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펀트 - 물병자리 (Inst.)
[블락비/표지훈] 회사 선배
Written By. 미나리
02. 뜻밖의 설렘
회사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발걸음은 사무실 앞에 멈춰있었고 사무실까지 올라오는 엘레베이터에서도 숨막히게 어색했다는 사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 네. 대리님."
자리로 돌아와 앉기 전 흘깃 흘려 본 선배의 표정은 아직도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 평소와 달리 약간 복잡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난 정말 괜찮은데. 차라리 아까 운이라도 떼 볼 걸. 괜히 선배의 그런 표정에 나까지 말을 잃어서는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든 거 아닌가 싶다.
"꿀벌씨, 메일 온 거 봤지? 그거 부사장님 보고건이라 오늘까지 평가해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평가 진행하고."
"네! 대리님. 시료 수배되면 바로 진행할게요."
"꿀벌씨, 시료 왔더라. 여기-"
"아, 진영선배. 고마워요-"
"꿀벌씨- 혹시 얼마나 진행됐어?"
"아, 대리님. 이거 아무래도 바이너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소프트웨어팀에 연락해봐야할 거 같은데요."
"그래? 연락은 내가 할게. 잠깐 쉬어."
아까 전 선배와의 일은 까맣게 잊을 만큼 갑자기 쏟아지는 일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부사장님 보고라니, 입사 1주년을 기념이라도 하는건가. 오늘 일찍 집에 가긴 아무래도 글른 것 같네.. 으아, 싫다.
"곧 바이너리 다시 준다고 하니까 일단 점심 먹고 바이너리 오면 시작하자."
"네- 밥 뭐 드실 거에요, 대리님?"
"오늘 꿀벌씨 추천 메뉴는 뭐야?"
"어.. 치즈 돈까스?"
"오케이- 밥 먹으러 가자."
…
"식사하러 가시죠."
아침 먹은지 얼마되지도 않는 것 같은데 벌써 점심시간이다. 식사하러 가자는 이대리님의 말에 다들 '아, 벌써 점심시간이야?'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중에서도 천장 높이 기지개를 켜는 선배의 모습이 어느새 내 눈에 가득 찼다. 그러곤 이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선배의 모습에 재빠르게 눈을 피하고, 옆에서 뭐 먹을거냐며 말을 거는 진영 선배에게 눈길을 돌렸다. 휴, 다행이다.
"치즈 돈까스요! 오늘의 추천 메뉴~"
"오, 치즈 돈까스 나와? 그럼 당연히 콜이지."
"네네. 그래도 저는 메뉴판 한 번 더 보고!"
"에이, 어차피 치돈 먹으러 올걸? 난 바로 직진!"
"네- 먼저 가 계세요~"
메뉴판 쪽을 훌쩍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진영선배와 이대리님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 메뉴판 쪽으로 걸어 가는데
"나는?"
"네?"
"나는 추천 메뉴 안 해줘?"
어느샌가 내 옆에 서 있는 선배의 모습이 안그래도 놀라운데 뚱한목소리로 엉뚱한 말을 내뱉는 그 모습은 더 놀랍다.
"늘 맛있는 건 다 꿰뚫고 있잖아, 너."
"아.."
"그래서 난 항상 니가 추천 해주는 거 먹었는데. 안 해주면 난 오늘 뭐 먹지."
"어.. 선배. 오늘 치즈 돈까스 나온대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큰 소리로 추천 메뉴 잘도 대답했으면서. 왜 항상 선배 앞에서는 이렇게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는건지.. 선배 목소리는 이렇게나 늘 좋은데. 나는 자꾸 자신감을 잃는다.
"너는 내가-"
"네?"
뭔가 말하려는 듯 약간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던 선배는 놀란 내 대답에 잠깐 한숨 짓더니 '아니다. 나 오늘 추천 메뉴 안 먹을래'하고 뒤돌아 긴 다리를 휘적이며 식당 입구 쪽으로 빠르게 사라져버린다. 본인이 추천해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속을 알 수가 없네. 그 와중에 오늘 입은 니트가 참 잘어울린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요."
"거봐, 꿀벌씨 결국은 돈까스 먹을 거면서."
"그러게요, 하하."
"근데 지훈인 딴 거 받았네? 웬일이냐. 치즈 돈까스는 무조건이던 애가."
"오늘은 별로 생각 없어서요."
진영 선배의 말에 슬쩍 선배 쪽을 쳐다보니 오늘 선배의 메뉴는 까르보나라. 그러네, 치즈 돈까스면 항상 오케이 콜 하던 사람이.. 추천 메뉴 안 받은 건 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였던 건가. 마음에 안들면 이유라도 말해주던가! 뜬금없게. 마음 속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말들을 돈까스와 함께 꾸역꾸역 넘기는데, 하. 돈까스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
"밥 먹었으니 또 열심히 일해야지. 다들"
"네에-"
"꿀벌씨는 바이너리 다시 나왔다니까 확인 좀 해보고."
"옙!"
퇴근하고 싶다. 강렬하게.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점심시간 끝나자마자 또 이렇게 바쁘냐고! 여기 회사 사람들 참 칼 같다. 가끔 보면 무슨 기계같아. 사람들이 말이야.
"꿀벌씨, 이것 좀-"
"꿀벌씨, 부사장님 건은 어떻게 돼가?"
"꿀벌씨, 시료 언제까지 쓸 거냐는데?"
꿀벌씨- 꿀벌씨-
으악!!!!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이름이 김꿀벌인게 원망스럽다. 사람들이 불러제끼는 저 이름이 내가 아니였으면 좋겠어. 이로서 김꿀벌 오늘 야근 확정. 젠장.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진영씨, 내일 봐."
"안녕히가세요."
"네- 꿀벌씨 오늘 고생 좀 하겠네."
"네에.."
"화이팅! 내일 봐요."
"내일 봬요.."
허으, 처진다. 처져. 역시 행복은 상대적인 게 분명해. 하나 둘 퇴근하시는 모습들을 보니 모니터를 보는 눈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부럽다. 칼퇴자들. 괜히 부럽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는데 "저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하는 선배 목소리가 들려 얼른 고개를 들어올렸다. 가는 구나. 선배도.
"표지훈이- 너 역시 일찍 가려고 오늘 일찍 왔지?"
"어떻게 아셨어요~ 저 약속 있는 거."
금세 또 너스레를 떨며 웃는 선배의 모습에 난 또 쿵쾅쿵쾅. 저런 모습에 반했던가.
"그럼 전 오늘 모임이있어서- 먼저 들어갈게요."
"안녕히가세요."
수고해. 무심한 듯 툭 던지고 가는 선배의 모습이 괜히 또 좋다. 아? 그러보고니 선배는 동기 모임이 있었지. 오늘 저녁 약속을 잡았어도 난 어차피 못갔겠네. 일이 이렇게나 남았는데. 운명이였던거야. 내 불행한. 허으, 야근할 운명. 엉엉 소리 없는 울음을 뱉으며 다시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는데, 어느새 책상 위에 놓여져있는 못 보던 캔커피 한 개.
뭐야.. 이거. 설마.
선배가 두고 간건가. 얼른 캔커피를 들어 이곳저곳을 확인해보지만 포스트잇도 없고 무언가 글을 남겨놓은 흔적도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확인해보면 카카오톡에 떠있는 '1' 표시에 또 마음이 설렌다.
ㅠㅠ선배..
자꾸 이러면 나는 니가 너무 좋잖아요, 선배. 카카오톡 프사는 또 왜이리 귀여운거에요. 갑자기 들뜨는 그런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허어으'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캔커피를 품에 안고 꼭 쥐자 내 모습을 보고 놀라셨는지 이대리님이 "꿀벌씨?". 내 이름을 불러온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 업무에 집중하려는데 아무리 그래도 자꾸만 캔커피에 눈이 간다. 아, 이 선배의 출구는 어디일까. 대체. 내일 밥은 뭐 먹지 또. 아, 행복해.
…
"꿀벌씨, 데이터만 정리하고 퇴근해요. 나 먼저 가서 미안."
"아니에요! 대리님 같이 남아주셔서 감사해요- 얼른 하구 갈거에요. 저도!"
"내일 봐요."
"네~"
으아, 드디어 끝났다. 벌써 11시가 넘은 시각.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창 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어둠이 잔뜩이다. 아침에 나올 땐 제법 날씨가 좋았던 것 같은데.. 오늘도 해를 보는 건 아침 뿐이었구나.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펴고 엑셀 창을 닫았다. 슬슬 정리하고 집에 가야지.. 마침내 노트북을 닫고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한 번 더 확인 하려는데,
'기대가 돼 한편은 걱정이 돼- 넌 어디 있을까 ♪'
느닷없이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깜짝 놀라 휴대폰을 놓칠 뻔 했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 뜨는 저장명 네 글자는 내 심장을 덜컹.
[지훈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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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쓰다가 컴퓨터로 남은 작업을 마무리하는데
뭔가 싱크가 잘 안맞네요. 모바일이랑 PC랑 줄 간격도 다르고 ㅠㅠ
지금 이렇게 올리면 또 모바일에선 어떻게 보일지.. 줄 간격 안 맞아도 이해해주세요..ㅁ7ㅁ8
이번 화는 어떠셨을지 모르겠어요!
즉흥적으로 써가는 거라 앞으로 내용 전개를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네요. 전개가 느릴 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암호닉?을 신청하실 분들은 해주세요 !
글잡 오랜만이라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독자님들 편하실대로!
암호닉 사용하는게 좋으시면 정해서 말씀해주세요 - !
다음 화는 조금 늦게 찾아올지도 모르겠네요. 실은 제가 실제로 회사원이라..☆
주말엔 꼭 찾아오도록 할게요! 그럼 20000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