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오빠
19
"난 안 할래."
정국이를 따라온 헬스장이었다. 아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제가 다니는 헬스장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운동과는 상극도 이런 상극이 없는 나였지만, 그의 운동하는 모습이나 감상할까 - 싶어 그를 따라왔는데...! 나에게까지 운동을 시킬 줄이야. 난 내 옆에서 묵묵히 런닝을 뛰는 그를 바라보며 - 나는 안 할래. 하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그는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손을 뻗어 내 런닝머신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내가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계에서 내려가려하자, 그는 내 한 손을 덥썩 잡아 채고는, 시작! 하고 외친다. 나는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낑낑거렸다. 하지만 힘으로 그를 이길 능력은 없었다. 나는 그냥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 천천히 기계 위를 걸었다. 그는 고집을 꺾은 나를 보고는 살풋 웃으며, 말했다. 아. 예쁘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쯤하면 그만해도 될 것 같아 정국이를 슬쩍 바라보니, 아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뛰었다. 그리고는 저를 곁눈질 하는 내게, 더 해야 돼. 하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더 하면 죽을 것 같은데...? 나는 그에게 대충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가 런닝머신 앞의 티비 화면을 바라보는 때. 전원버튼을 껐다. 물론 아이의 것도 함께. 그는 그런 내 행동이 어이가 없는지, 느리게 멈춰가는 기계 위에 서서 '뭐한거야?' 하고 물어온다. 나는 그의 한쪽 팔을 잡고는, 기계 위에서 내려 끌었다.
"나 힘들어어."
"...이십 분 했는데?"
"짱 많이 했다. 그치?"
"..."
"집 가ㅈ"
"다른 거 하자."
"아. 왜! 갑자기 운동을 해!"
"너 체력 그거 못 써."
"아아.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안 돼. 글 쓴다고 밥 안 먹어, 잠 안자. 근데 운동도 안 하잖아."
"괜찮ㅇ"
"안 돼."
단호한 말투였다. 정국이는 정말로 나를 운동시킬 작정인지, 다른 운동기구를 두리번거렸다. 진짜. 거짓말 안하고 너무 - 싫다. 아이는 제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 켠에 마련된 링을 가리켰다. 설마.
"저거 하자."
"너랑 나랑... 저걸?"
"봐줄게."
"말이 되냐!"
링 위에는 글러브를 끼고 복싱 비슷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내가 얘랑 저걸 어떻게 해 -. 나는 이번만큼은 절대 지지 않겠다는 눈빛을 보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싫어! 하며. 그러자 그는 어느새 글러브까지 챙겨와서는 내게 건넨다. 그리고는 내게 '이기면 소원 들어줄게.' 한다. 분명 정국이가 나를 꼬시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소원'이라는 단어에 바람이 부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를 흘겨보며 '전부 다?' 하고 물었다.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뭐든 - 하고 웃어보인다. ...그래. 봐준다는데. 설마, 여자친구를 뭐 패대기야 치겠어 - ?
*
앞에 똑바로 보고. 아니. 내 눈을 봐야지. 야, 야. 힘을 더 줘야지.
봐준다는 말은 어디에 날려먹은건지, 준비운동부터 지나치게 철저한 아이였다. 글러브를 내게 끼워주고는, 저를 샌드백이라고 생각하고 스텝을 밟으라는데... 스텝을 밟으면 손이 안 나가고, 손을 뻗으면 발이 제자리다. 아이는 답답한 내 속도 모르고 더 힘을 줘서 치라며, 자꾸만 내 속을 긁어온다. 게다가 정국이가 자주 다니는 헬스장이라 그런지, 그의 지인들이 링 주변을 힐끗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여자친구라는 이유에서. 또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링 위에서 주먹을 겨누는 것도 뭐, 쉬운 구경거리는 아닐테니.
평소 같았으면 내 투정에 금방 져주었을 정국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계속해서 내게, 더. 더 - 하고 복싱을 시키는 아이에게, 잠깐만. 하고 한 손을 뻗었다. 정국이의 글러브가 아래로 향했다. 나는 그의 옆에 다가가서는 잠깐 고개 좀 내려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아이는 한 쪽 글러브를 벗으며, 내 머리칼을 정리해줬다. 동시에 고개를 숙여, 왜 - 하고 물었고. 나는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 싶어 준비한 멘트를 날렸다.
"그만하자."
"몇 번 말해. 안 된ㄷ."
"오빠."
나의 반복된 투정에 질리지도 않느냐는 식으로, 몇 번을 말하냐며 안 된다고 말을 이어가는 그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을 끊은 건, 나였고. 주변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연하 남자친구에게는 '오빠'라는 호칭이 게임셋! 이라는데... 정국이는 별 다른 대답도 없이, 그 상태로 가만히 멈춰있었다. 아니. 이렇게 반응이 없으면, 내가 무안하지...! 나는 무슨 반응이라도 해보라며 채근하기 위해, 다시금 그에게 귓속말을 하러 가까이 붙었는데.
아이의 귀가 붉었다.
결국 전정국도 '오빠' 호칭을 좋아하는 많고 많은 남자와 같구나 - 싶어, 장난 섞인 마음이 피어올랐다. 나는 내 머리칼을 정리해주느라 글러브를 벗은, 그의 손을 잡아오며 제법 애교스럽게 '오빠아 - ' 하고 말꼬리를 끌었다. 아이는 꽤나 오랜 시간 정지된 정신을 깨웠는지, 제 머리를 두어 번 흔들더니 헛기침을 해댄다. 그리고는 다시 글러브를 끄려는 행동을 취했다. 나는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 것 같은 그였기에, 그의 글러브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하기 싫어요오.' 하고 말하며, 그의 손바닥 위로 하트를 그렸다. 그는 제 손바닥 위에 하트가 그려지는 걸 눈치 챘는지, 제 아랫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나는 아이의 손바닥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만 하자아. 하며.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가 되기 전에, 아이는 제 나머지 한 쪽의 글러브를 빼며 - 말했다.
"그래. 그만하자."
"진짜?"
"...막 절대 오빠 뭐, 그런 거 때문에 그만 하는 거 아니야."
아이의 시선은 허공을 향했다. 오빠라는 호칭이 꽤나 쎄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저의 이미지가 내심 신경이 쓰이는지, 그런 거 때문에 그만하는 건 아니라며 - 제 앞머리를 적신 땀을 닦아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그럼? 하고 물었다. 그러자 정국이는 살풋 나를 내려보더니, 이내 다시 허공으로 시선을 띄우며 - 원, 원래 그만 하려고 했어. 하며 말을 더듬었다. 참나 - 원래 그만하려고 했다니. 나는 장난스레 그의 복부를 쳤다. 그 역시 그의 행동이 웃긴지, 나를 밀어내며 얼른 가서 씻고 나와. 하고는 - 샤워실을 가리켰다.
*
나는 정국이가 기다릴까봐 머리도 말리지 않고 나왔는데,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오래 씻어? 나는 혹시라도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를 그를 찾아, 주변을 살폈는데 - 누군가 '저기요...' 하며 나를 조심스레 불러온다. 나는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았고, 뒤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까 그와 복싱을 할 때부터 이쪽을 향해 있던 무리 중 한 명 같았다. 남자는 나를 향해 '씼으러 들어가시고 정국이는 운동 좀 더 하다가, 들어가서... 좀 늦게 나올 거예요.' 하고, 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주변을 살핀 게, 그를 찾는 행동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다. 나는 덕분에 해결된 궁금증에, 아 - 고맙습니다. 하고 가볍게 웃어 보였다. 내게 말을 건넨 남자의 뒤에는 남자 무리가 저마다의 운동기구 뒤에 붙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할 말이 있는 건가? 나는 내게 말을 끝내고도 돌아가지 않는 남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남자는 수줍게 제 등 뒤에 감춰뒀던 것을 꺼냈다. 그리고는 수줍게, '저 싸인 좀...' 하며 말을 이어온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건, 내 책이었다. 인터뷰가 나간지, 며칠이나 됐다고. 나는 새삼 언론의 힘을 실감하며, 책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펜이 없었다. 나는 남자를 향해 펜이 없다는 이야기를 꺼내려 했는데, 남자는 이미 펜도 준비했는지 내게 검정색 마카를 건넸다.
남자에게 싸인을 해주고 나니, 뒤에서 나를 바라보던 남자 무리가 한 명 두 명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울긋불긋한 근육과 맞지 않게 - 저도... 하며 수줍게 말을 붙여왔다. 나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였기에 흔쾌히 수락했고, 내게 처음 싸인을 받은 남자는 나를 헬스장의 사무실로 안내해주며 - 나름의 싸인회 장소를 구비해주었다. 익숙치 않은 상황에 웃음이 흘러 나왔다. 꽤 많은 인원이기는 했지만 그의 지인들이었기에 최대한 밝게 웃으며, 싸인을 이어나갔다.
"저 진짜 팬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 성함ㅇ... 어?"
"완전 슈퍼스타 다 됐네?"
"석진이 오빠?"
"어이구. 이름도 다 기억해주시고 - 영광입니다."
"뭐야...! 유학 갔잖아!"
"유학이니까 돌아왔지."
진짜 팬이라며 말해오는 남자에게 고맙다고 답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 제법 익숙한 얼굴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옆 집에 살던 오빠였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오빠네 부모님이 자주 밥을 챙겨주시기도 했는데...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나질 줄이야. 오빠는 제 이름을 부르는 내게, 여전한 장난기로 이름을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웃어 보인다. 유학을 간다고 훌쩍 떠났는데, 돌아왔구나. 오빠는 일부러 싸인의 마지막 차례에 서서 나를 기다렸는지, '이제 더 이상 팬도 없는데,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하며 내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나는 오빠의 물음에 문득, 정국이가 떠올랐다. 아니, 얘 아직도 안 나온거야?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오빠를 향해 - 잠깐만 하고, 주변을 살피는데. 사무실의 문틀에 팔짱을 끼고는 삐딱하게 서 있는 그를 발견했다. 아이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제 눈썹을 치켜 세웠다. 그리고는 나와 오빠를 향해 걸어왔다. 그 밥. 같이 좀 먹죠. 하며.
*
살면서 이렇게 어색한 상황에서 밥을 넘겨본 적이 있던가. 있다면, 그 때 체하지는 않았을까...? 근처 삼겹살 집으로 와서는 서로를 가만히 쳐다만 보는 둘이었다. 사실 석진이 오빠의 시선은 흥미롭다는 편에 가까웠는데, 정국이는... 뭔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종업원이 막 두고 간, 고기를 집게로 집어들었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배고프다...! 그치? 얼른 먹자! 하며, 누가봐도 애처롭게. 그러자 내게 집게를 달라는
정국이와 석진 오빠였다.
나는 내게로 뻗어온 두 사람의 손에 그냥 내가 하면 안 될까...? 하고 조심스레 물었고, 정국이는 내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저가 먼저 집게를 가져갔다. 석진 오빠는 그런 정국이를 보며, '굳이 하시겠다면.' 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듯 했다. 나는 오빠가 핸드폰을 만지는 사이, 정국이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아이는 내 시선이 분명 느껴졌을 텐데... 애써 모른 척 하며 묵묵히 고기만 구웠다. 그의 눈치를 보고 있음과 동시에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재밌는 거 보여줄게. - 석진 오빠]
싸인을 하며 주고 받은 전화번호였다. 오빠는 이 상황이 마냥 신나는지, 재밌는 거 보여줄게 - 하고는 내게 말도 안 되는 텍스트를 보냈다. 나는 오빠를 향해, 나도 모르게 오빠! 하고 외쳤고. 순간, 고기를 뒤집던 정국이가 멈칫. 그리고 이 순간이 마냥 즐거운 오빠는 한 손을 제 턱에 괴며, 왜 - 탄소야아. 하고 다정하게 말을 붙여온다. 당황한 나는 아... 아니야. 하며, 물잔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모! 여기 소주 2병만 주세요!
술을 마시고 싶었다.
20 preview
"난 망싱창이로 취해쏘... 취해쏘..."
술을 마셨어도, 몇 잔이고 내가 더 마시고. 술에 취했어도, 몇 번이고 내가 더 취했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 여자는 내 속도 모르고 근본 없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녀는 내 등 뒤에 엎여서는 내 목덜미에 대고 자꾸만 제 작은 입을 달싹거렸다. 아. 진짜. 내가 누나의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거릴 때마다, 누나는 어떻게 참아냈는지.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깨워서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그녀를 고쳐 업으며, 가만히 좀 있지? 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싫어요오. 싫습니다! 정구기 오빠아.' 하며, 제 입술을 대놓고. 그것도 아주 대놓고. 내 드러난 목덜미와 귀에 마구 입 맞췄다.
깨기만 해.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먼저 말씀을 드리자면, 뮤보 조금만... 연장하겠습니다...! (눈치) 사실 오늘 회차도 없는 부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보고 싶어서 추가했거든요...ㅎㅅㅎ 그러다보니 더 추가하고 싶은 내용도 생기더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막 엄청 많이 연장은 아닐 거... 걸요? 앞으로는 잘 생각하고 말해야겠어요... 그러니 앞으로 조금 더 많이 남은 뮤보도 많이 애정해주세요!
다들 고맙습니다.
암호닉
(바로 전 회차인 18화에 신청하지 않으신 분들은, 이번 회차에서 다시 한 번 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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