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우리
w.1억
'만약에 내가 애를 가졌다면 어떻게 할 거야?'
'임신??'
'그럴 수도 있잖아. 갑자기.. 막..'
'지워야겠지..? 애 책임질 능력도 되지도 않고..'
'아, 그래..?'
'왜? 갑자기'
'아냐 그냥..'
3년 전.. 임신 소식을 듣고, 너에게 조심스레 물었고.. 너는 내 말에 밝은 표정 한 번 보여주지않았다.
제 11화_
헝클어진 미움 하나
열린과 혜선은 술집에서 재밌지도 않는 얘기들을 떠들며 술을 마시고있다. 뒤늦게 술집에 들어선 동연은 혜선 옆에 열린이 있자, 놀란 듯 열린을 바라본다. 열린과 혜선이 동연이 들어오지않고 눈치보는 걸 보고선 혀를 쯧쯧 찬다. 무슨 사고를 쳤길래 저래. 동연의 뒤로 주혁이 들어오자, 혜선이 '미친..'하며 인상을 쓴다.
"그냥.. 친구끼리 술 마시는 건데 뭐!.."
눈치 보이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하하하! 큰 소리내며 웃는 동연에, 열린이는 이 상황이 너무 불편할뿐이다. 혜선이 인상을 쓰다가도 재밌다는 듯 주혁과 열린을 번갈아보며 말한다.
"그래. 너네 헤어지고 처음으로 만나는 거잖아. 이런 자리에서. 어색한 것도 풀고 그래. 그래야 나중에 서로 결혼해도 축하해주러 오고 그러지."
결국 둘은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열린과 주혁은 서로 마주보고 앉았지만,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둘을 제외한 혜선과 동연은 둘이서 얘기를 하기 바빴고, 한참이 지난 후에 예상치도 못 한 주혁의 말에 모두가 놀란 듯 주혁을 보았다.
"네 애인은 뭐하는 사람이냐."
정말 예상치도 못 한 말이었다. 열린이 아무 대답도 안 하고선 다른 곳을 보았다.
"이제서야 열린이가 궁금하냐? 참 빨리도 물어본다. 어휴.."
"뭐하고 사는데."
또 한 번의 정적이 흐른다. 처음보는 힘들어보니는 눈빛으로 안 어울리게 진지한 목소리.
"그냥저냥.. 살지 뭐."
"일은."
"할 거야."
"할 곳은 있고?"
"찾아보면 수두룩해."
"하다가 정 없으면.."
"내가 알아서 할게."
열린이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고, 주혁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둘의 대화가 왜 이리도 어색한지.. 동연과 혜선이 여전히 눈치를 보며 서로 눈만 보며 깜빡이다가 다시금 들려오는 주혁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 주혁을 본다.
"남자가 잘해줘?"
"……."
"네가 좋대?"
열린이의 표정이 굳자, 동연은 상황파악을 했는지 급히 각자의 잔을 채워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고선 하늘높이 들며 짠- 외쳤고, 아무도 잔을 들어주지않자 동연이 풀이 죽어서 말한다.
"일단 술 마시자.. 각자 한병씩 잊었냐?"
"김선호 너 요즘 얼굴이 폈다? 연애라도 하냐?"
선호와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누나 현진은 선호의 집에 놀러와 집 안을 둘러보다가 자꾸만 콧노래를 부르는 선호를 보며 말했고, 선호가 웃으며 말한다.
"한달은 넘었지?"
"뭐야. 왜 나한테 말 안 해?"
"전화 안 받는 건 누나였지?"
"와 김선호 연애한다."
"근데.."
"근데?"
"고작 한달하고 조금 만났는데. 결혼 얘기하면 부담스럽겠지?"
"풉.."
"왜 웃어?"
"너 원래 연애만 하고 죽자~ 했던 놈이잖아."
"내 얼굴로 2세를 안 보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미친놈.. 여자친구 뭐하는 사람인데? 예뻐?"
"누나보다 훨씬 예뻐. 내가 봤던 여자들중에 제일."
"같이 찍은 사진이라던가.. 그런 사진 없어? 궁금해.. 뭐가 그렇게 좋아서 결혼이 하고싶은데~~?"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다가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선호를 본 현진이 웃으며 말한다.
"핸드폰이라곤 잘 보지도 않는 놈이..?"
"그러게. 내가 이 사람 만나고 하지도않던 짓을 그렇게 하네."
열린과 주혁은 말이 없었고, 동연과 혜선의 대화소리만 들릴 뿐이다. 모두가 술을 많이 마셨고, 주변은 시끄럽기까지 해서 모두 정신이 없어보였다. 열린이 선호에게 카톡 답장을 하고선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으면, 주혁이 열린을 한참 바라보다가 열린이에게 들켜버린다. 주혁은 눈을 피하지도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길열린."
"어?"
"너 예전에.."
주혁이 아무말도 하지 못 했다. 열린이 '뭐'하며 인상을 써도, 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차마 물어보지 못 하겠네. 주혁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자, 열린이는 답답하다는 듯 먼저 말을 건넸다.
"너도 만나는 사람 있고, 나도 만나는 사람 있으니까 하는 소린데."
"……."
"거진 10년을 만나면서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을 거 아니야.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사이가 될 수 없다면, 친구로 지내면서 연애하고 그러면 충고도 해주고 그런 사이가 됐음 좋겠어."
"……."
"나는 남자친구가 데리러왔다네.. 계산은 내가 할게. 예전에 나 돈 없을 때 나도 얻어먹었으니까. 나중에 봐, 다들."
열린이는 저 말을 끝으로 계산을 하고선 술집에서 나갔고, 주혁은 그런 열린이의 뒷모습을 끝까지 보았다. 그리고 이 상황이 재밌는 동연과 혜선은 자기들끼리 웃기 바쁘다.
선호씨가 데리러 온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남주혁 앞에서 잘사는 척 하고싶었으니까.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야 선호씨에게 전화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에게 전화한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전화를 받기에 웃음이 나왔다.
"전화를 왜 이렇게 빨리 받아요?"
- 마침 열린씨 생각나서 전화 하려던 참이었어요.
"텔레파시인가~~? 뭐하고 있었어요?"
- 이제 씻고 나와서. 열린씨 생각.
"선호씨..."
- 네에.
"저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 무슨 일 있었어요? 열린씨 보러 가도 되나?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에 화가났다. 남주혁 때문에 눈물 흘리기 싫은데. 왜 자꾸 나오는 걸까. 슬퍼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눈물이 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낫겠지.
동연과 혜선이 편의점 갔다온다면서 한참을 들어오지않자, 주혁이 술집 밖으로 나왔을까.. 혜선은 어디가고 동연이 전봇대를 끌어안고있다. 그런 동연의 뒷덜미를 잡은 주혁이 말한다.
"미친놈아.. 누나는 어디다 두고 혼자 여기있어?"
"집 간다돈뎅."
"술이나 더 마실랬더니 너까지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냐.."
"난~ 가버렸다~ 호호호호."
혜선이 비틀거리며 한참을 걸었을까, 토가 나올 것 같은지 금방 가로등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한참을 있는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엉엉 - 울다가도 또 미친 사람마냥 또 웃으며 걷는 혜선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 쳐다본다. 또 얼마나 걸었을까..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진 혜선이 소리를 지르자, 부딪힌 사람이 혜선을 이상하게 내려다본다.
"괜찮아요?"
"괜찮으면 내가 소리를 질렀겠냐구요."
"소리 지르는 거 보니까 멀쩡해보여서."
"어라.. 그 재수없는 경호원?"
"술마셨어요?"
"그래. 어쩌래."
"어쩌래는 어디말이래. 술 마셨으면 집이나 조심히 가요. 밖에서 술주정 하지 말고."
"집 가고있는데 그쪽이 날 막았잖아."
"그쪽이 나한테 달려와서 부딪혔죠."
"우리 집안 다 검사야. 까불지 마라."
"…허."
택시라도 잡아줘야겠단 생각에 '잠시만요'하고선 뒤돌아 택시를 잡으려던 도환은 뒤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이 상황에 저기서 잠이 오나."
쓰레기 더미를 침대삼고 누워서 눈을 감고있는 혜선이 어이가 없는 듯 작게 웃는다.
주혁이 집으로 들어오자, 성경이 기다렸다는 듯 주혁에게 안겼고.. 주혁의 표정은 그리 좋지않았다. 주혁이 기분 안 좋다는 걸 눈치챈 성경이 얼굴을 마주보며 말한다.
"동연이랑 싸우기라도 했어?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지?"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들어가서 자자."
"응.."
주혁이 씻으러 욕실로 들어서면 성경은 찝찝한 듯 고개를 갸웃 하다가도 먼저 침실로 향한다.
같은 침대에 누워서 열린이 선호를 끌어안은 채로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선호는 열린이 무슨 일이 있는 걸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않고, 열린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린다. 열린이 물 좀 마시고 온다며 잠깐 일어난 사이.. 선호가 열린이 따라일어서 걱정이 되는지 손목을 잡고 묻는다.
"열린씨."
"네?"
"나 열린씨한테 첫눈에 반한 거 맞는데. 열린씨 우는 모습에 더 반했었어요. 근데.. 그렇다고해서 열린씨 속상해하는 모습만 보고싶지는 않아요."
"……."
"누가 그렇게 자꾸 열린씨를 힘들게해요? 열린씨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너무 걱정이 돼서.."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
"나중에요..! 나중에!.. 상황이 많이 정리가 되면 그때 말해줄게요. 그렇게 심각한 상황도 아니에요. 진짜.."
"알겠어요."
"꼭 말할게요."
"꼭 말해줘요."
"아, 물마시고싶은데..."
"응?"
"손을 놔줘야 가죠~"
"아, 미안해요."
열린이 선호가 그저 귀여운지 키득키득 웃었고, 선호가 얼굴이 붉어져서는 눈을 피한다.
자다가 주혁이 없는 걸 확인한 성경이 상체를 일으켜 앉아서는 주위를 둘러본다. 주혁은 집에 없었고.. 자기 집에 여친 혼자두고 어딜 간 거야.. 혼잣말을 하며 거실에 나온 성경은 소파에 앉아있다가 주혁에게 전화를 걸으려다가도.. 핸드폰을 바닥에 떨군다. 심지어 발로 건드려버려 소파 밑으로 들어간다. 귀찮은 듯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숙여 소파 밑을 본 성경은 핸드폰을 꺼내면서 그 옆에 있는 무언가를 꺼낸다.
"이게 뭐야.."
늦은 시간이었다. 새벽 1시가 되어서는 주혁은 열린이의 아버지가 있는 병실 앞에서 서성인다. 너무 늦은 시간이다보니.. 복도에도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문에 있는 창문으로 안을 보았을 땐.. 몇달만에 보는 아버님은 더 말라있었다. 씁쓸한 듯한 표정을 한 주혁은 문 앞에 과일바구니를 내려놓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어머님은 문 앞에 있던 익숙한 사람이 뒤돌아서 가려고 하자, 급히 입을 열었다.
"주ㅎ.."
붙잡으려고 뻗은 손을 금방 내려놓았다. 주혁이 듣지 못 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복도엔 열린 어머님의 한숨소리가 울려퍼졌다.
소파 밑에 있던 사진 한장을 본 성경은 눈이 커졌다. 이 여자는.. 카페에서 본 사람인데..
"……."
주혁과 열린이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사진 뒤에는.. 글씨가 써져있다.
- 2019년! 7년째 연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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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잉 다 들켰네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