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남자 선생 불러오라니까?"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온 응급실에서 나는 이런 문전박대를 받아야하는가, 생각했다. GS로 올라가는 환자였는데 일단 이마의 출혈이 심해서 봉합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 앞의 환자는 죽어도 여선생에게 제 이마를 못 맡긴다며 펄펄 날뛰는 그런 아주 거지발싸개같은 상황.
"환자분, 지금 이마 그거 빨리 안 꼬매면 피봉투 달아야해요."
우리 병원 안 그래도 펙드셀(수혈팩) 모자라서 난린데 이런 환자한테 달아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일단 지혈부터 할게요. 남자 선생님 찾고있어요."
"거, 손 대지 말래도!"
시발, 개시발. 속으로 오만 쌍욕은 다 내뱉은 느낌이다. 피디에이로 도경수고 박찬열이고 손가락 부러지도록 콜을 쳐댔지만 둘 다 답이 없었다. 분명 얘네도 이 대박 난 응급실에서 미친듯이 노동하고 있을게 뻔했다.
결국 나는 커텐을 젖히고 바로 보이는 의사 가운을 붙잡았다.
"저, 수쳐(봉합)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환자분이 남자선생님을 찾으셔서."
"..아, 저는 산과라.."
아오, 잡아도 하필이면 산과 레지를 잡아서. 괜히 죄없는 피디에이만 부서질듯 눌러댔다. 도경수..박찬열..번갈아가며 누르다 박찬열이 콜을 받았다.
"빡찬!!!!"
"어, 어! 정신없어서 못 받았어! 왜?!"
"어디야? 이알 좀 와줘. 여기 수쳐해야되는데 환자가 남자선생한테 받겠대."
말 끝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하는 욕은 잠시 접어두었다. 환자가 누워있을 커텐을 손으로 톡톡 치며 상황을 설명했더니 박찬열이 오겠다고 했다.
"몇 번 베드?"
"어, 잠시만. 여기 칠번,"
"아 환자분!!!!"
"..박찬열?"
"그거 뽑으면 안된다니까! 보호자 없어요?!보호자!"
"..찬열아.."
"아오, 진짜! 어, 여보세요? 야 도갱 불러! 여기 환자 라인 다 뽑았어, 망할!!"
시발..도경수 콜 안 받는단 말이야..정말 울고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참으며 다시 한 번 도경수의 단축키를 눌렀다. 받아라. 받아라 좀..
"GS..도경숩니다."
피디에이 너머에서 나지막한 도경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도경수의 기분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따발총마냥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내가 콜을 받고 내려왔는데 수쳐를 해야한다. 그런데 망할 환자가 여선생한테는 절대 못받겠다고 우기고 박찬열은 콜했더니 올 상황이 아니라고. 그리고 왜 콜을 이렇게 안 받냐고 타박까지 하고 나서야 도경수는 입을 열었다.
"..OP(수술) 중이었어. 갈게. 칠번이라고?"
오우, 도경수 기분 장난아니야.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도경수는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건지 신호를 끊어버렸고 또 오피중에 교수님한테 털리고 나오는 길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 환자야?"
수술이 끝나자마자 내 콜을 받고 뛰어왔을 도경수는 피자국이 선명한 수술복을 입은 채였고 나는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응, 커텐 안에."
내 대답에 도경수는 커텐을 살짝 젖히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원하던 대로 남자 선생이 와서인지 아까의 그 날뛰던 환자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괜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ㅡ
"도갱 왜 저래?"
"몰라..혼났나?"
"쟤가 혼나는 게 하루이틀이냐, 혼나는 걸로 저러고 있으면 일년 삼백육십오일 저러고 있지."
"그럼 왜 저러지.."
박찬열이랑 응급실 상황을 대충 정리하고 의국으로 들어왔더니, 도경수가 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가오지 마, 말걸지 마, 하는 아우라에 박찬열과 나는 선뜻 말도 걸지 못한 채 멀찍이 떨어져 앉아 도경수의 상태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디 아픈가.."
"아냐, 아침에 밥 잘 먹었어."
"차였나?"
"둘이 결혼생각 한다는데 차이겠냐."
박찬열이 나를 보고 생각을 좀 하라는 듯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그럼..
지잉-,
조용한 의국에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그와 동시에 도경수는 발딱 정신을 차려 휴대폰을 빛의 속도로 집어들었다.
"씨발, 스팸.."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욕을 내뱉으며 도경수는 책상에 풀썩 엎드렸고 나는 도경수의 옆자리로 향했다. 박찬열이 내 가운자락을 잡아당겼지만 나는 꿋꿋하게 도경수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야, 왜 그러는데."
도경수는 입을 꾹 다물고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이러고 있으면 또 치프쌤한테 깨진다. 어?"
뭔데 자꾸 휴대폰만 딸깍딸깍 켜보는지, 아무리 캐물어도 도경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급기야 도경수는 휴대폰을 책꽂이 쪽으로 휙 밀어버린 뒤 아예 고개를 파묻었다.
"씨..진짜 차이기라도 했냐."
그럴리가 없는데.
"어?! 전화온다!"
"뭐!?"
"뻥인데."
아무 생각없이 던진 전화온다!는 말에 도경수는 자동반사처럼 벌떡 일어나 내 손에서 휴대폰을 뺏었고 뒤이어 돌아오는 뻥인데-, 라는 말에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야, 뭔데. 무슨 일있,"
"장난치지마. 장난 할 기분 아니야."
"..어? 어.."
무섭게 표정을 굳히는 도경수의 얼굴에 당황한 나는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거봐, 이리와."
낮게 목소리를 깐 박찬열이 내 뒷덜미를 잡아 질질 끌어 다시 쇼파에 앉혔고 나는 동글동글한 도경수 뒷통수만 쳐다봤다.
내가 입을 비죽이자 박찬열이 손을로 내 입을 턱 쳤고, 그 것을 신호삼아 가운 주머니의 PDA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
ㅡ
"아이, 할아버지! 이러시면 안돼요!!"
"할아버지!!그거 빠지면 다시 꽂아야된다니까!?"
"박찬열!! 할아버지 팔 좀 잡아봐!!"
"빼, 빼! 어차피 다시 꽂아야 돼!!"
아오! 급하게 콜을 받고 뛰어간 곳은 어제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환자가 누워있는 병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라인을 죄다 뽑으려고 하는 할아버지가 보였고 박찬열이 먼저 뛰어들어가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안 그래도 라인 꼽기 힘들어서 발등에서 혈관 찾은 할아버진데, 박찬열도 그 개고생을 알기에 반사적으로 할아버지의 발을 붙잡았지만 할아버지는 박찬열을 밀치고 기어이 발등의 라인을 뽑아내셨다.
"아, 할아버지이.. "
내가 울상을 지었고 도경수는 조용히 다가와 뽑힌 라인을 정리한 후 주머니에서 반창고를 꺼내 할아버지 발등에 붙였다. 박찬열은 진땀을 흘리며 산소는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체크했다. 다행히 산소포화도가 정상이라는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 병실을 나왔다. 보호자는 대체 어디를 간 건지, 급기야 자리를 비운 보호자를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라인 다시 준비해주세요."
박찬열의 힘빠지는 목소리에 간호사가 빠르게 뛰어나가 수액세트를 챙겨 들어왔다. 박찬열은 손을 뚝뚝 몇 번 꺾으며 긴장을 풀곤 바늘을 턱 들었다. 일반외과 레지던트 동기 중에서 제일 손재주 좋다는 박찬열도 힘들어하던 할아버지였으니, 나랑 도경수는 찾을 가능성이 단 1도 없었다.
세네번쯤 할아버지의 손등을 짚던 박찬열은 이번에도 안되겠다는 듯 발등으로 내려갔다. 거기도 두어번 만져보더니 내게 손을 내밀길래 잽싸게 알코올솜을 올렸다.
"움직이시면 안,"
"할아버지!!"
아-하는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박찬열의 손이 튕겨나갔고 도경수가 얼른 할아버지의 발목을 붙잡았다. 얼굴 쪽으로 날아간 바늘에 나는 박찬열의 얼굴을 살폈고, 눈 밑에 길게 스크래치가 난 것이 보였다.
"괜찮아? 어디 봐, 도경수 밴드 하나 더 있어?"
"아까 그게 마지막인데."
아오,
"괜찮아. 일단 마무리 좀 하고.."
박찬열은 차오르는 짜증을 잘도 우겨 넣으며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할아버지-, 잘생긴 얼굴에 상처내면 안돼요. 내 얼굴 보험 들어놓은 거 알아요? 하면서.
결국 성공적으로 라인을 잡은 박찬열은 터덜터덜 병실을 나오며 얼굴을 손으로 슥 문질렀다.
"아, 쓰라려.."
"어디 봐, 연고 바르고 밴드도 붙여야겠네."
"나 그거 붙여줘."
"뭐? 메디폼?"
"아니, 너 가지고 다니는 밴드. 그 뽀로로."
뭐? 그거 아기들한테 주는 그 밴드?
"박찬열 미친놈.."
도경수가 그 소리를 듣고 혀를 끌끌 찼지만 박찬열은 뽀로로 밴드를 얼굴에 붙일 생각에 신이 난 듯 싱글벙글 웃었다.
"부운홍색으로 붙여줘, 알았지?"
"..또라이."
"원래 명의는 또라이인 법이지."
얼굴에 긴 스크레치를 내놓고선 뭐가 그리 즐겁다고. 뽀로로-하며 콧노래를 부르신다. 다시 의국으로 돌아가 쇼파에 자리잡은 우리 셋, 아니 둘은 홀로 책상 앞에 앉은 도경수의 눈치만 살폈다.
숨막히는 정적에 갑갑해 하고 있을 즈음, 박찬열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뭐라뭐라 끄적여 내 쪽으로 스윽 밀었다.
-여친한테 차인듯?
그 말에 내가 헉, 하고 숨을 들이쉬며 도경수의 뒷통수를 살폈다. 흠..하긴 저 뒷통수는 누가봐도 실연당한 남자의 뒷통수긴 한데.
-설마.
-ㄴㄴ확실
-어떡함?
내가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자 자기도 모른다는 듯 박찬열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아까 ER 와달라고 땡깡부렸나..괜한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머리를 긁적이며 지난 날의 자신을 후회하고 있을 때 쯤, 의국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앗, 안녕하십니까. 쌤."
박찬열이 빠릿하게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고 그 소리에 나도 엉겁결게 고개를 꾸벅, 그 뒤로 보이진 않았지만 도경수도 일어나서 인사를 했을거다. 그러니 저 치프도 고개를 까딱 하고 제 자리로 가서 앉는 거겠지.
"저, 선생님."
들어오지도 않는 책에 코를 박고 있는데 나지막한 도경수의 목소리에 박찬열과 나, 둘다 눈이 동그래져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이라하면, 치프쌤을 말하는 것일텐데. 대체 왜?
"이번 주 당직, 제가 전담해도 되나요?"
그 말에 박찬열과 내가 놀란 것은 기본이고 변치프도 의외라는 듯 눈을 두어번 꿈뻑였다. 이번 주 내내 당직을 혼자 하겠다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왜?"
"그냥, 이번에 보고 있던 환자도 있고..논문 케이스 봐야되는 것도 많아서요."
그 말에 쌤은 5초 정도 생각하는가 싶더니, 그래. 하고 짧은 대답을 남겼다. 어쩜 사람이 저래. 힘들지 않겠냐, 무리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다정한 말이라도 던져줄 수 있는 거 아니야? 평소 동기사랑 나라사랑 따위라곤 1도 없던 내가 괜히 욱해버렸다.
-어쩌려고 저러냐.
-ㅁㄹ 나도
-차라리 일만 열라 하는 게 나을수도
다시금 박찬열의 수첩 위에 글씨가 끄적여졌고 눈빛을 주고받던 우리는 변쌤이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다시 전공책에 코를 박았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라."
우리가 수첩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건지, 나지막한 목소리가 의국에 울렸고 박찬열의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에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전공책에 코를 박고 졸음이 솔솔 몰려오는 걸 느끼고 있을 때 쯤,
"우리 예쁜이-,"
의국 문이 활기차게 열리며 2년 째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별명이 내 귓전을 때렸다.
"야, 김민석."
치프쌤이 시끄럽다는 듯 의자를 뱅그르르 돌려 민석 선배를 쳐다봤고, 선배는 익숙하다는 듯 싱긋 웃으며 내 손을 쥐었다.
"우리 예쁜이, 손이 이렇게 차가워서 어떡해. 응? 이러면 외과의사 못한다?"
"하하.."
"그래서, 아이스초코 사려다가.."
그래서 이 한여름에 내 손에 쥐어준 건 뜨끈뜨끈한 핫초코였다. 진짜, 4년차만 아니면.
"변백현이 오늘도 우리 예쁜이 오프 째버렸다며?"
선배가 입을 한껏 내밀고 어떡해, 우쭈쭈쭈. 하며 한 껏 어르는 소리를 냈다.
"걱정마, 오빠가 다시 오프 만들어줄게."
거짓말. 치프는 변백현인데 어떻게 선배가 오프를 만들어줘요..마음 속에서만 입을 나불거렸다. 변쌤은 거슬린다는 듯 뒷머리를 벅벅 긁었고 나는 괜시리 이 의국 안 4명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가고 싶다, 정말.
민석 선배는 변쌤 동기로 학부 때 항상 붙어다닐 만큼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학부 시절, 변쌤은 개총이든 종총이든 귀찮아하는 성격이었고 민석 선배는 개총, 종총이 물이요 나는 물고기로다.하는 성격이었기에 매 행사마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몇다리 학번차이가 나는 탓에 학부 때는 그렇게 얼굴만 알고 오고가며 인사나 하는 사이었지만 병원 인턴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아주 예쁜이, 예쁜이 하며 변쌤의 성격을 살살 건들고 다닌다. 솔직히 말해서, 그걸 더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야, 경수야."
터벅터벅 도경수자리로 걸어간 선배가 금세 낮은 목소리로 바뀌어 도경수 이름을 불렀다. 도경수가 의자에서 일어나 선배 쪽을 바라보자 선배는,
"됐다, 앉아."
그 말에 또 도경수는 바로 자리에 앉아서 온갖 어둠을 끌어모았다.
"변백현, 너 얘 당직 몰아주고 뭐 그딴거 하면 진짜 가만 안둔다?"
"그럼 네가 치프하지 그랬냐."
"진짜야. 그러다 경수 자살해."
"그럼 네가 달려와서 살리면 되겠네."
"어우, 저 매정한 거."
둘의 짤막한 대화에 박찬열은 눈을 반짝이며 다시 수첩을 꺼냈다.
-백퍼. 여친이랑 싸움.
그도 그럴 것이, 도경수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는 경수의 옛 환자이자, 민석 선배의 여동생이었으니까. 기억에서 잊혀지지도 않는 게 도경수는 인턴 시절 제 앞에 실려왔던 여자 환자를 보러 한달 남짓한 시간을 내과 병동으로 오르락 내리락 했었다. 본과는 외과로 간다는 애가, 내과 병동을 밥먹듯 들락날락 거렸으니 박찬열과 내 눈에는 이상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고. 도경수는 논문 쓰려고..라는 되도 않는 핑계로 늘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띄웠더랜다. 그러더니 뻔한 스토리로 흘러가 퇴원했다는 그 환자가 퇴근하는 도경수를 데리러 병원 앞에 서있는 모습을 목겼했었다.
"gastritis(위염) 도졌더라. 어제도 위경련 나서 실려갔었어."
"네?"
"여기는 죽-어도 안 오겠다고, 우리 엄마한테 등짝 몇대 맞고 세브란스 갔어."
담담하게 말하는 민석 선배의 말 뒤로 급한 도경수의 되물음이 이어졌다. 박찬열은 옆에서 헐,하며 입을 쩍 벌렸고 도경수는 두눈 가득 걱정을 담아냈다.
"어, 그럼..그, 지금은.."
"멀쩡해. 아니, 싸웠으면 싸웠다고 말을 해야지. 멀쩡한 지 오빠 병원 냅두고 남의 병원 가는 동생이 어딨냐?"
중얼중얼, 제 동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선배 앞에서 도경수는 울리지도 않는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R 안 내려가?"
핫, 6시다. 묵직한 치프쌤의 말에 우리 셋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의 연애사 듣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서둘러 벗어놓은 가운을 챙겨들고 의국 문을 열고 나가는데,
"우리 예쁜이 당 떨어지겠다. 이따 변백현 몰래 냠냠해, 알았지?"
아,하하. 어색하게 웃는 내 가운 주머니로 쏘옥 들어오는 주전부리에 어색하게 고개를 꾸뻑하며 의국을 나섰다. 말은 우리 예쁜이만 챙기는 것 같지만 도경수와 박찬열의 주머니에도 달달한 초콜렛따위가 들어있을거다.
ㅡ
"GS쌤, 처치실이요!"
"네-!"
응급실에 TA(교통사고) 환자가 왔다고해서 내려왔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두개골 함몰인지 머리에서는 피가 철철 나고 있고 게다가 나이도 기껏해야 7살? 힘없는 소리로 엉엉 울어대는게 손대기도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어우, 야.."
"아가..8살이네."
아이 엄마로 보이는 보호자는 탈진할 정도로 오열을 하고 있었고 옆에서 간호사가 붙잡는 힘에 간신히 몸만 세우고 있었다. 얼른 박찬열이 멸균포를 가지고 와 아이 머리에 덮었고 도경수는 묵묵히 세척수를 거즈에 적셨다.
"근데 Ped(소아과)에서는 안 오나? 완전 어린 앤데.."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처치실로 여러개의 발소리가 도착했고 박찬열과 도경수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예상대로 김준면과 그 뒤에 레지던트 1,2,3년차가 줄줄이 서있었다.
"뭐하냐?"
세척하려고 생리식염수를 손에 든 내게 김준면이 물었다. 저 새끼는 여기 레지가 몇인데 반말쓰고 지랄이야..
"이리게이션(세척)이요."
"야, 애 우는 거 안 보여?"
보이는데요. 조온나 잘 보이는데요. 교통사고 났는데 안 우는 그런 애도 있답니까? 속으로는 말대꾸 목록 100가지도 세울 수 있었지만 소아과치프 앞에서 타과 레지던트1년차가 할 수 있는 건 침묵 뿐이었다.
"두시간 전에 들어와서 지금 이리게이션 급하.."
"너, 진정제 동의서 받아와."
내 변명을 뚝 짤라먹은 김준면이 제 뒤에 서있던 레지에게 말하자 그 레지던트는 바로 처치실을 뛰쳐나갔다. 아, 맞네. 진정제. 그제야 진정제를 생각한 우리 셋은 멍하니 손에 거즈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TA환자..."
그 때, TA환자라고 중얼거리며 처치실로 우리 치프쌤이 도착했고 우리 셋은 괜한 반가움에 눈을 반짝였다. 우릴 발견한 치프쌤은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피가 엉겨붙은 아이 머리 앞에서 바로 장갑을 꼈다.
"이리게이션..아니, 진정제 들어갔어?"
외과 의사답게 세척부터 묻던 치프쌤이 바로 고개를 저으며 진정제를 물었고 덜떨어진 1년차 세 똥덩어리는 눈만 굴려댔다.
"GS 레지 셋의 만행을 내가 막은 거 아니겠냐. 우리 레지가 어드미션(동의서) 받으러 갔다."
"Ped 레지들 여유로운 건 여전하네."
"뭐?"
"어드미션을 하루 종일 받아요, 박찬열 가서 어드미션 받아와."
넵! 짧은 대답을 마친 박찬열이 처치실을 뛰쳐 나갔고 도경수는 바로 약장에서 진정제를 꺼내와 주사기에 담았다.
"하루 종-일 어드미션 받아서, 약 믹스 하고..애 혈관 잡고.. 수술장은 언제 잡을래?"
"애 상태를 봐야 수술장을 잡고 혈관을 잡고 할 거 아니야? 넌 애한테 손도 안대고 수술장 잡냐?"
"딱 봐도 두개골 함몰인거 몰라? 처치실에서 봉합하고 끝내게?"
"X선 사진 안보고 오셨나봐요, GS는 엑스레이 같은 거 안 찍나? 애 팔다리 다 부러졌는데 바로 수술장 끌고 들어가시게?"
"도경수, 가서 리덕션(정복) 준비해와. 너는 가서 수술장 잡고."
나를 가르키며 수술장을 잡으라는 지시에 왜 하필 또 내가 수술장 당번인지 치프쌤을 원망했다. 하지만 원망이 채 3초도 지속되기 전에 어금니를 꽉 문 김준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서 수술장 잡아. 쟤보다 빠르게."
"뭐해? 안 뛰어? 수술장 내일 잡게?"
한 명의 환자를 두고 각각 수술장을 잡으라는 두 과 치프의 말에 혼란스러워진 Ped레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변백현치프 밑에서 일하는 나는 달랐다.
"네, 프리오프 끝내고 콜 하겠습니다!"
수술장 못잡으면 난 정말 뒤진다. 김준면이 박박 변백현 속을 긁어놓은 탓에 나와 불쌍한 Ped레지는 수술실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을 향해 가운이 휘날리도록 뛰었다.
ㅡ
으앙! 난 이제 바닥났어! 이제 쓴 글이 모두 떨어졌어!
다들 잼나게 읽으시와용*_* 올만에 왔더니 넘나 반가운 얼굴이 많은 것..~~! 그나저나 글잡에 요즘은 이그조 글이 많이 없네요...
이번 몬스터에서 준면짱 머싯....하....존멋..왜 심장이! 뛰니! 이부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