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도 된다 "
학연이 잔뜩 어깨를 움추려 그대로 재환을 지나쳐 방문고리를 잡았다. 끼익거리는 듣기 싫은 고목의 마찰음이 고요한 방안을 뒤덮었다.
" 연아. "
" …예. "
" 내가, 부탁 하나만. 딱 하나만 하자. "
" 저같은 것에게 어찌 부탁이라는 말을 쓰십니까. 만 번을 말씀하셔도 다 듣겠습니다. "
" 너가 다른 사람에겐 다 가도 좋은데 말이야 "
" ……. "
" 홍빈이한테 만큼은 가지 말거라. "
" 갈데도 없는 천한 몸입니다. "
" 악담을 하는건 아니지만, 그아이에게 가면 네가 잃을 것이 많을 거야. 그러니 제발 "
재환의 목소리가 점점 여리게 떨려왔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였다. 자신의 곁에만 있어달라는 그 한마디가.
" 저는, 언제나 도련님 가까이에 있겠습니다. "
학연이 인사를 한 후 문을 열고 나왔다.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똑같이 일을 했지만, 이미 학연의 마음 속엔 무언가 무거운것이 놓여있었다.
" 남자? "
" 예. 이름은 모르겠고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사내였습니다. "
" 특징이 있느냐. "
" 피부가 남들보단 조금 까맣다는 것 외엔 … "
" 그거야 뭐 노비놈들은 다 까만것 아니야? 너도 까맣지 않느냐. "
" ……. "
" 설마, 너보다 더 까만 것이냐? "
원식이 숙인 고개를 말없이 끄덕였다.
잠시 벙찐 표정의 홍빈이 흥미롭다는듯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 앞으로, 그놈이 또 이재환 방에 들어가거나 이재환 옆에 있는걸 보면 바로 나에게 알려라. "
" 예. "
원식이 삼십년은 감수한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홍빈의 방에서 나왔다. 몇년을 봐온 이홍빈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1년이나 먼저 태어난 형에게 이름까지 툭툭 부르며 비꼬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던것도 잠시, 5초도 보지못한 그 까만 사내를 앞으로 계속 주시해야 한다니.
이럴때 만큼은 정말 홍빈이 미치도록 싫었다.
" 개가.. 암컷이 아니였단 말입니까. "
" 수컷도, 뜯으면 고기맛은 나겠지요. 형님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