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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 SPACE 건축 &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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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ARCHI SPACE 월간 인터뷰 2월호 | 인스티즈

더블유젯 건축 사무소 이지훈 대표

진정한 휴식 공간에서
꿈꾸는 삶

편안함을 만나는 집, 안우재安遇在

한옥의 빈티지와 양옥의 모던함을 융합한 그의 안우재(편안할 안安, 만날 우遇)는 말 그대로 편안함을 만나는 집이다. 효율적인 설계와 실용적인 공간을 구현함과 동시에 따뜻하고 감각적인 건축을 지향하는 건축가의 보금자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글 문보석 | 사진 정일칠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ARCHI SPACE 월간 인터뷰 2월호 | 인스티즈

이지훈 대표가 아내와 사는 안우재는 삶의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다. 나비경첩에 달린 주물 손잡이를 밀면 보머리 옆 풍경 종소리가 제일 먼저 우리의 첫걸음을 반겨준다. 돌담을 두른 작은 연못과 젊은 부부의 취미 생활을 가늠할 수 있는 서핑 보드가 비스듬히 세워진 마당에는 직접 가꾼 화단과 묘목이 심어져 있다. 그곳 바로 고개를 들면 넓은 마루와 거실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날의 운치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가벽을 세우는 대신 오픈형으로 설계한 그의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프리지아 꽃밭이 있는 뒷마당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운중동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별채가 기다리고 있다. 별채는 그가 특별히 힘을 준 곳이다.

“그 친구가 글도 쓰고 사무적인 일도 처리하는 직업이다 보니 퇴근하고 나서도 종종 업무를 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안방과 별개로 그 친구만의 개인적인 영역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다행히 좋아하더라고요. 양개문 밖으로 야경을 보면서 노트북과 치열하게 마주 앉아 있는 자신이 이 동네를 다 먹은 것 같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전 그때 살짝 후회했어요. 아, 좀 더 크게 만들어줄걸(웃음).”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반적인 건축 과정을 꿰고 있는 건축가에게 집 짓기란 즐거움 그 자체다. 아내를 위한 안우재의 탄생도 빼놓을 수 없다. 

“결혼하기 전부터 그 친구가 판교에 살고 싶어 했어요. ‘에코 프렌들리하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요(웃음). 저는 다른 곳에 이미 장기 투자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원하는 지역으로 가되, 최대한 예산에 맞게 분양을 받자고 상의했었어요. 아파트, 주택 가릴 것 없이 정말 서른 곳을 넘게 다녔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문득 그러더라고요. 누가 봐도 좋은 집인데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고요.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 것만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쿵 떨어졌죠. 그 친구에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집을 지어주겠다고 시작한 일이 건축이었으니까요. 다음날부터 홀린 듯이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안우재죠. 아직도 기억나는 게, 스무 살 때 그 친구가 카페 카운터에서 메모지랑 펜을 빌려서 갑자기 그림을 그려준 적이 있어요. 미래에 본인이 살고 싶은 집의 이상향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요. 그 메모지를 지갑에 항상 넣고 다녔는데 도면을 그릴 때 운명처럼 생각이 난 거예요. 엉성하긴 했지만 어떤 걸 원하는지 바로 알아볼 순 있었죠. 그 그림이 안우재의 모티브에요. 최대한 맞추고 싶어서 설계안도 7차까지 갔었어요. 저를 도와주던 친구도 시공하는 동안 안전모 쓰고 흙바닭에서 쪽 잠자던 가을밤이 그렇게 생각난다고 저만 보면 팔다리를 두드려요(웃음). 그렇게 안우재가 완공되고 처음 보여준 날, 와이프가 많이 울더라고요. 대문의 나비경첩은 어떻고, 창문의 대들보가 어떻고 하나하나 감동하면서요. 요즘은 텃밭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뭘 키워서 먹어본 적은 없어요(웃음).”

집을 통해 진정한 편안함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그는 아내의 생일날 ‘안우재’란 작명을 선물했다. 일찍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이십 대 부부에게 안우재의 삶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성장의 매개체이다.

“건축도, 글을 쓰는 직업도 일종의 예술이잖아요. 안우재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전보다 트여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안우재는 확실히 휴식뿐만 아니라 일적인 요소에서도 필요를 충족해주는 존재죠.”

K건설 자체 건축 사무실과 뉴욕 ULA 건축 사무소에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은 그는 작년 12월 역삼동에 위치한 ‘더블유젯 건축 사무소’를 세웠다.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 공헌에도 앞장섰다. 땅끝마을 남해의 폐허를 ‘남해도’ 예술문화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제19회 한국건축문화대상-사회공공부문을 수상한 그는 현실적인 설계와 미적인 감각 또한 놓치지 않는 멀티플레이어이다. 도예가 손창옥의 작업실과 35주년 압구정 현대 미술 특별관, 십년지기 친구의 단독 주택인 청담동 귤나무집,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 뼈대를 토대로 연습실과 거주 공간으로 레노베이션한 발레리나 김윤선의 리본집이 대표작이다.

“K건설을 나오기 전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안정적인 고정 수입을 기대한다면 당연히 ‘기업’을 선택하는 게 맞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계속 따라주질 않는 거예요. 사실 어떻게 보면 ‘기업’ 안에 있는 건축은 틀이 이미 정해져 있어요. 특정한 모양의 레고를 수십만 가지의 경우에 수에 대입해서 배치만 다르게 하는 것과 같거든요. 나만의 무언가를 발휘하기에는 제약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요. 창의력을 오히려 숨기게 되죠. 어느 날 서울에서 우연히 개인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는 박재영 건축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날 제가 정말 뭘 원하는지 그분을 통해서 알게 됐죠. 간단히 말해서 가치를 어디에 더 두느냐의 차이더라고요. 안정된 소득보다 일의 즐거움, 하고 있는 것 자체에 제가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즐거움만 좇다 보면 물질적인 세상에서 와이프와 어떻게 살아가겠어요(웃음). 보편적인 상업 건축, 공공 건축, 그리고 제가 꿈꾸는 이상 건축을 균형에 맞게 분배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현실과 미적 감각, 둘 다 놓치지 않는 멀티플레이어라 아까 말씀해주신 것처럼 미래의 ‘더블유젯’도 절 닮아갔으면 좋겠어요.”

올 하반기 더블유젯 건축 사무소는 누구보다 바쁘다.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의 집, 교직을 정리한 노부부의 집, 대전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30대 신혼부부의 집까지. 그들이 더블유젯 건축 사무소를 찾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대다수의 기업이 운영하는 기성 건축 방식과 달리 그는 사람을 먼저 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건축주 미팅을 하면 한정된 면적에서 최대한 바라는 것들을 물어봐요. 원하는 공간, 크기, 층수 같은 1차원적인 질문이 주를 이루죠. 현재 사는 주거의 불편한 점과 개선되었으면 하는 방향을 추가로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건축주에게 가장 알맞고 적절한 집을 지으려면 먼저 그 사람을 알아야 해요. 쉽게 말해서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는지, 어떤 풍경을 선호하는지, 인테리어나 데코레이션을 계절마다 바꾸는 사람인지, 부부이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면 향후 2년 내에 가족계획은 어떻게 되는지를 세세하게 물어보죠. 집은 집주인을 닮아야 하거든요. 체형에 맞는 옷을 입은 듯이 편해야 해요. 그게 진짜 ‘집’이잖아요.”

지난달 ARCH SPACE〈서울에서 가장 잘 지은 집> 기고된 십년지기 친구의 귤나무집을 설계할 당시를 떠올린 그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상적인 ‘진짜 집’을 지어달라는 친구의 부탁이 생생하다. 라디오 ‘카스테라’를 맡은 국민 DJ 부승관 씨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친구예요. 아파트는 지루하고 기성 주택은 단조로워서 하품만 나온다고 은은한 압박 같은 연락을 받았죠. 한참 안우재 도면을 제작할 때였어요. 저도 시간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아는 분을 소개했거든요. 그런데 한 시간 만에 그 건축 사무소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진짜 집’이 아니라고 믹스 커피 다섯 잔만 마시고 돌아갔다고요. 너무 어이가 없었죠(웃음). 당일 저녁에 부승관 씨가 다시 연락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급식을 같이 1년이나 먹고 A대 학식을 4년 내내 떠먹여 줬는데 그래도 본인을 알고 이해하는 건 너밖에 더 있냐고요. 집은 집주인을 닮아야 하는데 못생긴 집이 나오면 본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딴지를 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맡게 됐어요(웃음). 생각한 것보다 공간 효율이 잘 나와서 저도 만족하는 작업이었어요. 매거진에 게시된 사진처럼 거실, 안방, 주방, 다용도실까지 정말 일 센치도 버릴 게 없어요. 아마 그 부분 덕분에〈서울에서 가장 잘 지은 집>에 선정된 것 같아요. 아, 가끔 ‘귤나무집’의 의미를 물어보시는 분이 있는데, 그 앞마당 보시면 나무 두 그루가 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주도의 싱그러움을 보고 싶다고 부승관 씨가 직접 심은 나무에요. ‘귤나무집’도 직접 지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귤이 아니라 낑깡이거든요 사실(웃음). 재래시장에서 할머니가 손으로 한 줌씩 파는 걸 사 왔는데 그걸 귤이라 착각한 거죠. 부승관 씨 말로는 야밤에 보안을 넘어서 나무에 열린 낑깡을 따가는 팬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얼굴은 안 보고 열매만 따간다고 뭔가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는데, 아무튼 보안 철저히 하시고 모쪼록 원만한 합의 하시길 바랍니다(웃음).”

안우재에도 저녁이 찾아든다. 디자인적으로 활용한 대들보와 서까래 위로 스며드는 자줏빛 노을이 일품이다. 개방형 거실에는 못질하지 않고 바닥에 기대어 놓은 그림, 아일랜드 식탁 위 녹차 두 잔, 어젯밤 마시다 만 위스키와 주인 없이 돌아가는 노트북이 있다. 안우재에 있는 모든 것은 그에게 자경自景이다. 

“이 자체도 저는 하나의 풍경이라고 생각해요. 차창 너머 보는 자연과 계절처럼요. 같은 사물을 비춰도 시간마다 다른 빛의 각도 덕분에 매번  분위기가 변하거든요. 아침에는 산뜻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나른한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도 이곳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안우재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곳이자, 성장의 공간이며, 다가올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벽을 세운 안방 옆에 잠겨진 작은 방은 미래의 자녀를 위한 방이다. 가구를 채워 넣지 않은 빈방이지만 따뜻한 감색의 문 역시 그를 많이 닮았다.

“서로 중요하고 바쁜 시기라서 아직은 계획이 없어요. 이곳에서 신혼을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도 큰 것 같아요. 지금은 나중에라도 기쁜 소식이 온다면 그 계절은 언제일지 그게 가장 궁금해요. 이맘때의 날씨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제 마음대로 안 되겠죠(웃음). 언젠가 아이가 생긴다면 그 친구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사랑스러울 것 같아요.”

건축과 사랑의 공통점은 ‘차분히 쌓아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이자 한 사람의 남편이 된 그는 자신을 닮은 안우재에서 고요하지만 무엇보다 단단한 층을 쌓아가는 중이다.

기존 건축가 뿐만아니라 지망생에게 귀감이 되는 그의 건축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세련미와 노련함이 있다. 오늘보다 나은 건축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한다.

“사무실에만 앉아있다고 무조건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명성 있는 건축물만 우리의 시각과 감각을 깨우지 않아요. 흔히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건물 디자인, 건축 전시회, 더 작게는 집 앞 작은 공방의 외관도 충분한 영감이 돼요. 사진으로 남기고, 메모하고, 머릿속으로 나만의 ‘매거진’을 만드는 거죠.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다양한 리소스를 넣어두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것 중 하나가 잠재된 능력이거든요. 전 그 능력을 믿어요.”

첫인사를 건넸던 풍경이 마지막 인사를 위해 흔들리고 있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도 안우재만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변하지 않는다. 집은 집주인을 닮는다면 안우재는 그를 닮았다. 그러므로 그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있어 진정으로 ‘편안한 집’이란 이지훈, 자신이 아닐까.

앞으로의 건축이 기다려지는 그와 다음 해의 계절을 기약한다. 어떤 모습과 또 어떠한 발전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가장 기대되는 건축가다.




[ARCHI SPACE]
2025년 2월호 통권 제872호
1989년 11월 2일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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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지단입니당 외전까지 완벽한 OMR ㅠㅠ 두 사람에게 완벽한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안우재까지 생겼으니 정말 마음이 놓이네요 그리고 승관이를 위한 귤나무집까지! ㅋㅋㅋㅋ 이제 외전은 더 없을까요…? 🥺 아니에요 일단 완결의 여운을 느낄게요… 오엠알 짱 스윗 님 짱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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