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은 예뻤다
첫 번째 이야기
w. 마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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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전정국...! 나 너 좋아해! 너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좋아했어... ㅇ, 이거 받아줘!"
또 시작이다. 벌써 몇 번째인지... 창가 쪽에 애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또 누군가가 전정국에게 고백을 한 모양이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수줍게 내민 선물박스가 여자애의 귀여운 외모와 잘 어울렸다. 뭐 이번에 고백한 여자애는 꽤 이쁘장하네. 우리 학교에서 전정국하면 모를 애가 아무도 없을 정도로 굉장한 유명인사다. 내 친구들도 처음에 전정국의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졌녜 뭐녜 난리를 쳤다지. 물론 전정국이 잘생기긴 했지만. 우리집에도 얼굴은 더럽게 잘생긴 남정네가 한 명 있어서 잘생김에 면역이 생긴건지 나는 전정국을 봐도 그냥 그랬다. 아무튼 잘생긴 전정국의 외모 덕분에 전학온지 두 달정도 밖에 안됐는데 고백을 하루에 한 번씩 최소 육십번은 받은 것 같다. 근데 얘가 웃긴게 고백을 받을 때마다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대답이 있다. 항상 똑같은 패턴. 무슨 대답이나면
"싫어"
역시.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전정국이다. 얘가 워낙에 단호해서 여자애들 사이에서 단호박이나 철벽남으로 불리고 있다. 이렇게나 철벽을 치는데 매일 얘한테 고백을 해대는 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자애들 말을 들어보면 철벽을 뚫고 정복하겠다나 뭐라나...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을 짓껄여댄다. 전정국의 단호한 대답을 들은 여자애의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저러고 교실 밖으로 울면서 뛰쳐나가겠지. 역시나 내 예상과 맞게 여자애는 선물을 끌어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전정국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하다. 전정국은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과묵했다. 아니 과묵하다기 보다는 말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자, 전학 왔으니 자기소개하고 자리로 들어가라"
"...."
"얼른 자기소개 안하면 계속 서있게 할 거야"
".....전정국"
"정국아! 무슨 노래들어?"
"....."
"어! 나도 그 가수 아는데! 같이 들어도 돼?"
"....."
"아.... 혹시 뭐 마음에 안들어?"
"....."
"미안... 음악 계속 들어..."
"...어"
이렇게 말이다. 이러니 여자애들이 더 안달이 나는 수밖에. 근데 이상한 건 나와 전정국과 눈이 자주 마주친다는 것이다. 처음엔 내 착각인가 했지만 전학 온 첫 날에 창가에 앉은 전정국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전정국이 나를 계속 쳐다본다는 것을. 전정국과 내가 따로 이야기를 하거나 같이 무엇을 한 적은 없다. 전정국은 나를 계속 쳐다봤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전정국의 시선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또. 지금도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기는 커녕 정말 뚫어질 정도로 쳐다보는 전정국이다. 항상 피하는 쪽은 나였다.
"김탄소!! 뭐해! 밥먹으러 안가? 얼른 가자!"
"아... 응 먼저 가 나 속이 좀 안좋아서 오늘은 교실에 있으려고"
"많이 안좋아? 그럼 보건실가서 약이라도 먹어"
"음... 귀찮아서 그냥 참으려고"
"에휴... 그러다 병난다. 나 그럼 밥먹고 온다!"
"응 갔다와"
어제 밤에 먹었던 야식이 소화가 안됐는지 속이 쓰렸다. 하나 둘씩 애들이 교실을 나가니 조용한 교실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따사한 햇살을 느끼고 있을 때 또 다시 익숙한 시선이 느껴졌다.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전정국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정국의 뒤에서 비쳐지는 햇살 때문인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평소대로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겠지.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전정국의 머리칼이 더욱 윤기나게 느껴졌다. 표정을 알 순 없지만 평소와 다르게 왠지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인가. 전정국의 익숙한 시선을 뒤로 하고 나는 엎드려 잠을 청했다.
"야! 김탄소! 일어나!"
"어... 왔냐..."
친구의 목소리에 비몽사몽 자리에 일어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끝났는지 반에는 애들로 꽉차있었다. 아까 비쳐오던 햇살도 어디로 간 건지 그늘만 있을 뿐이다. 왠지 모를 아쉬움에 기지개를 피자 책상 위에 있는 까스활명수와 알약이 눈에 띄었다.
"야 이거 너가 보건실에서 갖고 온 거야?"
"엥? 아닌데? 난 너가 보건실 들려서 약 가지고 온 줄 알았지"
"너 아니라고?"
"나 밥먹고 바로 올라온 건데?"
순간 전정국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전정국의 얼굴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전정국일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전정국이 앉아 있는 창가를 바라보자 역시 전정국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손으로 약을 가르키고 다시 전정국을 가르키며 입모양으로 너야?라고 묻자 전정국은 내가 뻘줌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처음으로 전정국이 먼저 내 눈을 피한 날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까스활명수를 마시고 몇분 뒤 속이 괜찮아졌고 책상에 혼자 남아있는 알약이 아까워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김탄소! 너 그 얘기 들었어?"
" 뭐?"
"오늘 전학생 온대!"
"왠 전학생? 고삼때 전학오는 사람도 있네... 그리고 원래 전학오면 아침에 오지 않나?"
"몰라 근데 완전 예쁘대"
"아... 얼굴 봤어?"
"난 못봤는데 남자애들이 이쁘다고 난리다"
"진짜 예쁜가 보네..."
"근데 복학생이라는 소문이 있어"
"복학생? 그러면 스무살?"
"응 완전 기대돼"
순간 갑자기 앞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 맞다. 지금 담임선생님 시간이었지. 주섬주섬 교과서를 꺼내자 다시 앞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애들의 환호소리가 가득찼다. 괜히 씨끄러워진 교실 때문에 미간이 꿈틀거렸다. 형식적인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번에도 역시 전정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전학생에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기소개를 시켰다.
"안녕~ 내 이름은 박지민이고 너희보다 한살 많아. 그냥 편하게 누나나 언니 아니면 그냥 지민이라고 불러도 돼"
여자라고 하기엔 다소 굵고 남자라고 하기엔 다소 얇은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앞을 바라보자 갈색 단발머리의 여자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눈이 휘어 접히게 웃는 것이 여럿 남자애들을 홀리게 생겼다. 남자애들이 왜 환호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창가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슬로우 모션처럼 모든 것이 천천히 느껴졌다. 흔들리는 머리칼이, 휘어접힌 눈웃음이, 복숭아 같이 발그레한 볼이, 매력적인 목소리가, 코로 느껴지는 늦깍이 봄내음이 그녀와 잘 어울렸다.
그 날이 나와 박지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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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몽이라고 합니다 :)
첫 작이라 글 쓰는 것이 어색하네요.
계속 꾸준히 연재한다면 중장편이 될 수도
혹은 단편이 될 수도 있겠네요.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