 K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이지훈 씨는 올해 블라인드 면접을 거쳐 K건설에 입사한 뒤 자체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K건설 최측근은 “외국계 매거진 인터뷰를 발판으로 국내외 출사표를 던져 본격적인 후계자 경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K그룹의 선두인 K건설 4세 후보로 이지훈 씨를 포함해 K에너지 부사장 (1983년생), K칼텍스 전무 (1985년생), K메카텍 이사 (1981년생) 등 4명이 거론된다.

지분율은 이창병 현 K건설 회장이 10.55%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서 변수가 없는 한 이지훈 씨가 향후 승계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비공식 석상에 나타난 이지훈 씨는 T그룹 자재 수출 계약에서 이 회장의 옆을 지키는 등 차기 후계자의 모습을 보였다.

측근은 “지난여름부터 이지훈 씨가 비공식 계약 건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며 직접적으로 후계 가능성에 대해 입을 모았다.

한편 이지훈 씨와 T그룹 장녀 P 씨의 저녁 만찬은 비공식 석상 당일이다. 재작년 T그룹과의 약혼설 진위에 또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다가올 K건설 50주년 파티에서 이와 관련한 긍정적인 입장을 내보일 것”이라고 약혼설에 힘을 실었다.

그린 에이지 코리아 특별 호 ‘이지훈의 모든 것’은 오는 11월 21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방송국 기자 [email protected]










― “지훈 씨 정말 경영하겠대? K건설 경영 얘기만 나오면 도망치던 사람이 갑자기 출사표를 던져?”

― “…….”

― “경영은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 약혼은 뭔데? 사진까지 도는 거 보면 진심으로 할 작정인 것 같은데 미스 캐나다도 알고 있었어?”




팀장의 손끝에서 넘어간 페이지는 동일 신문사가 터트린 파파라치 컷이었다. 폭우 속에서 세단을 타는 지훈의 뒷모습, W호텔 VVIP룸으로 들어가는 K건설 회장과 지훈, 라운지에서 와인을 나누는 지훈과 여자, 호텔 앞에서 우산을 기울이며 여자를 내려다보는 시선과 익숙한 차림새까지.










― 한 2주 전이었던가? 그 왜, 저녁에 강풍이다 뭐다 비 호되게 왔던 날 있잖여. 내가 그날 새신랑 나가는 걸 봤는디 뒤에 시꺼먼 덩치들이 따라가더라고?

……

― 쫙 빼 입구 가는 폼이 꼭 전쟁 나가는 사람 같았어야.










가슴이 내려앉는다. 경비원이 목격한 그 날의 지훈이었기에.










본가에 갔다 오겠다던 말과 달리 지훈의 동선에는 집이 없었다. 사진 속의 그는 호텔 앞에서 대기 중인 세단을 지나쳐 무작정 걷고 있었다.










그날 내가 건넨 우산을 쓰고서.










편집장실 호출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클래식 ‘사랑의 인사’가 이질적으로 흐르는 공간에서 실로 오랜만에 Y코스메틱 회장을 봤다.

우아한 손짓으로 찻잔을 든 그녀의 첫마디는 나의 밴쿠버 본사 승진과 예상 밖으로 앞당겨진 출국 날짜였다. 내년 2월 예정이었던 출국 날짜가 본사 요청으로 다음 달 12월로 당겨졌음을 편집장도 거들었다.

프로모 축하해요. 외국에서 직책 맡기 꽤 어려운데 부편집장님이 여주 씨를 정말 아끼나 봐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난항을 겪던 국내 라이프지를 이만큼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는 칭찬이 뒤이었다. 하지만 편집장의 격려가 인색하게도 내 얼굴은 핏기가 없었다. 철장 너머 지옥을 바라보는 코스메틱 회장에게 자애로운 미소가 번진다. 오랫동안 발밑에서 걸리적거리던 나사를 치운 새집의 주인처럼.

이윽고 그녀가 편집장에게 건넨 것은 K건설 창립 50주년 기념식 초대장이었다. 편집장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드렸다.




― “11월 21일이면 지훈 씨 특별 호 출간과 같은 날이네요.”

― “편집장님도 인사 정도는 하셔야죠?”




편집장의 표정이 밝아지다 이내 난처해졌다. 아까부터 말없이 테이블만 응시하는 내가 신경 쓰였음이라.

지난여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편집장 앞에서 지훈의 여자친구라 소개된 사람은 나였다. 이해관계에 따라 연을 맺는 기업이라지만 버젓이 눈앞에 있는 날 두고 편집장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정장 안 주머니에 눈치껏 초대장을 넣는 편집장에게 어떠한 잘못은 없다. 다만 내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픈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코스메틱 회장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 “그쪽 인센티브는 회사 통해서 보낼게. 한국에 다신 올 일 없을 텐데 지갑이라두 잘 달래야지.”

― “…….”

― “그럼 잘 가구.”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새빨간 플로피 햇을 쓴 그녀가 사무실을 나섰다. 그 뒤로 편집장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무거운 고개가 아래로 향한다. 테이블 위에서 흔들리는 찻잔 속의 붉은 거울, 그 안에 비친 뜻밖의 정한이 말한다.










― 떠나가지도 말고 떠나보내지도 말고 지훈이 옆에서 버텨 줘.

……

― 형으로써 부탁하는 거야. 결혼식장에서 우는 사람은 나 하나로도 족하니까.










― “잠시만요!”




검은 사내들이 앞을 막았다. 코스메틱 회장은 그 사이를 지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지훈과 닮은 눈매에 저릿함도 잠시, 터질 것 같은 심장과 뻣뻣한 뒷목을 느꼈다.




― “이지훈 씨는 경영이나 약혼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 당사자는 한국에 없고, 그로 인해 사실을 판단할 수 없는 기사는…….”




하고 싶었던 말의 절반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그녀의 날카로운 웃음 때문이었다.




― “넌 인터뷰 재개하라는 말이 거저 나온 줄 알았니?”




그녀가 얇은 입술을 비죽였다.




―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

― “걘 날 닮아서 그런 건 확실하거든.”










바다는 수심이 깊을수록 완벽한 파랑에 가깝다.
하여 그 수면 밑은 누구도 쉽게 알지 못한다.










그 바다가 당신이라면 더더욱.










― “인터뷰 중단만 풀어주면 내 뜻 받들겠다고 바싹 엎드린 애를 내가 마다할 이유가 있니?”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거래를 했다구. 너, 네 인터뷰 지키는 대신에 자기 인생 나한테 넘겼다구.”










― 인터뷰 끝까지 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 어머니께 무슨 말씀 드렸어? 인터뷰 계속 반대하셨는데 갑자기 허락하신 이유가 있나 싶어서.

― 그냥, 한 달에 한 번 본가 가는 거.










눈꺼풀이 욱신거렸다. 아득히 방황하는 눈가에 결국 왈칵 눈물이 흘렀다.










― “고작 그딴 글이 뭐라구 내 앞에서 무릎을 꿇더라니까. 그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네가 아니?”

……

― “난 내 아들 되찾구, 넌 네 갈 길 가면 되는 거야.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사는 거라구.”










그녀의 서늘한 손길이 내 뺨을 쓸어내린다.
유리 파편에 갈린 그 흉터까지도.










― “걘 절대 네 손잡고 도망 못 가.”

― “…….”

― “가진 걸 버리기엔 너무 똑똑하거든.”










분내 섞인 뿌연 물이 세면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턱 끝으로 떨어지는 불투명한 액체와 뚝뚝 흐르는 눈물. 고개를 들자 거울 속 흐릿한 형체가 나를 바라본다.










―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말했잖아, 같이 있으면 무섭지 않다고.

……

― 내 글, 써줘서 고마워.










타일 바닥이 거세게 흔들렸다. 창밖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그대로 암전이었다.





















* * *




















그린 에이지 빌딩 송신기에 화물차가 충돌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건물 전체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긴급 사내 방송과 사이렌이 번갈아 울렸다. 직원들은 비상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빌딩 문 앞에서 까맣게 죽은 휴대폰만 보는 내게 박이 기함하며 물었다.




― “아예 맛이 갔네요? 어디서 떨어트리셨어요?”

― “아까 계단 내려오다가 놓쳤어요.”

― “지금 문 연 통신사도 없을 텐데 큰일이네요. 내일이라도 방문하시면 신분증 꼭 들고 가세요.”

― “아, 명의…….”




성한 데가 없는 휴대폰은 지훈의 이름으로 개통한 단말기였다. 박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 지금 중요하게 연락할 곳 있으면 하세요. 비밀번호가 해제된 화면 위로 손가락이 닿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눈앞에 있는 건 세 자리뿐이었다.




― “왜요? 전화 안 돼요?”

― “……네?”

― “공일공만 뚫어지게 쳐다보시길래요.”

― “아, 그냥 나중에 하려구요.”

― “저 무제한이라 괜찮아요. 비번 다시 풀어드릴…… 어? 갑자기 왜 뛰어오지?”




진즉 퇴근한 최가 휴대폰을 번쩍 올리며 달려왔다.




― “어떡해요! 오 작가님 인터뷰 안 하시겠대요!”




계획은 본디 무너짐에 있다. 한시라도 집에 돌아가 지훈의 연락을 기다려야 할 시간에 파주로 내려 온 나는 두 시간째 남의 집 대문을 서성였다. 계간지 메인으로 들어갈 작가의 돌발 인터뷰 거절로 위에서 내려온 파견직의 임무는 설득이었다.

공일공 사팔오오 일삼이삼. 공일공 사팔오오 일삼이삼. 일삼이삼. 새로 바뀐 팀장의 번호가 담긴 메모지를 암기하듯 외운다. 핸드백 속에는 여전히 고장 난 휴대폰이 있었다.

세 시간 만에 대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작가는 한사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언제는 작품에만 집중하겠다더니, 결국은 자신의 유명세에 비해 매체에 너무 쉽게 넘어간 것 같다고 음침한 속내를 내비쳤다. 




정성을 보여봐요.
여기서 밤이라도 새면 고민은 해볼게.




차가운 대문이 굳게 닫혔다. 진작 갑질에 유연한 정신과 육체는 계단에 쪼그려 앉아 외투를 여몄다. 늘 하던 대로 무릎 사이에 얼굴을 숨긴 채 숫자를 세며 추위를 견뎠다.










처마 끝에 빗물이 모인다. 소나기였다.










육백 이.

육백 삼.

육백 사.

육백 오.




.


.


.




찬 바람에 코가 시큰거려도, 얼음장 같은 귀가 바람에 쓰라려도 여태 내가 걸어온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폭우로 고립됐던 그 여름의 악몽이 내 인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애를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서 웃고 있었던 그 맑은 얼굴을.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품에 기댄 나를 밤새 안아주던 그 체온을.










작가는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젊은 사람이 너무 독해”라며 선심 쓰듯 오만 원짜리 세 장을 외투 주머니에 찔렀다. 내가 할 수 있는 큰 복수는 뒤를 돈 작가에게 두 번 인사하는 것이 다였다.

카페에 들려 전화를 빌렸다. 메모지에 쓰여 있는 번호를 누르자 팀장이 바로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빌딩이 여전히 폐쇄 상태라고 말했다. 통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수화기를 놓지 못했다.

괜찮으세요? 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카페 직원이 묻는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그제서야 말없이 수화기를 놓았다. 아이스 커피와 타이레놀을 삼키고 몽롱한 정신으로 도착한 서울은 대략 세 시였다. 그린 에이지 빌딩 전봇대에 올라간 용역들과 주변의 난잡한 전기선을 피해 전용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누군가가 안전 바리게이트 안에서 빌딩 직원과 아옹다옹 설전을 벌였다.

포슬포슬한 뒤통수. 후줄근한 회색 추리닝에 짬뽕 국물을 그대로 묻히고 온 걸 보면 집에서 어지간히 급하게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나름 방송인이라고 네이비 모자를 깊게 눌러 썼으나, 그럼에도 한눈에 알아보는 건 녀석을 코 찔찔이부터 본 내겐 일도 아니었다. 




― “또라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여기 잡지사 핵.심.인.물. 김여주 찾으러 왔다니까요?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된다고요! 걔 출국했죠? 비행기 탔죠? 맞죠? 맞잖아요!”










여기가 인천 공항도 아니고.
저 바보.




















* * *




















― “휴대폰이 고장 났으면 바꾸던지! 연락을 미리 주던지! 회사 일은 개같이 잘하면서 왜 네 일은 소홀하다 못해 개 좆같이 구냐고!”




건물과 떨어진 공원에 다다르기도 전에 승관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모자를 바닥으로 던지며 큰 눈을 치켜뜬다. 씩씩거리는 폼이 조금만 엇나가도 욕이란 욕은 바가지로 할 태세였다.




― “시간이 없었어. 대전에서 밤새고 지금 올라왔다고 말했잖아.”

― “그럼 이지훈은 시간이 바가지로 넘쳐서 영국 땅 밟자마자 귀국했냐?”

― “뭐? 지훈이 한국 왔어?”

― “너 설마 그 새끼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니지? 어?”




승관은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었다.




― “경영한다 약혼한다 지랄맞은 기사는 계속 터지지, 넌 전화도 안 쳐 받지, 너희 회사는 무슨 전봇대에 불붙었다고 셔터까지 내렸는데 그 새끼가 미치지 않고 배겨?”

― “지훈이 어딨냐니까!”

― “이제 와서?”

― “……뭐?”

― “파파라치 터지고 별 옘뱅이 났는데 너랑 연락 안 됐을 때 그 새끼가 속으로 무슨 생각했을 것 같냐? 그깟 연락 한번을 못 해서 왜 상처 난 놈 속을 뒤집냐고!”




처음 보는 원망의 눈빛이다. 순간 울컥거리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 “그깟 연락? 내가 일부러 안 했어? 야, 막말로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딨는데? 당장 계간지 펑크 나게 생겼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누가 기다리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 “말 그딴 식으로밖에 못 하냐?”

― “왜? 내가 한국 놀러 왔어? 너희랑 노닥거리려고 비싼 비행기 값 내고 온 것 같아? 여기 내 일터야. 우리 이제 어린 애 아니야. 오늘 잘려도 내일이면 난 이 회사에서 깨끗하게 지워진다고. 부품 교체하듯이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고!”










― 약물 부작용이죠. 기억 장애는 처방 전에 충분히 설명해드렸는데 이것도 기억이 안 나세요?










말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 빌딩 앞에서도, 남의 집 대문에서 밤을 새웠을 때도, 카페에서 전화를 빌렸을 때도…… 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훈이 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 “나 속물이야. 몰랐어?”










그 애는 단 한 번도 번호를 바꾸지 않았는데.










― “야.”

― “…….”

― “지랄하지 말고 얼른 와.”




승관은 막무가내로 팔을 당겼다. 빠져나가려는 걸 억지로 붙잡고서는 등을 어루만졌다. 똥강아지 새끼는 같이 상처 입은 주제에 나를 위로했다. 일부러 으슥한 곳으로 불러 눈깔에 힘을 줬는데도 녀석은 성깔 부리는 연기만 늘었다고 나무랐다. 한결 차분한 목소리였다.




― “네가 우는 이유 지금부터 보기 세 개 중에 무조건 하나 골라야 나중에 하늘에서 은수 떳떳하게 보는 거다.”

― “안 해, 하지 마.”

― “일 번, 이지훈이 똥 싸서.”

― “안 한다고.”

― “윤정한을 남자로 미친 듯이 사랑해서. 이게 이번.”

―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그래서 삼 번. 친구라는 놈이 이지훈 편만 들고 네 속은 알아주지도 못해서.”

― “……다 틀렸으니까. 놔. 빨리.”

― “뭘 틀리세요. 맞구만. 눈은 시뻘게서 센 척만 오지게 해요.”




언젠가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핀 지훈의 집을 뛰쳐나왔을 때도 녀석은 아파트 현관 앞에서 이렇듯 품을 내줬다. 벌써 7년 전의 일이었다.




― “아까 했던 말은 미안하다. 일부러 상처 주려고 했던 건 아니야. 네가 연락을 싫어서 안 했겠냐. 네 말대로 우리 이제 어린애 아니니까, 다른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 그랬겠지. 이지훈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것도 너인 거 알아. 그러니까 너무 날 세우진 마라.”

……

― “부품이라느니 쓸모없다느니 누가 너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면 확 밀어버리기라도 하지, 네가 그래 버리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냐.”




승관은 깊은숨을 뱉었다.




―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은 시꺼멓게 탔어 그 새끼는.”

……

― “그때처럼 네가 말없이 떠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버려진 순간은 평생 남거든.”




녀석의 차분한 목소리가 떨려온다. 어떤 시간의 지훈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대로 느껴지는 슬픔이었다.




― “처음은 도망쳤으니까 이번엔 가지 마.”

― “…….”

― “지훈이, 내 친구 버리지 마라.”




눈가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린다. 녀석의 등을 다독였다. 울음을 참는 어깨가 뻔히 보이는데도 괜찮은 척 고개를 바짝 쳐드는 녀석의 얼굴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 “야 씨, 나중에 너도 혼자고, 나도 혼자고, 망할 이지훈도 혼자면 나중에 은수가 뭐라고 생각하겠냐. 산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삽질 염병하고 왔다고 화내지 않간? 너희라도 잉꼬 한 쌍으로 평생 살아야 잔소리라도 덜 듣지. 잊었냐? 은수 잔소리 기본 세 시간이다.”

― “울든지 웃든지 하나만 해 바보 새끼야.”

― “잉꼬 싫으면 앙꼬 하든가. 은수가 앙꼬 찐빵 좋아했잖냐.”




웃고 있는 슬픈 눈. 위로에 서툴던 바보 같은 똥강아지가 이렇게나 잘 컸다고 은수에게 직접 말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아까부터 이지훈 계속 통화 중이야. 너 혹시라도 집에 있을까 봐 공항 도착하면 집으로 바로 간다고 했으니까 일단 같이 가보자.”




서울살이에 도가 튼 승관은 골목과 골목을 오가며 악셀을 밟았다. 오피스텔 입구에 도착한 낯선 차를 살피던 경비원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서둘러 차단기를 올렸다.




― “새신랑 진즉 왔는디 말도 못 허게 뛰어 올라갔어!”




기어를 바꾼 승관은 빠르게 오르막길을 올랐다. 공동 현관 앞에서 멈춘 녀석은 엔진을 죽이지 않은 채 말했다.




― “걱정 뒤지게 했는데 다행이다. 얼른 들어가라.”

― “너는?”

― “뭐, 셋이서 껴안자고?”

― “……고마워.”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매만지며 고요한 문 앞을 서성였다. 지훈을 만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엔 기사를 봤고, 당신의 어머니를 만났고, 당신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어줬는지 알게 되었고, 그렇게 휴대폰이 망가졌고, 항상 똑같았던 당신의 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래서…….




















도어락이 열렸다.
내가 아닌 그 반대편에서.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12. 수면 아래 | 인스티즈





















― “휴대폰이 고장 났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 애가 운다.
스물로 돌아간 그 애가 운다.




















[Departure 출발]

ICN
서울/인천 (Incheon)
Terminal No: 2

[Arrival 도착]

YVR
밴쿠버 (Vancouver)
Terminal No: 1




















여권과 e-티켓이 담긴 지훈의 휴대폰이 발밑으로 떨어진다. 그 안에서 미미한 상대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죄송하지만 타사 항공을 포함한 현재 가장 빠른 밴쿠버 항공편은 고객님이 예약하신 오후 6시 50분입니다. 편의에 어려움을 드려…….










― 처음은 도망쳤으니까 이번엔 가지 마.










― “절대 어디 안 갈게.”










― 지훈이, 내 친구 버리지 마라.










― “내가 널 너무 사랑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우린 이미 알고 있어.
서로를 놓치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Epilogue.




















재판을 마친 정한의 낯빛이 묘하다. 법원 앞에서 변호사와 인사를 나눈 정한은 긴 계단을 서둘러 내려갔다. 건너편 도로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지훈을 발견했음이라. 보닛에 기대 시큰둥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지훈은 누가 봐도 억지로 끌려 나온 인간상이었다. 정한의 종종걸음이 빨라진다. 조금 전의 낯빛은 감춘 후였다.




― “진짜 픽업하러 왔네?”

― “뭐야, 오라며.”

― “말한다고 듣는 캐릭터는 아니니까 하는 말이지.”

― “근데 왜 웃어.”

― “귀엽잖아.”

― “전처한테 소송 걸리더니 드디어 맛이 갔어?”

― “왜? 좋아 보여?”

― “어, 미친놈 같아.”




정한은 지훈의 목을 두르며 살갑게 얼굴을 맞댔다.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 재판장에서 사실만을 고하겠다고 맹세했을 때부터 꼬르륵거렸어. 정한의 아양에 질병이 난 지훈은 큰 손바닥으로 정한의 뺨을 밀었다. 한 바퀴 몸을 돌려 자연스럽게 정한의 품을 빠져나간 지훈은 시동을 걸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안전벨트도 매달라는 정한의 요구를 깡그리 씹어 먹는 것도 잊지 않고서.




― “밥 어디서 먹게.”

― “오랜만에 우리 동생이 해주는 집밥?”

― “한 번도 해준 적 없잖아.”

― “으응, 먹다가 죽으면 나만 손해니깐.”

― “지금 죽기 싫으면 빨리 말해. 어디로 빠질 거야.”

― “설렌다. 한강 가자.”




남이었다면 여럿 넘어갔을 정한의 눈웃음이었다. 지훈은 몸서리치며 법원을 빠져나갔다. 얼마 되지도 않는 휴일에 자신을 불러낸 정한이 못마땅했지만 오늘만큼은 이해하기로 마음먹은 지훈이었다. 전처와의 장시간 재판을 끝내고 나면 고라파덕처럼 힘이 없어질 것만 같다는 정한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오지 않으면 올 때까지 징징거릴 캐릭터에 넌더리가 난 것도 있었지만.




― “여주는 잘 있니?”

― “얼굴 보기 힘들어. 나보다 바빠.”

― “워크샵은 어땠어?”

― “누구한테 들었어.”

― “내 동생 승관이.”

― “어, 둘이 잘 어울린다.”

― “밤에 너희 둘만 몰래 어디 좋은 곳 갔다고 질투하던데?”

― “부승관 걔는 뭘 그런 것까지 말을 해.”

― “질투해?”

―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똥 같은 감정이 들겠냐고.”




식당에 들어선 정한을 본 직원은 익숙한 듯 자리를 안내했다. 지훈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로맨틱한 실내 장식을 보건대 사촌끼리 가볍게 밥이나 먹으러 올 곳은 아니었다.




― “분위기 좋지? 여기 처음이야?”

― “형은 여기 몇 번 짼데. 뭐 세 보지도 않았을 거야.

― “추리력이 늘었네?”

― “윤정한 경험치가 늘었다고 하자.”

― “밥을 밥으로만 먹는 건 실례야. 분위기로도 먹어줘야지.”

― “난 고기.”

― “한강 봐봐. 예쁘지.”

― “미디움 웰던.”




눈앞에 한강 둔치를 두고 식탁에 마주 앉은 형제는 말이 없었다. 지훈은 흥미 없는 샐러드를 뒤적거리며 정한을 흘끔거렸다. 전처를 상대로 재판에서 이겼다, 졌다를 판가름하기엔 정한의 표정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 “눈치 보지 말고 물어봐.”

― “눈치챘으면 말을 하던가.”




지훈의 볼멘소리에 정한은 목을 덮은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 “1심은 승소. 항소는 곧 올 거야.”

― “그쪽에서 항소할 게 뭐 있어. 결혼 생활 중에 외도했고, 형 집에 없을 때 남자 들였고, 형 별실 뒤져서 절도까지 했는데. 정신적 손해 배상은 형이 받아야지.”

― “대기업 계열사 따님이 돈 때문에 그러겠어?”

― “딱 봐도 지는 싸움인데 자존심 때문에 그런 정성을 들인다고?”

― “세상엔 네가 만나보지 못한 또라이들이 대단히 많단다.”




침착함을 잃지 않는 정한이었다. 일반 병동과 VIP 실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나사 빠진 환자를 매일 대해야 했던 정한이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바깥일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강심장이었다. 상대에게 전할 상냥하고 친절한 빅 엿을 고민하는 정한을 보며 지훈은 혀를 내둘렀다.




― “전처가 형 의사하기 전에 법 준비했던 사람인 건 알아?”

― “얘 봐, 알면 큰일 나게? 이번 컨셉은 법을 몰라 당할지도 모르는 억울한 누명자거든?”

― “억울한 것 치고는 상당히 밝아 보여.”

― “그게 내 매력 포인트잖아.”

― “두 번 있다간 큰일 나지.”

― “왜냐면 내 매력이 두 배가 되니깐.”




정한은 와인을 마시며 한강을 음미했다. 바람이 춥다. 올해는 눈이 빨리 오려나. 차가운 물결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다. 입에 맞지 않는 스테이크를 깨작거리던 지훈이 물었다.




― “항소도 끝나면 다음은 뭐 할 건데.”

― “찾아야지.”

― “뭘.”

― “잃어버린 사람.”




순간, 지훈의 시선이 정한에게 향했다.




― “……누나 말하는 거야?”

― “한 번에 아는 거 보니까 내가 진짜 잃어버린 거 맞구나.”




정한의 묘한 낯빛. 법원 앞에서 지훈이 스치듯 본 그 얼굴이다. 장시간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정한은 지금처럼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던 걸까.




― “부산에 있대. 나처럼 결혼도, 이혼도 했고. 애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게 뭐 별건가?”

― “형.”

― “꼭 이럴 때만 예쁘게 형이라고 그러더라.”










지훈의 눈이 슬퍼진다.

결국은 잊지 못했어. 미안해.
정한은 꼭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 “날 버리고 간 사람이 너무 원망스러웠지. 난 죽을 만큼 힘든데 넌 왜 그리 쉽게 떠났을까.”

……

―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겠더라.”

……

― “그렇게 떠나는 너라고 이별이 쉬웠을까.”




정한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왼손이었다.




― “집안 반대도 심했고, 압박도 심했고, 그 모든 걸 견뎌내기엔 우리도 너무 어렸지. 떠나보내고 나서 억지로 결혼하던 날 다짐했었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자. 다른 누군가와 사랑 따윈 하지 않은 것처럼.”

……

― “그런데 아무리 억지로 도려내 봐도, 우린 이것밖에 안 되는 운명이라고 밀어내 봐도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돌아오게 돼.”

……

― “걜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르겠어.”




지훈의 눈이 슬픔에 잠긴다. 억지로 도려내 봐도, 이것밖에 안 되는 운명이라 밀어내 봐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 “내가 했던 말 기억 나? 기적처럼 돌아오려고 떠난 사람이 있고 난 거기에 운명을 거는 중이라고.”

……

― “생각해보니까 난 환자 살릴 때 기적이란 기적은 다 써버려서 남은 게 없거든. 그래서 직접 만들 거야, 그 기적.”




지훈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마 눈물은 보이기 싫었다. 그저 언젠가 정한이 그토록 바랐던 누군가와 손을 잡고 돌아올 날을 자신도 바랄 뿐이었다.




― “내 얘기는 끝났으니까 이제 말해 봐. 하기 싫은 일까지 하면서 여주 인터뷰 살려낸 이유.”




의술에 매료되어 재벌 집 문을 박차고 나간 정한이었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K그룹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훈의 소식은 그룹 내에 이미 퍼진 상태였다. 지훈은 정한을 응시했다.




― “소중한 걸 지키는 건 당연한 거야.“

……

― “처음이고, 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였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볼 수 있는 기회.”

……

― “매체에서 난 항상 왜곡 당하는 존재였는데 그 인터뷰는 아니었거든.”




지훈의 시선은 한강으로 향했다.




― “형, 난 이제 좀 자유로워지고 싶어.”

― “그런 애가 이모 뜻대로 하겠다고 지옥을 들어갔어?”

― “형은 어떻게 하면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

― “간단해. 태어날 때부터 쉽게 얻은 것들 전부 버린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정한은 말끝을 흐렸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하려고.”

― “…….”

― “그 선언.”




지훈은 대답했다.




― “알잖아, 우린 원하는 게 있으면 뭔가를 영원히 잃어야 돼.”

……

― “11월 21일. 그날이 내 디데이야.”




그날 정한은 두꺼운 고치 속에 숨어있는 애벌레를 보았다. 특별 호 출간과 K건설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손꼽아 기다리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그 나비를.










― “여기서 잘라내지 않으면 형 턱시도 내가 입어야 해.

……

― “형도 그러길 바라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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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찾아오면 새파랗게 질릴 강물 앞에서 정한은 담배를 꺼냈다. 지훈이 라이터를 건네자 정한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했다.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 “안 펴?”

― “응.”

― “라이터는 있는데 담배를 안 해?”

― “클라이언트 때문에 가지고만 다녀.”

― “아직도? 요즘 세상엔 경험이 중요한데.”

― “동생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

― “거절할 줄도 알고 우리 지훈이 다 컸네?”

― “형이 덜 큰 거지.”




정한은 웃으며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 “병원 복직은 언제 할 건데.”

― “슬슬 기분 내킬 때?”

― “성실한 명의는 죽어도 못 되겠다.”

― “명의가 성실하기까지 하면 설정 과다로 욕먹어. 적당히 게을러야지.”

― “어련하시겠어요.”

―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

― “아니.”

― “판교 주택은 왜 알아보고 다니는 거야?”

― “아, 진짜 부승관.”

― “말해 봐, 갑자기 웬 판교?”

― “별거 없어. 그냥 좀 더 쾌적한 삶을 영위하면서 에코 프렌들리한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고 뭐 그런 식으로 대충 말하긴 했는데.”

― “여주가?”

― “응.”

― “여주 꿈이 밭 쟁이야?”

― “농사꾼이면 농사꾼이지 밭 쟁이는 또 뭐야. 그리고 걔 밭일 못 해. 호미를 복주머니라고 부르는 애야.”

― “네 재테크만 챙기지 말고 뒤를 좀 돌아봐. 나 같이 잘생긴 명의가 돈까지 있으면 얼마나 더 성실해 보이겠어?”

― “별로 신뢰성 있는 말은 아냐.”

― “그 사억 오천은 어디에 투자할 건데?”

― “도대체 부승관이랑 뭔 얘기까지 했어?”

― “네 팬티 색깔 빼고 다.”

― “지겨워.”

― “최근에 투자 어디에 했는지 진짜 딱 하나만.”




지훈은 정한의 담배 연기에 고개를 돌렸다.




― “근데 왜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을 못 해?”

― “뭐가! 꺼져 좀.”

― “법원에서부터 K건설 기념식에 여주 데려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표정이었는 데에?”

― “눈치는 쓸데없이 빨라요.”

― “왕자님 포지션은 이미 뺏긴 것 같으니깐 멋쟁이 요술 할머니 하지 뭐.”

― “걘 아무거나 입혀도 잘 어울려.”

― “설마 자랑하는 거야? 예쁜 애인 있다고?”

― “형도 양심이 있으면 누나 있을 때 나한테 똑같이 했던 거 기억은 해야지.”

― “쫌생이.”

― “누굴 닮았겠어.”




지훈과 정한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다.
어느덧 해가 지는 시간이었다.



― “꼭 마지막 챕터 보는 것 같아.”

……

― “해피엔딩 직전, 그 절정 말이야.”




그들의 어깨 위로 차가운 바람이 분다. 정한의 굽굽한 연기와 시답잖은 농담마저 사그라들 때, 지훈은 정면을 응시한 채 말했다.




― “누나한테 연락 왔었어.”

― “…….”

― “형 잘 지내냐고.”




정한의 눈시울이 단숨에 붉어진다. 털어내지 못한 담뱃재가 정한의 손끝으로 떨어졌다.




― “마음에도 없는 사람 만나서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하지 말고 누나 빨리 잡아.”

― “…….”

― “그럼 형도 해피엔딩이니까.”




지훈의 휴대폰에서 낯선 번호와 메시지를 확인하는 정한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미움일까. 원망일까. 결국은 사랑이었던 걸까.










― “잘 안 보인다.”

……

― “내가 나이가 들었나.”










겨울을 닮은 차가운 눈물이 떨어진다. 지훈은 흐느끼는 정한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여주와 그리움 속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지켜주던 형 정한처럼, 지훈도 동생의 몫을 다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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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턱시도를 입은 정한이 태운 담뱃재들이 비로소 수평선을 넘었다. 그것들은 더이상 과거에 묶이지 않고 겨울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생애 첫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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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016326입니다ㅜㅜㅜㅜㅜ뒤늦게 확인하고 손 떨면서 읽는데...아아 이번 글은 새벽녘 이슬에 젖어들어가는 습자지처럼 가슴 먹먹해지는 글이었어요ㅠㅠㅠㅠ사랑을 위해 너무 힘들게 돌아온 지훈이랑 정한이...둘 다 꼭 해피엔딩을 맞이하길 진심으로 바라요ㅠㅠ
2년 전
독자2
작가님 글에 항상 웃고 우는 애옹 .. 오늘도 눈물샘이 고장나 한바탕 울고갑니다 ..🥲🥲 이젠 정한이도 지훈이도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겠죠 ..?
2년 전
독자3
글이 세개나 올라와있는데 완결이 가까워지니 정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보고싶었어요 작가님ㅠㅠㅠㅠㅠㅠ
2년 전
독자4
은블리입니다.
시간이 생겨서 남은 글을 정주행하네요ㅠ
초반에는 약혼? 중반에는 기억장애? 마지막은 정하나 행복하자와 이지훈 디데이 미쳤다 라고만 생각했네요. 얼른 둘이 행복해달라구ㅠㅠㅠ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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