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표지훈] 회사 선배
Written By. 미나리
01. 들뜨는, 혹은 가라앉는
* 자기 이름으로 바꾸고 봐주세요. (여주이름이 김꿀벌..)
흔히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전자 회사에 입사한지 어느새 1년. 오늘은 정확히 1년 째 되는 날이였다. 회사에 들어와 그 사람을 만난지도. 그 사람을 남 몰래 짝사랑하게 된지는 어느덧 5개월. 시간 참 빠르다. 이 회사에 입사하고자 밤을 새며 공부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펑펑 눈물을 쏟았던 그 날도. 전부 다.
하, 오늘도 내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숙사에서 나와 회사로 향했다. 입사 1주년이라고 기분이라도 다를 것 같았는데 역시나, 다를게 없는 하루일 듯하다. 그저 내가 회사를 가는 수많은 날들 중 하나일 뿐.. 그래도 뭐, 날씨는 제법 좋은 것 같기도 하고.
…
"안녕하세요"
"일찍 왔네요?"
"아.. 일찍 눈이 뜨여서. 하하."
9시 20분. 별로 일찍 오지도 않은 것 같은데 웬일로 일찍 왔냐는 듯한 옆자리 이대리님의 말에 대충 말을 얼버무리며 멋쩍게 웃었다. 아니, 내가 평소에 그렇게 늦게 출근했나.. 괜히 마음에 걸리는 그 말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사내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고 메일함을 열어보려는 그 때,
"어? 김꿀벌!"
바로 뒤에서 들리는 선배의 목소리와 함께 내 어깨에 닿은 그 손길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움찔. 실은 하마터면 '악' 하고 소리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날 뻔 했다.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아닌데..
"어.. 안녕하세요. 일찍..오셨네요?"
"그치? 꿀벌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얘가 이 시간에 온게 몇 개월만이야."
"에이~ 이대리님. 무슨 소리세요. 저는 늘 일찍 왔는데?"
임마,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그런 거짓말을 해. 이대리님의 단호한 말에 선배는 대리님을 보며 입을 한 번 삐죽이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내게 시선을 맞춘다. 귀엽ㄷ.. 아, 잠깐 방심했다.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안심하고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감상한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시선이 내 쪽으로 올 줄이야.
"김꿀벌."
마음을 다스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입에 또 놀라 '네?'하고 대답하면 뭐라 할 틈도 없이 선배의 손이 다가와 내 머리를 짓누른다. 으악, 뭐야.
"일찍 오셨네요가 뭐야- 그러는 넌 오늘 입사 1주년이라고 일찍 왔어? 오늘 일찍 퇴근해서 어디 가시게?!"
"으아, 아니에요. 선배. 이거 손 좀.."
그냥 눈이 일찍 떠졌다구요.. 내가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리니 그제서야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아 그래?'라고 말하고는 내 머리에서 손을 떼는 선배. 그 와중에 손 참 하얗고 곱다.. 저 손이 방금 내 머리에 닿았구나. 아, 나 변탠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심호흡을 하는데, 아직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선배가 느껴져 괜히 정수리가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꿀벌."
"네?"
"아침은 먹었어?"
"아.. 아직."
그래? 잘 됐다. 나랑 아침 먹으러 가자. 나 진짜 너무 배고파. 울상을 짓고는 배 문지르는 시늉을 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푸흡 웃어버렸다. 그러자 또 헤실거리며 '먹으러 갈꺼지?'. 정말 못말려. 가끔은 이렇게 나보다 어리게 느껴지기도 하고. 참 신기하다. 선배는.
"그래요-"
"아싸!"
"대리님, 꿀벌이 밥 먹이고 올게요."
"그래, 천천히 먹고와."
자기가 배고프다고 했으면서. 이럴 땐 또 하나뿐인 여사원이라고 신경 써주시는 대리님께 내 이름을 판다. 그래도 내심 설레는 기분이다. 선배와 아침밥을, 그것도 단 둘이라니. 혼자 상상하니 괜시리 얼굴이 붉어진다. 어쩌다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게 됐을까..
"김꿀벌?"
"김꿀벌!"
"아?"
언제 내이름을 불렀던 거지. 잠깐 딴 생각에 선배 목소리를 놓쳤었나보다. 내 앞을 가로막으며 이름을 부르는 선배 모습에 난 또 움찔.
"뭐 먹을거냐니까-"
"아! 음.. 딱히?"
"빨리 정해~ 나 배고프다니까?"
그렇게 배고프면 선배가 고르면 되잖아요-. 목까지 차오른 그 말을 삼키고는 곰곰히 생각해 보는데. 이미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는 시간이 지났고, 회사에 먹을 거라고 해봤자 회사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 밖에 없는 듯하다. 단 둘이 먹는 아침인데 편의점에 가고 싶지는 않고..
"샌드위치! 샌드위치 먹어요."
"오케이- 가자."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얹어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선배의 모습에 또 움찔할 뻔 했다. 요즘 따라 선배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신경 쓰이는게, 정말 미치겠다. 정신 차리자. 김꿀벌. 선배는 아무 생각 없이 늘 그렇듯 날 대하는 것 뿐이잖아.
"난 햄치즈. 너도지?"
"네. 저도!"
"음료는.. 레몬에이드?"
"네-"
회사 사람들과 여러 번 왔던 탓일까. 익숙하게 내가 먹는 샌드위치와 음료를 함께 시키고는 지갑을 꺼내는 선배. 아차, 계산.
"어.. 제가 계산할게요!"
"쓰읍- 너 오늘 입사 1주년이잖아. 그리고 이런 건 원래 선배한테 얻어 먹는거야."
나도 선배들한테 얼마나 뜯어먹었는데. 뿌듯하다는 듯 손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며 웃는 선배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 짓고 자리나 잡으라는 듯 툭 치는 선배의 손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음 번엔 내가 사야지. 아,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
"자, 먹어!"
"잘먹을게요- 선배."
"아 배고프다. 잘 먹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한 입 베어물고는 오물오물 맛있게도 샌드위치를 먹는 선배의 모습에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나도 따라 한 입 크게 베어 물자 선배가 눈으로 물어온다. '맛있어?' 그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으니 선배는 내 머리에 손을 얹어 살짝 헝클어 놓는다. 잠시 닿았던 손길의 따뜻함에 목까지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어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는데,
"오늘 입사 1주년인데, 뭐해?"
"네? 오늘이요?"
"응- 보통은 동기들이랑 술을 마신다던지?"
"아뇨- 딱히 약속 없는데.."
"김꿀벌 너 왕따지!"
엑?
"하는 수 없지. 입사 1주년 기념 술은 내가 쏜다-!"
"네?"
"저녁에 시간 되는 거지?"
어떡해. 너무 좋아. 암요, 당연히 되죠. 저는 왕따에요. 친구가 없습니다. 기숙사 살아서 통금도 없어요. 입 밖으로 터져나오려는 말들을 꾹꾹 누르고 크게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 시간 되면 말해. 간만에 같이 술이나 마시자."
"네!!"
술 사준다는 선배의 말에 신이 나서 평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선배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면 자꾸만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다. 웃는게 참 매력적이란 말이지. 선배는. 왠지모르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다시 샌드위치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한 입 베어무는데 "표지훈?"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한다. 여자 목소리다. 그것도 아주 예쁜.
"이연지?"
"아침 먹나보네-"
나를 살짝 흘겨보고는 선배에게 말을 거는 이 여자. 기분 좋지 않은 눈빛이다.누구야. 신경 쓰이게..
"너무 배가 고파서. 너도 아침 먹으러 왔나보네-"
"응- 아참, 오늘 동기 모임 있는 거 잊지 않았지? 이번에도 빠지기만 해봐. 아주-"
"아 맞다."
"또 까먹었지? 시간 비워놔. 나 분명히 전했다?"
"아 배부르다. 연지야, 아침 맛있게 먹어!"
"말 돌리지말구. 이따가 톡할게."
"그래그래"
뭘 그렇게 또 헤프게 웃으세요. 선배. 아무래도 저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는 선배의 동기인가 보다. 그건 그렇고 오늘 동기 모임이 있다니.. 몇 분 전까지 선배와의 저녁 약속에 들떠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이럴 때면 선배와 내가 동기로 만났다면 더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울적해진다.
"꿀벌아-"
"네?"
"음.. 있잖아-"
"아, 선배 동기 모임 다녀오세요! 저보다 선약..이었던 거잖아요."
바보. 멍청이. 머저리.
"미안해, 방금 사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내가 내일 정말 맛있는 거 사줄게!"
"괜찮아요! 샌드위치도 사주셨구"
"아냐. 진짜로. 내일 꼭 사줄게."
약속 잡혔다 까였으면서, 내일로 다시 잡힌 약속에 다시 설레이는 내 마음이 원망스럽다. 선배는 정말 하루에 몇 십번이고 내 기분을 들었다 놨다하곤 한다. 물론 그것도 나 혼자 들떴다가 쳐졌다가 하는 거에 불과하지만..
"어, 다 먹었으면 갈까..?"
"네에-"
다 먹은 샌드위치 봉투를 버리고 선배와 함께 샌드위치 가게를 나서는데, "표지훈! 이따 톡해 꼭!" 하는 낭랑한 그 목소리가 참 거슬린다. 그렇게 샌드위치 가게를 나와 회사 쪽으로 나란히 걸음을 옮기면 괜히 내 눈치를 살피는 선배의 모습이 느껴져 나도 덩달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발걸음만 빠르게 옮긴다.
왠지 공기가 무겁다.
===========================
피오한테 갓 입덕해서 갑자기 삘이 꽂혀서 쓰게 된 빙의글인데, 괜히 썼나 싶기도 하고 ㅠㅠ
아직은 첫화라 약간 무겁고, 설레는 장면이 별로 안 나왔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_#..
아, 참고로 이대리 = 이민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