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고에서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이 있다. 바로 정재현 여자친구 되기vs 김여주 되기다. 이 밸런스 게임을 이해하려면 우선 정재현이란 인물부터 알아야 하는데, 시티고 왕자님이란 별명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귀티 나는 외모, 탄탄한 피지컬, 소매 사이 슬쩍 보이는 까르티에 시계까지, 마치 인터넷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재현은 입학식 때부터 학교를 뒤집어 났었다.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은 아직 몰라도 1학년 3반에 정재현이 있는 건 알았으니, 그의 인기는 말로는 가히 다 나타낼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보통 사람이 이렇게 잘나면 꼭 시기, 질투하는 트롤들이 있는데 정재현은 그것조차 없었다. 얼굴 잘난 정재현은 재수 없게도 모든 면에서 잘났기 때문이다. 공부 잘해, 운동 잘해, 집도 잘 살아. 남자에겐 선망이었고 여자들에겐 로망이었다. 덕분에 정재현은 어디를 가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이 꼬였다. 다시 게임 설명으로 돌아와서. 전자는 이런 정재현을 공식적으로 쟁취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보란 듯이 사랑받고 정재현이 남친 짓도 해준다. 근데 후자도 딱히 다를 건 없다. 정재현의 현 여자친구가 김여주를 시샘하면 헤어진다는 소문도 있다. 물론, 이건 정재현을 찬 전 여자친구들의 입장인지라 신빙성 있는 정보는 아니다. 정재현과 김여주는 17년 지기 친구다. 정재현이 김여주 대하는 것만 보면 거의 여자친구다. 다소 불같은 김여주 성격 일일이 맞춰주며 공주님 공주님 하며 따라다닌다, 야자가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주고, 매점에 김여주가 좋아하는 젤리가 들어오면 다 사다 받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여주 챙기느냐 여자친구 챙길 시간은 없다. 그래도 정재현의 여자친구 타이틀을 갖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에 정재현의 연애는 끊기지 않는다. 아무튼 정재현의 사랑을 단기간에 몰빵으로 받느냐 vs 장기간 동안 듬뿍 받느냐이기 때문에. 대부분 후자를 고른다. 그만큼 정재현이 김여주를 애지중지한다는 말이다. . . . 김여주는 이 사실을 듣고 남 몰래 비웃었다. 지랄하네. "여주야, 정재현 왔다" 반 친구에 말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문간에 기대서 있는 정재현이 보였다. 안 그래도 이상한 밸런스 게임 얘기를 듣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참이었는데, 정재현이 또 내 속을 긁으러 왔다. 정재현과 한수민이 사귄다는 사실은 오늘 소문으로 들었다. 정재현은 꼭 이렇게 자기의 연애 사실을 소문으로 듣게 한 뒤, 내 반응 보러 오는 엿 같은 취미가 있다. "야 정재현, 너 여자친구 생겼다며?" 내가 느릿느릿 걸어가 웃으며 선수치자. 정재현이 내 손을 맞잡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내 손을 문질렀다. 너 새끼 이렇게 개수작 부리는 거 네 여자친구도 아니? 정재현을 쏘아 올려보며 손을 확 쳐내자 정재현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한 수 더 떠 연기한다. "표정이 왜 그래, 공주야 질투나?" 기가 막혀서 못 살겠다. 너 그거 원하고 온 거잖아. 뭘 물어. 하지만 여기서 지랄하면 내가 지는 거다. "아니, 진작 말해주지 놀랐잖아, 아무튼 축하해" 애써 쿨한 여사친인 척 축하하자 정재현이 허리를 접어가며 꺽꺽대고 웃는다. 그리곤 몸을 기울여 거리를 좁히더니 내 귓가에 속삭인다. '공주야 다 티 나' 웃는 듯한 숨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간지럽히자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게 느껴졌다. 정재현은 내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더니 한 차례 더 끅끅대며 웃는다. 아, 신이시여, 제발 이 새끼 좀 죽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