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 부탁드려요 ~
" 개 같은 놈.. "
" 내가 말했지.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냐고. "
" ..이제야 말하는 건데 그 자식이 너 제일 싫어했어. 그렇게 말하면서. "
" 티 나긴 하더라. "
" 생각할수록 빡치네, 우리도 확 그냥 사겨버릴까?! "
...아 그냥 해본 소리야. 아무렇게나 던져본 말에 민혁이 정색하자 여주가 쉽게 꼬리를 내린다. 중학교 때부터 반년쯤 사귀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사흘 만에 제 단짝 친구와 커플이 되어 나타났단다. 지금이야 우습지만 갓 중학교를 졸업한 청춘들에게 그만큼의 연애가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게다가 친한 친구로부터 얻은 배신감까지. 일주일 내내 울고불고인 여주를 지켜보는 민혁의 속도 타들어가니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저딴 소리로 심장을 후벼파기까지 하니까. 제 처지에 좋게 타이르는 것도 이만하면 됐으니까.
" 잘 됐어. 공부나 해 이제. "
" 가뜩이나 안 되는 공부.. 퍽도 되겠다.. "
" 나랑 같은 대학 간다며. 턱도 없겠네. "
" 네가 책임져. "
" 뭐래. 내가 왜. "
" 의리 몰라 의리? 으리! "
사실 의리가 아니어도 충분히 책임지고 싶었을 텐데. 뭐든 함께해봤자 똑같이 괴로울게 뻔한데. 알면서 놓고 싶은 적 없었다.
/
예상은 적중했지만 마음가짐은 달라진 적이 없다. 이번에도 환영회니 뭐니 술자리에 끌려가서 술이 떡이 된 여주를 들춰업고 귀갓길을 걷던 민혁은 잠깐 회상에 빠졌다. 대학 들어온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까지 무슨 환영회야. 눈독 들이는 새내기를 불러내려는 선배들의 개수작인 걸 혼자만 아는 민혁의 한숨은 멎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런 제 등에 업혀 팔자 좋게 쿨쿨대는 여주가 원망스럽기도, 사랑스럽기도. 그런 여주를 여전히 챙겨줄 수 있는 제 처지가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아무리 가볍대도 성인 여성이 늘어지기까지 했으니 무거울 만도 한데 굳이 걷기를 선택해 빌라에 다다랐을 때쯤 고개를 드는 머리통. 깼냐. 눈치채고 말하는 민혁의 음성에 안심이라도 했는지 다시 등판에 고개를 묻는다. 이렇게 사소한 것쯤은 이제 별거 아닐 때도 됐는데 웃음이 지어지는 걸 당장 여주는 보지 못하니 참고 싶지 않았다.
" 몇 시야..? "
" 새벽 한시. "
" 아, 너 과제 많다며.. "
그렇게 말하면서 업힌 등에서 내려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결국 자취방 안까지 업힌 채 도착해 침대에 내려진 여주가 민혁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발견했다. 어느새 잠도 술도 어느 정도 깼는지 말똥해져 서있던 민혁을 붙잡아 침대 제 옆에 끌어앉힌다.
" 헐 나 오늘 좀 많이 먹었다고 무거웠나? 물 줘? "
" 됐어, 내가 해. "
작게 호들갑을 떨며 손을 뻗어 손수 제 땀을 닦아내는 여주의 팔목을 잡아 막아낸 민혁이 무심한 듯 고개를 돌렸다. 20분가량을 업고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땀까지 났다고는 말할 생각이 없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후 자취를 시작한 여주의 집에 벌써 꽤나 드나들었지만 여전히 적응은 못 했다. 특히 이렇게 턱턱 제 침대에 자리를 내어줄 때면 더더욱. 너는 아마도 내가 이성이라는 사실을 잊은 지가 한참이겠지.
" 오늘도 박창수인가 뭔가 하는 선배 왔냐. "
" 오 어떻게 알았어?
" 미친놈. 너 없으면 술도 못 먹나 보네. "
" 갑자기..? "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막는다지만 눈치까지 없으니 보는 사람 복장이 다 터진다. 어리둥절한 여주를 뒤로하고 금방 자리에서 일어난 민혁이 현관으로 향했다. 쪼르르 따라오며 시간도 늦었는데 그냥 좀 자고 가지.. 중얼대는 여주에 운동화를 구겨 신고, 뒤 돈 민혁이 그런 소리 하지 말랬다 너. 하며 정색하니 입은 삐죽거려도 금방 꼬리를 내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 오늘도 땡큐. 근데 나 이제 좀 눈치 보일라 그러니까 안 데리러 와도 돼.. "
" 네가 데려다줘야 할 일을 안 만들 생각은 없고? "
" ..그래도 뭐, 귀가 본능이란 게 있대. 어떻게든 집엔 들어가지 않을까? "
" 웃기시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게. "
" 아 원래는 그만큼 안 마시거든? 오늘만이야 오늘만. "
" 그렇다고 또 데려다줄 남자친구 사겨야겠단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그 남잔 무슨 죄야. "
" 그것도 그냥 해본 소리다 뭐. 아씨 너 빨리 가 임마. "
자고 가랄 땐 언제고, 여주의 손에 등 떠밀려 현관 밖으로 나온 민혁이 부러 얄밉게 웃어 보이고 등을 돌렸다. 빌라 밖으로 나와 바깥바람을 맞으니 갑갑했던 속이 트이는 것 같기도 하고. 새벽 공기라 그런지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한데 어쨌거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분간 톡 형식이 아닌 멤버별 여주와의 (과거 혹은 첫만남 등) 개인적인 스토리로 업로드 됩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