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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앤오프/이창윤/김효진] 설렘의 법칙_14 | 인스티즈 

[설렘의 법칙_14] 

 

 

인지하게 되는 순간부터 신경쓰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옷에 묻은 작은 얼룩이 그렇고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베인 상처가 그렇다. 모르고 있을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다가도 발견하는 순간 온통 모든 신경이 거기로 쏠리게 된다.  

지금의 내 마음도 똑같았다.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이 감정을 의식한 후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행동들이 어색해졌다. 이창윤과 같은 벤치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진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초봄의 밤공기가 그렇게 만든 것도 있겠지만 이건 분명한 내 마음의 변화였다. 

 

"...이 시간에 학교일 줄 몰랐는데." 

"과방에서 과제 좀 하다 집중이 안돼서 잠깐 나왔어." 

 

옅게 웃는 창윤이를 보며 아아 하며 끄덕였다. 붕 떠 있는 마음처럼 대화에 공백이 생긴다. 

 

"넌, 도서관 간다더니 어디갔다와." 

"공부하려고 했는데... 그냥 놀았지 뭐." 

"...재밌었어?" 

"어."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이상상태인 마음을 들켜서는 안됐다. 일부러 최대한 짧게 답하고 눈도 피했는데 이창윤은 귀신같이 단번에 내 상태를 알아채고 만다. 벤치 위로 드리운 큰 벚꽃나무를 올려다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냥, 내일 발표하기 싫어서. 

맞다 너 내일 발표랬지, 창윤이가 가만히 끄덕이며 고개를 돌린다. 선선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이창윤의 머리칼이 흩어질 때마다 좋은 샴푸향이 풍겨온다.  

꽃내음과 적당히 뒤섞인 향기에 잠자코 있는데, 그 때 창윤이의 시선이 내 발 밑으로 닿았다. 

 

"야 근데 너 발... 피나는데?" 

 

시선을 따라가니 까진 상처를 그대로 놔둔 채로 걸어온 탓에 정말로 조금씩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 그러네. 담담히 말하는데 오히려 이창윤이 제 일마냥 더 당황한다. 

 

"안 아파? 언제부터 이랬던... 아니다, 기다려봐. 과방에서 밴드 가져올게." 

"아, 안 가도 돼! 있어 여기..." 

 

말을 쏟아내던 이창윤은 벌떡 일어나더니 뒤를 돌아 당장이라도 건물로 들어가려한다. 그런 창윤이를 급히 붙잡곤 슬며시 김효진이 주머니 속에 넣어줬던 밴드와 연고를 꺼내보였다. 근데 괜찮아. 기숙사 들어가서 붙이면 돼, 하며 다시 집어넣으려는데 창윤이가 손에 들린 걸 가져간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곤 내 앞에 앉아 약을 발라주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행동에 얼굴이 화끈댔다. 

 

"계속 이 상태로 돌아다닌거야?" 

"아냐... 아깐 피는 안 났었는데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않았다. 

그런데 얘는 무슨 연고를 오늘 다 써버릴 생각인 건지 조금만 바르면 되는걸 몇 겹이나 겹쳐바른다. 그 모습에 풉 웃음이 터져나왔다. 

 

"왜 이렇게 많이 발라. 너 연고 낭비야 그거." 

"이래야 빨리 낫는다니까." 

 

그런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다 됐다, 이창윤이 웃으며 일어난다. 꼼꼼하게도 붙였네. 덕지덕지 밴드가 붙여진 모양새를 보니까 내 입가에도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그런데 창윤이가 옆에 놓여있던 구두를 들어 건넨다. 

 

"자." 

"뭐야, 왜?" 

"그럼. 이것때문에 이렇게됐는데 그걸 또 신고 올라가게?" 

"야 그럼 맨발로 가라고?" 

"아니지." 

"......" 

"업혀." 

 

뭘 묻냐는 듯 이창윤이 등을 내어준다. 3초 동안 벙쪄서 어버버 앉아있기만 했다. ...뭐? 업히라고? 

 

"아무 때나 오는 기회 아니다." 

 

그러면서 장난스레 웃는다. 미쳤어? 됐어. 그리고 너 나 못 업어. 헛웃음과 함께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정확히 5분 후, 결과는 이창윤의 등에 업혀 기숙사로 올라가고 있는 나였다. 창피해죽겠다. 어느정도 걸을 수 있는 정도만 됐어도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시험기간인데다 깜깜해진 시간이라 올라가는 길에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안 무거...워?" 

"티났어?" 

"야 내려." 

"아 장난이야 장난." 

 

움직이면 떨어진다, 장난을 치며 작게 웃던 창윤이는 내가 움직이자 다시 한번 고쳐 업는다. 사방엔 벛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밤에 보는 벚꽃은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예뻤다.  

 

"아무튼... 고마워 이창윤." 

 

또 다시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라서 고개를 묻었다. 걔의 후드에서 좋은 향이 난다. 나조차 모르겠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고마워란 말과 함께 업혀있는 여주가 파고드는 느낌에 창윤은 잠시 흠칫한다. 그 행동에 순간적으로 2년 전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 때도 아마 봄이 깊어진 밤이었을 거다. 

 

 

 

"창윤, 오늘 끝나고 술 고?" 

 

동기 중 한 명인 은찬이 갈거지? 란 눈빛으로 제안했다. 동기들과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봄. 스무살의 3분의 1을 채워가던 그 때는 틈만 생겼다하면 술약속이었다. 여느 때처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좀 더 늦게 끝나는 여주를 과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어제도 마셨잖아. 또?" 

"야 1학년 때 놀아야지 언제 놀아. 가자~ 어? 갈 거지?" 

 

자신은 이제 알코올 향만 맡아도 취할 것 같은데 얘는 참 대단하다 싶었다. 계속 조르다시피 하길래 고개를 돌렸다. 

 

"...여주 간대?" 

"넌 뭐 맨날 여주가야만 가냐. 아직 안 물어보긴했는데 함 물어볼... 어 뭐야, 말하니까 오네." 

 

은찬의 말에 따라 창윤의 시선도 과방 문 쪽으로 향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자애들 사이에 여주가 보였다. 창윤을 발견하고 인사하기가 무섭게 은찬이 여주에게 다가섰다. 

 

"여주야. 오늘 끝나고 애들이랑 술 마시러 가자." 

"오늘? 나 오늘은 안될 것 같은데..." 

"왜? 약속있어?" 

"그게," 

 

안 된다는 의외의 말에 가만히 듣던 창윤이 힐끔 보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가? 여주 대신 옆에 있던 동기가 나섰다. 

 

"야 우리 오늘 과팅이야. 담에 먹어." 

"과팅? 너네가? 아 뭔 과팅이야. 걍 술이나 먹자." 

"응 싫은데. 니들끼리 드세요." 

 

티격거리는 둘을 두고 여주가 피곤한 얼굴로 창윤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졸려죽겠다... 좀만 쉬다 밥먹으러 가자. 하며 곧장 엎드렸다. 

와중에 과팅이라는 말에 묘하게 심란해진 창윤은 고민하다 슬쩍 물었다. 

 

"너 오늘 과팅해?" 

"아 내가 말 안했나." 

"저번에 귀찮아서 안 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 

"어. 근데 애들이 하도 같이 가재서." 

"...어디랑 하는데?" 

"몰라? 공대라던데." 

 

얼마 전부터 제 마음을 깨달은 창윤은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결국 친구들에게 이끌려 온 술자리에서마저도 자꾸 폰을 확인하게 됐다. 아까 보내놓은 톡에 답장도 없었다. 

 

"창윤- 무슨 일 있어? 오늘 좀 빠르다?" 

 

잔이 채워지는 족족 빼지 않고 마시는데, 때마침 한 학번 위인 과 선배들이 2차를 하러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개강파티에서 말을 좀 텄던 진경이 테이블로 다가와 몇몇과 인사를 나누더니 창윤에게도 말을 걸어왔다. 

 

"창윤이도 오랜만. 안 그래도 방금 옆에서 여주봤는데." 

 

선배들은 늘 같이 다니는 창윤과 여주를 세트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둘 중 한 명을 보면 꼭 서로의 얘기를 꺼내곤 했다. 창윤이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은찬이 좀 더 빨랐다. 

 

"아 걔네 오늘 과팅이래요 누나." 

"어? 그래? 이상하다." 

 

은찬의 말에 진경이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일이 있나? 신경이 온통 쏠렸다. 

 

"여주 혼자 있던데." 

"혼자요?" 

"어. 좀 많이 취한 것 같아보이긴 했는데..." 

 

걱정어린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창윤이 옷을 챙겨입었다. 

 

"거기 어디라고요?" 

 

 

여주가 있다는 술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빈 병들이 가득했고 다들 어딜 간 건지 여주 홀로 테이블에 오른쪽 볼을 대고 엎드려있다. 여주야, 불러도 모를만큼 취했다. 조심스럽게 일으키니까 잔뜩 취한 눈으로 창윤을 알아본다. 

 

"너 괜찮아?" 

 

걱정스럽게 묻는데 마침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남자들이 창윤을 보곤 누구지? 하며 수군댔다. 과팅 상대인듯 싶었다. 

 

"아 혹시 여주 남친인가...?" 

"설마." 

"맞는 것 같은데?" 

 

분명히 들렸지만 창윤은 그냥 여주를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그 때 한 번 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헐 그럼 남친있는데 과팅나온 거라고?" 

 

그 말을 듣곤 제깍 옆으로 돌아섰다. 

 

"아뇨." 

"......" 

"그냥 친구예요." 

 

그러자 남자들이 아아 하며 수긍한다. 근데 친구가 많이 취했다길래 와봤는데 상태가 이래서... 데리고 가봐도 될까요? 하니 아 넵 그럼 조심히... 그렇게 대답한다. 대충 인사를 하고 창윤에게 완전히 기댄 여주를 부축해 나왔다. 

 

"어 뭐야 이창윤이다!" 

"니가 왜 여깄어? 여주 데리러 온 거?" 

 

나가려던 문쪽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는지 똑같이 취한 여주의 친구들을 마주쳤다. 안 그래도 얘가 너무 취해서 어떡하지 했는데 잘됐다, 실실 웃으며 하는 말에 너네도 너무 많이 먹지말고 조심히 들어가 하고 술집을 나왔다. 

 

 

"...으음." 

 

부축해서는 도저히 걷지 못하는 수준이라서 그냥 아예 업는게 낫겠다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주가 작은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여기 어디야..." 

"깼어?" 

 

창윤의 말을 듣고 대충 상황파악을 한 듯한 여주가 깨질 듯한 머리를 창윤의 등에 묻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마셨어." 

"몰라, 아... 이제 과팅 다시는 안해..." 

"...안 한다고?" 

"어. 술배팅떴다가 죽을 뻔했어 진짜." 

 

말이 늘어졌다. 두 번 다시 안할 거라는 그 말에 웃음이 피어오르며 안심이 되는 자신이 바보같았다. 애써 마음을 누르고 천천히 걷는데 갑자기 여주가 아악 소리를 지른다. 뭐야, 왜! 창윤이 놀라서 되묻자 내려달라고 난리를 친다. 이제야 자신이 업혀있다는 걸 인지했나보다. 창윤이 내려주지않자 창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면서 주사랍시고 추태를 부리는 거였다. 

 

"아. 아파 놔, 놔. 다친다고 너." 

 

겨우 진정을 시키자 이번엔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그러더니 작게 중얼거린다. 

 

"짜증나 이창윤..." 

 

오늘 주사 한 번 버라이어티하네 싶어서 또 뭔데, 하고 물으니까 한참있다가 대답을 한다. 

 

"...너 입대신청했다며." 

"......" 

"은찬이한테 다 들었거든? 나한텐 말도 없이..." 

"야 그거는," 

 

얼른 갔다오려고 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얼마 전에 깨닫게 된 여주에 대한 마음을 좀 정리해보려고 그런 거였다. 그걸 곧이 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별다른 변명거리가 없어 창윤은 입술만 꾹 깨물었다.  

 

"그래서 언제가는데." 

"합격되면 7월에." 

"종강하자마자?" 

"어." 

"왜 이렇게 빨리 가. 너 가면 누구랑 놀라고오..." 

"....." 

"가지말지..." 

 

근데 자꾸만 이렇게 마음정리가 어렵게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여주가 걱정이 됐다. 빨리 갔다올게 그래도 다른 애들 있잖아, 하며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말에 걸음을 멈췄다. 

 

"너만큼 편한 친구는 너밖에 없단 말이야." 

"......"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랑 계속 친구해야 돼... 알았지..." 

 

...알았어. 한참 뒤 창윤이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언제까지 친구일 수 있을지. 여주와 친구로 지내온 시간들 속에서 어느 순간 그 굴레를 이탈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니까, 시간이 지나면 이 마음도 정리가 되긴 할까? 

 

혼란스러운 마음 위로 봄 향기가 짙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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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까님 역시 오늘도 한껏 과몰입해서 뚝딱 읽었습니다.!! 진짜 넘 설레욥!! 여주 다친 발목에 밴드 붙여주고 연고발라주는 창윤이 오ㅑㄹ케 다정한거죠..?
넘넘 잘봤슙니당

2년 전
온퓨
ㅎㅎㅎ 읽어줘서 넘넘 고마워요 독짜님💓💓
2년 전
독자2
"업혀" 이 대사 보자마자 심장이 쿵했어요 설렌다 창윤아... 읽으면서 창윤이가 여주 업고 벚꽃 떨어지는 거리를 걷는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지는데 몽글몽글하고 두근두근하네요💕 여주가 마음의 변화를 깨달은 시점도 봄, 2년 전에 창윤이가 깨달은 시점도 봄 역시 설렘의 계절입니당ㅎㅎ 이번 편도 잘 봤습니다!🥰
2년 전
온퓨
ㅎㅎㅎ 역시 설렘의 계절😌 머릿속에 그려진다니 기부니 넘 좋네요 봐주셔서 고마워요💓 좋은 밤 보내셔요!!😉
2년 전
독자3
으악 작가님.... 우연히 보게 돼서 처음부터 정주행 했는데 너무 재밌고 설레네요ㅠㅠ...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너무 재밌게 봤어요 🧡
2년 전
온퓨
으아 감사합니다!!ㅜㅜ 재밌게 봤다니 넘 다행이에요...🧡 좋은 밤 되셔요 ㅎㅎ
2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2년 전
온퓨
헉 감동,, 넘 감사해요..🥺💗 다음 편도 곧 올게요!ㅎㅎ
2년 전
독자5
캠퍼스물 너무 조아요,,,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ㅠㅠㅅㅠㅠㅠ 한껏 설레면서 봤어요
2년 전
온퓨
저두 읽어주셔서 정말정말 고마워요💗ㅠㅠ 좋은 꿈꾸셔요♡
2년 전
독자6
알게 된 지 얼마 안됐는데 너무 재미있게 정주행했어요ㅠㅠ 다음 편 너무 기대되네요💕
2년 전
온퓨
저도 너무 고마워요 ㅎㅎ 좋은 하루 보내셔요😆💗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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