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사이트와 동시 연재입니다 ※
첫사랑과 애증 사이
- 그땐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w. 이여운
내 중고등 시절의 절절한 짝사랑 상대를 다시 마주친다는 것은 어쩌면 설레이는 일이다.
그러나
내겐 해당사항 없음.
1
“ 팀장님이 새로 오셨어요. ”
..엄청 닮았다. 닮은 사람을 보면 아직도 가끔식 생각이 나곤 한다. 어떻게 살고 있을려나.
“ 해외지사에서 오신 능력 있으신 팀장님입니다. ”
생각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 팀장님. 소개 부탁드려요. ”
이름이.. 전..
“ 오늘부로 해외지사에서 인사팀으로 발령받은 ”
전정국이었지.
“ 전정국이라고 합니다. ”
.. 어떻게 전정국이 내 눈앞에 있지.
당황한 표정도, 아는 척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살짝 놀랐지만 말단 사원이라 사람들 사이에 묻혀 뒤에 있었으니 못 봤을 것이다. 간단한 인사 후 각자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 떨어졌다. 빠르게 자리로 돌아왔다. 고개를 높이 들면 팀장실 유리창을 통해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고개를 책상사이에 파묻고 생각했다. 미친. 진짜 전정국인가? 쟤 외국 갔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은 게 대학 졸업 때였는데 그게 우리 회사였어? 세상 진짜 좁다. 학창시절 첫사랑이, 심지어 고백했다가 두 번이나 대차게 나를 깐 첫사랑이 10년 뒤 내 상사로 나타날 확률이 몇프로나 될까.
“ 솜이씨. ”
“ ..네? ”
“ 이젠 윤기씨 버리고 책상이랑 연애하는거야? ”
“ 네? 아니에요..그리고 민윤기씨랑 저 연애 하는거 아니라니까요. ”
“ 그나저나 팀장님 정말 멋있다. 나이도 솜씨랑 비슷해 보이는데. ”
“ ...하하. ”
“ 아참, 오늘 점심 팀장님이랑 다같이 먹는다는 거 들었지? ”
“ ..대체 언제.. ”
“ 방금. 전체쪽지 왔잖아. ”
고개를 돌려 컴퓨터 화면을 봤다. 사내 쪽지에 김태형 대리가 뿌린 전체 쪽지가 있었다.
고개를 휙 드니 김태형이 입꼬리를 올리며 컴퓨터를 가르켰다. 쪽지 봤어?
김태형은 도움이 안돼.. 그리고 연이어 김태형에게 개인 쪽지가 왔다.
- 오늘은 민윤기랑 밥 못 먹겠네. 오기 전에 연락해놔. 팀장님도 새로 왔는데 또 벌컥벌컥 오면 어떡해. -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평소처럼 민윤기가 문을 활짝 열며 솜아!!! 하는 꼴은 못 본다. 팀장도 새로 왔고 내가 전정국과 별 사이도 아니긴 했지만 민윤기의 그,
벌컥-
“ 우리 솜이 어디있어요? ”
“ ..... ”
“ 솜아. 오빠 왔다. 어디 갔어. ”
“ ..... ”
“ 오빠랑 빠빠 먹어야지. ”
저 꼴을 보여 줄 순 없었는데, 보였다 이미.
2
전정국은 내 중고등학교 동창이자 내 첫사랑이었다. 전정국은 중학교 축제 때 기타 들고 나와서 노래 부르고 전학년 여학생의 인기남으로 부상했지만 여자에 관심도 없었고 관심이라곤 축구와 노래, 춤, 공부뿐이던 아이였다.
나는 같은 동아리였고 전정국의 손에 꼽는 친한 여자인 친구였다. 그 중에서도 거의 탑이었고. 이건 상대적으로 말하는 거였다. 남자애들과는 비교도 당연히 안됐지만 여자중에선 친하다고 자부하며 만족했다.
중3 졸업식을 앞두고 겨울 냄새가 퍼질 즈음, 전정국을 불러내 고백했다. 야, 선생님이 너 체육실로 오라셔. 따라가는 척 2학년과 1학년 계단 사이에서 나는 멈춰선 채 고백했다. 새콤달콤 포도맛과 복숭아 맛을 주며.
“ 내가 무슨 말 할지 상상가지? ”
“ ..어. ”
“ 그렇게 티났어? ”
“ ..... ”
“ 나 너 좋아해. 정국아. ”
“ .... 저ㄱ,”
“ 알아. ”
“ ..... ”
“ 너 여자 관심없고 사귈 맘도 없잖아. 그냥 고백하는 거야. 말 안하긴 내 성격에 답답하고 속상해서. ”
“ ..... ”
“ 너 고백 받은 적 없지? ”
전정국은 학교에서 우상 같은 존재였다. 인기는 터져났지만 아무도 건들이지 않는. 여자애와 친하지 않던 철벽도 그 이유에 가담했고 또한 무언의 약속이었다. 여자들 사이에. 나는 그 틈을 노렸다. 나를 잊진 말라는 이유에서.
“ ..응. ”
“ 그래. 내가 고백한 거 첫 번째네? 이젠 니가 적어도 잊진 않겠다. 그치? ”
나는 개구지게 웃으며 교복 치마 주머니에서 새콤달콤 포도맛과 복숭아 맛을 건넸다. 전정국은 웃으며 받아들었다. 우리는 서로 계속해서 친구를 하기로 했고, 나는 웃었다.
남고로 꺼지라는 내 말은 무시한 채 전정국은 남녀 공학으로 떠났다. 나는 여고로 왔다. 전정국의 ‘ 너나 여고 가. ’ 라고 하던 개구지던 웃음에 넘어갔다. 분했다. 전정국은 여전히 유명했다. 아람고 축제를 치면 유튜브에 제일 위에서 전정국의 축제 영상이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교 내내 11월, 축제 기간이면 유튜브에 파묻혀 살았다.
중학교 내내 전정국 반으로 출근하냐던 친구들의 입담에 맞게 나는 매 쉬는 시간마다 11반에서 1반으로 출근했다. 너무 멀어서 오고 가고 5분이었고 나는 나머지 5분은 정국이의 반에서 전정국을 구경했다. 히터 주위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던 모습을. 고등학교에 와서 볼 수 없는 그 모습에 나는 애가 탔다. 친구들이 몰래 사진을 찍어 내게 근황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버틸 수 없었고 여전히 그 아이가좋았다.
내 비밀번호는 1028 이었다. 내가 고백한 날. 차였던 날. 비록 차였지만 우리 둘만이 오롯이 존재하는 날이어서. 잊지 못했다. 결국 나는 고2 가을. 10월 28일에 전정국을 찾아갔다. 학교 앞으로. 그리고 고백했다. 혹시 고3이 지나면 봐줄 수 있냐고. 내가 그때까지 너 계속 좋아하면 안되겠냐고.
그리고 뻥 차였다. 미안하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전정국의 친한 친구니까. 그 몇 없다는 전정국의 여자인 친구 리스트에 들어갔는데. 20살이 되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했다. 중3 때의 고백보다 두 번째 고백은 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아무리 널 기다려도 날 여자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체감했기 때문에.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표정으로 날 거절하던 모습에 나는 또 쿨한척 웃었다. 그래, 우리가 무슨 연애야. 친구지. 공부 열심히 해.
나는 21살에 딱 한 번 동창회를 나간 뒤,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다시 보면 좋아질 것 같았고 나는 그 사이에 연애를 했다. 친했던 중학교 친구들은 전정국이 유학을 갔다고 했고 나는 이제 완전히 잊고 살았다.
시간이 지나도 그 아이는 못 잊을 줄 알았는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나니 근근히 들리던 그 아이의 소식도 가볍게 지나 칠 수 있었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28살이 되었다.
3
“ 솜아!!! 이솜!!! ”
냅다 달려나가 민윤기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밖으로 이끌었다.
“ 장난해? 오늘 팀장님 새로 왔는데 이렇게 난리를 피우면, ”
“ 팀장? 남자야? ”
“ 응. 그럼? ”
“ 여자가 팀장일수도 있잖아. 왜 또 남자야. ”
“ 그러는 너도 남자거든? 민팀장님. ”
“ 나는 다르지. ”
“ 여튼 오늘 점심 못 먹어. 팀원들이랑 다같이 먹어. ”
“ ...헐. ”
“ 30살이 헐 같은거 좀 쓰지마. ”
“ ...헐.. 솜이가 나 버렸네. ”
“ ..... 제발. ”
“ 자식 키워봤자 소용 없다더니. ”
“ 나 간다. ”
“ 그래. 역시 세상사는게 다 그렇지.. 새 팀장 왔다고 이젠 나도 버리고.. 우리가 안지가 거의 10년인데.. ”
“ .. 저녁 먹어줄게. 됐지? 간다. ”
급하게 안으로 들어가니 책상에서 슬슬 일어나려 하는 팀원들이 보였다. 그 사이로 김태형이이 살살 걸어온다.
“ 문자 보내라니까. ”
“ 타이밍이 늦었어요. 하.. ”
“ 하긴. 민윤기를 누가 말리냐. 저거 어떻게 팀장 달았데? ”
“ 저야 모르죠.. ”
“ 이제 나가나 봐. 우리도 가자. 솜아. ”
4
나와 민윤기는 애증의 관계다. 서로에게 해가 되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민윤기는 내 첫 연애상대였다. 중학교 때 사소한 관계들을 빼고 내가 20살이 되면서 처음으로 사귄 남자. 우리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예쁜 연애를 했다. 서로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적당한 선을 지켰고 이해해주었고 서로에게 깊이 스며들었다.
아마 우리는 그래서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3년의 연애 끝에 헤어졌다. 누가 그랬지 않은가.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놓지 못했다. 사랑이라기엔 차가웠고 서로를 놓아주기에는 너무 사랑했다. 헤어진 후 친구가 되자는 착한 이별에도 우리는 실제로 계속 연락했고 서로의 연애에 간섭했으며 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사이에 지친 내가 이젠 정말 서로를 놓아주자고 한 게 민윤기를 알게 된지 6년이 되던 해였고 1년간 서로는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연락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는 근근히 민윤기의 취업소식이 들려왔고 나 또한 취직한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그렇게 거의 1년이 지나던 때 내가 새로이 들어가게 된 회사에는 민윤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애증의 관계는 그 공백기를 지나 다시 시작되었다. 연인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간섭하고 신경이 곧두서있는 그런 사이.
- 저녁 먹는다고 했다.
- 우리집에서 먹을까?
글잡은 정말 오랜만이네요ㅠㅠ 항상 새로운 글은 떨려요! 독자님들 너무 반갑고 거의 처음에 글 올리는 거처럼 댓글은 달릴까 그런생각 들고 걱정되고 그러네요!
읽어주신 분들 모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