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마흔살 아저씨 짝사랑하기
w.1억
나도 안다.
내가 무척이나.
"야 그거 다 네가 착해서 애들이 일부러 그러는 거야. 지금 뒷통수 맞는 것만 몇 번이야."
개호구라는 거.
"너는 뒷통수 친 애들이 미안하다고 하면 그걸 또 받아주는 건 뭐야? 답답해."
전남친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모두 다 나는 늘 을이고, 호구다.
친한 친구는 늘 나보고 이게 답답하다고 한다..그래.. 나도 가끔은 내 성격이 마음에 안 든다.
"다음부턴 안 그러겠지."
나랑 1년을 조금 넘게 만난 남자친구 마저도 일주일 전에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다가 들켰다.그렇게 또 헤어졌다.
ㅋㅋㅋ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나는 항상 만만한 존재였고.. 돈 빌려가서 안 주는 애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내 인생은 계속 그랬다. 중학생 때는 착하다고 유명해서 애들이 잘해줬는데. 고등학생 때는 착하다고 유명해서 돈을 빌리는 애들이 많았다.
대학생 때는 조별과제를 늘 내가 혼자 했다. 그리고 그걸 막아주는 건 늘 수영이었지..뭐..
수영이는 늘 내게 착해서 그렇다며 혼내기 바빴다. 그러게 난 왜 사람들에게 착하지.. 다 내탓이지.
"연정 씨 처럼 이 부분 조금만 더 잘할 수 있어?"
고작 두 달 출근한 나에게 3년 다닌 직원과 비교를 하는 부장이 미웠다.. 왜 저래. 에휴.. 내가 미운가..
화장실 가서 조금 울었다가 화장을 고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런..씨..
일 끝나면 6시다. 그리고 집에 가면 7시..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니까 시간이 꽤 많이 비었다.
새로운 남자친구는 만나기 싫었다. 그냥 뭐.. 시간이랑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고..
워낙 전남친이 나한테 실망을 줘서 그런가.. 연애가 하고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오늘 부장님한테 쓴소리 들은 게 생각나서 괜히 짜증 나 인상을 쓰고선 속으로 욕을 하고있었을까.
"어?"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에 자연스레 고갤 들었다가 손이 다 떨려왔다.
"여기서..뭐하냐."
하필이면 오늘이야.
운동 삼아서 새로운 길로 갔더니만 전남친을 만나버린다.
그리고 전남친의 옆에는 새로 만난 여자가 있다. 팔짱을 끼고서 나를 바라보는 게 왜 이렇게 나를 짓밟는 것 같은지. 손이 다 떨려왔다.
평소에 거짓말을 싫어하는 나인데. 혼자 이렇게 덩그라니 있는게 쪽팔려서 거짓말을 하게 됐다.
술집에서 담배를 피러 나온 남자를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
"……."
"남자친구랑 밥 먹으러.."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가리키며 저 말을 하니, 셋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담배 피우는 남자는 놀란 표정 하나도 없이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나를 바라보다가 다른 곳을 본다. 마치.. 그러든 말든 하나도 신경 안 쓰는 것 같이.
"뭐냐.. 언제.. 애인 생겼대.."
"…얼마 안 됐는데."
"민주 생일파티 와? 남자친구도 있으니까 오겠네."
"…아, 어."
"나도 여자친구랑 가려고 했거든. 불편하면 안 갈게."
"…아냐. 뭘 불편해."
"너도 남자친구랑 오겠네."
"…아, 어.."
어이없다는 듯 살짝 웃고선 날 지나쳐서 가는 황인엽에 나는 뒤늦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뒤늦게 남자가 떠올랐다. 이걸 어쩌지..
"저기.."
"……."
"죄송해요. 제 전남자친구인데.."
"……."
"…저.."
"……."
"전남자친구인데..."
"……."
"죄송해요."
말을 하기가 좀 그랬다. 금방 사귄 여자랑 서서 우습다는 듯 나를 보는데. 그게 쪽팔려서 있는 척을 했다고 말을 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나한테 관심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이는 남자에 뻘쭘해졌다.
내가 지금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다 피울 때까지 바보처럼 구경이나 하고있는 나. 그리고 내가 옆에 있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허공을 보며 담배를 피던 남자..
남자가 바닥에 담배를 버리고선 발로 비벼 끄더니 나를 보았다.
마치 표정이 '뭐 할 말 있어?' 이런 듯..한데.. 아무말도 안 하니까 그냥 가버리려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급히 이 사람을 불렀다.
"저기!.."
남자가 다시금 나를 보았다. 사람이 부르는데 말을.. 안 해.. 근데 왠지 모르게 무섭기도 하고.
"……."
"다 들으셨겠죠.."
"……."
"제 친구 생일파티..에.. 잠깐 와주실 수 있나요?"
"……."
"되게 이상한 거 알아요. 저 미친년으로 보인다는 것도 알아요..! 근데.. 제가 꼭.. 그래야만 돼서.."
"……."
"제가 돈도 드릴게요!.. 그냥 해달라고 안 해요."
"너 몇살이냐."
"스물일곱살이요.."
"나 마흔이다."
"……."
저 말을 끝으로 가게 안에서 누군가 '사장님'하고 부르자 가게로 그냥 들어가는 남자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당장 내일 이번주 주말이 친구 생일이고.. 이미 간다고는 했고.. 나 이제 어떡하지.
왜 이런 거짓말을 해서.
"안 가면 되지. 사정이 생겼다고 둘러대. 내가 잘 얘기해줄게."
"…자존심 상한단 말이야."
"자존심이 왜 상해. 어차피 민주 생일파티 아니면 이제 볼 일도 없잖아."
"같이 동네 사는데 안 마주칠 리가 없잖아."
"그땐 헤어졌다고 하면 되지."
수영이는 또 나를 답답해했다. 그렇다고해서 수영이가 나쁜 친구는 아니다. 그냥 내가 다 걱정이 돼서 그런 거지.
어떻게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수영이랑 밥 먹고 집에 와서는 계속 울었다.
난 왜 이렇게 한심할까 진짜.. 왜 하필 그 아저씨한테 난리를 친 거야. 그리고 왜 하필.. 커플들만 부르는 그 생일파티에 간다고 한 거야.
방법이 없었다..
3일 남았다. 3일 동안 방법을 찾아봤는데.
"……."
"……."
그 남자의 가게 앞에서 가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진짜 안 어울리게 또 음식점 사장일 건 뭐야.
쭈그리고 앉아서 한 4시간을 기다렸나. 한 번을 안 나오다가 이제서야 퇴근하고 나온 남자를 보고 겨우 일어섰다.
"왜 오늘은 담배 피러 안 나와요."
이상했다. 나 원래 이런 성격 아닌데.. 되게 뻔뻔해졌어.
"다시 한 번 부탁드리려고 왔어요."
"……."
"그쪽이 마흔살이어도 상관없어요.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
내 말에 남자는 콧방귀를 뀌고선 나를 지나쳐 걸었고, 나는 다시 주저앉았다.
기다린 내가 안쓰러워서라도 알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를 비웃고 가버렸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렇게 또 다음 날 난 또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남자를 기다렸다.
드디어 10시가 되었다. 그 남자가 나와야되는데 남자는 커녕.. 직원들만 나오길래 오늘은 헛탕쳤다.
직원들은 오늘도 기다렸냐며 자기들끼리 떠들며 사라졌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 없는데 진짜.
그리고 그 다음 날 또 기다렸다.
나 내일 진짜 어떡하지. 너무 자존심 상해. 거짓말한 거 들키면.. 난 진짜 어쩌지.
"야."
쭈그리고 앉아서 머리만 막 헝클고 있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직원들은 또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퇴근을 했고, 그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있다.
"들어와."
이상했다. 이 사람이 나를 불렀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남자를 보는데 잠깐 떨렸다.
맞다. 그거.. 남자를 좋아할 때 느끼는 그 떨림.
멍하니 앉아서 남자를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남자가 먼저 들어갔고.. 나는 급하게 일어나 남자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가게 불은 거의 다 꺼져있었고, 은은하게 불빛이 나는 곳 앞에 선 남자가 뒤를 돈 채로 무심하게 나에게 말했다.
"아는 동생 빌려줄 테니까. 걔 데리고 가."
"…생일파티에요?"
"어."
"…그런 게 무슨 소용이에요. 전남친은 그쪽이 제 남자친구인 줄 아는데."
"걔가 돌머리도 아니고 믿겠냐.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만데."
"전 상관없어요."
"……."
"저는 사랑만 한다면 나이 차이 같은 거 신경 안 쓴다고요.."
"네 나이대 애들은 신경 써. 나이."
"……."
"아, 쟤가 돈 많은 남자를 물었구나. 억지로 사귀는구나. 그건 대충 눈치 챈다고."
"아저씨 돈 많아요..?"
"아저씨?"
"…그럼 뭐라고 불러요."
"…가게 앞에서 그렇게 죽치고 앉아있는 거 별로야. 진상 같고. 찌질해보여."
"…전남자친구가 바람 피워서 헤어졌어요.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거든요. 그래서 그 상황에서 그냥 거짓말을 해버렸어요. 나도 너 말고 다른 남자 만날 수 있다. 이걸 알려주고 싶었으니까요."
"……."
"…올 거죠?"
"……."
"꼭 와야 돼요. 애들한테 간다고 했단 말이에요. 내일 밤 9시 관서동 현포차예요. 통째로 빌려서 술마신다던데."
"……."
"오는 걸로 알게요."
"……."
또 이상했다.
왜 나는 저 대답 없는 모습이 온다는 것 같았을까.
확신을 하고 웃으면서 가게에서 나왔다. 아, 해결 됐다. 근데 왜 아직도 기분이 이상하지.
집에 와서 누워서는 아저씨를 떠올렸다. 평소에 4살 차이만 나도 기겁을 하던 내가 왜 그 아저씨를 떠올리면서 웃고있지.
솔직히..말해서...
"ㅋㅋ..ㅋ.."
잘생겼다. 심지어 섹시해.. 그 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단 말이지.. 짝사랑 할 때나 느끼던 그 설렘과 긴장인 것 같았다.
이놈에 금사빠.. 쓸데없이 또 발동해버린 듯 하다.
솔직히 불안했다. 옷을 입고 준비를 다 하고선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아저씨가 안 오면 어쩌지.. 불안은 했지만, 믿어보기로 다짐했다.
뭐.. 오겠지. 진짜.. 안 오면 진짜 쓰레기지. 사실 이기적인 생각이 맞다. 근데 어째. 인간은 다 이기적인 걸..? 아님 말고!..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를 해볼까.
딱 좆같다. 이거다.
"뭐야? 김서림 혼자 왔어? 남자친구랑 온다며."
늦게 도착하는 애들은 올 때마다 나에게 저렇게 물었다.
그리고 애들은 또 날 보고 몰래 속삭인다. '혼자 올 거면 왜 왔대' '커플들 끼리 오라니까 그치' 다 들린다. 다 들려.
나도 창피해서 곧 갈 생각이야. 근데 너무 창피해서 일어날 수도 없고,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하하 호호 웃는데 다 날 보고 웃는 것 같고.
"오겠지."
보다 못해 황인엽이 내 편을 들어줬다. 근데 그게 또 왜 이렇게 자존심 상하고 창피할까.
다시는 이 곳에 나타나기 싫었다. 여기에 온 친구들과 다시는 보기 싫어졌다.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으니까.
"서림아. 남자친구 오기는 와?"
비꼬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왜 있냐고 눈치를 주는 것이다. 왜 그러냐며 말리는 애들도 있지만..
"바빠서 못올 것 같대. 나도 집에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될 것 같아."
"아, 그럼 우리 2차 가자. 어차피 2차 가려고 했으니까."
못된 친구들도 있지만, 착한 친구들도 있다. 내 생각해서 그냥 2차 가자는 생일파티 주인공에 뻘쭘하게 혼자 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집에 가서 할 거 하나 생겼다. 그 아저씨 욕이랑 울어버리기.
그 아저씨가 잘못한 건 없는데 왜 이렇게 아저씨한테 짜증이 나지. 내가 그렇게 사정을 했는데. 왜? 민주가 카드를 꺼내 사장에게 계산을 해달라고 했을까.
"아, 계산 됐는데요."
"네? 그럴리가 없는데요...?"
"아까 반묶음한 여자분 애인분이 와서 내고갔어요."
"네?"
모두가 나를 보았다. 반묶음..한.. 여자분이라면.. 나밖에 없다.
"저요?"
나도 모르게 놀라서 저요?하고 나를 가리키면, 사장님이 날 보고 선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보고 '오..'하며 감탄을 하는데.
괜히 기분이 또 좋아졌다. 뭐야.. 아저씨가 왔다가 간 건가. 아니.. 뭐야.. 한가지만 하지.. 안 올 것처럼 했다가 오는 게 어딨어. 올 거면.. 얼굴도 좀 비추지.
"서림아~ 남자친구분한테 잘 먹었다고 전해줘."
"뭐야~ 얼굴 좀 보여주고 가지. 궁금했는데."
"너무 로맨틱하다~"
"남자친구 안 와? 궁금해~~"
모두가 날 부러워했다. 모두가 날 부러워하는 게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왔다."
저 아저씨는.
"……."
더 이상했다.
이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민폐 진상이라는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아저씨가 더 좋아질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오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웃어도, 아저씨는 내가 본 첫인상과 다를 거 없이 아무 표정도 없이 나를 보았다. 참.. 무뚝뚝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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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
상황 추천 바다요~!! 있으면 찔러쥬기 뿌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