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순 팬픽, 석민순영 팬픽, 이석민권순영
그 멍청한 남자가 사라졌다. 항상 놀림감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만 같던 그 아이가, 어떤 말을 해도 한껏 찢어진 눈꼬리를 휘저으며 웃던 그 아이가. 다들 그에 대해 어떠한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리워는커녕, 아예 처음부터 없던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모든 게 평소와 같아서, 정말 그가 없던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리 없었다. 그는 정말 우리의 옆에, 내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 이거...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그는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토실해서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볼이, 옆가에 핀 꽃들마냥 붉게 물들었다. 그가 건넨 꽃반지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고, 그는 고맙다며 다시 흐드러지게 웃었었다. 그게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 대화였다. 그리고 그가 주었던 그 반지, 그 꽃반지는 아직 내 책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져 있다. 그러니까 그는, 없었던 존재가 아닌데.......
편지라도 한 통 쓸 걸 그랬다. 아쉬웠다. 그를 이렇게 보내기에는, 아무리 그가 멍청이라고 놀림받던 동네 바보였다고 해도, 내가 너무 마음을 많이 쏟았다. 인정한다. 나는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좋아했던 걸까? 그럼 이렇게 태연하게 있어도 되나? 그가 주었던 반지나 눈으로 이리저리 쳐다보면서,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그에게 가졌던 감정이, 설마 그냥 연민이었던 건가.
- 석민이는 날 평범하게 대해 줘. 그래서, 네가 좋아.
하지만 그가 했던 네가 좋아라는 말은, 아직도 내게 잊지 못할 설렘이 맞다. 아. 나는 권순영을 좋아했다. 그 멍청한 순수함, 하얀 도화지 같은 깨끗함을. 그가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깨닫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 석민이가 날 보는 눈빛이 너무 좋아.
- 어떤데?
- 뭔가, 봄을 맞이한 나무 같아.
- ...... 시적이네.
당연히 봄을 맞이한 나무일 수밖에 없지. 권순영이, 네가, 내 봄이었는데.
- 나중에 나한테 편지 써 줘. 나중에.
햇살이 참 따뜻하기도 하다. 이유도 없이 사라진 봄이지만, 그 감정을 깨달았다는 자체로 봄은 다시 찾아왔다. 책상에 길을 잃고 굴러다니던 펜을 집어들었다. 서랍에서 날 기다리던, 나의 수신인을 기다리던 편지지가 드디어 수신인을 찾고 있다.
[순영에게.]
너무 늦게 깨달은, 나의 봄에게.
번외 석민에게, 도 있어요. 석순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