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민윤기 김석진
가장 보통의 존재 4
남준이 몸을 뒤척였다. 영 잠이 오지 않았다. 문득 천장에 윤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자겠지. 분명 연락을 했다가는 안 그래도 안 좋은 사이가 더 안 좋아질 것임이 분명했다.
“……”
내가 뭘 했는데?
남준의 머릿 속에 자리잡은 생각이었다. 딱히 그렇게 억울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윤기에게 솔직하게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거였다. 내가 도대체 뭘 했는데 날 그렇게 싫어해요? 친해지는 게 어렵나? 내가 뭐 많은 걸 바라나?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윤기는 자신과 가까워지기를 원치 않아하는 것 같으니까. 엄연히 따지자면 윤기는 갑이고, 남준은 을이었다.
[자요?]
그래도 남준은 꿋꿋히 문자를 보냈다. 어차피 남준은 윤기에게 자신은 천하의 썅놈이었고 상종도 하기 싫은 그런 존재였을 거라고 생각하며 보낸 것이었다. 분명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보내봤다는 거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준도 자기 자신이 신기했다. 왜 이렇게 이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건지.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 이유 없었다. 그냥. 정말 윤기에게 말했던 그대로였다. 딱히 이렇다할 계기도 없었고. 아, 뭐 따지고 들자면 궁금해서?
딱 그쯤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늘 남준이 타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또 어느 날에는 교문 앞에서 꽤나 비싸보이는 차를 타고 집에 가거나 하는 모습이 궁금했다. 그리고 학과 사람들과는 대화도 하기 싫어하면서 누군가와 전화 할 때는 마치 열아홉 소녀마냥 수줍고 조곤조곤한 모습이 궁금했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민윤기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여보세요.
답장이 없길래 그냥 호기심에 걸어본 전화였다. 이 시간에 깨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부재중 전화나 남기지 뭐, 라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는데 예상 외로 연결된 전화에 남준이 당황했다.
-전화를 했으면, 말 좀 하지?
“……어디에요?”
-집.
집이라고 하는 윤기의 목소리 뒤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딱 봐도 집이 아닌데. 습관적 거짓말이다. 남준이 그렇게 생각하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집이 참 시끄럽네요.”
-응. 우리 집 좀 시끄러워.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언제 한 번 갈게요.”
-……
남준의 말에 윤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준이 이불을 옆으로 제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댔다.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초대 안해줄 거에요?”
-내가 널 왜 초대하는데.
전화를 받아주길래 혹시 뭐 자신에 대한 마음이 조금 열렸다던가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럴리가 없지. 남준이 그렇게 생각하며 낮게 웃었다. 왜 웃어? 윤기의 말에 남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요. 그렇게 말했는데, 안 봐도 눈 앞에 윤기의 표정이 선명했다.
“집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30분.
“와. 심심하겠다. 내가 전화해줄게요.”
-필요 없어.
“아니면 지금 거기로 갈까요?”
그 말에 윤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 이건 좀 아니었나. 남준이 속으로 생각했다. 윤기가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필요 없는데.
“다행이네요. 욕은 안해서.”
-어. 늦었으니까 자라.
“조심히 가요.”
-내가 여자애도 아니고.
“누가 뭐 여자애랬나.”
윤기가 허, 하고 힘빠진 웃음을 내뱉었다. 진짜 조심히 가요. 세상 흉흉하니까. 집 가면 도착했다고 연락하구요. 그렇게 말해놓고 남준이 괜히 웃겨서 낮게 웃었다. 애인 챙기는 것도 아니고.
-닥쳐.
“끊을게요.”
남준보다 윤기가 먼저 끊었다. 끊겨진 전화에 남준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달아나버린 잠이 다시 슬슬 몰려들기 시작했다. 온 몸이 무거워졌다.
/
새벽이라 그런지 낮에 보는 것만큼 밉지가 않았다.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만 하는 거라 그랬나. 전화까지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데. 윤기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너무나도 당연하게 남준에게 문자를 보낼 뻔 했다.
[나 도착했ㅇ]
문자를 쓰던 윤기가 쓰던 것들을 다 지워버렸다. 내가 얘한테 왜 이걸 보내. 그렇게 생각한 윤기가 대충 입고 있던 옷들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는 이불 위로 엎어졌다.
석진의 집에서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자신의 몸과는 어울리지 않은 고급 침대 때문일 거다. 늘 바닥 아니면 홀로 깔려진 매트리스 위에서 자는 게 습관으로 베어있어서, 그렇게 비싼 침대나 좋은 이불 위에 누우면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석진과 만나면서 3년 째 고쳐지지 않는 몹쓸 습관이었다. 석진은 모르는 비밀이었다.
/
-치사해.
“너무 잘 자고 있길래 깨우지도 못하고 그냥 왔어요.”
-자고 가라니까.
“그냥, 내가 옆에 있으면 괜히 거슬릴까봐.”
-아니거든. 너 때문에 오히려 더 못 잤어. 니가 없어서.
그 말에 윤기가 작게 웃었다. 입에 침은 바르고 말하는 거에요? 윤기의 말에 석진이 웃었다.
-요즘 좀 이상해.
“나요?”
-응. 좀 달라졌어. 너.
“……뭐 사람이 늘 같을 순 없는 거고. 그래서, 싫은 거에요?”
-아니. 그냥 너라면 다 좋아.
그 말에 윤기가 오글거려요, 하고 작게 투정을 부렸다. 석진이 웃다가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
“네.”
-사랑해.
“나두요.”
윤기가 끊어진 전화를 한참 귀에 대고 있다가 힘없이 손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걸었다. 집에 슬리퍼 낡았던데. 하나 사갈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어딘가에 부딪혔다. 낯선 향에 윤기가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잘 들어가긴 했나 보네요. 멀쩡히 여기 서있는 걸 보면.”
“어.”
“들어가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응. 피곤해서.”
“아. 그렇구나.”
남준이 윤기의 옆을 졸졸 쫓았다. 가던 길 가지? 윤기의 말에 남준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가고 있어요.”
“……”
“왜요. 내가 먼저 앞서 갈까요?”
남준이 윤기에게 그렇게 말하며 큰 걸음으로 윤기를 앞질러갔다. 윤기가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남준이 두 세 걸음 정도 앞질러가다가 걸음을 멈춰섰다. 그리고는 다시 뒷걸음질 쳐 윤기의 옆에 섰다.
“혼자 걷는 것보다 누구든 같이 걷는 게 좋잖아요.”
“난 아닌데.”
“난 그래요.”
한 마디도 지는 법이 없었다. 윤기가 이마를 짚었다. 남준이 그런 윤기를 보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러다 남준의 시선이 윤기의 목덜미에 닿았다. 남준의 시야에 데일밴드가 들어왔다.
“모기 또 물렸나 봐요.”
“……어.”
“오늘은 반대쪽이네. 저번에 물린 곳은 다 사라졌네요.”
“어.”
“모기에 잘 물리는 체질인가 봐요.”
알면서 그렇게 묻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건지. 윤기가 남준을 말없이 쳐다봤다. 남준도 윤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윤기가 분명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옭아매는 남준의 시선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 때 윤기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제야 둘의 시선이 핸드폰으로 향했다.
[이따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김석진
문자 내용을 확인한 윤기가 답장을 보냈다. [좋아요 내가 회사 앞으로 갈게요] 그렇게 답장을 보낸 윤기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남준이 속으로 계속 이름을 곱씹었다. 김석진. 김석진. 김석진.
“갈 길 가라.”
윤기가 공대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남준에게 말했다. 남준이 윤기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살 좀 찌지. 윤기의 얇은 다리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
저녁 같이 못 먹겠다. 미안해.
석진의 말에 윤기가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지 않았다. 그냥 공허해졌다. 그런 윤기의 눈 앞에 석진의 집 모습이 훤했다. 또 아침에 급하게 준비하느라 옷도 여기저기 내팽개쳤겠지. 석진의 동네를 지나치는 길에, 들렀다가 청소나 하고 갈까 하는 생각에 걸음을 옮겼다. 석진의 오피스텔 앞에 서서 윤기가 익숙하게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바로 계단 밑 지하 1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먹을래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불과 30분 전만해도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윤기가 그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한참을 빨리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흐트러진 가방 끈을 정리한 윤기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
윤기가 고개를 돌려 버스 안내판을 바라봤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한참 남아 있었다. 윤기가 가방 끈을 쥔 손에 더욱 더 힘을 주었다.
분위기가.. 요상꾸리 하네요. 쟤네 셋이....! (두둔)가장 보통의 존재 4
보통 님 베스트셀러 님 똥맛카레 님 유자청 님 암호닉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ㅁ♥ (수줍)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