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걸림돌 (1)
처음엔 그저 우연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설마 아니겠지.
또 그 다음에는 그래도 아니겠지였다.
하지만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설마는 확신으로 변했다.
설마 했던 김태형은 내 사랑의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
"야, 김여주! 너 수학숙제 다 했냐?"
"꺼져. 안 보여줄 거야."
"에이- 친구 좋은 게 어디냐? 한번만 보여주라."
5교시에 있을 수학시간 숙제를 하지 않은 친구가 여주의 숙제를 베끼려 공책을 빌려가려 질척댔다. 친구를 떼어내느라 정신이 없던 여주는 교실 문 밖으로 얼핏 보이는 태형의 모습에 못 볼걸 봤다는 듯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에 친구는 왜 그러냐고 물어봤지만 여주는 친구의 말꼬리를 잘라먹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녀에게 제 수학공책을 넘겨주었다.
"깨끗이 봐 이년아. 종이 구겨지면 뒤지는 거야."
"와! 진짜 고마워. 개 사랑해!"
그 화답으로 달갑지 않은 사랑고백을 해오는 친구에 여주는 징그럽다는 내색을 해보였다. 친구가 곧바로 제 앞에서 숙제를 열심히 베끼기 시작한 그때, 여주의 눈앞에 재수탱이가 나타났다.
"김여주! 너 한문 숙제 했어?"
"……."
"야 김여주."
"……."
"여주야 김여주!"
"……."
"나 한문 책 좀 빌려줘 여주야, 응?"
여주야, 여주야아앙.
씨이발!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뒤에서 한껏 아양을 떨어대는 김태형 덕분에 여주의 미간에는 십일자 복근이 아주 선명하게 새겨졌다. 새끼야 먹고 떨어져. 귀찮다는 표정을 얼굴에 한껏 새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문책을 냅다 던져버리는 여주다. 김태형은 여주의 반응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날아오는 한문책을 나이스캐치 한 다음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들썩였다. 기분 좋은 눈치였다.
여주는 한껏 열 받은 표정을 하고 속으로 곱씹었다.
얄미운 김태형.
개같은 김태형.
여주는 태형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여주 자신 뿐, 한 번도 태형이 싫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본 적은 없었다. 태형의 성격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얼굴 갑 친화력 갑 성격 갑 애교 많은 개새끼 스타일이라 그가 싫다는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왜? 라며 이유를 물어올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 이유를 털어놓을 테고 사람들은 여주를 보며 네가 예민한 거라며 김태형의 쉴드를 쳐줄게 뻔했다. 태형의 성격이 그냥 개새끼였다면 이미 털어놓고도 남았다. 여주는 한숨을 푹 쉬었다.
"웬 한숨이야"
너 때문이다 너! 여주는 자신에게 물어오는 태형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주가 태형을 이토록 싫어하는 이유, 그것은 자신의 사랑을 방해한다는 것. 그것도 수도 없이! 그러나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을 뿐, 태형이 제 사랑을 방해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주가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옆에 앉아있던 태형의 머리통을 콩 쥐어박았다.
"아야, 왜 때려?"
"공책 빌려간 값이다"
여주의 말에 태형은 으흥하고 웃어보였다. 그래, 이것 때문이다. 이 웃음 때문이라고. 내가 김태형을 못 죽이는 게.
아
얄미운 김태형.
개같은 김태형.
*
하교시간. 여주는 이 순간만큼은 제발 김태형이 나타나질 않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성규옵빵! 집에 같이 가염!!"
현재 여주의 짝사랑, 전교 부회장인 성규 선배와의 행복한 하굣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태형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성규선배! 저랑 같이, 어라? 김여주 안녕."
저와 성규선배 사이를 훼방 놓았다.
여주는 오늘도 어김없이 똥을 밟았다.
나랑 성규오빠랑 같이 있는 거 보고 기어왔으면서 날 못 봤다는 듯이 인사를 건네는 저 뻔뻔함! 철면피!
"정말 미안한데, 오늘은 내가 좀 들릴 데가 있어서. 둘이 갈래?"
네? 어머, 성규오빠, 성규옵...!
여주가 방심한 사이 점점 멀어져가는 성규의 뒷모습에 여주는 손을 뻗어보았지만 잡히는 것은 없었다. 남은 거라곤 재수 없는 이 쌍판데기 뿐. 김태형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시고는 저와 같이 성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주는 입모양으로 욕설을 중얼거리고는 태형에게서 홱 등을 돌려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어? 야 김여주 같이가!"
"아 몰라 몰라 따라오지 마 따라오면 고자킥 날릴 거야!"
여주의 사나운 외침에 태형은 잠시 멈칫하며 따라오던 걸음을 멈추었으나 이내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담으며 여주를 졸졸졸 따라갔다.
"너 성규선배 좋아하냐?"
"응 완전. 그러니까 방해 좀 하지 말아줄래? 나와 오빠의 사이를 응원해달란 말이야. 되도록이면 멀리서!"
여주가 인상을 팍 쓰며 바로 뒤에 있던 태형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하자 태형이 놀라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태형은 제 눈앞에 놓인 여주의 화난 얼굴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알아들었어?"
"아니!"
여주의 물음에 태형은 활짝 웃으며 부정의 답변을 내어놓았다. 타박도 못할 만큼 밝은 미소를 지은 태형이 입가에 손을 갖다 대고는 비밀얘기라도 하는 양 자세를 취했다.
"성규선배는 내가 더 좋아해!"
김태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여주의 옆을 지나쳐 열 걸음을 냅다 뛰어갔다. 그 상황에 어이가 없어져 코평수가 잔뜩 넓어진 여주가 태형이 달려 나간 쪽을 홱 돌아보았다.
"빨리 가자 김여주! 오늘 집 앞에 빵집에서 단팥빵 반값에 판대!"
뭐 반값? 그럼 가야지!
솔깃한 태형의 말에 저절로 발은 움직였으나 머릿속은 여전히 개같은 김태형을 외치고 있었다.
개같은 김태형 개같은 김태형.
하지만 오늘은 좋은 정보를 줬으니 덜 개같은 김태형.
아, 그런데 쟤가 단팥빵을 좋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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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재가 생각 났습니다... 내 학교가 완결난 후에 연재할까 생각 해봤는데 손이 근질거려서 못참겠더라구요
여주를 좋아해서 주변남자들이 못 다가가게 막는 김태형과 그걸 모르는 곰팅이 여주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눈치가 없으면 원수로 생각하겠어요... 김태형 좀 답답할듯 ㅅㄱ
내 학교는 좀 있다가 업뎃예정입니당>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