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기 까만놈 "
재환이 준 돌을 손에서 광이 나도록 굴리고 있던 학연이 고개를 들어 돌만큼 까만 눈동자를 꿈뻑여왔다.
" 작은 도련님한테 잘못보인거 있냐? "
" 예? 아..니요 "
" 찾으신다. 따라오거라. "
매일 있던 재환의 방앞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학연의 발걸음이 가볍지않았다.
동생에게만은 가지말라던 재환의 낮고 아련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서인건지, 아님 직감적인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잡념을 머리에 잔뜩 넣어두고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홍빈의 방앞에 와있었다.
온통 밝은색 뿐이였다. 놓여있는 청자도, 분홍빛을 뿜어내는 꽃도, 하다못해 이불보까지도.
재환의 방이 늙어가는 힘없는 이무기가 사는 방 같았다면, 홍빈의 방은 곧 승천할 것만 같은 한마리 젊은 용의 방에 비유하는게 맞을 것만 같았다.
" 니가 그놈이냐. 우리 형 옆에 매일 붙어있는 놈. "
학연은 한번도 홍빈의 얼굴을 본다거나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눈뜨면 재환의 옆에 있다던지 아님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노비에 불과했기에 재환과도 멀리 떨어져있는 그를 볼 방법은 없었다.
자신을 알고있는 그에게 놀라기도 바쁜 그때 다시금 홍빈이 입을 떼었다.
" 형님이랑 매일 뭐 그렇게 할 얘기가 많더냐 "
" ……. "
" 혹여 내 험담이라도 하는 것이냐? "
" ……. "
" 형님이 교육을 잘시켰나보네. 끄덕도 없고. "
마치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주는 사람처럼 홍빈이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그럴수록 학연의 표정은 더 굳어가고 있었다.
" 내가 너에게 시킬 일이 있다. "
자신감과 거만, 가득찬 야망.
그것이 홍빈이였다.
처음 재환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던걸 생각하면 홍빈은 너무도 달랐다. 이런 자라면 충분히 재환을 몰아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자였다.
" 이재환에게 더 정을 주거라. 그거 하나면 된다. "
의미심장한 홍빈의 말에 학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그가 시키는대로 하면 안될 걸 알지만, 이미 학연 본인은 재환에게 정을 들인 상태였다.
" 연아, 죽고싶으냐? "
" 죄송합니다. 쌀독에 쌀이 떨어져서 "
" 웃기는 소리 하지말거라. 어딜 갔다온게야. "
" ……. "
" 요 앞 저잣거리? 나도 가고싶었는데! "
" 아, 아닙니다. 전 한번도 이 집밖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
" 에? 정말로? "
학연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더 딱한 처지에 있는 학연이 마음에 걸렸는지, 재환이 혓바닥으로 입술을 한번 훑고는 말했다.
" 그럼, 나갈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