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연애 : 센 년과 센 놈이 만나면
욕설 주의. 매우 주의. 화장실 갈 때 읽으세요. 쓰레기입니다.
1. 첫 만남
"야, 눈 안 깔아? 뒤질래?"
"참아, 좀.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해."
"생각을 해 봐, 김남준. 쟤가 래퍼면 몰라. 보컬인 새끼가 왜 나랑 기 싸움하자고 덤벼, 쓸데없이. 피처링해 달라고 한 게 누군데."
쓸데없는 말들은 다 제쳐두고 말하자면, 나는 래퍼다. 그것도 탑클래스. 요즘 대세 래퍼 겸 아이돌이라는 내 불, 아니. 소꿉 친구 랩몬스터보다 더. 대한민국 힙합 본좌인 선배님들이랑 같이 콜라보도 해 봤고, 외국 힙합쪽에도 얼굴이 꽤 알려진 상태라서, 한국에서만 있기보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음반을 냈더니 폭발적인 반응은 덤, 나를 선생으로 모시는 힙합 꿈나무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 내가, 지구 반대편에 있던 미국에서 한국까지 피처링 하나 하려고 날라왔더니 돌아오는 건 쭉 찢어진 눈으로 잔뜩 쏟아지는 시선. 얘 진짜 미치겠네.
아니, 나는 적어도 들어설 때부터 와, 000이다! 하는 것까지는 안 바랬어도 아, 안녕하세요…… 하면서 수줍음을 장착하고 어색어색하면서도 화기애애한 그런 분위기를 원했다고! 이런 전투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음 계속 떨어지잖아. 아무리 내가 래퍼여도 나 가수거든?"
"너 노래도 했었다면서."
"처음부터 랩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노래 따라부르다가 랩하는 거지."
"나는 처음부터 랩했는데?"
"입 닫아요, 오빠."
음, 그래, 윤기 오빠는 나랑 친분이 있었으니까.
"프리스타일 랩 보여 줘요."
"네가 먼저 하면. 너 싸이퍼 겁나 잘하잖아."
"아이, 그걸 또 봤어요?"
"윤기 오빠 대신 네가 래퍼 라인 해."
김태형이랑은 뭐라고 하지, 오랜만에 본 친척 같은 사이?
"누나, 팬들이 누나랑 작업 같이 한다니까 이거 보내 줬어요. 먹을래요? 이거 어차피 누나 거잖아요."
"응? 너희들 먹지."
"아니야, 팬들이 이거 너 먹이라고 보내 줬어. 귀한 몸이니까 직접 먹여 주랬어."
"맞아, 네 팬인지 우리 팬인지. 그래도 먹어, 너 살 빠졌던데."
석진 오빠랑 정호석, 박지민은 엄청 착해. 진짜 데리고 살고 싶을 정도로.
"내가 음 떨어진 거랑 그쪽이랑 뭔 상관인데요."
근데 씨발 저 개자식은…….
전정국. 이름이 전정국이라던가. 흔하지 않은 이름인 건 확실했다.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음, 그럴걸. 아무튼 전정국은 아까부터 나에게 끊임없이, 계속, 지속적이게 나를 자극했다. 그 예쁘지도 않은… 아, 예쁘긴 하네. 아무튼 그 쓸데없이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서.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가 틀린 걸 지적할 때마다 수긍하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네, 네. 그래서요. 어쩌라는 건데요. 그쪽이나 잘하세요.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차라리 반말을 하지, 왜 기분 나쁘게 존댓말이냐고. 나는 말했다. 씨발,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쳐들어. 전정국은 대답했다. 존나 싫은데요.
"야, 전정국, 그만해. 뭐 하는 짓이야. 내 친구잖아. 우리 위해서 와 준 거고."
보다못한 김남준이 나섰다. 전정국은 그 긴 속눈썹을 자랑하듯 눈을 내리깔았다. 생긴 건 근육 토끼같이 생긴 게. 흥. 김태형이 던져 주는 지민이 인형을 품에 안고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몸을 늘어뜨렸다. 암만 그래도 내가 선배이자 누나인데, 저 버릇 없는 새끼가. 전정국이 녹음을 하면서 계속 나를 째려봤다. 나는 생긋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면서 금방이라도 부스 밖으로 튀어나와 내 멱살을 쥘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쫄지 않았다. 래퍼의 상징인 멋이 저 조그만 꼬마 하나 때문에 없어지면 안 되지. 내 인생은 힙합이니까. 그럼그럼. 뭐, 조금 큰 꼬마이긴 한데, 나는 힙합이니까. 히팝……is my life……. 내가 속에서 흑염룡을 잠재우고 있을 적에 미니홈피에 적어 놨던 글귀였다.
오, 뻐킹. 전정국이 삑사리를 냈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그래, 음이탈. 음이탈이 났다. 윤기 오빠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나는 휘파람을 한 번 불었다. 안 그래도 며칠 밤 새서 예민할 텐데, 쟤가 한 건 했네. 지민이가 내 팔뚝을 조금 끌어당겼다. 조심하라는 뜻인 듯했다. 워, 얘네도 윤기 오빠 별명이 미친개인 건 아나 보다. 하긴, 같이 연습생 생활을 몇 년 보냈는데. 나는 몸을 조금 수그렸다. 윤기 오빠가 여자를 건들지 않는 건 정말 잘 아는 사실이지만, 혹시 몰랐다. 민윤기가 그럴 수도 있다. 네가 여자야? 하고. 쓰벌, 진짜 그러면 전쟁이다.
"다시 한 번 간다."
"아니, 형, 자꾸 저 사람이."
"다시, 한 번, 간다."
"형."
"눈치 없는 새끼야, 좀 닥치고 해!"
소리를 빽 지른 탓에 호석이가 몸을 움칠 떨었다. 윤기 오빠가 말을 끊어서까지 말한다는 건 위험 신호라는 걸 왜 모르는지 1도 모르겠다. 인형을 내팽겨치고 윤기 오빠 와 김남준 옆에 앉았다. 김남준이 한숨을 푹 쉬었다. 똑같은 데만 몇 번째 하는지, 내 노래도 아닌데 앨범 발매도 전에 귀에 익을 지경이다. 심지어 좀 지겨워지려고 해. 음이 떨어진다는 말은 듣지도 않은 듯했다. 나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저 꼬맹이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민윤기에게 물리는 게 더 불쌍한지라.
"음 한 번 듣고 가. 끝에가 더 낮아지는 건 맞는데 너무 떨어지잖아."
그래도 자존심은 지키려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아오, 더 열받아. 입을 꾹 다무는 모양새가 한 번 꼬집어 주고 싶은 모양새였다. 그냥 얄미워. 그냥 그래. 오늘 전정국에게 한 말 중에 가장 정상적인, 친절한 어투였는데. 김남준이 내 표정을 보더니 킥킥 웃으면서 카와를 건넸다. 지 광고라고 카와 건네는 꼴은. 나는 그 옆에 있던 김태형의 것으로 추정되는 콜라를 집어들었다. 그 사이 전정국은 더이상 별탈 없이 녹음을 마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덕분이었다.
"야, 꼬맹이."
"나 말하는 거예요?"
"그럼 널 말하지 누굴 말해. 다른 애들은 착하잖아, 새끼야."
"착한 거랑 꼬맹이랑 뭔 상관이에요. 돌대가리세요?"
"네 머리카락 다 뽑히고 싶어서 깝치는 거지, 지금?'
김남준은 말했다. 욕 그만하면 안 돼? 나는 말했다. 너한테 욕 안 하는 걸로 고마운 줄 알아. 김남준이 수긍했다. 대신 전정국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남준이 형한테 할 욕을 지금 나한테 한다는 거예요?"
"김남준은 그나마 착해서 욕할 일이 없는데 네 얼굴만 보면 욕이 나와. 어머, 씨발. 이것도 그런 원리야. 알아들어?"
"와, 골 때린다. 누나가 돼서 그러고 싶어요?"
"네가 누나 취급이나 했어? 저기요, 그쪽. 이렇게 불러놓고 웬 나이 드립이야, 이 새끼가. 김남준, 팀원 관리 똑바로 안 할래? 나랑 콜라보 기념으로 해체할까?"
"할 줄 아는 게 욕밖에 없어요?"
"야, 내가 말했어, 안 했어. 너만 보면 욕이 나온다니까? 야, 김남준!"
"형, 이 사람이!"
"둘 다 안 닥쳐?"
00이 지림. 씨발. 무서워.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윤기 오빠가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전정국 저 새끼 때문이야. 내가 그래도 000인데. 랩지니어스 소리 듣는 사람인데, 내가. 민윤기는 존나 나빠.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술 쳐마셨다가 질질 짜던 거 안아서 달래 준 게 나였는데. 존나 나빠.
입술이 톡 튀어나온 나를 달래 줄 수 있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김남준뿐이었다. 원체 나를 잘 알아서.
"헐, 지금 형 말 한 번으로 가만히 있는 거예요? 미친, 존나 딴 사람인 줄."
저 씨발놈이.
2. 뭐야, 이 뜬금없는 상황은?
"저기요."
"왜."
"번호 찍어요."
"뭐?"
"전화번호 찍어 달라고요."
3. 변함없이
"누나."
"왜."
"누나 미국에서 온 거 아니에요? 나 본 지 세 달이나 지나고 온 거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왜 인사 안 해요?"
뭔 개소리래, 갑자기. 한가롭게 노트북만 만지고 있던 손가락 움직임이 뚝 멎었다. 아마 카페에 들어선 지 20분 가량 전정국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듯, 아메리카노의 바닥을 보일 만큼 쪼옥 들이키고선 내 선글라스를 매만지며 말했다. 달그락. 소리가 나 협찬받은 선글라스가 잘못된 줄만 알고 식겁해 내려다본 선글라스 위에 얹혀져 있던 전정국의 손은 생각보다 예뻤다. 선글라스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녀석의 얼굴을 마주했다. 세 달 동안 볼살이 조금 오른 것 같기도 하고, 선이 굵어진 것 같기도 하고, 철이 제법 든 것 같기도 하고. 그 세 달이 해가 바뀌는 세 달이어서 그런가. 나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꿀떡 삼키고 조금은 뾰로퉁한 얼굴, 정확히 말하면 까만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외국에서는 그 뭐냐, 인사로 키스, 악! 왜 때려요!"
본심은 이거였냐. 역시나 전정국은 철이라고는 하나 들지 않았다. 철이 들긴 무슨, 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철이 들지 않을 게 뻔해. 스물이나 쳐먹어선 하는 말이라고는 키스란다, 키스. 스물 셋 누나한테 할 말이냐, 그게. 한심하게 쳐다보고 다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입이 심심해 파란색 빨대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오랜만인데, 그래도. 존나 너무한다."
"아이돌이라는 새끼가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그러는 누나는요. 누나 가사에 쌍시옷 안 들어간 단어는 없을걸요."
"래퍼가 이미지 관리해서 뭐 해. 내가 대중한테 잘 보여서 뭐 하냐, 내 사람들한테 잘 보여야지."
"오, 그 '내 사람들'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건가?"
"김남준이면 몰라, 너 같은 병신이 왜 내 사람이야."
"씨발. 왜 갑자기 그 형이 나와요, 나랑 있는데."
"욕 자제 좀."
"씨발씨발씨발. 더 필요해요?"
"……아니, 됐다."
나보다 입이 험해진 것 같다, 어째.
4. 밀당?
"누나, 나 어떻게 생각해요?"
"생각할 가치도 없는데."
"하, 미친. 철벽도 가지가지야, 진짜. 그냥 넘어오면 어디가 덧나요? 누나가 먼저 사귀자고 하기만 해. 안 받아 줄 거야, 나."
"꿈은 침대에서 꿔라."
"개나빴어. 솔직히 누나 사람 빡치게 하는 거 알죠?"
"사람이 아니라 전정국 빡치게 하는 거지, 머리 안 굴러가는 새끼야."
5. 연애이긴 한데, 뭔가 좀 이상해
"손 잡지 말랬다."
"왜 나랑은 안 잡아 줘!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저 사람이랑도 손을 잡았는데!"
"팬이잖아, 너는 웬수고. 멍청한 건 사라지지도 않는데 어떡하냐."
"하, 시발."
남준은 크게 한숨을 들이키고 내쉬었다. 몇 년, 아니 십 몇 년을 본 친구와 몇 년을 본 같은 팀원이 연애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기절할 뻔해 데리고 왔더니 이 짓이나 벌이고 있다. 존나 달달하면 어쩌나 하고 작업실에 불러들였는데, 나랑 000이 더 달달할 판이야. 옆에 있던 윤기도 할 말을 잃고는 멍하게 쳐다봤다. 미친, 저게 연애야? 그, 막, 자기야 여보야 그런 연애라고? 윤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얼굴을 큰 손에 파묻었다. 그럴 리가 없어. 자신이 하게 될 연애는 저것보다 훨씬 더 달달할 것이며, 남들을 부럽게 만들 것이라고. 그러나 윤기의 상상을 산산조각 내듯 00이 크게 외쳤다. 꺼지라고, 전정국!
"손 절단해서 억지로 잡아 버리는 수가 있어요."
"잘라 봐, 어디."
"아, 누나!"
"귀 아파, 꼬맹이. 김남준, 거기 있는 거 뭐야? 아메리카노?"
"어, 아메리카노. 마실래?"
00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렇다. 00은 아메리카노 더쿠였다. 평범한 카페에서는 보지 못 하는, 아메리카노가 꽉꽉 채워지다 못 해 뚜껑을 밀어내고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것만 같은 저 까맣고도 갈색인 액체에 침이 저절로 꼴깍 넘어갔다. 정국은 아메리카노에 정신이 팔린 00을 보고 씩 웃었다.
아메리카노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컵을 집어드는 순간에, 짠.
"손 잡았다."
"이 씨발놈이."
억지로 포개어진 손을 보고 00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격한 표현을 해댔다. 개, 신발, 개나리, 크레파스. 지져스.
"대가리 똑바로 안 박냐, 전정국."
결국에 정국이 손을 잡은 탓에 아메리카노를 쏟아 버렸다. 안타깝게도 그 작업실은 남준과 윤기의 것이었다. 조던을 고이 모셔 둔 그곳에 하필이면 쏟아 버렸기에.
"아, 혀엉!"
"눈 안 깔아? 뒤질래? 머리 박살?"
전정국은 결국 머리를 박아야 했던 것이다.
6. 안 그래도 배틀 연애인데, 싸우면 어쩌자고!
"말이 돼, 말이? 저 미친놈이 징그럽게 질투를 했다니까? 그것도 존나 어이없는 일로."
"뭔데."
오늘따라 잔뜩 진지해진 채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김남준이 기특했다. 친구 하나는 진짜 짱이라고. 그런데 전정국 생각만 하면 또 짜증이 나고. 최근 미국에 너무 오래 있어 그런지 영어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덜뻐킨 전정국! 뻐킹맨! 아헤잇힘! 이것보다 더 심한 욕도 했지만 김남준이 그 말을 하자마자 그 큰 손으로 내 입을 턱 막았다. 짜증 나. 미국에서 들은 욕이 얼만데 순수한 척이야.
"뭘로 싸웠는지 얘기 안 해 줄 거야?"
"아니 글쎄 전정국이 너랑 붙어 있지 말래. 어떻게 자기보다 더 붙어 있녜. 그리고 뭐라는지 알아? 내가 어이가 없어서. 뭐 때문에 그렇게 네가 소중한 사람이녜."
김남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근본 없는 새끼. 그것도 모르고 대뜸 들이대고 지랄."
"욕 좀 제발."
"존나 짜증 나. 진짜 존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랑은 못 사귀어, 진짜 존나."
"그래도 막내는 너 많이 좋아해."
"어쩌라고. 너는 네 가족이 중요해, 애인이 중요해 하면 뭐라 할 것 같냐. 당연히 가족이지. 좋아하면 뭐 해, 난 가족 사랑해. 아무리 개념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있어? 왜 너를 들이밀어, 들이밀긴."
"예전에 좀 그렇게 잘했어야지. 낯간지럽게 사랑 고백이야."
"이 새끼가? 이게 무슨 사랑 고백이야! 넌 내 가족이나 다름없다 이거지! 아, 열받아. 가서 전정국한테 완전, 퍼펙트, 나이슬리, 확실하게 전해. 대가리 안 박으면 넌 끝이야, 새끼야. 하고. 처음 만났을 때 머리카락 못 뽑은 걸 후회한다, 내가."
7. 안 그래도 배틀 연애인데, 싸우면 어쩌자고! 2
"아니, 나는 진짜 그런 줄 모르고."
"뭘 몰라, 새끼가. 너 나 없는 데서 나 까냐? 뒤지고 싶어?"
"아니, 형. 나는 형이랑 누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줄 알았잖아요!"
"미친놈이 나를 의심해? 지민아, 구경 와라! 너 괴롭히던 새끼 당하는 거 보여 줄게!"
"네, 형!"
지민은 해맑게 웃으며 쪼르르 달려갔다. 요즘에 정국의 몸에는 멍자국이 하나하나 늘어갔다. 퍼런 멍도 있었고, 피멍도 있었고, 보라색 멍도 있었다. 그 멍들을 보면서 지민과 태형은 마주보며 해맑게 웃었다. 정국이 자고 있을 때는 그 멍을 꼼지락꼼지락 발가락으로 한 번 꾹 누르기도 했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그를 보며, 끓어오르는 희열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새디 같기도 하고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쩔 수 없다. 안 그래도 00이랑 사귀어서 배 아파 죽을 뻔했는데. 아, 생각만 해도 열이 오르네.
"그래서, 형, 누나 화는 조금 풀렸어요?"
"너는 지금 시발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아니, 나는 정말 궁금해서 그래, 정국아. 나랑 걔가 십 년도 넘게 붙어 있었는데, 지금 네가 그거에 대해 짜증을 낸 거야, 미친놈아. 너는 엄마랑 떨어지라고 하면 빡이 쳐, 안 쳐."
아……. 그런 기분이구나……. 씨발, 더 화나잖아! 그래서 안 떨어진다는 거 아냐!
"근데 솔직히 누나 내 거잖아요! 000은, 존나, 내 거! 인간적으로 좀 아니지 않아요?"
"미친새끼가. 난 걔 아빠라니까? 네가 000이랑 지지고볶고 스킨십 존나 진하게 하든 상관이 없는데, 존나 화는 나겠지. 생각해 봐, 너 사촌 누나가 남자 친구 생길 때마다 삼촌께서 화내셔, 안 내셔."
"당연히……. 아, 그럼 어떡해요."
"대가리 박든지 꿇든지, 새끼야."
8. 화해?
"김남준 나와."
00의 불그스름한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그 속에서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며칠 밤을 새 자동으로 쉬어 버린 목소리가 00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들었다. 자신의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했지, 여름에. 멤버들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네 위에 몇 명 있어도 네가 리더 아니냐? 이 새끼들 어쩔 건데. 너네 컴백 준비한다고 녹음실 온 거 아니야?"
"그게, 우리끼리 이 정도는 다들 하니까."
"어디 한 번 더 떠들어 봐."
할 말이 더 있어 보이는 남준의 입이 닫혔다. 00이 팔짱을 끼고 눈을 피하는 지민과 정국을 매섭게 쳐다봤다. 한숨, 그리고 잔소리.
"와, 데뷔 3년쯤 되니까 폭행설이랑 불화설 같은 건 상관 없다 이건가. 마인드도 개썅마이웨이도 아닌 것들이 왜 지랄이지, 응? 자, 지민이 말해 봐."
"야, 누나!"
"전정국 입."
"누나!"
"지민이 말하기 싫어?"
그건 아닌데……. 지민이 눈을 내리깔았다. 무서워, 무섭다고. 저 누나는 왜 이럴 때만 무서운 거야, 다 큰 사람도 지리게. 태형이 멍하니 있다 킥 웃음을 흘렸다.
쪼개?
아뇨, 누나. 콧물이 흘러서 소리가 난 거예요. 미안해요.
뭐야, 감기 걸렸어? 조심 좀 하지. 태형이 먼저 들어갈래?
그건 아니고요. 괜찮아요. 저 신경 쓰지 마세요.
응. 미안, 아픈데 이러네.
진짜 괜찮아요!
씨발, 저 이중인격. 남준이 눈을 위아래로 부라렸다. 리더가 무서운 막내는 헙. 그러나 진짜 막내인 정국도 입모양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태형이 땀을 흘렸다. 하하. 아하하. 왜 미친 나는 막내즈냐.
"말 안 해?"
"아, 누나! 내가 말할 수 있."
"닥치랬지, 너."
"나는 네 남자 친구도 아니냐? 나도 입이 있는데 왜 말을 못 하게 해, 시발! 항상 나는 욕하면서 다른 애들한테는 친절하게 대하고! 내가 뭐로 보이냐, 진짜."
"이 새끼가. 야, 다 나가. 지금부터 셋 셀 동안 안 나가면 모가지다. 나가."
미친, 000 더 화났어. 옆에 앉은 남준의 읊조림을 들은 호석이 제일 먼저 후다닥 나갔다. 그 다음이 석진, 윤기, 지민, 태형, 그리고 남준. 이런 일은 흔하다는 듯 눈웃음까지 치고 나간 남준이 정국은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 그 전에 지금 앞에 있는 여자한테 서운해서 딱, 죽을 정도.
"하고 싶은 말만 해 봐."
"솔직히 우리 사귀는 거 맞아? 연락은 한 달 동안 없더만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 새끼 저 새끼. 남준이 형 일은 미안해.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누나 나 좋아하긴 해?"
"끝이야?"
"누나는 뭔데 그렇게 당당해, 사람 섭섭하게. 이럴 거면 우리 그냥."
"나랑 진짜 헤어지고 싶어?"
"그건 아닌데! 누나가 잘못했잖아, 솔직히!"
"알았어. 누나가 미안. 나가자, 상처 치료해 줄게."
"누나아아아!"
"뭐. 화해하기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연하남 전정국은 조련하기 쉽다.
9. 마지막은 와장창이다
"야, 이리 와 봐."
정국이 00을 만나러 나가려는데, 윤기와 남준이 비장하게 정국을 부른다. 쓸데없이 눈빛까지 비장하다. 방에서 나오는 지민의 걸음걸이도 비장하다. 물을 마시는 태형도 비장하다. 남준 옆에 앉는 석진의 나풀거리는 머리카락도 비장하다. 심지어 호석의 보조개마저 비장하다. 정국, 흠칫한다.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작은 테이블에 마주앉은 사람들을 본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또.
"왜."
"이리 와 봐, 새꺄."
"왜, 000 만나러 가야 한다고."
남준, 어느새 누나 호칭을 저리로 버려 버린 정국의 말을 듣자 눈에 불이 타오른다. 이 새끼가, 내 새끼를 감히. 아니 물론 너는 내 새끼가 아니라 그냥 이 새끼. 같은 팀인 새끼야, 너는 그냥.
"손 잡았지, 너."
"그때 손 잡냐 마냐 난리쳤잖아요! 근데 전정국 이 새끼가 그냥 잡아 버린 거 있죠! 아, 빡침. 순수한 00 누나를."
"아니, 그건 아니고. 누나 전에 남자랑…… 헙, 암쏴리."
눈치 없는 태형이 황급히 입을 손으로 막는다. 윤기와 남준의 눈에서 화르륵 불꽃이 인다. 다행히 희생양은 태형이 아니었다. 그래서 태형아, 전 남친이 누구라고?
"형, 이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스킨십, 스킨십!"
"맞다. 입술…… 했음?"
"닥쳐, 씨발! 안 닥쳐? 이 씨발. 너 했어? 안 했다고 해라. 씨발!"
"헐, 했어? 이 미친놈이. 앞글자가 쌍비읍이야, 키읔이야. 똑바로 말해."
"미친, 막내가 벌써. 너 이 자식."
"아, 이것 좀 놔! 진짜 형이 00이 아빠 같잖아! 으억, 놓으라고!"
"야, 000. 너 전정국이랑 뽀뽀했어? 뭐, 씨발? 키스? 안 했어? 구라치면 너도 죽고 전정국도 죽는다. 뽀뽀야, 키스야. 둘 다 했으면 씨발 불 질러 버릴 거야."
김남준 미친새끼, 저건 집착이야……. 멱살을 잡혀 질질질 끌려가는 정국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00한테까지 전화를 걸 생각을 했는지. 저걸 희대의 병신이라고 해야 할지, 또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싸이코패스인가. 어유, 시발. 김남준 왜 사냐. 왜 살아, 미친놈아…….
"윤기 형, 칼 준비됐어요?"
"칼 대신 라이터와 성냥을 준비했어."
원수새끼들, 평소에 000 존나 막 굴리면서 왜 지랄이야. 씨발!
"000 영상통화 걸어. 준비됐나, 전우들."
"예썰."
행운을 빌어요, 정국아.
10. 뭘 쓰는 건지 1도 모르겠다
"정국아, 전정국!"
"왜!"
"너랑 나랑 악플 달렸어! 어떡하지!"
"콩밥 먹여!"
"알겠어!"
11. 1위 기념
"아, 내가 수상소감 말할 거야."
"내가 말할 건데?"
"정강이 까 버린다."
"트로피 나 줘, 그럼. 떨어뜨리지 말고."
"누구랑 듀엣은 처음인데, 그게 우리 전정국이어서 고맙고 우리 사랑둥이들 우리 1위시켜 줘서 고마워! 우리 항상 응원해 주시는 래퍼 오빠 언니들, 방탄 멤버들, 스타일리스트 언니들 내 뽀뽀받고, 나 안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 내 사랑받아요! 안녕!"
"네, 00 씨와 정국 씨의 1위 공약은 뭐였죠?"
"공개 키스요."
사담 |
쓰레기다. 쓰레기가 나타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걸 정확히 작년 4월 1일, 만우절에 썼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정신이었던 거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창 힙합에 미쳐 있었을 때여서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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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성깔에 삐친 정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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