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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The Finale _ Xtra Shots 17. 사랑이란 이름으로 | 인스티즈





















― 매년 무명으로 기부금을 주시니 저희야 너무 감사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복지관 센터 관장은 넙죽 고개를 숙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승관은 손사래 치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관장실 내부에 걸린 액자를 따라 그의 시선이 기운다. 역대 복지관 센터를 다녀간 아이들의 사진이었다. 연도별로 벽에 걸린 작고 통통한 얼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린 눈이 가운데 지점에서 멈췄다. 맑은 눈과 동그란 입매가 매력적인 소녀에게로. 관장이 자신에게 다시 말을 건넬 때까지, 승관은 소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그래도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만.

― 나중에요. 지금보다 더 자주 올 수 있게 된다면 그때 하고 싶습니다.

― 이렇게 강경하시니 제가 억지를 부릴 수도 없네요.

― 아이들은 잘 있죠?

― 그럼요. 승관 씨 덕분에 좋은 밥도 먹고, 원하는 공부도 하고, 특히 미술에 관심 많은 아이들에게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되고 있어요. 아이들이 무척 기뻐해요.

― 다행이네요.




승관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일정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봄이라 연말 행사 계획은 아직이시죠? 산타 분장이랑 선물은 저만 믿으세요. 작년보다 클 거예요.

승관의 큰 눈이 반달로 접힌다. 하늘에서 내려온 날개 없는 천사를 보는 듯 관장의 감동 어린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승관은 사진 속 맑고 동그란 소녀를 잠시 바라보다 관장을 따라 집무실을 나갔다. 관장은 주차장까지 그를 배웅했다. 밴 대신 개인 자차를 몰고 온 그가 다음을 기약하며 운전석에 올랐다. 중앙 현관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센터 아이들이 멀어지는 승관을 향해 달려 나왔다.










그를 향해 흔드는 작고 귀여운 손가락.

승관도 잠시 차를 멈추고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부터 기부의 의미는 변질되어 누군가의 이미지 개선이나 악행을 타개할 때 이용하는 도구로 쓰였다. 승관은 본래의 의미를 신념으로 삼아 선행을 베푸는 공인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비밀 결사도 아닌데 꼭 무명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 미디어 초고속 시대에 작은 흔적이라도 내일이면 거대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좋은 사회적 관심이라 할지라도 거절하고 싶은 승관은 오히려 무명이 편했다. 편히 왔다가 편히 떠날 수 있는 삶, 그는 무명의 인생에 가치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센터를 빠져나온 차는 한 시간을 달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영면한 자들의 납골당은 엄숙했다. 돌계단을 올라 한 유골함 앞에 멈춘 그는 익숙한 손길로 투명한 유리에 붙은 먼지를 떼어냈다. 끈끈이처럼 유리에 달라붙은 테이프 자국은 그가 계절마다 다른 스티커를 붙이다가 생긴 만성이었다. 오늘은 스티커 대신 품에 안은 하얀 리시안셔스 꽃잎을 떼어 그곳에 붙였다. 얼추 보고 싶은 얼굴 같기도 하다. 유리 벽에 지그시 이마를 기댄 그가 눈을 감았다.




― 이렇게 있으면 따뜻한데.

……

― 꼭 살아있는 것 같아.




부모의 멸시,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얼룩덜룩한 맨발로 밤길을 도망쳤던 은수였다. 승관은 벌써부터 목이 메었다.




― 오늘은 뭐 했어? 그림 그렸어?

……

― 그리기만 하지 말고 나도 좀 보여주라. 네가 그려준 내 얼굴 하루도 안 빼고 보는데.




그가 가정폭력 도움 센터에 기부금을 건넨 지도 벌써 7년째다. 일을 시작하고부터 개설한 자유 적금 통장에 매달 저금을 했다. 일정하지 않은 프리랜서 급여로 팔십을 벌든 백사십을 벌든 승관은 계좌에 돈을 예치했다. 오백만 원으로 시작한 그의 기부는 금액과 빈도수를 점점 넓혀갔다. 

은수를 닮은 미래의 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그림을 좋아했던 은수처럼 그 누군가가 그녀 대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부로 시작한 그의 마음은 여름에는 동그란 안경의 윌리로, 겨울에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아이들의 선물이 되었다. 유독 계절을 타는 그가 자진한 봉사였다.

매년 은수의 기일이 되면 승관은 전날 눈물을 흠뻑 쏟아내고 다음 날 이 자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펑펑 울면서 말투까지 어눌하면 듣다가도 도망갈 참을성 없는 그녀를 알기에.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메마른 침을 삼켰다. 혼자 다녀간 듯한 여주의 흔적을 눈으로 좇던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린다. 내부는 고요했다.




오늘 여주 결혼했다.

네 친구, 지훈이 손잡고 주례 앞에 서 있는데 괜히 눈물 나더라.

양 갈래 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 먹다가 코 맵다고 징징거리던 애가 다 커서는 드레스 입고 나한테 인사하는데, 이게 내가 결혼을 안 해도 딸내미 보내는 마음을 알겠더라니까.

예쁜 호박 같았어.

걔 꿈에 나와서 따로 전해주지는 말고. 비밀이다.




승관의 엄지가 유리 벽에 닿는다. 꾹꾹 눌러대도 온기 하나 없는 그곳에서 그는 잠긴 목을 억지로 틔워냈다.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내가 기계공학과 나와서 방송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예전에 여주한테도 말했었거든. 어릴 때 꿈은 원래 꿈으로만 남는 거라고. 근데 그 꿈을 이룰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너무 좋은데 그 순간에도 네가 계속 생각이 났어. 어릴 때 별밤 라디오 흉내 내겠다고 내가 대본 써서 거실 책상에 앉으면 네가 소파에 누워서 들어줬잖아. 카스테라 먹으면서 내 목소리가 꼭 이 카스테라 같다고 말해줬잖아.




참은 눈물이 쏟아진다. 참기 힘든 그리움이었다.




― 내 라디오 이름…… 네가 지어준 거야.

……

― 은수 네가 내 꿈 완성해준 거라고…….




끝내 승관의 눈물을 닮은 비가 쏟아진다. 우중충한 하늘과 흐린 안개가 서서히 주변을 감싸 안았다.




― 꿈을 이뤘는데도 허전해. 가슴이 너무 답답해, 은수야.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화가 나.

……

― ……내가, 내가 널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게…… 그게 너무 화가 나…….




어린 자신을 얼마나 찍어 내렸는지 모른다. 왜 그 아픔을 알지 못 했냐고, 왜 지켜주지 못 했냐고, 숨이 멎고 비에 젖어 불어버린 그녀를 끌어안고 병신같이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느냐고.

승관의 삶은 후회였다. 몇 번이고 영영 되감지 못할 시간 속을 억지로 나아갔지만 발목에 쇠사슬이 달린 것처럼 아주 느린 걸음이었다.

어느 날의 그는 꼭 재단되지 못한 옷감 같았다. 또 어느 날은 그는 시멘트에 절여진 시리얼 같았다. 또 어느 날의 그는 운석에 난도질당한 달의 파편 같았고, 다시 또 어느 날은 아무것도 아닌 무명이었다.

그는 더이상 누구를 만나고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메어버린 발자국은 어느새 여주의 배경을 따라 흘러갔다. 남은 인생은 여주의 그림자로, 여주의 버팀목으로 있고 싶었다. 그저 자신처럼 사랑을 잃고 후회로 점철된 길을 걷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훈의 사계절을 악착같이 챙긴 것도, 기적처럼 돌아온 여주가 지훈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 이유도 승관은 자신이 갖지 못할 해피엔딩을 안겨주고 싶었다. 은수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살다 떠나고 싶었다.




― ……거기서 여주 지켜준 거 내가 다 알아. 지훈이 옆으로 여주 다시 돌아오게 해준 것도 다 안다고 내가……. 그래서 너한테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런 건 보고 직접 말하고 싶은데…… 진짜 미안한데…… 우리 딱 한 번만 보면 안 되냐. 내 앞에 정말 딱 한 번만 나타나 주면 안 되냐…… 정말 안 되냐 은수야…….














투명한 유리를 타고 내리는 눈물.
승관은 질끈 눈을 감았다.














지켜줘서 고마워.

살게 해줘서 고마워.










내 앞에 나타나 줘서……










……정말 고마워.










가엾은 손길이 외벽을 매만진다. 그 너머 눈물에 잠겨버린 은수를 보듬는 것이다. 그가 준 리시안셔스를 안고서 웃고 있는 그녀에게, 시간이 멈춰버린 앳된 소녀에게 닿지 못할 고백이 아프게 울린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은수야.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녀를 부른다. 오래된 사진 앞에서 몇 번이고 무너지는 마음을 가슴 깊이 숨긴 그는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갔다.

비가 그친 하늘은 연한 무지개를 피웠다. 햇살에 반사된 눈부신 줄기는 승관의 느린 발걸음을 몰래 따라 걸었다. 생전에 전하지 못한 누군가의 느린 사랑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린 오래오래 안녕이지만 오래오래 사랑한 기분이 든다.




















승관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독자1
작가님 지금 제 가섬이 걸레짝이됐는디요.....🥲
3년 전
독자2
사미예요! 이전 외전에서는 달달하더니 이번 외전에서 마음 아프게 하기 있기예요?ㅠㅠㅠㅠ 승관이 다운 방법으로, 그리고 승관이 다운 말들로 은수를 기리고 그리워하는 이 외전에서 찡하고 울컥해지네요ㅠㅠ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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