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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앤오프/이창윤/김효진] 설렘의 법칙_12 | 인스티즈 

[설렘의 법칙_12] 

 

 

겨우 도착한 이창윤 방 침대 매트에 김효진을 눕히고 나서야 가까스로 숨을 돌렸다. 전화로는 허락만 해주면 혼자 어떻게든 김효진을 이끌고 가겠다고 했었지만 만약 이창윤이 데리러오지 않았다면 오는데 족히 두 배는 더 걸렸을 거다. 

 

"진짜 고마워 이창윤... 내가 다음에 진짜 크게 쏠게." 

"됐어. 괜찮다니까? 어차피 이승준도 맨날 여기서 자고가서 익숙해." 

"그래도... 미안. 자는데 방해까지 한 것 같아서. 너 내일 1교신데..." 

"아니야. 안 그래도 잠 안왔는데 바람 쐬고 좋지 뭐." 

 

창윤이가 괜찮다며 웃는다. 내가 많이 미안해하는 것 같으니까 괜히 저렇게 말해주는 거다. 친구 하난 진짜 잘 뒀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혼자 감동해서 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나오는 이창윤을 꼭 붙잡고 너밖에 없다 진짜 하며 웃으니까 ...아, 아무튼 그러니까 미안해하지말라고. 약간 당황한 투로 눈을 피한다. 그러더니 거실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갖다댄다. 

 

"어... 왜 안 켜지지?" 

"뭐? 불이?" 

"어... 나갔나본데." 

"정전인가 보네." 

 

정말로 이창윤이 아무리 스위치를 딸깍여도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한번 더 확인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정전이 맞는가보다. 그래도 창 밖 간판들의 불빛들 덕에 아주 깜깜한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창윤이가 갖다준 물을 마시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새벽이라 다행이다." 

"...그건 그렇네." 

"이 김에 너도 얼른 자. 지금 자도 얼마 못 자긴 하겠다..." 

"잠 안 오는데..." 

"이제 눈 감으면 잠 올거야. 아 그리고 일어나면 그냥 바로 나오면된다고 효진오빠한테 연락해놨으니까 너 편하게 수업가면 돼. 알았지?" 

 

자야 할 시간을 뺏은건 아닌가 싶어 잠깐 쉬고 금방 일어났다. 그럼 나도 이제 가볼게. 추우니까 이건 내일 준다,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그대로 걸친 채로 돌아서려했다. 

 

“가려고?” 

“응. 이제 기숙사 다시 들어가야지.” 

 

그런데 앉아서 올려다보던 이창윤이 갑작스레 붙잡는다. 

 

“그냥 있어. 시간도 늦었잖아.” 

“아냐. 금방인데 뭐.” 

“...나 낯가린단 말이야.” 

"뭐?" 

 

그게 무슨... 되물으니 이창윤은 김효진이 자고 있는 방을 눈짓으로 가리킨다. 아 설마, 김효진이랑 둘이 남겨지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러자 천천히 끄덕인다. 그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멍해졌던 나는 이내 헛웃음을 뱉어냈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좀 웃겼는지 이창윤이 슬쩍 눈을 피한다. 

 

"낯 가릴게 어딨어 자는 사람한테. 그리고 방 안에 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나오면... 어색해서 어떡해.” 

"너도 몇 번봐서 괜찮잖아." 

"말해본 건 세 번밖에 없어... 네가 있어야 돼."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분명히 억지다. 말도 안되는 이유라는 건 분명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신세진 게 좀 있으니까 고민 끝에 응해주기로 했다. 그래 오랜만에 밤 좀 새지 뭐. 하는 수 없이 다시 이창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창윤이의 입꼬리가 슬쩍 예쁘게 올라가는게 보인다. 곧 뭔가 생각난듯 내게 묻는다. 

 

“근데, 넌 괜찮아?” 

"뭐가?" 

"같이 마신 거 아니야?" 

“아아 난 안 마셨어. 혼자 마신 것 같더라. 전화와서 가보니까 취해있더라고..." 

"너한테 전화를 했다고?" 

 

끄덕끄덕. 그러니까 묻던 창윤이에게선 더 말이 없다. 순식간에 정적이 감돈다. 슬쩍 이창윤 쪽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둘만 있는건 또 처음이라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근데 너 왜 나한테 말 안했냐." 

"뭘?" 

"좋아하는 사람 있다는 거." 

"...누가 그래?" 

"혜지한테... 들었어." 

 

그대로 전하니 이창윤은 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잠시 무언가 생각한다. 

 

"있었으면 나한테도 말해주지. 난 전혀 몰랐잖아." 

"......" 

"언제부터 생긴거야? ...좋아하는 사람." 

"......" 

"누군지도... 진짜 말 안해줄거야?"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다며. 그러자 앞만 보던 창윤이가 다시 나를 가만히 본다. 어둠 속에서도 걔의 눈이 또렷이 보인다. 그런데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한참을 말이 없다가 오래 고민하던 사람마냥 내뱉는다. 

 

"없어. 그냥 핑계댄 거야." 

"진짜?" 

"어." 

 

...뭐야 진짠가? 아무리 그래도 없는 핑계까지 만들어서 거절하는 애는 아닌데. 적어도 내가 아는 이창윤은 그랬다. 그래서 한편으론 좀 섭섭했지만 뭔가 말하기 좀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보다 생각하곤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다시 한 번 고요해졌다.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시간이 꽤 흘렀다고 느꼈을 즈음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원래 밤을 못 새는 편은 아닌데 그동안 과제다 뭐다 발등에 불 떨어진 거 처리하는 바람에 피곤이 쌓였나보다. 

어느새 꾸벅꾸벅 졸았던 건지 감겨오는 시야 사이로 베개랑 이불을 가져오는 창윤이가 보인다. 내 옆에 베개를 놓는다. 이불 줄 테니까 여기서 좀 자. 그럼 넌 어디서 자게. 바닥에 이불깔려고. 아냐 나 괜찮은데... 아직 말짱해 하품을 하며 손을 저었으나 결국엔 그대로 금방 잠이 들었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난 후 소파 쪽을 보니 어느새 잠이 든 여주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말짱하다더니 3분만에 잠드냐. 창윤이 웃으며 다가왔다. 아무렇게나 덮인 이불을 끌어와 덮어주면서 가만히 여주의 얼굴을 본다. 

스르륵 내려온 머리카락이 거슬리는지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러면 아까 여주의 말이 떠오른다. 

 

'언제부터 생긴거야? ...좋아하는 사람.' 

'......' 

'누군지도... 진짜 말 안해줄거야?'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좋아하는 사람 누군지..." 

"......" 

"내가 그걸 너한테 어떻게 말하냐." 

 

작게 중얼거리는 한숨섞인 목소리만이 어두운 방안을 가득 채운다. 

 

 

 

 

 

효진은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깼다. ...여긴 어디지. 책상에 놓인 이창윤이라고 적힌 전공책을 보고서야 창윤의 집이라는 걸 깨달았다. 인지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점차 돌아오는 어제의 기억. 혹시 여주가 창윤의 집으로 데려와준건가. 어제 왜 그렇게 마시고 또 여주는 왜 부른 거야. 여주가 보내놓은 문자를 확인하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방에서 나오니 다행히 밖에는 아무도 없다. 밀려오는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에 창윤에게도 연락을 남기기로 하고 일단 나가려는데,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그제야 발견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한창 잠에 빠져있는 여주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가려다 말고 자고 있는 여주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실은 어제, 첫사랑 그 누나를 학교 밑 자주가던 카페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동안 몇 차례 연락이 왔었지만 이렇게 보는 건 거의 2년 만이었다. 별로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일부러 찾아온 것 같았다. 효진을 무시하고 지나갔던 그 때와 달리 이번엔 혼자였다. 다소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안녕. 진짜 오랜만이다 효진아." 

"...그러네." 

"연락했는데... 안 받더라. 혹시나 해서 여기 와봤어. 너 자주 왔던 데잖아." 

"......" 

"있잖아. 나 너한테 할 말있는데... 우리 밥이라도 먹을래?" 

"...난 하고싶은 말 없는데." 

"아니면 카페라도 가서..." 

"그냥 여기서 해."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누나를 보면 여전히 그 기억이 돌아와 마음이 약해질 줄 알았는데 생각 외였다. 차갑게 대하는 효진을 보며 그 누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 그, 그래. 효진아. 그 땐 미안했어 내가... 너도 알다시피 그 땐 어리기도 했고..." 

"누나." 

 

횡설수설. 그러니까 네가 이해 좀 해줘라는 식으로 말하던 여자의 말을 효진이 끊어냈다. 어? 하고 쳐다보니까 말을 잇는다. 

 

"이제 와서 사과할 필요없어."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했다. 용서했다는 의미일까?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여자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럼 우리, 

 

"그러니까." 

"......" 

"우리 이제 더 이상 엮이지 말자." 

 

그게 좋을 것 같아 누나한테도 나한테도. 효진이 쓰게 웃었다.  

 

 

 

누나를 완전히 덜어냈다는 걸 그로써 확인한 효진은 왠지 마음이 후련했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건 익히 들어왔었다. 그럼에도 많이 좋아했던만큼 잊기 힘들었는데. 그런데, 정확히 언제부터 지워지고 있었던 거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생각하는 와중에 자꾸 여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밀어내보려해도 소용이 없었다. 혹시나 했었지만 설마 나 정말로 걔를...  

 

본래 성격처럼 무언가를 시작하는데도 늘 침착했던 효진이었다. 그런데 걔를 오래 본 것도 아닌데 자꾸 왜... 그래서 복잡한 마음에 안 먹던 술을 좀 마셨다. 그러면 마음이 좀 정리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생각나고 머리만 아팠다. 자신도 모르게 연락처에서 여주의 이름을 찾았다. 문득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다. 

 

 

'이거 쓰고 가세요.' 

 

그 애에게 자신도 모르게 우산을 내밀었던 날. 

그 날 그렇게 우산을 건네주고 나서 도서관 건물을 나왔다. 챙겨갈 것도 있는 지라 잠깐 동아리 방을 들렀다. 거기서 어쩌다보니 같은 시기에 휴가를 나온 승준과 마주쳤다. 

 

"뭐야, 효진!" 

"어, ...오랜만이다. 너도 휴가나왔어?" 

"어. 근데 너 왜 비 맞았어. 우산 없어?" 

"아니. 그냥... 뭐." 

"아마 우산통에 남은 우산들 있을 거야. 하나 빌려서 가." 

 

머리칼이 젖은 효진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준이 동방 쇼파에 드러누웠다. 

 

"휴가 때 학교 오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다." 

"그러게." 

"넌, 온 김에 애들 안 보고 가? 곧 강의 끝난다던데." 

"어차피 금방 가 봐야해. 짐만 챙기러 온 거라서." 

 

...그럴 줄 알았다. 승준이 중얼거렸다. 그 때 효진은 번뜩 생각난 무언가에 짐을 챙기다말고 누워서 게임을 하던 승준을 돌아봤다. 

 

"승준아 너 혹시 우리 과 후배들도 알아?" 

"너네 과 1학년들? 뭐... 알기야 알지. 몇 명. 왜?" 

"혹시 그 중에 그, 유 교수님 수업듣는... 되게 귀여운 여자애... 아려나?" 

"야 그렇게 설명하면 누가 아냐?" 

 

승준이 하던 게임을 멈추고 풉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특징 더 기억나는 거 없어? 어... 그것말곤 없는데... 효진이 끄덕였다. 

 

"경영 1학년 여자애라, 아는 애 한 명 있긴 한데... 귀엽다는 데서 탈락이고," 

 

승준은 여주를 떠올리며 장난식으로 웃었다. 

 

"여자애들은 걔 말곤 딱히 아는 애 더 없는데." 

"걘 이름이 뭔데?" 

"걔? 여주... 야 근데 걘 아닐 거라니까?" 

"아, 그래?" 

 

효진의 얼굴에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도 여주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입력해두었다. 하필 전공책에 이름만 쏙 빼고 학과랑 학번만 적혀있을 게 뭐야. 승준이 미심쩍게 봤다. 

 

"왜, 너 혹시..."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한 애가 있어서." 

"뭐 그래도 다행이다." 

"뭐가?" 

"그 누나... 이젠 잊어가는 것 같아서." 

"......" 

"너 많이 힘들어했잖아." 

"......" 

"또 힘들면 이 형한테 얘기해 알았지. 또 혼자 끙끙대지 말고. 맨날 혼자서만 고민하고 얘기 안 하잖아 너." 

"...알았어." 

 

걱정하는 승준의 목소리에 효진은 캡모자를 고쳐쓰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효진이라고 적힌 동방 사물함을 열었다. 묵혀둔 그 곳에는 아까 여자애가 우산대신 쓰고가려던 것과 똑같은 두꺼운 전공책이 들어있다. 효진 역시 1학년 때 그 강의를 들었던 지라 사물함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다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내년에,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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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온퓨님...넘 재밌어요ㅠㅠㅠㅠ이번 편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더 집중하면서 봤던 것 같아요ㅎㅎ좋아한다고 말 못하는 창윤이 너무 안타깝고 효진이가 첫사랑을 잊어간 시점, 여주한테 우산 건네준 후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해서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당💕 와중에 승준이 참 자상하고 좋네요...헿 잘 봤습니다!
2년 전
온퓨
ㅎㅎ 이번편에 새로운 얘기들이 마니 나왔죠!? 흥미진진했다니 다행입니다아😊 읽어줘서 감사해요💗
2년 전
독자2
작까님 오늘도 잘 봤습니다 ㅜ
창윤이 머뭇머뭇 말 못하는 모습이 진짜 어떤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안쓰럽지만 효진이가 여주한테 끌리는 모습은 흥미진진하네요...!! 하지만 전 창윤이랑 잘 됐으면 좋겠는...1인입니다..ㅎ

2년 전
온퓨
읽어주셔서 고마워요!ㅎㅎ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기대해주세요오💗
2년 전
독자3
좋아하는 사람 물어볼때 분위기가 진짜 긴장감 넘쳐서
속으로 뭐야? 뭐야? 분위기 뭐야? 이러면서 본것 같아요... 남의 연애 재밌네요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2년 전
온퓨
앜ㅋㅋㅋㅋ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밤 되셔요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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