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
첫사랑과 애증 사이 03
- 이제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었다.
w. 이여운
겨우 다가온 주말이었다. 일주일이 이렇게나 길게 느껴진게 얼마만이더라. 회사일에 파묻혀 살며 이렇게 일주일이 빨리 가라고 외치던적은 처음인거 같았다. 내일이면 다시 회사라니. 월요일은 그렇게나 느리더니 일요일은 의미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 카톡
' 집이지? ’
‘ 응. ’
- 띵동
- 카톡
‘ 문열어. ’
1
“ 미쳤어? ”
“ 응. 솜이한테 미쳤어. ”
“ 아. 제발. ”
카톡을 답장하는 순간 울린 인터폰 소리에 문을 여니 민윤기가 떡하니 서있었다.
“ 왜 왔는데. ”
“ 에이. 우리가 무슨 일있어야 만나는 사이는 아니잖아. ”
“ 그렇다고 만나야 할 사이도 아니잖아. ”
“ ..아. 또 이러네. ”
“ ..... ”
“ 요즘 왜 그래 솜아. ”
“ ..뭐가. ”
“ 예민하잖아. 아니야? ”
맞다. 예민하지. 엄청.
“ 무슨 일 있어? ”
응. 있어.
“ 우리 팀 새로 온 팀장, ”
“ 어. 팀장이 괴롭혀? 내가 혼내줄게. ”
“ ... 걔 전정국이야. ”
“ 어, 이름은 나도 아는데. ”
“ 나 어렸을 때, 걔라고. ”
“ ..... ”
“ 전정국. ”
“ ...아, 그래? ”
“ 너 알고 있었잖아. ”
“ ..... ”
아니, 몰랐어. 애써 들리지 않은 모습으로 냉장고로 향하는 민윤기가 보였다. 민윤기는 다 알고 있다. 내가 전정국을 얼마나 좋아한지. 그저 말 그대로, 민윤기는 나로 가득 차있다. 어쩌면 민윤기는 자기 자신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모른다.
“ 그래서, ”
“ ..... ”
“ 넌 어땠어. 솜아. ”
“ ..... ”
“ 보니까. ”
“ ..... ”
“ 설렜어? ”
그 반대도 역시 성립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물을 따르며 나를 쳐다보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 것도, 눈이 조금 흔들린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너는 내 어떤 대답을 기대할까.
민윤기는 20대의 내 전부였다. 그러므로 민윤기는 초반기 나의 아픔도 잘 알고 있었고 어쩌면 나보다도 더 내 마음을 잘 알지도 모른다. 민윤기에게 나에 대한 건 모두 무겁다. 내가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 아니. 오래 됐잖아. ”
“ ..그렇지. "
“ 그냥, 덤덤했어. ”
“ ..... ”
“ 나한텐 니가 있잖아. 윤기야. ”
“ .....어. ”
“ ..... ”
“ 내가 있지. ”
“ ..... ”
“ 너한텐. ”
2
그 후로 민윤기는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모든 신경이 내게 서있는 느낌이랄까. 원래는 이정도는 아니었던거 같은데.
점심시간이든 퇴근시간이든 문만 열면 떡하니 복도에 등을 기대곤 서 있었으니까.
“ 너 안 바빠? ”
“ 응. ”
“ 너 팀장 아니었어? ”
“ 맞는데? ”
“ 근데 왜 이래. 팀원들이 욕하겠다. ”
“ 누가 뭐라해. 내가 더 위엔데. ”
씩 웃으면서 말하는 민윤기가 등을 벽에서 떼어내며 내게 말했다.
“ 왜 이렇게 극성이야. ”
“ 그냥. ”
“ 이렇게까지 안해도 돼. ”
“ ..... ”
“ 안해도 어디 안가요. 응? ”
내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얄궂게 웃었다. 민윤기는 웃고 있어고 나도 웃고 있었지만 진심인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민윤기에게는 확인 시켜줘야 했다. 나 어디 안간다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 알아. ”
“ 어디 안가는거. ”
민윤기는 항상 확인받고 싶어했다.
3
띠링-
‘ 요즘 민윤기 왜 이렇게 자주 들락거려? ’
‘ 그러니까요. 좀 그렇죠? ’
‘ 팀장님 너 나갈때마다 노려보는데 문에 구멍 뚫릴 듯. ’
‘ 네? 진짜요? 보고서 낼거는 다 내고 가는데.. ’
‘ 일 때문 아닌거 같은데? ’
‘ 그럼요? ’
‘ 그건 모르지. ’
‘ 뭐에요. ’
‘ 그냥, 남자끼리의 직감이 있어. 넌 몰라 솜아. ’
점심시간을 조금 남겨뒀을즈음, 김 대리님에게서 사내쪽지가 왔다. 전정국이 노려본다고? 항상 내야 할 보고서가 있으면 착실하게 다 내고 최대한 일도 열심히 해왔던거 같은데, 막상 그런 소릴 들으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래, 요즘 너무 자주 오긴 했지, 민윤기가.
또 벌컥 들어오지만 않으면 되는데, 오늘은 눈치보여도 미리 나가 있어야겠다.
스르르 의자를 밀며 눈치껏 나가려고 할 때였다. 팀장실 문이 열리더니 전정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일찍 나가려나봐. 잘됐다. 빨리 나가주세요. 제발.
뚜벅뚜벅 구두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내 시야에 들어오는 남성 구두.
“ 이 솜씨. ”
“ ..네, 네?! ”
“ 뭐하세요. ”
“ 아하하. 뭐가 떠,떨어져서. 왜 부르세요? ”
“ 오늘, ”
탁 -
“ 솜아. ”
전정국이 입을 떼려는 그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며 민윤기의 모습이 나타났다. 전정국은 본체도 않고 내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진짜 망할 타이밍.
“ 솜아, 밥 먹으러 가자. ”
고개를 휙휙 젖히며 나가라는 무언의 표시를 날렸다. 안나가?
“ 빨리 가자고? ”
미치겠다.
“ 근데 너 자세는 왜 그래. 너 일할거 남았어? ”
안되겠다 싶어 살살 눈치를 보며 전정국에게 말했다.
“ 아, 팀장님. 제가 점심시간 끝나고 팀장실로 찾아갈ㄱ, ”
“ 왜, ”
“ 왜 그쪽이 신경씁니까. 민 팀장님은 다른 부서인걸로 아는데. ”
“ 이 솜씨는 저희 부서에요. ”
“ 그만 오시죠. ”
4
고개를 미친듯이 숙이며 내가 죄송하다고 연이어 말하고는 민윤기를 끌고 나왔다. 이제 눈치껏 좀 오지말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하고 나서야 민윤기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시무룩한척해도 못 넘어가.
급하게 끼니를 떼우고는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은 시간을 보곤 부서로 향했다. 블라인드 사이로 전정국의 실루엣이 보였다. 또 일하고 있을테지. 사과라도 다시 해야겠다 싶어 문을 똑똑 두드리곤 들어갔다.
“ 저 이 솜이에요. ”
의자에 앉아서 서류 뭉치를 들고 있는 전정국의 모습이 보였다. 책상 끝에는 테이크 아웃한 커피가 놓여있었다.
" 반말 해도 돼. "
“ ..... ”
“ 우리만 있잖아. 괜찮아. ”
“ 아,응.. ”
“ 오늘 미안해. ”
“ 뭐가. ”
“ 그 민팀장님 있잖아. 나랑 아는 사이여서 그래. ”
“ ..... ”
“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이제 오지 말라고 했어. ”
“ .... 왜 니가 사과해 ”
“ ..... ”
“ 왜 그 사람 사과를 니가 하냐고. ”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 확실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긴 했으니까.
굳이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생각하는 사이 정적이 찾아왔다.
“ ..둘이 사귀는거야? ”
“ 어? 아니, 아니야. ”
정적이 이어졌다.
“ 그냥, 알던사이야. 원래. ”
그 순간 나는,
왜 신경 쓰냐고, 신경 쓰이냐고 장난스레 웃으며 말해보고 싶었다.
마치 전정국과 내가 함께 3-1반 앞에 서 있던 그 복도에서처럼.
“ ..... ”
“ ..... "
하지만 말할 수 없을테지. 내가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어쩌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16살의 그곳으로. 동아리가 끝나고 텅 빈 학교에 동아리 친구들과 걷던 그 기다란 복도를, 그 속에는 16살의 너를 좋아하던 내가 있고, 내 사랑을 받던 그 시절의 네가 있던.
“ 내가 불편해? ”
“ 응? ”
“ 불편해 하는거 같아서. ”
“ ..... ”
불편하냐고? 그건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질문을 한 네가 미웠다.
“ 아니, ”
“ ..... ”
“ 안 불편해. ”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기로 했다.
“ 불편할 이유도 없잖아. ”
너는 그 예전부터 둔했다. 나는 여전히 전정국이 불편하다. 그건 당연했다. 사실 나는 전정국에서 거절을 당한 그때부터 그가 불편했다. 애써 그전처럼 친한 친구로서 대했고 항상 웃었으니까. 내게 불편하냐고 한 건, 넌 이미 내가 불편하지 않다는거겠지.
나는 네가 나를 불편해 했으면 좋겠다.
아직, 그곳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않았다는 증거로써.
내가 고백했던 그때를 기억한다는 것으로써.
하지만 이 곳엔 그때의 우리는 없다.
내가 한입 먹으라며 건네준 커피를 손사래치며 먹지 못한다고 하던 너와
네 앞에선 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올라가는 입꼬리는 내리기 위해 노력하던 내가
이제는 모두 어른이 되어 너는 익숙하다는 듯이 일하며 커피에 손을 대고 있었고,
나는 내 감정을 숨길 줄 아는 내가 되었으니까.
즐겁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 너무 고마워요 암호닉이랑 댓글 내용 전부 항상 보고 있어요!
여러분은 누가 더 좋으신가요!? 저는 둘 다 고민돼요 아직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